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조사한다 8

Mameloukor | 조회 수 8 | 2020.07.31. 17:59

 콘파쿠 요우키는 자신의 키와 비슷한 크기의 노다치를 어깨에 짊어진 채로, 말없이 염마를 향해, 나를 향해 다가왔다. 얼핏 봐서는 기모노인지를 알 수 없는 저채도의 초록색 옷은 곳곳에 남은 핏자국이 섬뜩함을 배가시켰다. 그의 뒤에는 온몸이 피투성이인 지옥의 귀신장 여럿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는데, 강력한 천인과 선인조차 끌고 간다는 귀신장도 요우키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요우키가 염마 앞에 멈췄다. 염마가 작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우키와의 체격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그는 염마에게 인사는커녕 간단한 묵례조차 하지 않고,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그녀를, 그리고 뒤에 있는 코마치와 나를 노려보았다. 눈이 마주치니 등골이 오싹했다. 코마치는 움츠러들기까지 했다. 그러나 염마는 여전히 막대로 입을 가릴 뿐, 미동조차 없었다.

 “오랜만입니다, 콘파쿠 공. 보아하니 지옥에서도 잘 지내시는 모양입니다.”

 요우키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낙원의 염마가 내게 무슨 볼일이오?”

 에이키는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요우키도 나를 향해 고개를 슬쩍 돌렸다. 몇 번이고 반복하는 말이지만, 정말로 무시무시했다. 영혼까지 그대로 얼어붙을 눈빛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염마가 말했다.

 “저 자는 낙원의 존립에 위협을 가하고 많은 이를 파멸로 몰아넣었던 과거를 파헤치던 사내입니다. 모두가 그에게 위해를 가하고 방해하는데도, 두려움에 움츠러들고 떨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뜻을 따르는 용감한 이입니다.”

 염마가 나를 칭찬하니 당장 고마움이나 쑥스러움보다는 의심이, 그리고 두려움이 들었다. 과거를 파헤친다는 말에 요우키의 얼굴이 더더욱 무시무시하게 일그러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렇게 먼저 입에 발린 말을 한 다음에는 나를 곤란함으로 몰아넣는 단어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신의 손녀, 콘파쿠 요우무의 부탁을 받은 사내이기도 하지요.”

 콘파쿠 요우무. 손녀의 이름이 나오자 순간적으로 요우키의 표정에 당혹감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하지만 금세 본래의 무표정으로 되돌아갔다.

 “그래서?”
 “그렇기에, 콘파쿠 공께서 협조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협조라고?”

 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손녀는 당신의 과거를, 자신의 피를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

 염마가 자신의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요우키의 거친 손이 그녀의 멱살을 붙들었다. 코마치는 염마의 이름을 불렀으나 요우키를 막을 엄두조차 내지 못해 멈춰버렸고, 나는 아예 뒷걸음질 쳤다. 요우키의 분노로 타오르는 눈은 염마의 얼굴에 구멍을 낼 것만 같았고 당장에라도 한손으로 간단히 염마의 목을 꺾어버릴 모양새였다. 하지만 요우키는, 놀랍게도, 부드럽게 염마에게서 손을 놓았다. 에이키가 비틀거리며 기침하는 동안 그가 말했다.

 “내가 왜? 나는 더 이상 그 빌어먹을 ‘낙원’에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소이다.”

 요우키는 내게 고개를 돌렸다.

 “과거를 알길 원한다면, 그곳에서 그곳 사람에게 듣도록 하시오. 지옥의 귀신장은 이런 헛짓거리에 어울려줄 정도로 한가한 사람이 아니오.”

 무어라고 반박을 해야 하겠지만 차마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 압도적인 위압감에 짓눌려 가만히 앉아있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정신을 차린 염마가 옷깃을 다듬으며 말했다.

 “이미 지옥의 여신과 합의를 끝내놓은 사안입니다만.”
 “……처음 듣는 소리요.”
 “염마 앞에서 거짓을 고하는 것입니까, 콘파쿠 공?”

 요우키는 어깨에 지고 있던 노다치를 아래로 내렸다. 그는 양팔을 좌우로 크게 뻗으며 염마와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감히 일개 염마 따위가, 지옥의 여신 옆에 서는 귀신장 부대의 수장에게 겁박을 하는 거요?”

 그는 칼끝을 염마에게 겨누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환상향의 그 누구도 감히 내 앞에서 그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는 주제에! 내게 모든 악업과 고통을 떠넘기고는 입을 싹 씻은 겁쟁이들이, 그렇게나 더 중요하다는 말이오? 그 모든 일을 저지른, 그 많은 피를 묻힌 나보다도?”
 “콘파쿠 공.”
 “그 망할 ‘낙원’이 누구 덕분에 유지되고 있는 건 알기는 하오? 누구 덕분에 그 망할 새끼들이 발 뻗고 잘 수 있는지는 기억하고 있소?”
 “콘파쿠 공!”
 “언제부터 시비곡직청이 남의 과거사나 지껄이는 떠버리 따위로 영락했소이까?”
 “요우키!”

 그 몸에서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염마의 사자후에 귀신장들조차 움찔했다.

 “콘파쿠 요우키.”
 
 염마는 다시 예의 차가운 목소리로 되돌아갔다.

 “그대가 받은 고통, 그대가 짊어진 수많은 악업, 모두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참혹한 과거를 잊으려 하는 것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손녀, 콘파쿠 요우무는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지요.”

 그녀는 다시 나무 막대기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

 “저는 당신의 손녀가 자기 부모에 대한 일을, 그리고 당신에 대한 일을 알 자격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콘파쿠 요우무는 환상향의 이변해결사이고, 환상향에 남은 유일한 콘파쿠 가문의 사람이며, 당신의 손녀이니까요.”

 요우키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어금니를 꽉 문 채로 염마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 얼굴에는 분명한 갈등이 묻어나는 게 보였다. 감히 헤아려보자면, 아마도 요우무에 대한 일말의 그리움이 남아있는 것이리라. 잔인하리만치 완고하던 조부에게도 그런 감정이 남아있었으리라.
 한참동안 염마를 노려보던 요우키는 내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다가오며 다시금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과거를 듣고 싶나?”

 나는 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가 다시 한 번 외쳤다.

 “말해라! 내가 어떤 짓을 저질렀고 누구의 피를 손에 묻혔는지를 알고 싶은가!”

 그, 그렇습니다. 내가 두려움에 떨며 외쳤다. 그가 말해준다면, 당장 이 알지도 못하는 곳을 벗어나서 요우무에게 모든 것을 알리고 이 의뢰를 끝낼 수 있으리라. 보수는 최대한으로 받아내야만 할 것이다.
 요우키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더니, 옆에 있던 귀신장에게 손을 뻗었다. 귀신장은 말없이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요우키에게 바쳤다. 요우키는 그 칼을 내 앞으로 내던졌다. 나는 내 앞에 온 귀신장의 검을 보고는 그가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예상하려고 애를 썼다.

 “그럼 이렇게 하지.”

 요우키가 차갑게 말했다.

 “내가 일곱 합을 칠 동안 나에게 한 번이라도, 조그마한 생채기라도 낸다면 네가 이긴 것으로 하고,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마.”
 “만약 그가 실패한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염마가 묻자. 요우키는 차갑게 미소 지었다.

 “네놈의 목을 베어 지옥의 입구에 걸어두겠다. 너같이 사람 뒤나 캐고 다니는 쥐새끼에게 딱 어울리는 결말이지. 안 그렇소, 염마여?”

 나는 경악하여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지금까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염마도 그 말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표정이 바뀌어갔다. 귀신장들조차 서로 속닥거렸다. 상황이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그리고 이상하게 돌아갔다. 환상향의 칼잡이로 유명한 소녀의 조부이자 스승을, 한쪽 팔이 병신인 내가 상대하라고? 말도 안 된다.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그냥 돌아가겠소."
 "잠깐……."
 "염마 당신이 아무리 나를 붙잡으려고 해도 말이지, 그 ‘낙원’에서 사람은 여전히 죽을 거요. 안 그렇소? 그렇다면 삼도천도, 시비곡직청도 영혼으로 가득 찰 거고. 그렇게 혼이 붙들려서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된다면, 문제가 되는 건 누구일까?”

 염마가 입술을 씹었다. 나는 다리가, 온몸이 떨렸다. 결심했다. 그만두자. 내 목이 지옥의 입구에 걸린 채로 썩어가는 것보다야 의뢰고 뭐고 다 포기하고 도망쳐서, 요우무에게 당신 조부라는 작자가 내 목을 베어서 걸어놓겠다고 엄포를 놓았다며 난리를 친다면, 그녀도 이해해주겠지. 오니도 텐구도 갓파도 아닌, 일개 인간에 불과한, 한심하게 도망쳐버린 나를 이해하겠지.
 그 순간, 염마가 나를 불렀다.

 “잘 들으십시오. 그대의 아버님도 이 일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염마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나도 요우키도 동시에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레의 자손이 그대 아버님의 마지막을 얘기하였지요? 요괴한테 살해당했다고 말했을 겁니다. 그 문장 자체는 사실이지만, 당신의 아버님은 이 일에 좀 더 깊게 연관되어있습니다.”

 대체 무슨 말입니까. 내가 물었으나 염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직 콘파쿠 요우키를 통해서만 완전한 진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무언가, 무언가 그 말을 들으니 가슴속이 뜨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아버지의 단검이 여전히 내 허리에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이, 기억 속으로 흘러가버린 가족의 마지막 흔적이, 내 안에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생채기 하나 정도라면. 저 천 살 넘은 반인반령의 손가락 끝에라도 상처를 낸다면, 요우무의 의뢰도, 내 온몸을 부쉈던 수많은 탐색도, 그리고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아버지의 한도 모두 끝이다.
 나는 검을 쥐고 일어섰다. 요우키는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 기백 하나는 마음에 드는구나.”

 요우키가 노다치를 다시 그의 어깨에 짊어졌다. 그의 표정에서 미소가 일순간 사라졌다. 염마도, 사신도, 귀신장들도 모두 뒷걸음질 했다. 요우키가 말했다.

 “일곱 합이다.”

 그가 재빠르게 노다치를 양손으로 잡았다. 그 앞에 선 나는 칼을 양손으로 쥐지도 못해서 내 상체만한 칼을 한손으로 들었다. 지금까지 검술이라고는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 애초에 싸움이라고 해봐야 호신용으로 주먹질이나 발길질, 지팡이 같은 거나 휘둘러본 게 전부였다. 괜한 일을 벌인게 아닌가, 갑작스레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생채기 하나라면, 생채기 하나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요우키가 자세를 갖추고 칼을 쳐들었다. 그가 갑자기 걸음을 빠르게 하며 내게 돌진하자, 나도 모르게 나는 칼을 휘둘렀다. 요우키는 가볍게 칼을 튕겨내고 어깨로 나를 밀쳤다. 천 살 먹은 늙은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었다. 충격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들자 요우키의 얼굴 대신, 내 얼굴을 향해 빠르게 날아드는 그의 발이 보였다. 당연히 피하는 건 고사하고 그게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뺨에 발차기를 맞고 바닥에 고꾸라진 후였다.

 “하나.”

 요우키가 차갑게 말했다. 입에서 피가 튀어나왔다. 이빨이 나간 건지, 혀를 씹은 건지 모르겠다. 나는 가눌 수가 없는 몸을 끌고 일어섰다. 누워 있다고 달라지는 게 없었다.
 요우키는 다시 칼을 높게 잡더니 내게로 달려들었다. 나는 엉거주춤 자세를 잡은 채로 칼을 휘둘렀다. 요우키는 갑자기 몸을 숙이더니 내 오른팔을 어깨로 받아냈다. 그러고는 노다치 손잡이와 코등이로 내 안면을 올려쳤다. 악, 비명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요우키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무자비하게 주먹을 날렸다. 요우키는 마무리로 내 복부에 강력하게 주먹을 날렸다. 주먹이 꽂힌 순간 나는 입에서 피를 뿜으며 그대로 무너졌다.

 “둘.”

 비참한 내 꼴을 보며 요우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의 철두철미한 무표정에서 읽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그저 두들겨 맞은 것 뿐,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일곱 합은커녕 세 합 만에 목이 달아나게 생기니 순간 잊고 있었던 두려움이, 그리고 후회가 다시 솟아올랐다.

 “이제 싸울 생각이 사라졌느냐? 지금이라도 포기한다면 나도 이쯤하고 그만두겠다.”

 살려주겠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요우키는 내 몸에 칼날 한 번 대지 않았으나 내 몸뚱어리는 이미 엉망이었다. 어쩌면 지금이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흔들리는 내 마음과는 다르게, 내 몸은 다시 일어나 칼을 다잡았다. 심장은 살고 싶다고 외쳤지만, 머리는 진실을 알아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온몸을 다잡았다.
 내 모습을 보며 요우키는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가 다시 자세를 다잡았고 동시에 서슬 퍼런 칼날이 번쩍였다. 이제부터는 제대로 베어버리겠다는 의지가 칼날에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이번에도 요우키가 먼저 움직였다. 나는 이번에는 칼을 휘두르지 않고 요우키의 공격을 튕겨내든 막아내든 피하든 할 요령이었다. 요우키는 사선으로 칼을 휘둘렀고 나는 칼을 들어 공격을 막으려고 했다. 그렇게 칼날과 칼날이 부딪히는 순간, 요우키의 칼날이 멈추지 않고 내 칼에서 미끄러지며 내게로 날아왔다. 고개를 틀었지만 너무나도 순식간이라 뺨에 칼날이 닿았다. 그나마도 피하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뺨과 광대뼈까지 꿰뚫렸을 모양이다.
 요우키는 그러나 멈추지 않고 자기 겨드랑이로 내 칼날을 붙들고는 내 손목에 힘을 주어 칼을 빼앗더니, 자기 노다치 칼날로 내 다리 사이를 걸어 넘어트렸다. 바닥에 자빠지자마자 내 목덜미에 칼날이 닿았다.

 “셋.”

 이제 기회는 네 번 뿐이다.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을지, 아니면 목이 달아날지가 말이다. 지금 보면 아무래도 후자의 확률이 훨씬 더 높다. 멀리서 코마치가 두려움에 떨며 중얼대는 것이 들렸다.

 “저, 정말 괜찮을까요? 지금이라도 막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러다가 정말 죽으면…….”
 “이미 엎지른 물입니다, 코마치.”

 도움도 안 되는 년 같으니. 나는 다시 칼을 들었다. 뺨과 귀에서, 입가에서 피가 흐르고 있지만 닦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요우키는 이번에는 가만히 있었다. 내가 먼저 공격하기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분명 또 칼을 어떻게 치우고 나를 두들겨 패거나 찌르거나 베거나 하겠지. 하지만 가만히 있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나는 기합을 내지르며 칼을 휘둘렀다. 요우키가 살짝 미소를 짓더니 바로 내 칼을 자기 칼로 막고는 한 바퀴 크게 돌려 내 손에서 칼을 멀리 날려버렸다. 요우키는 멈추지 않고 곧바로 내 왼쪽 어깨를 찔렀다. 차디찬 강철이 내 어깨를 꿰뚫으니 어깨가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생각해보니 모순적인 표현이다.
 내가 비명을 지르니 요우키는 어깨에서 칼을 뽑아내었다. 그가 칼을 한 번 흔드니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반사적으로 몸이 비틀거렸다. 어차피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왼쪽 팔이라지만 아픔은 여전했다. 정말 이러다가는 목이 달아나기 전에 죽을 것만 같았다.

 “넷.”

 요우키의 말이 꼭 사형을 선고하는 판사의 말 같았다. 정작 판결을 집행하는 작자는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고 있는데 말이다. 날아간 칼을 보자 요우키는 다시 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귀신장 하나가 자기 칼을 그에게 바쳤고, 요우키는 그 칼을 내 앞에 던졌다. 마치 처음처럼 말이다. 나는 하는 수없이, 다시 칼을 쥐었다.
 내가 피를 줄줄 흘리고 토하는 동안에도, 요우키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맞고 베이고 찔리는 비참한 상황에도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나마 칼을 계속 휘둘렀다. 요우키는 아래에서 위로 칼을 크게 휘두르며 내 칼을 받아내더니 자세를 숙이고는 내 왼쪽 허리 사이로 몸을 빙글 돌리며 내 뒤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격, 나는 등을 크게 베이고는 앞으로 무릎 꿇었다. 그런 나를 보며 요우키가 차갑게 선언했다.

 “다섯.”

 어깨도 등도 뺨도 타오르듯이 고통스러웠다. 이제 와서 생채기는커녕 손이 닿는 것조차 가능한지 의심스럽다. 내가 일어나지 못하자 요우키가 코웃음을 치며 비꼬았다.

 “손가락 하나 대지도 못하면서 무슨 용기로 나를 적대한 것이냐? 그런 건 용기가 아니다. 광기지!”

 요우키는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소리쳤다.

 “이곳이 환상향이라면 참으로 좋았을 터! 감히 나를 건드리려는 머저리들에게 무슨 꼴이 벌어질지 알려줄 수 있었을 거요! 환상향의 현자인지 뭔지 하는 작자들도 똑똑히 지켜보았겠지! 자신들이 내게 무엇을 요구했는지 하나하나 곱씹으며 두려움에 떨었을 테요!”

 그러더니 그는 내게 불벼락 같은 호통을 내렸다.

 “일어서라! 아직 대결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칼을 지팡이삼아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이제는 어렵다. 하지만 요우키는 야차와 같은 눈빛으로, 결투가 끝나려면 한참 멀었음을 알렸다. 그 눈빛을 보니 더 이상 후회고 뭐고 들지 않았다. 그저, 빨리 나머지 두 합이 끝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요우키가 기합을 내지르며 다시 달려들었다. 나는 칼을 휘두르기는커녕 쥘 힘도 없어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는 이번엔 어떤 대단한 검술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순전히 사람을 죽이려는 의도로, 그대로 내 몸통으로 쇄도했다. 그의 칼날이 그대로 내 배와 가슴을 갈랐고 곧바로 요우키는 내 뒤로 움직이며 내 허벅지를 찔렀다. 더 이상 비명을 지를 힘이 없었다. 고통도 무덤덤해졌다. 그때 내 머리에 든 생각은 왜 상처 사이로 내장이 빠져나오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함이었다.
 그대로 무릎 꿇었다. 내 참혹한 모습에 코마치가 소리를 내며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돌리는 게 보였다. 염마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곧 나를 심판할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내 앞을 요우키가 가로막았다.

 “여섯.”

 요우키의 목소리는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그는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잔인하고 무시무시했다. 그 어떤 야차나 아수라도, 그 어떤 악귀나찰도 저런 얼굴을 할 수는 없으리라.
 떨리는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가 아버지의 단검을 꺼내들었다. 마지막 저항을 하는 셈이다. 나는 가까이 다가온 요우키를 향해, 단검을 꼭 쥔 손을 내질렀다. 요우키는 가볍게 칼날을 내 주먹을 향해 돌렸다. 내가 내지른 힘 덕분에 그의 칼날이 내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고통보다는 충격 때문에 손에 힘을 잃었고 그대로 단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내 팔을 걷어차 칼날에서 내 손을 빼고는, 그대로 내 가슴팍을 향해 칼을 내질렀다. 그리고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일곱.”

 완패였다. 요우키가 칼에서 손을 놓았다. 나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으나, 칼 손잡이 때문에 바닥에 제대로 눕지도 못했다. 요우키가 웃으며 염마를 가리켰다.

 “하하하! 보시오, 염마여! 당신의 개는 지옥의 요정보다도 약해빠졌구려!”

 그는 다시 손잡이를 붙들고는 천천히 뽑아들었다. 길고 긴 노다치 칼날이 나의 몸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생경한 광경이었다. 긴 칼날이 모조리 나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그가 칼을 위아래로 크게 한 번 휘두르니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아직 남은 피는 그가 소매에 칼날을 문지르며 닦아냈다.

 “그럼, 약속한 대로 네놈의 목은 지옥의 입구에 걸어놓겠다.”

 요우키는 칼날을 내 목에 가져다대었다. 이젠 끝이구나. 두려움조차 없었다. 그저 이 생경한 광경이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그가 칼을 크게 뒤로 빼었다. 나는 그저 그가 빠르고 깔끔하게 내 목을 베어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바닥에 생겨난 틈새로 빠져버렸다. 그리고 다시 바깥으로 나오니, 어느새 금발의 여인 품에 안겨있었다. 야쿠모 유카리였다.

 “네년!”

 요우키가 소리쳤다.

 “많이 변하셨군요. 요우키…….”

 유카리의 목소리는 어딘가 슬픈 것 같았다. 그러면서 그녀는 내게 약을 먹였다. 남은 고통마저 사라지는 것을 보니 아마도 진통제인 모양이다.

 “그럼 그렇지! 당연히 네년이겠지! 일개 염마 따위가 나에게 이 따위 짓거리를 생각해낼 리가 없지! 망할 ‘낙원’의 자칭 현자여! 네년이 또 저놈을 충동질 한 것이냐?”
 “아닙니다.”
 
 요우키는 피 냄새가 진동하는 노다치를 유카리에게 겨누었다.

 “그놈은 나와 결투에서 패했다. 약속한 대로 저놈의 목을 가져갈 것이다. 비켜라.”
 “안됐지만 그 결투는 무효로 하겠습니다. 검술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환자 상대로 승리한 게 명예롭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으시겠죠?”
 “명예? 명예라고? 네년 입에서 그 말이 나오다니 참으로 우습구나.”

 유카리는 염마를 바라보았다. 염마가 시선을 피한 것 같다면 눈의 착각일까.

 “당신에게 걸맞은 적수와 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란!”

 유카리의 뒤에서 틈새가 열리더니, 그녀의 식신이 누군가를 데리고 틈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요우무였다. 그녀는 요우키를 보자 마치 충격을 받은 듯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할아버님…….”

 안 돼. 요우무가 저 무시무시한 야차를 이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저 작자라면 자기 손녀의 목도 아무런 무리 없이 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멈추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혀가 마비된 모양이었다. 요우무는 침을 꼴깍 삼키더니, 누관검의 칼집을 왼손으로 잡으며 자세를 잡았다. 그녀는 내게 눈빛을 주었다.

 “지금껏 도움만 받았으니, 이제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요우무는 다시 자기 조부에게로 눈을 돌렸다.

 “콘파쿠 요우키! 나 콘파쿠 요우무가 그대에게 도전한다!”

 요우키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더니, 이내 다시 눈빛을 바꾸고는 노다치를 어깨에 짊어졌다.

 “먼저 피를 흘리는 쪽이 패배다. 네가 이기면 저놈의 요구대로 원하는 것을, 내 과거를 말해주마. 내가 이기면, 저놈의 목에 더해 야쿠모 유카리 저년의 목까지 받아가겠다.”

 요우무가 유카리를 보자, 그녀는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우무는 다시 자기 조부에게 시선을 돌리며 누관검을 뽑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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