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조사한다 3

Mameloukor | 조회 수 18 | 2020.07.26. 19:43

 길게 하품을 하며, 나는 일단 흥신소로 향했다. 여기저기서 위협받고 또 감시받고 있으니 맨손으로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자 흥신소 구석에 처박아놓았던 단검 한 자루가 떠올랐다. 별로 만지고 싶지는 않은 물건이었지만.
 흥신소에 도착하니 문짝이 박살 나 있었다. 나는 잔뜩 겁을 먹고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안쪽은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 엉망진창이었다. 강도나 도둑이 든 모양이었다. 다행히 인기척은 전혀 없어, 한참 전에 사라진 모양이었다. 한숨을 길게 쉬며 일단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부터 정리했다.
 쏟아지고 깨진 물건은 여럿이지만, 정작 도둑맞은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돈도 그대로, 망가지지 않은 물건도 그대로, 찾으려던 단검도 그대로였다. 이 ‘강도’는 무언가를 훔치려고 한 게 아니라, 경고를 하려고 했던 게 분명했다.
 귀신에게 위협받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감시당하고, 집은 엉망이 되고……. 이런 꼴을 당하면서까지 해야 할 일인가, 회의가 들었다.
 나는 단검을 들었다. 바깥 세계의 군인이 쓴다는 단검, 헤진 가죽 칼집에 새겨진, 하지만 알아볼 수 없는 글씨. 아버지가 남긴 몇 안 되는 물건이었다. 손대고 싶지는 않았지만, 당장에 가진 건 이게 전부. 나는 옷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칼집을 허리춤에 대충 꽂았다. 그리고 약간의 돈도. 향림당에서 빨리 나오려면 아무 물건이라도 사서 돈을 뿌리고 뒤도는 게 가장 나을 테니까.
 가운데가 휑하니 뚫린 문짝을 적당히 문틈에 걸쳐놓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터덜터덜, 힘없이 향림당으로 향하며 나는 이미 움츠러들 대로 움츠러든 어깨를 더 움츠렸다. 텐구나 오니로 태어났다면 최소한 집 문짝이 박살 나는 꼴은 안 보았을 텐데. 여전한 시선을 느끼며 무기력하고 약해빠진 나 자신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고개가 더더욱 아래로 향했다.
 향림당으로 들어서니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소곳한 자세로 말을 경청하는 여인은 필시 홍마관의 메이드장이겠지. 안경 쓴 반대쪽은 당연히 향림당 점주였다. 둘은 내 존재를 알아채고는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흥신소의 그분.”
 “반갑네. 미안하지만 먼저 온 손님과 더 얘기해도 괜찮겠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대충 달이나 별, 로켓 같은 알아듣기 어려운 대화 중이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등을 돌리고 엉망으로 진열된 물건을 살펴보았다. 이상한 향로, 벽돌 같은 무언가 등. 쓰임새를 알 수 없는 것들이 가득했다. 꽤 오랫동안 물건을 구경했지만 두 사람의 헛소리가 끝날 틈이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바깥으로 나섰다. 품에서 연초와 성냥을 꺼냈다. 성냥갑을 여니 성냥이 바닥을 보였다. 이번엔 성냥을 사야겠군.
 여전히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향림당 벽에 성냥을 긁으며 시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붉은 안광이 번뜩이는 게 섬뜩하기 짝이 없었다. 대체 놈들이 누구기에 이러는 건지. 나는 놈을 같이 노려보며 연초에 불을 붙였다. 성냥 타는 냄새와 연초 냄새가 허공으로 섞였다. 빨리 그 메이드장이 수다를 끝내기를, 연초가 빠르게 타들어 가기를.
 연초가 삼 분 지 일 정도 타들어 갔을 때쯤 사쿠야가 바깥으로 나섰다. 그녀는 내게 꾸벅 인사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럼 말씀 나누셔요.”


 그러더니 사쿠야가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미 여러 번 본 광경이지만, 그때마다 손에 쥔 연초를 떨어트릴 뻔했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다시 옆을 돌아보았다. 붉은 안광은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린노스케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까딱이며 물었다.


 “뭐, 찾는 거라도 있나?”


 나는 성냥갑을 흔들었다.


 “성냥 정도야 마을에서도 팔잖나. 뭔가 다른 걸 찾으러 왔겠지?”


 그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코스즈를 언급했다. 린노스케는 안경을 고쳐 쓰며 또 그녀가 요마본을 잃어버렸느냐고 되물었고, 나는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였다.


 “그 아이도 참 대단한 덜렁이로구먼. 아, 맞아. 최근에 무연총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줍긴 했는데 말이야…….”


 젠장. 또 돈을 낭비하게 생겼군. 나는 왼쪽 팔을 책상 앞에 괴며 얼굴을 문질렀다. 린노스케는 내 얼굴을 보더니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보아하니 요마본 말고 다른 무언가를 찾나보군?”


 나는 한숨을 쉬곤 물건이 아니라 사람을 찾는다고 말했다. 덕분에 귀신에게 위협받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감시당하고, 집이 개판이 되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린노스케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내 ‘모험’을 들었다.


 “이야, 대단한 탐정극의 발단일세그려. 찾는 사람이 무슨 스토쿠 덴노라도 되나?”


 콘파쿠 요우키. 나는 그 이름을 힘겹게 내뱉었다. 이 이름을 말할 때마다 벌어진 광경과 반응이 참 볼만했는데, 린노스케 네놈은 어떨까.


 “오우…….”


 역시나, 그도 똑같이 볼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째려보았다. 너는 무슨 변명을 하면서 말을 돌리려나, 생각하며. 하지만 린노스케는 의외로 무덤덤하게 답했다.


 “콘파쿠 요우키 공을 찾는다고……. 그 손녀의 의뢰인가? 백옥루의 어수룩한 덜렁이 정원사?”


 고개를 끄덕이자 린노스케는 다시 안경을 고쳐 쓰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맞아, 그 아이가 전에 내게도 말했었네. 조부는 몇 년 전에 홀연히 사라졌고 부모는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고. 슬픈 일이지, 자기 가족이 없다는 건…….”


 그는 어딘가 애처로운 얼굴이 되어 고개를 돌렸다. 나 역시 그의 말에 섞인 슬픔을 느꼈다.


 “실망스럽겠네만, 나는 요우키 공이 지금 어딜 갔는지는 전혀 모른다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흐음, 자네의 의뢰와는 별 상관없는 옛날이야기 뿐이야.”


 린노스케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보기보다 나이가 많다는 건 자네도 알 거야. 마리사가 항상 떠들고 다니니까. 그래서 마리사나 레이무는 물론, 자네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요우키 공을 만났네. 천 살이 넘는 할아버지라기에는 참으로 젊고, 강인하고, 아마 요우무가 들으면 놀라겠지만, 생각보다 재밌는 사람이었어. 그 양반이 쇼기에 미쳐서 백랑 텐구들과 몇 날 며칠을 새며 대국하다, 직접 행차한 자기 주인한테 끌려가 결국 결착을 못 냈다는 이야기를, 요우무 그 아이가 상상할 수 있겠나?”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당장 나도 상상을 못 하는데 어찌 알까.


 “그러던 사람이 변한 게……. 아마도 열일곱? 열여덟 해쯤? 그쯤이었을 거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린노스케는 얼굴을 문지르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나는 창밖을 보았다. 시간이 어느새 꽤 지났는지 점점 바깥이 노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요우키가 벌였던, 혹은 당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린노스케의 말에 증거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 린노스케가 갑자기 목소리를 바꾸며 말했다.


 “요우키 공 하니, 최근에 주운 물건이 하나 떠오르는구먼! 잠깐만.”


 린노스케는 안쪽으로 향하더니,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깥으로 무언가를 들고 나왔다.


 “보게나, 검이야. 그것도 그냥 검이 아닐세!”


 그는 칼집에서 칼을 뽑았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튀어나온 칼날은, 낡아서 이가 빠진 엉망진창의 모습이었다.


 “생긴 게 특이하지? 서역 천축 너머에서 온, 양놈들의 전쟁용 검일세. 꽤 옛날 거야. 이게 어쩌다 무연총까지 흘러왔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아마도 내 생각에는!”


 갑자기 린노스케가 예의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 옛날 전 일본이 서로 다른 나라로 나뉘었을 때 서역에서 온 용병들이 있었다느니, 그 친구들이 가져온 집안의 가보가 흘러들어왔겠느니 하는 참으로 쓸모없는 이야기.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게 대체 요우키 공하고 무슨 상관인가?


 “칼잡이 하면 검을 떠올리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닌가?”


 그게 나 같은 흥신소 주인과 무슨 상관이냐고 물으니 린노스케는 고개를 갸웃했다.


 “흠. 호신용? 자네 위협받는다면서. 지금 사면 코스즈의 요마본은 덤으로 주겠네. 어떤가?”


 망할. 나는 욕을 내뱉으며 책상을 쾅 내려쳤다. 충격에 연초가 반으로 부러지며 사방으로 튀었다. 너도 분명 그 유유코인지 지랄인지 하는 분홍머리 귀신이랑 한패냐? 왜 아무도 내게 제대로 말을 해주지 않는 거냐? 대체 콘파쿠 요우키 그 양반이 어떤 사람이기에 다들 이러는 거야! 오늘 하루 받은 스트레스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했다. 린노스케는 불씨가 남은 연초를 짓밟아 끄면서 차갑게 말했다.


 “어떤 진실은 알려지지 않는 게 더 나아.”


 개소리, 헛소리! 도움도 안 되는 빌어먹을 반쪽짜리 튀기 새끼! 나는 마구잡이로 욕을 내뱉었다. 그때 뒤에서 차가운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뭐야?”


 뒤를 돌아보니 ‘평범한 마법사’ 키리사메 마리사가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녀는 팔괘로를 내게 들이밀며 말했다.


 “네가 뭔데 향림에게 그따위로 말하는 거야?”
 “괜찮아, 마리사.”
 “괜찮아? 괜찮다고? 너를 그렇게 욕하고 난리를 치는데 괜찮다고?”
 “모든 손님이 만족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그 말에 마리사는 팔괘로를 천천히 내렸다. 그녀는 당장 나보고 꺼지라는 듯이 나를 밀치고는 린노스케 앞에 앉았다. 린노스케는 칼을 칼집에 넣으며 말했다.


 “조심히 들어가게.”


 나는 말없이 바깥으로 나왔다. 다시 연초를 피울까 했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나는 화를 삭이며 마을로 향했다.
 그렇게 마을 입구 앞까지 다가오니, 누군가가 마치 나를 기다린 듯 나에게로 다가왔다. 카키색 모자와 양복, 반바지를 입은 여인이었다. 내 앞에 멈춰 서자, 그녀가 말했다.


 “흥신소 주인장. 잠깐 얘기 좀 할까요?”


 내가 답하기도 전에 여인이 모자를 벗었다. 샤메이마루 아야, 텐구 신문 기자. 그녀에게 어쩐 일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나를 보며 씩 미소 짓더니, 별안간 내 목을 붙잡고 들어 올렸다.


 “함부로 들쑤시고 다니면 위험하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을 텐데요?”


 아야는 마치 작대기 던지듯 나를 날렸다. 나는 꽤나 멀리 날아가 버렸다. 정신을 차리며 일어서려니 어느새 아야는 다시 내 앞에 와 있었다. 환상향에서 가장 빠르다는 자칭이 완전 허언은 아니구나, 이런 상황에서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미안하지만, 당신 하루 만에 적을 참 많이도 만들었어요.”


 그녀가 손짓하자 갑자기 허공에 나타나듯 사람들이 나타났다. 검은 머리와 키 높은 게다를 신은, 아침부터 보았던 낯익은 눈빛과 얼굴, 텐구였구나. 감탄할 새도 없이 나는 아버지의 단검을 뽑아들었다. 그러자 텐구들이 코웃음을 쳤다.


 “아이고 무서워라. 오줌 질질 싸겠네.”
 “그딴 날붙이로 우릴 어떻게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아야가 턱짓하자, 텐구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가차 없이 단검을 휘둘렀으나 그들은 가볍게 내 팔을 붙들고는 그대로 내 명치에 주먹을 박았다. 엄청난 격통과 함께 구역질이 올라왔다. 피가 섞인 구토를 하자 아야와 텐구들은 역겹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야가 말했다.


 “오른손잡이죠?”


 뭐라고? 하지만 내가 되묻기도 전에, 가장 힘 좋아 보이는 텐구가 내 왼팔을 붙들었다. 무슨 짓이냐고 말했지만 당연히 아무도 듣지 않았다. 아야가 손짓하자, 텐구는 그대로 내 왼팔을 반대쪽으로 꺾었다. 끔찍한 고통에 가슴속에서 비명이 올라왔다. 고통에 찬 비명 끝에 내가 고개를 떨어트리니, 아야는 무릎을 꿇고는 내 얼굴을 붙잡고 들어 올렸다.


 “미안해요. 내 의지와는 상관없다는 거 아시죠? 텐구 사회가 다 그렇잖아요. 뭐어, 죽이지는 않을 게요. 신세도 여러 번 졌으니까.”


 그러면서 아야는 뒤돌아 사라졌다. 텐구들 역시 아야를 따라 갔지만, 내 팔을 꺾은 텐구 하나는 여전히 나를 비웃으며 말했다.


 “피는 못 속이는구먼. 네 아비도 이러다 뒈졌는데 말이야. 조심하라고, 인간 주제에.”


 그리고 그 역시 빠른 속도로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눈앞에 놓인 아버지의 단검에 새겨진 USMC라는 단어가 천천히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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