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조사한다 2

Mameloukor | 조회 수 17 | 2020.07.26. 16:57

 날이 밝고 마을이 조금씩 활기를 되찾을 시간에도 나는 병든 닭처럼 고개를 계속 흔들었다. 어제 일 때문에 한숨도 자질 못한 데다가, 몸에 골병이 든 듯 뻐근하기까지 했다. 요정들이 몰래 들어와 내 몸을 두드리기라도 한 걸까.
 하지만 몸이 걸레짝이 되었다고 의뢰를 멈출 수는 없었다. 그 망할 홍백 깡패가 휘두르는 방망이에 얻어터진 적도 있었고, 의처증에 미친 남자가 휘두른 칼에 얕게나마 베인 적도 있었다. 그런데 고작 하루를 못 잤다고 일을 그만둘쏘냐.
 나는 누굴 먼저 만나야 할지를 고민했다. 요우키라는 사람의 과거를 알아내야 한다면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만나는 게 좋을 테지만, 당장 손녀인 요우무는 내게 의뢰를 한 장본인이고, 그 유유코인지 뭔지 하는 주인은 백옥루까지 가야 하는데, 일개 인간인 내게 그게 가능한 일인지는 의문스러웠다. 유카리? 말도 섞고 싶지 않은 섬뜩한 존재다. 주변인이라는 자들이 이러하니, 사람보다는 기록을 찾는 것이 더 빠르고 정확할 터였다. 그렇다면 역시 그 사람이겠지.
 나는 비척거리며 바깥으로 나섰다. 눈부신 햇살을 마주하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한숨을 길게 쉬며 큰길을 가로지르니 마을 사람 몇이 내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대충 고개만 끄덕이거나 짧게 대답했다. 그렇게 목적지로 향하는데, 어디선가 위협적인 눈빛이 느껴졌다. 낮에도 어두운 골목 같은 곳에서 나를 보는 몇 사람이 보였다. 다들 생긴 것도 성별도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새까만 머리를 하고 키 높은 게다를 신고 있었다. 그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리거나 모른척하기는커녕 오히려 눈을 더 찌푸리거나 크게 떴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보기만 할 뿐, 내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감시당하는 건가? 어제 그 분홍머리 귀신의 말이 허언은 아닌 모양이었다.
 정체불명의 감시자들을 뒤로 한 채, 나는 히에다 가문의 대저택 앞에 도착했다. 당주님을 만나러 왔다고 말하니 사용인들이 종종걸음을 하며 안으로 돌아갔다. 문은 다시 굳게 닫히고, 나는 나를 노려보는 무시무시한 눈빛에 조금씩 움츠러들었다. 고개를 돌릴까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너무나도 무서워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제발, 아큐가 빨리 문을 열어주기를, 그렇게 되뇌었다.
 영겁과도 같은 시간 끝에 문이 열리고, 들어오시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나는 도망가듯 안으로 향했다. 대문을 닫는 소리가 들리자 나도 모르게 주저앉을 뻔했다. 나는 마음을 최대한 추스르며 사용인을 따라갔다.
 방안에서는 오래된 레코드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안을 들여다보니 아큐는 한참 글을 쓰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한 번 쓱 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번엔 또 누구 꽁무니를 쫓다가 여기까지 오셨나요?”


 아큐는 비꼬듯이 중얼댔다. 나는 그녀 앞에 앉아서 어젯밤부터 방금 내게 일어났던 일들을 설명했다. 어제는 분홍머리 귀신에게 목숨을 위협 받고, 오늘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를 노려보더라는 말을 하니, 아큐는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게, 남의 뒷조사는 하지 말라고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나는 할 말이 없어 한숨만 푹푹 쉬었다. 계속 웃던 아큐는 갑자기 웃음을 멈추더니 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


 “분홍머리 귀신이라. 아무래도 사이교우지 유유코겠군요. 이상하네요. 그 여자가 백옥루 바깥을 나오면서까지 당신 같은 별 거 아닌 사람에게 위협을 가한다니.”


 그녀의 말에 나는 아가사 크리스Q로서의 본능이 깨어나는 건가, 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번엔 진짜로 묻는 겁니다만, 누구 뒤를 쫓고 있습니까?”


 콘파쿠 요우키. 사실대로 대답했다.


 “네, 네?”


 아큐는 깜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 행동에 그녀가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강렬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그래서……. 환상향연기를 보고 싶다는 거군요. 그래요.”


 아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면 잘못 찾아오셨군요. 환상향연기에는 그 사람의 이야기는 없을 거예요.”


 이유를 묻기도 전에 아큐가 다시 말했다.


 “콘파쿠 요우키는 인간에게 위협을 가한 존재가 아니었고, 그래서 선대께서 적지 않으셨습니다. 환상향연기를 다 뒤져봐도 그 사람에 대한 말은 없을 겁니다. 이건 과거를 알려주는 역사서도 미래를 알려주는 점술서도 아니니까요. 모든 것을 기억하는 저를 믿으시겠죠?”


 나는 피로에 전 얼굴을 문질렀다. 여기까지 와서 허탕이라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언가 알려줄 것이 하나도 없느냐고 묻자, 그녀는 고개를 까딱거렸다.


 “요우키 님을 제가 직접 뵌 적은, 음. 어렸을 때 어쩌다 한 번 말고는 없습니다. 그때 요우키 님은 정말 단 한 마디도 안 하셔서, 어린 마음에 꽤 무서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 말고는……. 아아, 제 선대께서 그분에게 검술을 약간 배우셨죠. 일종의, 음, 여가로써 말입니다. 제가 아는 건 이게 전부입니다.”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눈을 피하는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여기서 그녀를 다그쳐봐야 그녀가 진실을 말하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고. 나는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쫓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겠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게 말이에요. 아마도……. 요우키 님의 행적을 알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요? 요우키 님께서 어떤 모임의 위험한 비밀을 알았기 때문일까요? 어쩌면 그치들이 요우키 님을 배반하고는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게 감시하는 걸지도 몰라요! 하, 이렇게 말하니까 꼭 무슨 추리소설 같지 않나요? 그, 누구더라, 푸아로 같은!”


 그녀의 눈이 반짝이자 나는 반대로 얼굴을 구겼다. 누구는 목숨 걸고 한참 전에 사라진 사람 뒤나 밟고 있는데, 자기는 발음도 어려운 소설 탐정 이야기나 하고 있다니. 그녀가 마을을 주름잡는 대부호이자 추리소설, 아니 환상향연기를 쓰는 막중한 책무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면 욕지거리를 할 일이었다.


 “저는 도와드린다고 노력했는데 그렇게 얼굴을 구기시면 제 체면이 뭐가 되는지 모르겠네요.”


 내 표정에 그녀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일어섰다. 그러자 그녀가 뒤늦게 덧붙였다.


 “좀 더 알아보시려면 서당의 케이네 선생님을 뵈러 가보시는 건 어때요? 역사 쪽이라면 그분이 저보다 더 전문가시니까.”


 케이네. 서당의 그 요괴 선생. 나 역시도 어렸을 때 그녀의 아래에서 수학한 적이 있어 누군지는 안다. 나는 허리를 숙이며 아큐에게 인사했다. 정말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되었지만, 그래도 다음 방향은 제시한 것만으로도 도움은 도움이니까.
 이번엔 서당으로 향했다. 여전히 시선은 계속해서 느껴졌다. 시선이야 익숙하다만, 그 시선이 묘한 살기와 위협으로 가득하다면, 그것도 여럿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내 어깨는 말린 생선처럼 점점 쪼그라들었다. 나는 대체 어떤 상황으로 빠져든 걸까.
 커다란 위협을 느끼며 서당 앞에 도착하니 아침 수업이 막 끝난 듯 아이들이 나오고 있었다. 아이들은 나를 보고 말했다.


 “파란 눈 아저씨!”


 파란 눈 아저씨라는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흥신소라는 어려운 단어보다는 파란 눈이 더 아이들에게는 와 닿았고, 그래서 아이들 사이의 ‘이름’이 되고 말았다. 아저씨라니, 난 아직 20대 초반이라고. 나는 아이들에게 대충 손을 흔들고는 서당 문 앞에 선 케이네 선생을 보았다. 그녀는 나를 보자 옅은 미소로 인사했다. 나는 케이네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이야, ‘파란 눈 아저씨.’ 여긴 무슨 일로?”


 나는 20대라고 먼저 말한 다음, 아큐에게서 그쪽을 찾아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녀는 서당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써놓은 게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어서 찾으려면 시간이 걸리겠는걸.”


 나는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 사람을 찾는다고? 누구를?”


 콘파쿠 요우키. 나는 그 이름을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그 이름을 듣자마자 케이네는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녀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


 무언가 아는 게 있느냐 묻자, 그녀는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나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말했다. 아는 게 있다면 말해달라고.


 “아니, 몰라. 전혀, 전혀 모르는 사람이야.”


 나는 제발 거짓말하지 말라고 다그쳤다.


 “그래, 전혀 모른다고 할 수는 없겠지. 만나기는 했었으니까. 하지만 나와 요우키 님은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어. 그냥, 말 그대로, ‘안다’라는 단어밖에 쓸 수 없는 관계야. 너와 나처럼, 지나가다 얼굴을 마주하는 마을 사람들처럼 말이야.”

 

 케이네는 여전히 나를 등지고 있었다. 나는 요우키의 행방에 대해서 물었다.

 

 “요우키 님께서 어디로 가셨는지는 몰라. 그분이 사라지셨다는 사실도 요우무에게 듣고 나서야 알았는데 어떻게 알겠어.”

 

 그에 대해 써놓은 기록도 없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썼어. 그분에 대해서는.”


 나는 다시 한 번 거짓말이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케이네가 고개를 가로젓는 순간 나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분노와 공포와 혐오감이 가득한 표정은 참으로 보기 어려운, 그녀가 지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얼굴이었다.


 “나가. 당장. 그리고 더 이상 이 일로 날 찾아오지 마.”


 그녀가 주먹을 꽉 쥐었다. 나는 그녀의 말대로 나가기로 했다. 더 이상 그녀를 다그쳐봐야 내 목숨, 입지 중 하나는 그 자리에서 위험할 터였고, 나머지도 곧 위험해질 게 분명했으니. 나는 케이네에게 말없이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허기를 달래러 들어온 식당에 홀로 앉아 있으니 지금껏 잊고 있었던 피로가 몰려왔다. 이대로 식탁에 머리를 박고 코를 골더라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눈앞의 국수를 보고도 젓가락질을 할 기운조차 없었다. 잠도 못 자고, 지금껏 들른 곳에서는 허탕만 치고, 얻은 것이라고는 마을 사람들이 썩 협조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이 전부. 의욕이라고는 이제 바닥이었다. 아무래도 낮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젓가락을 손에 들었다.


 “어? 흥신소 아저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스즈나안의 모토오리 코스즈가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난 아직 20대라는 것을 강조했다.


 “오빠라고 부르고 싶진 않은데요.”


 코스즈는 웃으면서 내 앞에 앉았다.


 “이번에도 또 뭐 하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목소리로 의뢰의 내용을, 그리고 지금까지 겪은 내용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듣더니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혀를 찼다.


 “그러게 얼굴도 몇 번 못 보는 사람 의뢰는 왜 들어서 이 고생이에요, 아저씨.”


 아저씨 아니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힘겹게 참아냈다. 코스즈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아저씨한테 신세 많이 졌으니까 말하는 건데요, 전에 향림당에 갔을 때 거기 주인장이 그 요우무인가 하고 얘기하고 있더라고요?”


 향림당 주인이라면 모리치카 린노스케를 말하는 것이리라. 자기 할 말만 하는 상상력 풍부한 양반. 잃어버린 물건 되찾으러 갔을 때 그 양반과 옥신각신 한 게 떠올라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기 주인장한테 물어보면 뭐가 나오지 않을까요?”


 내게 이런 정보를 간단히 주니 분명 요마본 하나를 또 잃어버렸겠지. 코스즈는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빌어먹을 쓰레기 같은 년아, 라는 욕설이 목을 튀어나와 입안에서 맴돌았지만 힘겹게 참아낸 내게 박수를 보내며, 나는 국수 그릇에 얼굴을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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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문단 사이 길이 늘리는 방법 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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