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조사한다 11

Mameloukor | 조회 수 41 | 2020.07.31. 18:19

 마을에 온지 닷새가까이 지났다. 그동안 아큐와 케이네의 배려로 마을 사람들이 엉망이 된 흥신소를 고치는데 도움을 주었고, 수리가 끝날 때까지는 스즈나안에서 일하고 먹고 자는 생활을 했다.
 그러는 사이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마을에 파다하게 퍼졌다. 살아서 염마를 마주하고 도망친 사람이라느니, 오니와 칼부림을 해서 살아남았다느니, 지옥에 걸어 들어갔다 나왔다느니 하는 그런 시시한 헛소문 말이다. 내용을 잘 보면 사실이기는 하다. 염마 시키 에이키를 산 채로 본 것도 사실이고, 오니는 아니지만 지옥의 귀신장 부대를 통솔하는 요우키와 칼부림을 해서 살아난 것도 사실이고, 지옥이나 다름없는 흉흉한 곳에서 살아난 것도 사실이다. 어디서 이상하게 변주되어 뻥튀기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니 부축을 받으며 스즈나안으로 들어갔을 때 영원정의 그 키 작은 토끼가 있었던 것 같다. 그 망할 사기꾼이 거짓말을 퍼트린 모양이다.
 아무튼 엿새째가 되자 흥신소의 수리가 끝이 났다. 집에 들어가 살피니 요우무의 의뢰를 받기 전, 예전의 모습과 비슷해졌다. 모든 것이 다 예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마을의 인부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말했다.

 “거 참, 고생했수다, 탐정 양반. 지옥에서 살아 돌아오느라고.”
 “그러게 말이야. 텐구와 칼부림해서 살아남았으면 제대로 고생했지.”
 “텐구 아니고 오니라니까.”

 텐구 아니고 오니도 아니고 요우키라니까. 하지만 굳이 그런 말을 꺼내서 분위기를 망칠 필요성은 없어보였다. 이들은 내가 누구와 만났는지조차 모르는데 말이지. 내가 고맙다고 말하니 옆에 있던 아큐가 웃으며 말했다.

 “보수는 내일 정산해드릴 테니 오늘은 이만 가셔도 돼요.”

 인부들은 아큐에게 인사하고는 왁자지껄하게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멀어지자 문틈에서 안경 쓴 코스즈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우리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손에 술병을 흔들며 안으로 들어왔다.

 “케이네 선생님은?”
 “뭐어…….”

 아큐는 내 눈치를 보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바쁘다고 하셨어.”

 실제로는 나를 볼 면목이 없다고 했던가. 그에 비하면 아큐는 뻔뻔스러울 정도로군. 하지만 그녀를 쏘아붙이거나 박대해봐야 좋을 것은 없다. 애초에 이제는 다 끝난 일이니까. 그래, 모든 건 다 끝났다. 마치 예전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되돌아갔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술을 들이켰다. 아큐와 코스즈가 서로 얘기를 하는 동안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종종 코스즈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얘기해달라고 졸라왔으나, 나는 내 온몸에 가득한 붕대를 보여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내 상처투성이 몸과 아큐의 눈치에 코스즈는 정확한 상황을 알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언젠가 아큐가 알려줄지도 모르지. 지금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고 술이 거의 다 떨어져갔다. 코스즈는 이미 잔뜩 취해 혀가 꼬이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아큐가 나를 보며 말했다.

 “당신을 주인공으로 글을 써볼 생각이에요.”

 나를? 내가 물으니 아큐는 고개를 끄덕였다.

 “염마님과 다른 이들에게 들어보니 참 대단하더군요. 몸과 마음이 부서지면서도, 어떻게든 진실을 알아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끝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의지. 탐정 소설의 주인공이 갖춰야 할 덕목이네요.”

 나는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다름 아닌 콘파쿠 요우무였다. 거의 일주일 만에 보는 얼굴에 나는 놀란 얼굴을 지었다. 요우무의 등장에 아큐는 코스즈의 팔을 잡고 일어섰다.

 “이제 가자, 코스즈.”
 “왜에…….”

 아큐는 적당히 나와 요우무에게 인사하고는 코스즈를 끌고 나갔다. 흥신소의 문이 닫히자, 요우무는 말없이 내게 꾸벅 인사하고는 내 앞으로 와 탁상에 작은 주머니를 올려놓았다. 탁자에 닿는 순간의 묵직함이 내게도 느껴졌다.

 “제가 드릴 수 있는 최대한이에요.”

 요우무의 말에 나는 천천히 보따리를 풀어보았다. 안에 들어 있던 것은 무질서하게 들어간 지폐와 동전 여럿이었다. 조심스럽게 돈을 세어보니, 이 정도라면 조금 아끼며 산다면 두세 달 정도는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좀 더 드려야 했는데…….”

 나는 손을 내저었다. 아예 돈도 제대로 안 주고 떼먹으려 했던 연놈들에 비하면 이건 충분히 후한 보상이었다. 내가 주머니를 다시 꽉 묶는 동안 요우무는 다른 보따리를 꺼냈다. 경단이었다. 나는 아직 남은 술을 꺼냈다.
 경단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는 동안 요우무는 별 말이 없었다. 긴 침묵이 싫어 어떻게 깨야 할까 생각했다. 나는 긴 생각 끝에 남은 사람들의 행방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요우무는 살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염마님과 사신께선 바로 가셨고, 할아버님께서 유유코 님과 유카리 님 하고 잠깐 이야기 하신 다음 다시 지옥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요우키가 무어라 말을 남기지 않았느냐고 묻자, 요우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할아버님께선 그저, 네 의무를 다하라는 말만 하셨습니다.”

 다른 말이 없었느냐고 물으니 그녀는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도 슬퍼보였다. 그녀는 말을 더 이어갔다.

 “유카리 님께선……. 란 님의 말에 따르면 밤마다 슬퍼하시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보았던 광경을 생각해보면 요우키와 꽤나 각별한 사이였던 것 같은데. 그런 요우키에게 증오 받고 목숨을 위협받는 지경까지 왔으니 슬퍼할 수밖에. 내 입장에서는 업보로밖에 안 보이지만.
 더 이상 물을 말도 없고 말을 더 끌어낼 이유도 없었다. 나는 연초를 꺼내 입에 물었다. 성냥갑을 꺼내 불을 붙이려고 하니, 그녀가 먼저 성냥을 꺼내 불을 붙여주었다. 허공에 흩어지는 연기 사이로 그때 거울에서 보았던 광경이 떠올랐다.
 요우키의 아들과 며느리, 나의 아버지. 이름조차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이들. 과거를 알아냈다고 한들 이름조차 없는 그들의 한, 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게 풀리기는 할까. 하늘로 사라져버린 연기처럼 그들의 한조차도 잊히고 만 게 아닐까. 눈에 보이지 않으면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누군가의 궤변이 떠올랐다. 현실에서 잊히고 역사에서 지워진다면, 그들의 존재 자체도 사라지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누군가가 벌컥 흥신소 문을 열었다. 그새 내가 또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생각하며 문을 보았다. 이상한 모자와 이상한 복장을 한 금발의 요정이었다. 그녀는 나와 요우무를 번갈아보더니 요우무에게 다가왔다.

 “초록색 칼잡이 정원사를 찾고 있는데! 그쪽이야?”
 “그쪽은…….”
 “이 몸은 클라운피스라고 해!”

 요정이야 흔해빠진 존재다만, 저런 희한한 복장의 금발 요정은 또 처음이다. 그녀는 모자 안에 손을 집어넣고는 이리저리 휘적대더니 편지를 꺼냈다.

 “주인이 그쪽에게 전해달래!”

 요우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편지를 받아들고는 발신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대체 무엇이기에 저러는 걸까. 나도 일어나 살짝 눈짓하여 발신인을 살펴보았다. ‘콘파쿠 요우키’, 그 이름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숨을 삼키고 말았다.
 요우무가 놀라 클라운피스인지 누구인지를 돌아보았을 때 그녀는 이미 경단을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요우무는 요정을 붙잡을 생각도 못하고 허공만 멍하니 보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녀는 손을 떨며 편지를 열어보았다. 편지를 읽어내리는 요우무의 눈이 흔들리다가, 이내 이슬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가 편지를 내려놓았다. 나는 편지를 살펴보았다.

 콘파쿠 요우무에게.
 네 어미는 운명을 믿는다고 했다.
 인간이 득세하고 요괴가 몰락한 것도, 결계를 쳐서 우리 자신을 스스로 가둬버린 것도 운명이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을 살아오며 운명에 대해 내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운명은 우연과 필연이 함께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네 부모가 서로를 만난 것도, 파란 눈의 외래인이 환상향으로 들어온 것도, 네가 그 흥신소의 탐정을 찾아간 것도 순전한 우연이겠지만, 그 우연을 필연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행동이었다.
 우리 자신의 운명은, 우리의 선택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나를 용서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증오할 사람이 필요하다면 나를 증오해다오. 가짜 낙원이나마 지키려고 노력했던 이에게는 값싼 연민만으로도 충분하다.
 요우무. 유유코 님과 백옥루를 지키겠다는 네 의무를 다해야 한다. 하지만 그 의무가 너를 집어삼키게 두지는 말거라. 환상향을 수호하겠다는 의무에 짓눌려 자식의 목을 베었던 나의 잘못을,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다오.

 네가 물었지. 너를 사랑하기는 했느냐고.
 사랑했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네게 단 한 번도 사랑을 말하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너를 사랑했다고 말하더라도, 하늘로 흩어지는 담배 연기처럼 공허하기 짝이 없는 헛소리구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내가 해야 할 말은,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라 미안하다는 말이구나.
 그럼에도, 사랑한다.

 네 할아버지, 콘파쿠 요우키

 추신

 그 파란 눈의 탐정에게 전해다오. 그의 의지와 용기를 보니, 왜 내 아들이 그대 아비를 친구로 삼았는지 알 것 같다고.

 나는 편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말없이 요우무를 꽉 안았다. 우리는 그렇게 오랫동안 눈물을, 아마도 마지막이 될 눈물을 흘렸다.

 며칠 뒤, 마을에선 잔치가 열렸다. 중국에서 온 파란 머리 선인의 제안으로 하늘에 풍등을 날린다던가. 술집 평상 위에 앉아 하늘로 날아오르는 수많은 풍등을 보았다. 확실히 장관이었다. 저 안에 소원을 담아 이뤄지기를 바라며 날린다던가. 앞에 앉은 향림당 주인장도 풍등을 보다가 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무연총에 다녀왔네.”

 재밌는 거라도 주웠느냐는 물음에 린노스케는 고개를 저었다. 대신 그는 내게 천을 감싼 무언가를 건넸다.

 “아무래도 자네 것 같아서.”

 나는 천을 열어보았다. USMC가 새겨진, 바깥세계 군인이 쓴다는 단검. 맞아, 그러고 보니 두고 왔었지. 나는 감상에 젖어 아버지의 단검을 바라보다 다시 천으로 감쌌다. 린노스케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니 그가 손을 내저었다.

 “고마우면 청주 한 병 더 사지 그래.”

 그때 코스즈가 헐레벌떡 내게로 뛰어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그녀는 숨을 고르다가 내 팔을 붙잡고 말했다.

 “요, 요마본이 또 사라졌어요!”

 제기랄. 아무래도 나도 풍등을 하나 날려야 할 것 같다. 코스즈 이 망할 꼬맹이가 요마본을 그만 잃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담아서 말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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