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나의 환상들이 - 000

lunawhisle | 조회 수 556 | 2015.12.12. 02:37

몇번째 리부트인가

 

게시판 글 날아간 김에 싸그리 다 뒤엎음

 

처음부터 다시 쓰는 팬-픽-

 

...담부터 백업 열심히 해야지. 시발.

 

 

 

 

 

 

 

 

 

 

 

 

 

 

......
아, 혹시 달도 안 뜬 칠흑같은 밤중에, 다리 아래의 강을 내려다 본 적이 있을련지.


다리 아래에까지 하늘이 펼쳐진듯한 광경. 새까만 어둠이 내 존재 자체를 삼켜버릴것만 같은 절대적인 압도감. 그리고,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것 같은 고독함.


누군가가 이 독백을 듣는다면 '히익 중2병!' 하고 질겁을 하겠지만, 이 세상에 사토리 요괴는 없다. 그나저나 마음을 읽는다고 하는 그 요괴가 이 세상에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 눈에 비친 이 세상은 대체 어떤 느낌일까.


이야기 흐름이 다소 빗나가긴 했는데, 다시 초점을 원제로 맞춰보자. 뭐였더라?...그래. 죽을 생각은 없었다 라는 이야기였지.


어째서 이런 생각을 하느냐 하니.

 

 

 

나도 모르게 다리에서 충동적으로 뛰어 내려버렸기 때문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스스로도 꼴사납다 생각하지만, 목에서 비명이 나오는걸 멈출 수가 없다. 귀에 들려오는 사나운 바람소리와 몸이 떨어지는 느낌 또한 더할 나위 없이 겁나지만, 강에 떨어진 뒤는 훨씬 겁난다.


하나, 난 수영을 못한다.
하나, 난 차가운 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결론 = 사망 확정.

 

어째서 이렇게 된걸까. 나는 왜 뛰어 내린걸까. 사실은 내심 죽어서 편하게 되고 싶었던걸까.

 

이제와선 알 수 없다. 알아봤자 늦는다.

 

난 여기서 죽을테니까.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아?"

 

근데, 언제쯤 물에 풍덩하는걸까? 꽤나 오랫동안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죽음의 공포 때문에 인지속도가 급격하게 늘었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다리에서 떨어졌으면 지금쯤이면 물에 빠져서 차갑고 냄새나는 강물을 한껏 들이키고 있었을텐데.

 

뭔가 이상하다. 확실히 떨어지는 느낌은 들지만, 뭔가가 이상하다.

 

그리고 어느샌가, 나는 보고 있었다.

 

수많은 눈동자들. 마치 나를 품평하듯이 바라보는 수많은 눈동자들. 그 눈은 소싯적 내게 기대를 품고 있었던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눈과도 비슷했고, 그 맘때쯤 나를 따돌리던 친구들의 눈과도 비슷했고, 아무것도 모른채 엄마 품에 안겨 나를 바라보던 갓난아기의 눈과도 비슷했다.

 

갑자기, 어느 유명한 구절이 떠올랐다.

 

'네가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을때, 심연 또한 너를 바라보고 있다.'

 

출처는 불명이지만, 왠지 모를 공감이 느껴졌던 인상깊은 문구라 기억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그야말로 이 문구와 같지 않은가.

 

그리고 어느 순간,

 

"어..."

 

갑작스럽게 의식이 멀어진다. 마치 잠드는듯한 감각. 온몸이 나른해지고, 자연스레 눈이 감긴다.

 

만일 이 모든게 내 뇌가 스스로를 속이기 위해 만든 환상이고, 진짜 내 몸은 강물에 빠져 생을 마감하고 있다고 한다면, 뇌에게 감사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순간에.

 

아아, 정말 달콤한 죽음이로군. 하고 중2병스럽게 생각했다.

 

 

 

 

 

 

 

 

 

 

 

 

 

 

 

 

 

 

 

 

 

 

 

 

눈을 떠보니, 숲속에 있었다.

 

"하?"

 

의아함에 나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내버린다. 이상한데, 분명 나는 다리에서 뛰어내린 뒤에, 스스로가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행복하게 잠들어 죽었을텐데.

 

...환상이 아니었다는 결론이려나? 아니면 지금도 환상 속에 있는걸까?

 

"흐음."

 

땅을 짚고 있던 손을 들어올려보니, 눅눅한 흙이 묻어 있다. 이 감촉, 이 느낌. 아무래도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하다. 이게 정말 환상이라면, 나 자신을 좀 환멸하고 싶을 정도다. 대체 얼마나 현실도피를 하고 싶었던거냐.

 

아무튼, 환상이 아니라고 한다면.

 

"여긴 어디여?"

 

햇빛조차 거의 들어오지 않는 빽빽한 숲 속. 적어도 내가 뛰어내린 다리 근처에 이런 숲은 없었다. 거기에 옷도 젖지 않은 상태고...

 

그나저나, 나 정말로 죽을 생각 없었나 보군. 츄리닝이라니, 처음부터 죽을 생각이었으면 적어도 이런 차림은 하지 않았겠지.

 

뭐, 이 차림새 덕분에 돌아다니기는 편하고 좋네. 그럼 일단 어쩐다. 돌아다녀볼까...?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겠다만.

 

"......"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인다. 일단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수분이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선, 일단 생존을 우선시 하자 라는게 내 폴리시니까.

 

"들린다."

 

다행히도, 좀 멀리서지만 물소리가 들려온다. 방향은... 이쪽인가. 아무래도 여긴 산 중턱 정도인 모양이라, 이래저래 길이 험하다. 조심해서 나아갈 필요가 있겠군.

 

"빠밤-빠밤- 자연속에 내가 있다-"

 

어째선지 텐션이 올라가버려 나도 모르게 모 영양 드링크의 CF문구를 읊어버린다. 으음, 어릴적부터 산 타는건 좋아했으니까 말이지. 어찌보면 산속에서 정신이 든게 다행일 수도 있겠군. 막 지하실이나 이런곳이었다면 100% 패닉 상태에 빠졌을 거라고.

 

"찾았다."

 

시냇가 수준의 크기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아 보인다. 그대로 마시기엔 좀 그렇긴 하지만... 일단 한모금 입 축이는 정도는 괜찮겠지.

 

"Fresh Water..."

 

물은 생각했던것보다 깨끗하고 맛있어서, 나도 모르게 영어로 감탄해버린다. 시중에 파는 물보다 훨씬 깨끗한 느낌이다. 뭐랄까, 약수? 그런 느낌인가.

 

이 정도면 더 마셔도 괜찮을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일단 지금은 딱히 필요 없으니 굳이 더 입에 대진 않는다. 만약에 '실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은 물이었습니다-' 라는 결말이 되어버리면 남는건 설사와 탈수증상 뿐이니까.

 

그나저나, 이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산에서 내려 갈 수 있으려나? 딱히 내려가도 뾰족한 수가 나올거 같아 보이진 않지만, 지금은 이 이외의 선택지가 존재 하지 않는다. 좆같은 프롤로그구만. 그래, 현대의 유저들은 다양성을 원한다고. 

 

물론 돈은 내지 않겠지만. 

 

좋은 게임을 만들어 내란 말이다! 우리는 과금을 하지 않겠지만 하여간 좋은 게임을 만들란 말이다! 똑바로 서라 핫산! 왜 게임을 만들지 않는거지?!

 

...아니 이게 아닌데. 하여간 정해졌으면 빨랑 움직이는게 낫겠지. 내 체력은 한정 되어 있으니까. 행여나 길을 잃어서 이 숲에서 죽는다면... 음, 그것도 나쁘지 않을거 같긴 하다. 워낙에나 경치가 좋은 산이라서... 마지막으로 좋은거 보고갑니다 -라는 느낌이려나. 물론 지금 와서 죽을 생각은 일체 없지만.

 

"가보실까."

 

시냇가를 따라 아래로 내려간다. 지형이 다소 험하긴 하지만, 산 타는게 취미인 내게 있어선 그다지 높은 난이도는 아니다. 방심 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죠.

 

"호오..."

 

산을 내려가면 내려갈 수록,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안되는 멋진 풍경들이 펼쳐진다. 그 어디었더라, 중국인가 어디에 있는 모 퍼런 인디언 외계인들이 나오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그곳과 비슷한 느낌이다. 아무래도 그 대륙과는 스케일적인 차이는 있는 모양이지만.

 

그나저나 여긴 어딜까? 적어도 내가 살던 나라는 아닌데. 산이야 많은 나라였지만, 여기만한 경치를 자랑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물론 그 '손에 꼽을 경치'는 내가 이미 답파했기 때문에 거기가 아니라는 정도는 알 수 있지.

 

숨은 비경이었다, 라는 결말이면 사실 더할 나위가 없는데... 귀환 가능성이 있으니까.

 

하지만...

 

"아까 전에 그거...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니라면, 의식을 잃기 전에 보았던 그 사이키델릭한 광경 또한 꿈이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게 된다면... 혹시나 싶지만, 설마 여긴 다른 세계가 아닐까?

 

아직 말이 통하는 존재와 조우하지 않은 만큼 그 부분에 대해선 확신할 수 없긴 하다만...

 

그나저나,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한 나 자신에 스스로도 놀라고 있다. 감각이 현실에 못따라가고 있는건지도 모르지만... 살던 세상에 미련이 없어서 그런것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샌가 꿈이 존엄사로 바뀌어버렸을 정도니까 말이지.

 

뭐어, 이런 경치를 가진 세계라면 좀더 살아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생각조차 품게 되는 엄청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으니. 일단은 지금의 현실을 마주하는 부분부터 천천히 나아가 볼까.

 

 

 

 

 

 

 

 

 

 

 

 

 

 

 

 

 

 

 

 

 

 

 

 

 

 

"꽤나 어두워졌군."

 

얼마나 내려왔을까. 슬슬 산에서 빠져 나올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 그런것 치곤 아직 길은 아직 험하다. 거기에, 나무의 밀도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아까까지 밝았는데, 마치 터널에 들어온것만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어두침침하다.

 

그리고, 어째선진 모르지만 왠지 기분까지 어두워지는 느낌이다. 어어, 안되는데. 어릴적의 트라우마까지 나오면 좀 곤란한데.

 

"물이...?"

 

아까전까진 시냇가의 물이 깨끗하고 맑았는데, 지금은 엄청나게 더럽다. 그냥 흙탕물이라던가 그런 문제가 아니다. 뭔가, 정체는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생리적으로 불쾌함이 느껴지는 더러움. 설명이 너무 두리뭉술한 느낌이 들지만, 그거야 말로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다. 미지에 대한 공포마저 겹쳐져서, 얼굴에 핏기가 살짝 가시는게 느껴진다.

 

음- 그렇다쳐도 지금 이 자리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더러워진 물도 그렇지만, 이 공간 전체에 오래 있으면 좋지 않을것 같다는 본능적인 경종이 머리속에서 마구 울리고 있기 때문에.

 

뭐, 이래저래 어려운 말을 쓰는거 같지만 결론적으로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여긴 미친 곳이야, 난 여길 빠져 나가야겠어!' 정도일려나. 조금 서두르는 편이 좋을지도. 

 

-♪~

 

그 때,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이 음높이는... 여자인가? 이런 곳에 여자가 있다니... 수상하기 짝이 없지만, 우선은 소리가 나는곳으로 다가가보자. 운이 따라준다면, 길 안내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만을 바랄 뿐이다.

 

"......오."

 

그리고, 소리의 근원지에 도착한 내 눈에 보인것은... 마치 인형과도 같은 모습을 하고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는 한명의 소녀였다.

 

그녀의 전체를 장식하는 프릴 리본은 옷 뿐만 아니라 그 머리칼과 팔, 그리고 목까지 묶고 있으며, 그 녹색의 머리칼은 한바퀴 돌때마다 마치 허공을 수놓는 에메랄드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주위를 멤돌고 있는것은...

 

검디 검은 무언가. 본능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꿈틀거림을 가진 그것이, 아까전에 시냇물을 더럽히고 있던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그 부정함을 마치 사랑스러운듯이 손으로 쓰다듬으며 빙글빙글 춤추고 있었다.

 

신비한 소녀, 비현실적인 현상. 하지만 그렇기에 환상적인 광경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이걸 말을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일단 저 사람(?)은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으로 보이진 않는데, 저 주변에 떠다니는 판넬이 내 선택을 주저하게 만든다. 저거, 말걸자마자 '어이어이, 우리 누님한테 말을 걸다니 어디서 굴러온 말뼈다귀냐 임뫄!' 라는 느낌의 기세와 함께 날 공격할거 같은 느낌이잖아. 어째서 일본 양아치스러운 말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거기에, 왠지 모르게 그녀를 방해해선 안될거 같은 느낌이 든다. 원래, 아름다운 것은 만지는게 아니라 보는거니까.

 

...어쩔 수 없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긴 하지만, 리스크도 있고 거부감도 있다. 굳이 말을 걸 이유는 없으리라. 이 장면에선 페이드 아웃을 해줘야...

 

-파직!

 

"아."

 

어째선지 발밑에는 마른 나뭇가지가. 아니, 왜 호러 영화의 클리셰가 여기서 발동되고 지랄이여. 혹시, 지금 그런 상황인건가...?

 

"誰?(누구야?)"

 

아무래도 이쪽을 알아차린 모양인지, 소녀의 노랫소리가 끊기고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어, 이렇게 된 이상 말이라도 나눠볼까... 가만, 방금 그거 일본어였어?

 

오타쿠인 덕에 일본어를 알아들어서 살아남았음 #트친들이_경험해보지_못한_경험을_이야기해보자

 

SNS가 있었다면 지금쯤 이런 메세지를 올렸겠지...

 

"어머, 인간이네. 별일인걸? 이런 곳에 인간이 발을 들이다니."

 

인형같은 모습을 한 소녀는 말했다.

 

...당최 알아듣지 못할 말을.

 

아니, 일본어가 어쩌고의 문제가 아니라, 의미를 전혀 모르겠다. 일본어를 몰랐으면 저런 뇌내 해석이 되어 있지 않았겠지.

 

"그... 길을 잃어서."

 

일단은 무난하게 말을 꺼내보자. 수상하게 여겨진다면 최악의 경우 저 옆에 있는 뒤틀린 황천의 샘물에서 튀어나온듯한 꾸물꾸물한 오물촉수에 Rule 34 당해버릴지도 모를 일이니까.

 

"...흐응. 길을 잃었다, 라. 대체 어떻게 길을 잃어야, 요괴가 가득한 이 요괴의 산에 발을 들였을까...?"

 

"......하?"

 

가만, 이 여자 지금 뭐라캤노. 요괴의 산...? 요괴?

 

"...후우. 그 꼴을 보니 요괴가 뭔지도 모르는 모양이네. 그렇다면, 바깥에서 온 인간이려나?"

 

"바깥...?"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던 소녀는,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혹시 이 산에서 내려가는 길을 찾고 있다면, 이 냇물을 따라 쭉 내려가면 돼. 그리고, 이걸 가져가렴."

 

이라고 말하며, 내게 무언가를 건낸다. 뭐지 이거, 짚으로 만든 인형...? 어째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이건?"

 

"액막이 인형. 마음 같아선 인간 마을까지 데려다 주고 싶지만, 내가 마을에 나타나면 인간들이 불안해하거든."

 

그럼, 죽지 말라구~ 하고 적당히 손을 흔들더니 다시 빙글빙글 춤을 추기 시작하는 소녀.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뭔가를 받고 길 안내도 받았다. 좋은게 좋은거...겠지?

 

 

 

 

 

 

 

 

 

 

 

 

 

 

 

 

 

 

 

 

 

 

 

 

 

 

"와아..."

 

어두운 길을 따라 얼마나 내려 갔을까.

 

햇빛과 함께 나를 맞이한 풍경은, 웅장한 절벽과 그곳에서 떨어져 내리는 엄청난 량의 물. 즉, 폭포.

 

살면서 자연적인 폭포라는걸 실제로 본건 처음인지라,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이때까지 계속 이 곳의 풍경이 환상적이라는걸 느끼고 있었지만, 새삼스레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 이럴때야 말로 문명의 이기. 스마트 폰이 나서실때지.

 

"오오오..."

 

-찰칵!

 

자연스레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폭포의 사진을 찍는다. 우오... 내 형편없는 촬영 실력으로도 이정도 박력이라니, 엄청나구만. 그야말로 선인들이 사는 산의 풍경이다.

 

...가만, 스마트폰?

 

"...에이, 권외인가. 역시."

 

혹시나 해서 화면 위쪽을 주시해보지만, 역시나라고 할까, 통화권 이탈이라는 5글자가 무정하게 떠 있을 뿐이었다. 뭐,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해도 스마트폰의 활용도는 생각보다 높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방향을 모를 때 나침반 앱으로 방향을 알 수 있다...생각해보니, 지도가 없으니 말짱 꽝이로군. 이런 젠장. 일단 언제 쓰일지는 모르니 일단 전원은 꺼둘까...

 

"오잉?"

 

카메라 앱을 끄려는 순간, 내 스마트폰의 렌즈가 무언가 이상한 것을 비춰주고 있었다. 그... 스○크래프트의 투명 상태를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화면의 어느 부분만이 이상하게 굴절되어 있었다.

 

"거기 누구야!?"

 

굴절되고 있는 부분을 계속 카메라 렌즈로 주시하며, 외친다. 물론 일본어로. 여긴 어째선지 일본어가 통하는 곳인 모양이니.

 

그리고 갑자기, 굴절되는 부분이 흔들리더니.

 

"오오, 이 광학 미채를 꿰뚫어보다니.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구려, 맹우."

 

"....엥?"

 

그 곳에는, 왠 소녀가 서 있었다.

 

푸른색 작업복에, 푸른색 모자를 쓴 푸른 머리칼을 가진 여러모로 푸르른 소녀였다. 등에 맨 가방은 뭘 그렇게 많이 짱박아 뒀는지  엄청나게 부풀어 있지만, 정작 가방을 메고 있는 당사자에겐 그렇게 무거워 보이진 않는다.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면...뭐, 전체적으로 다 특이하지만, 저 목에 걸린 열쇠가 특이하다. 저게 무슨 장식이여. 힙스터인가. 그렇게 힙합하게 보이진 않는걸. 오히려 가슴이 강조되는 느낌이라 에로하다.

 

힙스터 만세.

 

"그 네모난 상자, 설마 하니 바깥 세계의 물건이냐? 혹시 잠시 보여줄수 있소이까?"

 

"......???"

 

이 가스나 말투가 왜이리 왔다갔다 해.

 

"아아! 소개하는걸 잊었데이. 내 이름은 카와시로 니토리! 이 요괴의 산에 사는 캇파다. 그 꼴을 보아하니, 그쪽은 바깥에서 온 인간인 모양인레후?"

 

"어? 아아, 뭐. 그런 모양인데..."

 

ㄹ...레후? 아니, 그보다 캇파? 그 퍼렇고 손에 갈퀴달린 놈들 말하는건가...?

 

그렇겐 안보이는데...다행히도.

 

"혹시, 그거... 신형 휴대 전화인가?"

 

"그, 그런데."

 

"호오!"

 

와, 나 저렇게 만화처럼 눈을 반짝이는 여자애는 처음 봤어. 엄청나구만, 이 세계는.

 

"맹우! 혹시 그 휴대 전화, 내게 보여주지 않겠어?"

 

"......으음. 글쎄."

 

어쩔까나. 왠지 저 빛나는 눈이나 깡총깡총 거리면서 애교를 부리는 저 꼴을 보니 나도 모르게 넘겨주고 싶긴 한데. 왠지 모르게, 저 복장이라던지 저 눈 속에 숨겨진 광기라던지... 불안해지는걸. 리스크 발생이다.

 

"좋아, 보여주는 대신에 한가지 조건이 있어."

 

"에?!...으음, 좋아! 뭐든 들어주겠다니깐! 뭐 하면 내 몸을 가져도 좋사옵니다!"

 

"...그건 필요 없는데."

 

그나저나, 엄청난 호기심이구만...이 잡○의 유산을 얼마나 보고 싶은거야. 거의 중증 ○플빠자녀.

 

"인간 마을까지 안내해줘. 안내해주고 나면 거기서 보여주도록 하지."

 

"으음. 이거 참, 그건 곤란한데 말이죠..."

 

어라, 아까의 기세는 어디가고 꽤 고민하는 눈치다. 일단 인간 마을이 있다는것 자체는 확실해지긴 했지만, 이 반응은 영 느낌이 좋지 않은걸.

 

"아, 이거 나침반 기능도 있다?"

 

"지옥 끝까지 안내해드리오리다!"

 

어, 제대로 낚였다. 엄청 쉬운 녀석이구만.

 

"그나저나 맹우여, 그대의 이름은 뭐냐?"

 

"...가르쳐주기 전에 묻고 싶은데, 너 말투 엄청나다?"

 

"에? 평범하다고 생각하는레후?"

 

".....아닐껄."

 

적어도 레후라고 말하는 시점에서.

 

"하여간! 맹우여, 너의 이름을 가르쳐줘!"

 

"음...이름이라."

 

딱히 본명이 아니라도 좋으려나. 내 본명, 일본어로는 발음하기 힘드니까 말야. 그럼 뭐...

 

"...우이하루."

 

"오호, 우이하루 공인가. 내 이름은 그냥 니토리라고 불러주길 바라옵니다!"

 

"아, 그려..."

 

<SYSTEM> 카와시로 니토리 (이)가 파티에 추가 되었습니다!

 

...라는 메세지가 머리에 뜬것만같은 착각이 드는 만남이었다.

 

 

 

 

 

 

 

 

 

 

 

 

 

 

 

 

 

 

 

 

 

 

 

"여길세, 우이하루 공."

 

"어어. 으으으...다리가."

 

얼마나 걸었을까. 슬슬 다리가 아파오던 찰나에 니토리가 멈춰서서 내게 도착을 알린다.

 

"역시 인간은 몸이 약하구먼. 그정도 걸은걸로 아파하다니, 운동 부족인거 아닌가?"

 

"냅두쇼. 그나저나, 이 앞이야?"

 

"암. 여기가 인간들이 사는 인간 마을이랍니다! ...하지만, 내가 맹우를 바래다 주는 건 여기까지야."

 

"으잉?"

 

"최근들어 인간들 사이에서 요괴의 평판이 다소 떨어져서 말일세. 눈에 띄었다간 다소 귀찮아지거든."

 

"허어...잘은 모르겠지만."

 

그러고보면 아까전에도 그런 느낌의 이야기를 했었지. 자이로 센서 하나로 무너지긴 했지만.

 

"그러고보면 우이하루 공은 바깥세계에서 흘러 들어왔다고 했지."

 

"아, 응. 아무래도."

 

대충 길을 가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던거 같다.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대는 운이 좋은 편일세. 우리들 캇파는 인간에게 호의적이네만, 다른 요괴들은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니깐?"

 

"흐음, 과연."

 

아마 죽었을지도 모르지...라고 간단하게 생각해버리는 나 자신에 나 스스로가 놀라고 있었다. 정말 아직 현실에 이성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걸까.

 

솔직히 현실감이 없긴 하다. 슬슬 그만두고 싶은 변명이긴 하지만, 아직 이게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부분도 있으니까.

 

"그럼 이 몸은 여기서 실례. 인간, 혹시 돌아가고 싶다면 하쿠레이 레이무라는 이름을 기억하라구."

 

"...하쿠레이, 레이무?"

 

이상한 이름이로구만. 무슨 레이맨같은 이름이야.

 

"아, 그래그래. 돌아가는 길에 이거 들고 가, 니토리."

 

"호오! 그러고보니 그런 약속이었지... 근데, 들고 가라고 했나. 맹우여?"

 

"뭐, 너 딱 봐도 공순이로 보이니까 말야. 연구 같은데에 쓸거 아냐? 그럼 들고 가야지."

 

어짜피 지금 당장 스마트폰이 필요할거 같진 않고 말이지. 뭣보다, 있어봐야 사실 그리 쓸모가 있어보이진 않는다. 배터리도 얼마 없었으니까.

 

"...이 은혜, 일생 잊지 않겠네."

 

"...그려."

 

어째 내 폰을 소중한듯이 껴안고 수줍게 말하는 니토리를 보자하니, 전에 했던 미연시가 떠오른다. 에, 이거 호감도 오른건가? 에에~...뭐, 아무래도 좋나. 은혜를 잊지 않는다니. 나중에 뭐라도 도와주겠지.

 

하여간 니토리가 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뒤, 인간 마을로 발걸음을 옮긴다.

 

"돌아가고 싶으면, 하쿠레이 레이무라는 이름을 기억하라...였나."

 

그다지 돌아갈 마음은 안들지만, 일단 기억해두자.

 

자, 그럼...

 

"...밥이나 먹을까."

 

아까부터 계속 걸어서인지, 배가 엄청나게 고프다. 인간 마을이니, 적어도 음식점 같은건 있겠지......가만, 나 돈 없는데.

 

이런 시부럴, 벌써부터 앞길이 깜깜하구만. 뭐, 이래저래 생각해봤자 여기 서 있어선 죽도 밥도 안된다. 일단 마을로 가보실까.

 

 

 

 

 

 

 

 

 

 

 

 

 

 

 

 

 

 

 

 

 

 

 

 

 

 

 

 

"후오..."

 

마치 일본의 사극에서 보던 느낌의 거리가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사람들은 모두 그런 옷을 입고 있었고, 건물 양식 또한 사극에서 보던 것과 비슷한것이 많이 보인다. 이렇게 두루뭉실하게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는 나 자신의 지식량에 대해 한탄하지 않을 수 없군.

 

그나저나, 이 거리의 모습도 그렇고. 아까전의 니토리의 언어도 그렇고... 여기는 일본인 모양인데... 어째서 일본일까. 뭐, 일단 탈조센을 했다는 사실 자체는 굉장히 기쁜걸. 이런 뭐가 뭔지 감도 안잡히는 방법으로 하게 될줄은 생각도 못했지만.

 

뭐, 최소한 말이 통한다는 것은 이 상황에서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리라. 그래, 이런 포지티브한 마음이 든 지금이야 말로 음식점을 찾아 볼때라고 본다.

 

돈은... 글쎄. 그건 뭐, 나중에 생각하고.

 

"으음-..."

 

주머니에 손을 꽂고 마치 마실 나온 동네 아재마냥 느긋한 발걸음으로 거리를 걸어본다. 적어도 이 근방에 음식점은 없는 모양인데... 그보다, 내 옷차림 때문에라도 어느정도 주목을 받을 줄 알았는데, 그다지 눈에 띄진 않는 모양이다. 시선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네. 주변 사람들이랑 비교했을 때 이 츄리닝은 꽤 눈에 띄는 부류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옷감부터가 전혀 다르자녀.

 

따,딱히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런건 아니라고?

 

...라는 츤데레 스러운 변명을 하고 있자니, 갑자기 무언가에 밀쳐졌다. 앗, 몸의 중심이...! 넘어진다!

 

...하지만, 대한건아를 우습게 보지 마라! 이런 위기, 낙법으로...!

 

-꽈당!

 

"Ouch!"

 

얼굴부터 넘어졌다. 겁나 아프다. 씨부럴, 어떤 놈이여?

 

"괘, 괜찮나?! 미안하네!"

 

"...이게 괜찮아보이는 꼬라지로 보...여...?"

 

최대한 피해자의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더니, 내 옷차림이 딱히 주목을 받지 않는 이유를 온 몸으로 내뿜고 있는 여성이 서 있었다.

 

붉은 눈동자에 푸른 빛을 띄는 은발의 여성. 그녀가 입은 푸른 원피스는 '코스프렌가?' 싶을 정도로 실용성이 없어보였다. 특히 치마 부근의 장식은, 어디 나뭇가지에 걸리기만 해도 찢어질거 같아 보였다.

 

...과연, 내 복장은 아주 평범한거였구나. 납득했다.

 

그보다, 이 여성의 겉모습은 꽤나 매력적이다. 실용성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려한 옷은 아닌, 오히려 수수한 옷이라서 그렇게 화려한 인상은 아니지만, 성숙한 몸과 어른스러운 외모, 그리고 거기에 갭을 만들듯이 하와와와 거리고 있는 저 표정은 뭇 남성들에게 모에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어디 다친데는 없는가?"

 

"어...없는데,요."

 

어째선지 존댓말을 해버렸다... 적어도 연상으로 보이긴 하니, 무방하지 않을까.

 

어느 업계는 겉모습으로만 나이를 판단했다간 뒤통수를 아주 쌔게 후려맞지만, 그건 다른 차원의 이야기고.

 

"...그,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거다만, 혹시 내가 부딪쳐서 신장이 작아진건가?"

 

"실례되는 여자구만."

 

말투가 평상시로 돌아와버릴 정도로 멋진 망언을 들어버렸다.

 

"미,미안하네. 잠깐 급한 일이 있어서 뛰다가 그만..."

 

"...그럼 그 급한 일을 처리하고 오는게 일단 우선 아닌지?"

 

"앗!? 그, 그랬지. 미안하네. 잠시 여기 있어주지 않겠나? 금방 끝날거 같으니."

 

"그려..."

 

대답해주자, 여성은 미안한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순간 귀신같은 표정을 지으며 어딘가로 달려나간다......좀 쫄았다. 저렇게 온화해보이는 얼굴에서 저런 표정이 나온단 말야...? 여자란 역시 잘 모르겠군.

 

잠시 주머니에 손을 꽂고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자니, 아까전의 그 여자가 지친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정말로 얼마 안걸렸네. 한 2분 정도 기다린거 같은데.

 

"많이 기다렸지."

 

"그렇게까진...근데, 부딪친거 정도라면 그다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데."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자, 여성은 그럴 수는 없지, 라고 말하며 고개를 내젓는다.

 

"부딪친 것만이라면 모르겠지만, 나는 자네에게 심한 말을 하지 않았는가. 제대로 된 사과를 하고 싶네."

 

"...그런 말을 해도 뭐..."

 

솔직히 진짜로 1도 신경 안쓰고 있었는데. 작은거야 작은거고. 체구도 가냘퍼서 여자 캐릭터 코스프레(절벽 온리)도 된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메리트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참이라구.

 

...겨우 얼마전에야. 그 전까진 확실히 컴플렉스긴 했다.

 

"...혹시나 해서 묻겠는데, 자넨 바깥 세계에서 온 인간인가?"

 

얘도 내 차림새를 보고 알아챈건가. 흠, 그럴만한 패션이긴 한데.

 

"뭐, 그렇다는 모양인데. 정신 차려보니 여기였다구."

 

"으음, 그렇군. 아아, 그래. 내 소개를 하는걸 잊었군. 나는 카미시라자와 케이네. 다소 부족한 실력이네만 이 마을에서 '선생'을 하고 있다. 자네는?"

 

"우이하루. 뭐, 어짜피 본명은 아니니 적당히 불러줘도 돼."

 

그냥 내가 처음으로 한 여캐 코스프레의 성을 따온 것 뿐이니까.

 

"흐음, 우이하루인가...흠, 그렇군. 여기서 서서 이야기 하는것도 뭐하니, 밥이나 먹으며 이야기 하지 않겠나? 혹시 괜찮다면, 누추하지만 내 집에서 대접하도록 하지."

 

"콜."

 

마침 배도 고팠는데 잘 됐지, 뭐. 게다가 상대가 이 인간 마을에서 '선생'을 할 정도라고 한다면 정보를 얻기엔 가장 최적의 상대일 것이다.

 

"...콜? 그건 바깥 세계에서 쓰는 말인가?"

 

"그런 셈이지. 승낙을 뜻하는 말이야. 도박쪽 용어에서 유래했다고 알고 있는데."

 

"호오. 과연... 아, 일단 따라오게. 이쪽이네."

 

 

 

 

 

 

 

 

 

 

 

 

 

 

 

 

 

 

 

 

 

 

 

 

 

 

"잘 먹었습니다."

 

"별 말씀을. 그나저나 꽤나 배가 고팠던 모양이군. 그렇게 잘 먹다니, 이쪽이 기쁠 정도야."

 

"잘 먹어야 키가 크거든."

 

성장기는 지났다고 생각하지만.

 

"...희망을 가지는건 좋은 일이지."

 

야 이 개년아. 쐐기 박지마.

 

"...아, 설겆이 도와줄까?"

 

"아닐세, 앉아 있게. 손님 손에 물을 묻히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별것 없는 집이긴 하지만, 설겆이 하는 동안에 둘러보고 있게나. 바깥 세계에서 왔다면 신기한 것도 있겠지."

 

"흐음, 뭐 그쪽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호의는 받아들이는 것이 예의이니, 고맙게 받아들이도록 하자.

 

그...그럼, 저 선생님은 무슨색 팬티를 좋아하나 확인을 해볼...리가 있나. 난 변태가 아니라고. 케이네는 바깥 세상에서 왔으니 신기한것도 있겠지, 라고 말을 했지만... 이 이전에 문제로 국적부터 다르니 그냥 모든것이 신기하다. 이 다다민가 다다다인가 하는 바닥재도 그렇고. Japanese animu에서 나오는 옛날 일본집의 표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공간인지라, 마치 수학여행을 온 기분이 들어 조금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귀찮아."

 

그렇지만 어짜피 원래 세계로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언젠간 뭐 자세히 볼 날도 오겠지. 지금은 밥도 먹었으니 그냥 가만히 앉아 있을까.

 

...나, 생각보다 적당한 성격인지도 모르겠는걸.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잠시 멍하니 앉아 있자니, 케이네가 돌아왔다.

 

"뭘, 별로 기다리지도 않았어."

 

"후후, 그런가. 그럼...이야기를 좀 해볼까. 우선 묻고 싶은게 있다면 먼저 말해보게."

 

"어디서부터 물어볼까나...우선 여긴 일본이지?"

 

"그건 당연한거지. 지금 자네도 일본어로 대화하고 있잖나."

 

"그런 셈이긴 한데. 나 일본 사람 아니거든. 옆 나라 반도 사람이여."

 

"반도라고 한다면...조선인가?"

 

"지금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지만 말야."

 

조선이라는 단어가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내가 과거로 날아온 것일까, 아니면 이 세계가 바깥이랑 단절된지 오래된 것일까...

 

뭐, 어느쪽이든 아무래도 좋지만.

 

"그렇군. 그렇다면 그 이름은 단순히 가명인건가?"

 

"그런 셈이지. 일본어로 발음하기엔 좀 어색한 이름이라서 말야."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계속 우이하루로 부르도록 하지. 더 물어볼건?"

 

"여긴 어디야? 내가 '바깥'에서 왔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여긴 내가 살던 세계에서 파생된 다른 세계인거야?"

 

내가 질문하자, 케이네는 놀란듯이 눈을 크게 뜬다.

 

"......진심으로 놀랐어. 거기까지 날카롭게 질문할 줄은."

 

"덕후를 우습게 보지 말라구."

 

너무나도 많은 설정을 읽어버려서 슬슬 왠만한 단서는 놓치지 않는 수준까지 들어섰다. 물론 이런쪽 설정 한정이지만.

 

"...덕후는 또 뭔가?"

 

"별거 아니니까 신경쓰지 마. 하여간 그 반응을 보니 정답인 모양이군."

 

"그래. 이곳은 바깥세계와 단절된... 온갖 환상이 모이는 땅, 환상향이라고 하는 곳이다."

 

"환상향..."

 

들어본적 없는 이름인걸. 하긴, 들어봤다면 더 이상한가. 단절 되었다고 하는건, 이 곳의 정보 또한 완전히 사라진 상태라는 뜻일테니까.

 

"이곳엔 자네같은 인간 뿐만 아니라, 요정,요괴, 심지어 신까지 함께 살아가는 곳일세. 나도 겉으론 인간처럼 보이네만, 실은 인간이 아니라네."

 

"...그렇게는 안보이는데."

 

"뭐, 반인반수이니 말일세. 그렇게까지 눈에 띄진 않네만. 덧붙여서 말하자면 내 정체는 웨어백택이라네."

 

"백택이라...그 중국쪽 신화에 나오는 환수 말하는거지? 왕에게 조언을 하는 현명한 요괴라고 했던가."

 

"호오, 알고 있는겐가."

 

"지식은 얕고 넓게, 가 내 폴리시라서 말이지."

 

참고로 백택은 한국쪽에도 등장한다. 애시당초 이래저래 중국 따라하기 좋아했던 나라니까 말이지, 조선시대는... 뭐, 형제국가(웃음)이라고도 할 정도 였으니. 물론 일본쪽에도 백택에 대한 이야기는 남아 있다.

 

이래저래,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이 공유하고 있는 요괴가 상당수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구미호가 있다. 구미호라, 우리나라에선 꽤나 친숙한 요괴인데 말이지. 전○의 고향에서 처음으로 구미호를 봤을땐 솔직히 좀 쫄았다만...그 뒤엔 또 구미호를 소재로한 드라마도 나왔었지. 하여간 이정도로 메이져 했다는 이야기, 그냥 그것뿐이다.

 

"그렇다는건, 이 환상향이라는 곳에는 너같은 반인반수나 요괴들이 잔뜩 있다는거야?"

 

"그런 셈이지. 오히려 이 곳은 인간이 요괴보다 그 수가 적다네. 그래서 이렇게 무리지어 살고 있지."

 

"......흠."

 

요과와 인간이 같이 사는 세계라. 거기에 인간은 수가 적어 무리를 지어 살고 있다...라.

 

과연, 케이네같은 인간에게 호의적인 녀석들도 있는 반면에, 그 설화대로 인간을 먹거나 해를 가하는 요괴들도 잔뜩 살고 있다는 소린가. 그러니까 모여 산다는거겠지.

 

"흠. 오케이. 이해했어. 고마워, 케이네."

 

"...음? 그걸로 끝인가? 더 물을건 없는겐가?"

 

"우선 이 세계에 대해선 그다지 더 물을 필요는 없어보이네. 요지는 그거잖아? 인간 이외에도 생각을 하고 말을 하는 지적생명체들이 더 있다는 정도. 이 이상의 정보는 필요없어 보여서 말야."

 

"...특이하군, 자네는."

 

"그냥 평범한 또라이일 뿐이야. 신경 쓰지마. 그보다, 혹시 묵으면서 일할 곳 아는데 없어? 가지고 있는 화폐가 한국 돈 밖에 없어서, 여기선 써먹질 못할거 같거든."

 

"...흐음. 바깥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는건가?"

 

"아직은. 아마 적당히 질리면 돌아가지 않을까?"

 

이왕 이세계로 넘어왔겠다, 일단 살아보지 않으면 손해니까. 혹시 또 모르잖아? 내 안에 있던 뭔가 이형의 힘이 각성하거나 뭐, 적당히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있을리 없는 이야기지만.

 

"그렇군...자네 뜻이 그렇다면, 우선 일자리만이라도 내가 알아보도록 하지. 독립할때까지 여기서 먹고 자고 해도 상관 없다네."

 

"어라, 그래도 되는거야? 남자랑 단 둘이라구?"

 

"자네가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할 남자로 보이진 않는데?"

 

"...그러셔."

 

뭐, 그렇게 평가해준다면 감사히 묵도록 하자. 방만 따로 쓴다면 그다지 문제될 일도 없다.

 

...아마도?

 

"아, 슬슬 시간이로군. 나는 오후 수업이 있어서 슬슬 나가봐야하네만, 우이하루. 그대는 어떻게 할거지?"

 

"흠. 일단 한숨 자고 생각해볼께."

 

"그래? 그럼 수업 끝나고 돌아오면 마을을 안내해주도록 하지. 그때 깨워도 상관 없나?"

 

"그래주면야 고맙지."

 

정보는 중요하니까. 그나저나 꽤나 착하구만, 케이네. 저렇게 상냥하고 예쁘고 스타일도 괜찮은데, 남자친구 없으려나. 있던 없던 아무래도 좋긴 하다만.

 

"후훗, 그럼 다녀오겠네...아참, 그렇지. 우이하루, 그대처럼 바깥에서 흘러온 사람을 보고, '환상들이' 했다고들 한다네.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네만."

 

그럼 편히 쉬게, 라고 말을 남긴 케이네는 집을 나선다.

 

흐음. 정말 아무래도 좋은 정보지만, 어감 자체는 마음에 드는걸.

 

이것이 나의 환상들이,같은 이름의 자서전 같은걸 내도 좋겠다.

 

...안낼거지만. 귀찮으니까.

 

일단 한숨 잘까.

 

이 뒤에 어떻게 할지는...뭐, 자고 일어난 내가 알아서 생각해주겠지.

 

벌러덩 누워 눈을 감고, 식곤증에 몸을 맡기고 의식을 잠의 흐름에 맡긴다.

 

그리고 잠이 들기 직전에 생각난 것은...

 

 

'여교사와 단둘이 합숙'

 

 

언젠가 본 av제목이었다.

우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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