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조사한다 7

Mameloukor | 조회 수 8 | 2020.07.31. 17:06

 마법의 숲을 지나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버섯 포자 때문에 숨 쉬기도 어려운 게 가장 큰 이유이기는 했지만, 우리가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하니 긴장감에 입을 열 수가 없어서였다.
 무연총. 이름 모를 시신이 묻힌다는, 피안화가 가득 핀 섬뜩한 장소. 온갖 끔찍한 요괴가 나타난다는 악명을 생각하면 긴장감에 몸서리치는 게 당연하다. 직접 가본 적이 없으니 그 악명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지금까지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무연총이라니, 스이카는 왜 굳이 이곳을 콕 집어 말한 것일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이상했지만 그런 건 항상 모든 게 다 지나고 나서야 이상해지는 법이었다.
 숲 안쪽으로 더 들어갈수록 요우무도 긴장한 듯 내 팔을 더 강하게 붙들었다. 하필이면 왼팔이라 고통이 더더욱 심해졌지만 무어라고 말하기도 난감했다. 나도 모르게 고통에 신음을 흘리니 요우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뗐다. 그녀가 또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자꾸 죄송하다고 하니 조금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요우키라는 이가 얼마나 고압적이었으면 어린 소녀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소리가 ‘죄송하다’일까. 사진으로는 알 수 없는 그 인물은 대체 무슨 비밀을 가졌기에, 요우무가 기억하는 사람과 다른 요괴들이 기억하는 사람이 다른 걸까. 그런 생각에 잠기며 진통제를 입에 털어 넣었다. 이제 몇 정 남지 않았다. 무연총에서 멀쩡히 살아나간다면 다시 영원정에 가봐야 할 것 같다. 그렇지 못해도 역시나 가야겠지만.
 그렇게 걷던 와중에, 단풍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섬뜩할 정도로 새빨간 피안화로 가득한 길이 눈에 들어왔다. 무연총인가, 내가 중얼거리니 요우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아는 대로라면, 여긴 ‘재사의 길’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러 왔던 사람이 마음을 고쳐먹고 돌아가는 길이라서, 다시 생각하는 길……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다시 생각하는 길이라. 피안화가 잔뜩 핀 섬뜩한 모습을 보면 아무리 굳은 마음을 먹고 오더라도 조금이나마 다시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다. 당장 나조차도 그냥 돌아갈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 말이다.
 그때였다.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우리가 퍼뜩 놀라 몸을 돌리니, 다름 아닌 모리치카 린노스케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향림당 점주가 여긴 왜 있느냐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가 다가왔다.

 “아, 흥신소 주인을 여기서 만나다니. 신기한 일도 다 있군 그래.”

 그쪽이 왜 여기 있느냐고 물으니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별 희한한 질문을 다한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여긴 결계가 불안정한 곳일세. 그래서 가끔 바깥 세계의 물건이 들어오지. 고도구점 주인으로써 당연히 와야 하는 곳 아닌가?”

 일리 있는 말에 나는 딱히 답하지 않았다. 린노스케는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우리는 같이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 무연총으로 간다고? 그 오니가 그렇게 말했단 말이지.”

 린노스케는 잠깐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확실히……. 요괴에게도 위험한 곳이 무연총이니까, 무언가를 버려두고 잊기에는 완벽한 공간이지. 나도 무연총을 자주 다니긴 하지만 무연총의 구석 곳곳까지 다 알지는 못한다네. 얼마나 넓은지도 모르고.”
 “정말 제 할아버님과 부모님에 대한 실마리를 그곳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할아버님께서 떠나신지 벌써 7년이 되어 가는데…….”
 “환상향의 시간은 항상 앞으로만 가는 건 아닐세. 무언가 남아있다면, 정말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내게는 ‘어떤 과거는 묻어두는 게 낫다’고 지껄이다니. 이해할 수 없는 사내다.
 그렇게 걷는 와중에, 가을임에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장소에 도달했다. 린노스케는 제자리에 멈췄다. 그는 침을 꼴깍 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연총에 도착했네.”

 우리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여전히 섬뜩한 피안화는 재사의 길보다 더 빽빽하게 피어 있었고 거기에 더해 이상한 색의 자주색 벚꽃이 여기저기에 가득했다. 피안화 사이에 선 작은 돌탑이 이곳이 무덤임을 암시했다. 나는 입을 가렸다. 아까부터 계속 올라오는 이상한 냄새에, 피안화가 독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속이 메스꺼워졌다. 그런 내 모습에 요우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피안화의 독이 올라오는 모양이야. 정말 괜찮겠나, 자네?”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고 둘러댔다. 사실은 금방이라도 구토할 것만 같지만 여기까지 와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린노스케는 피안화가 없는 언덕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자리에 앉으니 좀 살 것 같았다. 물통을 꺼내 목을 축이니 좀 속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는 동안 린노스케는 주변을 빙 둘러보았다. 그가 중얼댔다.

 “슬슬 나타날 때가 됐는데.”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멀리 있는 피안화가 좌우로 흩어졌다. 안에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그러더니 한 쌍의 쥐들이 언덕을 올라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뒤에 쥐 귀와 꼬리가 달린 작은 요괴가 모습을 드러냈다.

 “또 왔네, 점주양반. 그리고 그쪽은, 아아. 흥신소 탐정 나리 아니야?”

 나즈린. 물건 찾는다고 그녀에게 많은 돈과 음식을 바쳤던, 치가 떨리는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그녀는 쥐를 꼬리에 매단 바구니로 옮기고는 다우징 로드를 주먹에 쥔 채로 양손을 허리에 올렸다. 그녀가 살짝 웃으며 물었다.

 “향림당 주인장이야 자주 본다만, 그쪽은 여길 왜…….”

 그녀는 당황한 표정을 짓는 요우무를 보며 자기도 당황한 모양이었다. 백옥루의 정원사와 인간 마을의 흥신소라, 무연총에서 볼 수 있으리라고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조합이기는 하다. 린노스케는 나를 보며 말했다.

 “이번엔 기회를 넘기겠네. 난 또 오면 그만이니까.”

 나즈린은 나를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보았다. 또 무언가를 요구하려나보다. 하지만 그녀의 도움을 받는 게 이 위험한 무연총에서 멀쩡히 살아나갈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으리라. 나는 품에서 사진을 꺼냈다. 요우무가 말을 덧붙였다.

 “그건 제 할아버님이신 콘파쿠 요우키의 사진입니다.”

 나즈린은 사진을 받아서 살펴보았다. 사진을 이리저리 보면서 그녀가 말했다.

 “되게 오래되어 보이는 사진이네.”
 “히메카이도 씨가 염사로 찍은 사진입니다. 진짜로 그때 찍은 사진은 아니에요.”
 “그 양 갈래 머리 텐구? 뭐야, 그럼. 가짜 사진이잖아. 그래도 갖고 다니는 거 보면 최소한 얼굴은 맞나보네.”

 요우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우리는 그 사람과 그 아들 및 며느리를 찾고 있다고 말하자, 나즈린의 표정이 천천히 굳어졌다. 그녀는 사진을 돌려주며 요우무를 보았다.

 “콘파쿠 요우무라고 했던가? 인간이든 요괴든, 무연총에서 그 사람을 찾는다는 건……. 무슨 뜻인지 알지?”

 요우무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백골로 만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곳이 바로 이 악명 높은 무연총 아닌가. 나즈린은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말없이 나를 보며 손가락을 서로 문질렀다.

 “맨입으로는 못하는 거 알지? 너도 그렇잖아.”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인간 마을에서 가장 비싼 술 한 병과 화과자 한 박스. 나즈린은 입 꼬리를 살짝 올렸으나 대답이 없었다. 술 두 병. 그제야 나즈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다우징 로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요우무와 나, 그리고 린노스케는 서로를 돌아보며 나즈린이 무엇을 하려나 생각했다. 묘한 기대감이 솟아올랐다.
 그래서인지, 한참을 기다린 끝에 나즈린이 한 말은 꽤나 실망스러웠다.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없이 방금 이름을 처음 들은 사람의 물건을 찾아낼 수는 없을 거 같아.”
 그녀는 요우무를 바라보았다.
 “다른 건 하나도 없어?”
 “다른 거라니요?”
 “뭐, 목걸이나, 팔찌나, 머리띠 같은? 네 조부라는 분이 너한테 준 게 단 하나도 없는 거야?”

 요우무는 가만히 생각했다. 그녀의 조부가, 요우키가 그녀에게 남겨준 물건. 하나 있기는 했다. 지금도 몸에 지니고 있는 그것, 누관검과 백루검, 두 자루의 검 말이다. 그녀는 차고 있던 칼을 뽑아들고는 나즈린에게 건넸다.

 “이 누관검과 백루검이 할아버님께서 제게 주신 물건입니다. 이거라면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나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다우징 로드를 누관검에 가져다대니, 꼬리에 달린 바구니에서 쉬고 있던 한 쌍의 쥐가 그녀의 어깨로 올라왔다. 그녀는 쥐들에게 무어라 속삭였고, 한 쌍의 쥐는 바닥으로 내려와 피안화 사이로 달려갔다. 나즈린은 다우징 로드를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막대기가 강하게 움직였다.

 “좋아. 쫓아가자.”

 나즈린은 빠른 걸음으로 먼저 나섰다. 린노스케와 요우무가 나를 일으켰다. 멀어지는 나즈린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또 그녀를 따라 피안화를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우리는 나즈린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무연총이 넓다고는 들었다만 그 넓음의 도가 지나친 수준이다. 조금씩 다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이 무리 중에 지친 기색이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 뿐인 모양이었다. 나즈린은 지친 기색도 없이 오히려 발이 더 빨라졌고, 요우무와 린노스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느낌이었다. 제기랄, 나도 요괴로 태어났으면 좋았으련만.

 “꽤 멀리 가는군요…….”

 요우무가 속삭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보았다. 피안화와 벚꽃은 여전히 가득, 이상한 냄새도 계속 스멀스멀 올라왔다. 도대체 언제까지 걷고 어디까지 가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앞을 보니 기대감에 엉덩이를 씰룩이며 꼬리를 흔드는 나즈린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숙였다. 괜히 다우징 로드에 머리가 터지고 싶지는 않았다. 때마침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계속 보고 있었다가는 큰 사달이 났을 것이다.

 “잠깐만, 쥐들이 멈췄어.”

 나즈린이 멈춰 섰다. 그녀는 주변을 경계하는 눈치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요우무는 반사적으로 칼에 손을 가져갔다. 나즈린은 되돌아온 쥐를 손등에 올렸다.

 “두려워하고 있어. 뭔가 위험한 걸 찾은 걸까?”

 별안간 나즈린이 앞으로 달려갔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우리는 당황하면서도 그녀를 따라갔다. 그녀는 커다란 벚꽃나무가 우뚝 선 언덕으로 향했다. 뒤따라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니 괴물 같은 크기의 거대한 요괴 벚꽃 나무가, 그 아래에는 수많은 피안화가 피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이가 다 나간 한 자루의 검이 땅에 박혀 있었다.

 “저 칼, 저 칼이야.”
 “꼭……. 사이교우아야카시가 꽃을 피우면 저 나무랑 비슷할 거 같아요.”

 내가 무의식적으로 다가가려 하니, 린노스케가 나를 불러세웠다.

“잠깐만, 다가가지 말게.”

 우리는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엄청난 원한이 칼에서 흘러나오고 있어. 아니, 벚꽃인가? 아니, 아니야. 둘 다에서 흘러나오고 있네. 이건…….”

 린노스케는 입을 가렸다. 그의 동공이 점점 커졌다.

 “물러서는 게 좋을 것 같네. 손댔다가는 무슨 사달이 벌어질지 모르겠어.”

 여기까지 와서 물러서라고?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앞으로 걸어 나가니 린노스케가 놀라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갔다. 요우무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내 뒤를 따라왔다.
 우리는 요괴 벚꽃나무 앞까지 왔다. 과연, 아무런 능력도 없는 평범한 인간인 나조차도 칼과 나무에서 어떤 끔찍한 기운이 스르륵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굳이 무어라고 표현해야 한다면, 무시무시한 악의였다.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뒤돌아서버린다면 지금까지 한 그 많은 탐문과 고생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헛짓거리가 되리라.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요우무를 돌아보았다. 그녀도 나를 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마주치고는, 뜻을 같이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칼에 손을 뻗었다.

 “손대지 않는 게 좋을걸.”

 벚꽃나무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왔다. 예상치 못한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는 뒤로 물러섰고, 요우무는 빠르게 누관검을 뽑았다. 나무 뒤에서 목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쪽을 묶은 자줏빛머리, 그리고 손에 쥔 커다란 낫.

 “우리 같은 사신도, 무시무시한 귀신장도 손대려고 하지 않는 물건인데, 일개 인간인 네가 만져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오, 오노즈카 님?”

 요우무가 칼을 내리며 말했다.

 “또 땡땡이를 치러 오신 건가요?”

 코마치는 한숨을 쉬었다.

 “아니. 이번엔 일하러 온 거야.”

 그러더니 그녀는 나를 가리켰다.

 “너, 나를 따라와야겠어.”

 처음에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나는 두려움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요우무가 소리쳤다.

 “제가 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코마치가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가 고개를 뒤로 하니 갑자기 가을바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모두의 신경이 곤두섰다. 그리고 상상도 못한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귀신장들이었다.

 “으, 으아아아!”

 나즈린이 비명을 지르며 언덕 아래로 꽁지 빠지게 도망쳤다. 린노스케도 안경을 고쳐 쓰며 나즈린을 따라 줄행랑쳤다. 그들을 탓할 수는 없으리라. 나 역시도 도망치려고 하니까. 요우무가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소리쳤다.

 “도망치세요! 제가 붙들고 있겠습니다!”

 요우무가 칼을 높게 쳐들었다. 그러자 귀신장들도 창을 쳐들고는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모양 빠지는 꼴이지만, 그런 그녀를 두고 꽁무니를 빼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래, 유카리가 분명 말했다. 더 이상 팔다리를 부러트리지는 않을 거라고. 그게 아예 사신과 귀신장이 찾아와서 내 사지를 잘라버리지도 않으리라고 믿었던 내가 머저리인 것이다. 그 어떤 생각도, 당장 요우무조차도 생각이 들지 않았다. 도망쳐야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들자, 코앞에 코마치가 서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듯이 섰다.

 “어딜 가?”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귀를 타고 척추로 흘렀다. 그녀가 빙긋 웃자 소름이 돋았다. 다시 도망쳐야했겠지만 발에 뿌리가 돋은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코마치는 내게 다가왔다.

 “너무 걱정하지 마. 아무 문제도 없을 거야. 자, 눈 감고.”

 코마치가 내 얼굴을 손으로 덮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몸이 땅으로 빨려 들어갔다. 허우적거리며 저항해보았으나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그대로, 비명 한 번 못 지르고 바닥으로 추락해버렸다. 멀리서 요우무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나는 어딘지 모를, 피안화가 잔뜩 핀 곳에서 누워있었다. 내가 몸을 일으키니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이 드십니까.”

 또각또각, 날카로운 발소리가 내게 가까워졌다. 고개를 돌리니 초록색 비대칭 머리가 인상적인 여인이 나무로 된 봉으로 입가를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코마치가 나타났다.

 “말씀하신대로 데려왔습니다, 시키 님. 인간 마을에서 흥신소를 한다는 사람이에요.”
 “흠.”

 여인은 차가운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는 환상향에서 오는 영혼을 담당하는 염마, 시키 에이키라고 합니다.”

 염마? 내가 죽은 건가? 에이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죽지 않았습니다. 그건 걱정 마십시오. 그대가 걱정해야 할 일은 따로 있습니다.”

 그녀가 왼편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곳에서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옆과 뒷머리를 바싹 깎고, 윗머리는 길게 길러 뒤로 묶었으며,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풍채 좋은 한 남자가.

 콘파쿠 요우키.

 그토록 찾던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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