인형극

ㄹㄹ | 조회 수 23 | 2020.07.24. 20:46

가끔 마을에 축제가 있을 때 숲에 사는 마녀가 마을에 와서 인형극을 보여주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아이들이나 좋아할법한 유치한 내용의 인형극 이였지만 어렸을 적의 나는 그 인형극에 빠져들어 축제가 있을 때마다 인형극을 보곤 했었다.

 

 

물론 인형극 외에도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한데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시끄럽게 떠들고 웃는 그런 축제 분위기 또한 좋아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어린 아이들은 맛있는 간식거리를 좋아하는 법이니까.

 

 

축제가 있을 때 외에는 마녀가 인간마을에 오는 일도 거의 없었고 가끔 마을에 오더라도 천을 조금 사가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일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매일매일 축제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왔다.

 

 

그렇게 축제날마다 인형극을 보며 지내 온지 일년 이년.. 점점 햇수를 거듭해가며 자라자 점점 또래 아이들은 인형극 같은 유치한 장난을 보지 않게 되었다.

 

 

다른 남자 아이들은 인형극 같은 것 보다 사람들을 놀래키는 장난을 치면서 노는걸 좋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인형극보다 그런 장난이 더 유치하지 않나? 싶지만 아무튼 그때 당시의 아이들은 그랬다.

 

 

물론 나는 지금이나 그때나 변함없이 인형극을 좋아했다. 친구들은 사내 녀석이 그런 계집애나 볼법한 인형놀음을 좋아한다며 비웃기도 하였지만..

 

 

사실 그때 당시엔 인형극보다 신기한 옷을 입은 채 손을 화려하게 놀리며 연기를 하는 금발의 마녀에게 푹 빠져있었다. 웃기게도 말 한번 제대로 나눠보지도 못한, 나보다 몇십? 몇백?년을 더 살아왔을 마녀가 내 첫사랑 이였다.

 

 

어떻게든 마녀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하나라도 얘기할 거리를 만들기 위해 마법과 인형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마법과 인형에 대해 독학하기 시작했다.

 

 

거창하게 말해서 독학이지 마을에 있는 서점에 들려 이해하지도 못하는 마법책을 읽으면서 조잡한 인형을 만드는 정도였지만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는 우월감에 젖어 허세를 부리고 있었던 시기였다. 지금도 가끔 생각하면 부끄러워서 어디에 숨고 싶어지곤 한다.

 

 

그래도 그런 공부가 어느정도 효과가 있었는지 열여덟 살 무렵엔 간단한 마법과 그런대로 봐줄만한 인형을 만들 정도는 되어서 독립하여 마을에서 홀로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마을에 오는 마녀에게 조금씩 말을 걸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안면을 트기 시작했다. 거진 십년 가까이 봐왔던 마녀의 이름을 그즈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앨리스 마가트로이드. 낯설게 느껴지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얘기를 나누면서 나에 대한 것도 얘기를 했었는데 앨리스는 꾸준히 자신의 인형극을 보러오던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저 말을 들었을 당시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앨리스와 어느 정도 친해진 나는 그녀에게 제자로 받아들여 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했었다. 그 말에 낙담한 채 있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녀는 제자는 안 받는다던 말이 무색하게도 나에게 정말 많은 것을 알려주었었다.

 

 

그렇게 앨리스에게 마법이나 인형, 혹은 세상에 대한 것을 배우며 지낸지 2년 정도 지났을 무렵 스무살이 된 나는 그녀에게 고백했었다가 차였었다. 어린 시절부터 키워왔던 짝사랑이 깨진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지만 흐르는 시간은 그런 내 마음을 천천히 기워놓았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앨리스에 대한 마음을 접은 지 오래다. 지금은 그저 서로의 연구 성과에 대해 얘기하거나 '오늘 날씨는 어떻네~' 라는 정도의 얘기를 나누는 관계다. 친구? 정도로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그녀에게 스스럼없이 구는 것도 조금 부끄럽기 때문에 친구라고 표현하진 않고 있다.

 

 

사실 지금도 마음 한편에선 앨리스를 사모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에 집중하고 싶은 그녀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사모하는 마음을 내색하지 않으며 그녀와 얘기를 나누곤 한다.

 

 

그녀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고 하면서도 사모한다는 말이 내가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단념한 지금 상황에 딱 맞는 표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앨리스는 요즘도 축젯날마다 인형극을 하러 마을에 오곤 한다. 물론 나는 여전히 그녀의 인형극을 챙겨본다. 축제엔 나도 인형을 팔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에 바쁘게 움직여야 하지만 이것만큼은 그 어떤 일이라도 양보할 수가 없다.

 

 

지금은 인형극을 보면서 예전처럼 그녀의 얼굴을 보기보단 내 자신의 추억을 보는 편이다. 표현이 조금 이상하지만, 그녀의 인형극을 보다보면 마치 예전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지금은 죽고 사라진 우동집 아저씨가 갓 만든 국물냄새가 느껴지기도 하고 나뭇가지를 들고 뛰어놀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기도 한다.

 

 

다양한 추억 속에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은 물론 지금보다 더 정열적으로 그녀를 짝사랑했던 마음이지만 이러한 강렬한 마음은 인형극이 끝나면서 곧 사그라진다. 타는듯 뜨거웠던 가슴이 다시 차갑게 식어버리면 그제야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오늘도 나는 그녀를 사모 하면서도 그것을 겉으로 내색하지 않기 위해 잔뜩 굳은 얼굴로 앨리스와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 |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