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나의 환상들이 - 007

lunawhisle | 조회 수 89 | 2016.11.03. 01:45

"케이네, 뭐 도와줄거 있어?"


"음? 아아, 괜찮네. 간만에 돌아온거니, 편하게 있게나."


인간 마을 외곽, 케이네의 집.


요새 너무 이런저런 일이 많이 일어나 지쳐있던 참에, 이를 눈치까준 마스터가 잠시간 나를 '내쫒는' 식으로 내게 휴가를 주었다.

 

플랑의 생일파티 이후로, 얘가 나를 찾아오는 빈도가 더 늘어버린게 그 이유중 하나. 뭐, 플랑도르같이 귀여운 애가 어프로치 해오는건 나로써도 기쁘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진지하게 죽을거 같다.


그런 이유로, 묘하게 본가에 돌아온 기분을 만끽하며 돌아온 케이네의 집. 간만에, 그것도 갑자기 찾아왔지만 그녀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으으...케이네 마망...


"그래도 가만 있으려니 심심한걸."


"정말, 너란 녀석은... 그렇군. 그럼 빨래라도 걷어서 개어주겠나? 슬슬 말랐을거라 생각한다만."


"예-이."


케이네의 말에 따라, 마당으로 나서 빨랫감을 향해 다가간다. 으음, 케이네의 속옷도 보이지만 나는 신사니까 이정도는 그냥 그러려니 하자. 평소엔 빨래 할때 자기 속옷이 있으면 나한테 맡기지 않았었는데, 까먹은거려나?


그나저나, 살짝 덜 말랐네... 내가 입는거라면 그냥 이정도로도 거둬서 갤테지만, 케이네가 입는거란 말이지. 그렇다고 기다리는것도 뭐하니.


"그/아/아/앗!"
"그/아/아/앗~"


크레타의 아이를 낳을것만 같은 기합과 함께, 손바닥에서 열풍을 만들어내 빨래를 말린다. 창조신의 힘을 빨래 말리는데나 쓰다니, 신키가 봤다면 노발대발 할거 같은걸.


...후우, 그나저나. 간만에 이렇게 마음이 평안해지다니. 역시 케이네네 집은 좋다. 손발이 날아갈 위험도 없고, 집주인도 제멋대로가 아니라. 아무데도 갈곳이 없었던 내가 처음으로 살게 된 이곳. 케이네 본인한텐 약간 폐가 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환상향에서의 '돌아갈 집' 이라고 한다면, 역시 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근데, 넌 왜 옆에서 날 따라하고 있냐?"


옆을 돌아보며, 나와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소녀...


"코이시."


사토리 요괴, 코메이지 코이시를 보며 말한다.


"헤헤, 우이가 이상한 기합을 넣길래 나도 모르게."


"그렇게나 이상해?"


"응. 왠지 크레타의 아이를 낳을것만 같았어."


"...워째서 그 네타를 아는겨."


애들이 볼만한 내용이나 장면은 아닌데... 애시당초, 그 만화책 환상들이까지 한거야?


...나중에 마스터네 도서관이나 한번 털어볼까.


"그건 그렇구, 여기서 뭐해?"


"그건 제가 묻고 싶은데여, 코이시 양. 지저에 있어야 했던거 아냐?"


내가 묻자, 코이시는 헤실헤실 웃으며


"내 맘이지."


라는 쿨한 대답을 날린다. 너무 쿨해서 조금 동경해버릴것 같다.


"...나는 보다시피 빨래 말리는 중이었지. 이 집, 내 집이 아니라서 말야. 묵는 대신에 집안일이라도 돕는거지."


정작 집주인은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으음, 동거할때는 이런거 해도 신경 안썼었는데... 이젠 손님이라 그런걸까. 살짝 쓸쓸한걸.


"그래? 흐응..."


"그래서? 여긴 무슨 일이야. 사토리한테 듣기론,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는걸 좋아한다던데. 오늘도 그 연장선상?"


"으으응, 오늘은 우이한테 볼일이 있어서. 아까전에 홍마관에 갔는데 플랑짱이 여기로 갔다고 알려줬어."


...아하. 그래서 '여기서 뭐해' 인가.


하여간, 슬슬 빨래도 말랐을터. 거둬서 들고 들어가볼까.


"...잠깐 스톱. 왜 네가 빨래를 걷는건데?"


"응? 우이한테 빚을 만들어서 내 마음대로 부려먹으려고 하는 작전인데?"


"고작 빨래 옮기는거 돕는 댓가치곤 꽤나 빡센걸 그거."


벡터조작으로 코이시의 품에서 빨랫감을 뺏어 허공에 띄우고, 그대로 방안으로 직행시킨다. 어디 사는 백터조작 로리콘이 이걸 봤으면 대체 뭐라고 할려나. 쿠케케케코코쿠코케코코 라고 하려나?


"아앗-! 내 빨래가-!"


"니 빨래 아니거든."


케이네껍니다.


"우으, 다른 사람이래도 역시 우이는 우이야. 심술궂어."


"...네가 말도 안되는 조건을 내걸었다는 생각은 안드니?"


듣자하니 코이시가 말하는 '우이'라는 인물은 그녀와 연인사이였다는 모양인데... 고생했겠구나 싶다.


"오오, 우이하루. 빨래를 걷어준건가. 고맙네."


"에헤헤..."


"...워째서 네가 쑥쓰러워 하는거냐, 코이시."


신노스케보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애로구만.


그나저나, 저 앞치마로 손을 닦으며 주방에서 나오는 케이네의 모습... 정말로 마망 그 자체로군. 그렇다. 카미시라사와 케이네는 내 어머니가 되어줄지도 모르는 여성인 것이다.


"식사 준비가 끝났으니, 먼저 들어가서 들고 있게나. 나는 이 빨래를..."


"에잇."


벡터 조종으로 빨래를 갠다. 이렇게만 말하면 정말 벡터 조종이 만능인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저 문장의 뒷면엔 엄청난 량의 계산과 에너지 소비가 포함되어 있는것이다. 물론, 그 일련의 계산과정은 마계신의 상징이 알아서 해주지만.


...마계를 창조하는데 사용된 힘이, 빨래 개는데 쓰이다니 세상살이 참 모를 일이라니까.


"호오... 홍마관에선 이런것도 가르쳐 준건가? 대단한걸. 시집 가도 되겠어."


"...신부수업 간게 아닌데 말이지."


사실 개는 과정 자체는 사쿠야한테서 제대로 배웠다. 으음, 집안일에 있어선 군대 선임보다 더 까다로웠다니까.


그러고보니 내가 홍마관에서 배운건...보자, 마스터한테서 마법 배웠지, 사쿠야한테서 가사전반이랑 홍차 따르는법 등등 배웠지, 플랑한테서 살아남는법 배웠지, 메이린한테서 무술 배웠지... 생각보다 이것저것 하고 왔군. 아니, '왔다'고 말하는건 어폐가 있나. 아직 거기서 사는 중이니.


응? 레밀리아한테선 뭔가 배운거 없냐고? 


없어(단언).


"그리고 시집이라니. 적어도 장가라고 해주지 않을래?"


"아, 그렇군. 남자...였었지, 우이하루는. 이거 실례했네."


"그래그래, 그렇게 인정해주지 않으면 나도 혼란이 온단 말야."


슬슬 저도 성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시작한지라. 최대한 거울을 안보려고 노력중입니다.


"...근데, 코이시. 어째서 멋대로 혼자 먹기 시작한거냐?"


"마시쪙!"


입에 뭐 넣고 말하는거 아니에요.


"후후, 맛잇게 먹어준다니 조금 기쁜걸. 자, 우리도 먹자."


"음."


...아니, 그보다.


"뭘 그렇게 당연하다는듯이 같이 앉는거야, 케이네. 쟤랑 아는 사이?"


"음? 이 소녀는 네 지인이 아닌건가?"


"지인이긴 지인인데, 딱히 데려온건 아니거든."


"그런가?...뭐어, 좋지 않은가. 이렇게나 맛있게 먹어주는걸. 만든 보람이 있으니 됐다고 치겠네."


"집주인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그나저나, 저 자애로운 표정은 정말 어떻게 안되려나. 나도 모르게 케이네네 호적에 이름을 넣어버릴 뻔 했잖아. 물론 아들로.


"음? 이 된장국, 예전에 먹던 맛보다 약간 짜네.."


"앗, 네가 약간 짠맛을 좋아하는것 같아서 조금 간을 진하게 해봤다만. 너무 짠가?"


"아니, 딱 좋아. 용케 내가 짠걸 좋아했던걸 기억하고 있었네."


"후후, 별거 아닐세. 하지만 너무 짜게 먹고 다니는건 건강에 안좋다네. 오늘만 특별히, 니까."


"마...마망..."


...오늘부터 카미시라사와 우이하루라고 불러다오.

 

 

 

 

 

 

 

 

 

 

 

 

 

 

 

 

 

 

 

 

 

 

 

 

 

 

 

 

 

 


식사도 일단락, 설거지도 끝. 남은건 느긋하게 낮잠만 자는것 뿐.


"아, 우이하루. 미안하지만 집을 잠시 봐줄 수 있겠나?"

 

낮잠만 자려고 했던 내 위대한 플랜은 어디로.


"응? 상관은 없는데, 어디 가?"


"서당에 다니던 아이 중 한명이 지난번에 아파서 결석을... 그래서..."


"아하, 병문안인가. 잘 다녀와."


"손님한테 집 보기라니, 조금 그렇긴 하네만..."


"다녀와~"


"...그럼, 잠시 다녀오겠네."


내 말투에서 묻어나오는 '그런 사양 필요 없음' 이라는 메세지가 전해졌는지, 쓰게 웃으며 집을 나서는 케이네.


"...자. 그럼 자볼까."


하늘도 이렇게 맑다. 기분 좋게 일광욕이나 하면서 낮잠자기엔 정말 안성맞춤인 날이로군. 홍마관은 아무래도 전체적으로 어두침침하니까, 이렇게 햇빛을 보며 낮잠을 잘 기회가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은것이다.


집 보기? 이미 여기저기에 메두사의 눈을 깔아놨다. 도둑이 걸려들면 굳은채로 오줌을 지릴때까지 방치해둘 생각이다.


"앗, 우이. 잘거야?"


"오우. 너도 잘래?"


"헤헤, 미안하지만 내 잠자리 상대는 우이 뿐이라. 사양해둘께."


"......"


코이시가 처음에 말한 우이와 두번째 말한 '우이'가 다른 인물인건 알고 있긴 하지만, 정작 듣고 보니 묘한 기분이군. 적어도 악센트 정도는 다르게 해달라고.


그리고 이쪽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단 말이다. 사람을 갑자기 쓰레기로 만들다니...


어디, 내 목침이... 여기 있군. 케이네 녀석, 내가 쓰던 물건은 그대로 놔둬놓다니. 게다가 먼지가 쌓인 흔적이 없는걸 보아, 방치한 것도 아니다. 일부러 여기 놔둔거겠지. 


...진지하게 아들로 입적하는걸 고려해야할까.


"아, 맞다. 우이. 요새 새로운 소식 없어?"


"새로운 소식? 내 성이 카미시라사와가 될지도 모른다는 거 정도?"


"...우이, 결혼도 안 한 여자한테 엄마가 되달라고 하는 부탁은 솔직히 나라도 좀 깰거 같은데."


"......"


생각보다 정상적인 대답이 돌아와버렸다.


"그거 말곤?"


"글쎄. 뭐가 알고 싶은데?"


"음~ 예를 들어, 이 세계의 위기 같은거?"


"...허?"


뜬 구름 잡는듯한 질문. 하지만 코이시의 눈은 마치 모든걸 꿰뚫어보는 듯이 투명했고, 내가 그 질문의 답을 알고 있다는걸 확신하고 있는것처럼 보였다.


...잠깐만, 생각해보니 유카리가 나한테 말했던 그 정보, 굳이 비밀로 안해도 상관 없는거 아냐? 수비의무가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애시당초, 그녀에게선 전부터 '무언가를 알고 있는듯한'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정보 제공정도는 해줘도 되겠지.


"그럼 이거라도 좀 보고 있을래? 유카리가 이것저것 데이터를 넣었다는 모양인데."


아공간에서 잡스의 유산을 꺼내 코이시에게 넘겨준다.


"아공간...?"


"음? 왜 그래?"


"아, 아냐. 헤~ 이거 '휴대폰' 이라는거지? 우이도 가지고 있었어."


"조작법은 알아? 그냥 만지면 되긴 하는데."


"괜찮아~"


확실히, 저 손가락이 벌써부터 사진 폴더에서 무언가를 찾듯이 바쁘게 움직이는걸 보아 조작은 별 문제 없어보인다.


...근데, 워째서 사진 폴더. 별거 없는데.


"잘까."


이런 몸이 되고 나서, 육체적인 피로를 느끼는 일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자는건 중요하다. 정신적인 피로는 아무래도 자는것 이외엔 풀 방법이 거의 없는거 같더라고. 그리고 뭣보다, 이렇게 좋은 날에 안자는건 이 날씨를 만든 모든 요소에 대한 실례다. 음, 그런거다.


"퀘스트...홍마이변...춘설이변...?"


"아, 그거. 네가 원하던 정보 아냐? 아무래도 뭐, 다른 세계에서 거기 관련된 일이 벌어지고 있네 어쩌네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른 세계... 자세한 이야기는?"


"몰러-"


"......"
어이없어하는 시선이 느껴지지만 무시. 원래 잔다고 결정했을땐 전력으로 자야하는 것이다. 그것이 전쟁터이든, 수강실이든, 수능 시험장이든.


...안좋은 추억이 떠올라버렸다. 구웨에에엑.


"...이거, 상황이 생각보다 안좋을지도..."


거기에 뭔가 불길한 플래그를 세우고 있는 여자애도 옆에 앉아있고. 낮잠자기 좋은 때인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허나, 잔다. 나 우이하루는, 잠자기 가장 안좋은 타이밍에 굳이 잠드는걸 좋아하기 때문이지.

 

 

 

 

 

 

 

 

 

 

 

 

 

 

 

 

 

 

 

 

 

 

 

 

 

 

 

삑. 취침시간 3시간, 기상합니다.


"힘세고 좋은 아침! 내 이름을 묻는다면 난 우이하루!"


왈도체를 외치며 기상창. 해가 살짝 저물어가고 있는것이 보인다. 코이시는...어디 갔는지 없다. 겍, 잡스의 유산까지 들고 가버린거 같은데. 말은 하고 들고가지.


"음?"


팔랑, 하고 가슴팍에서 흘러내리는 종이쪼가리. 펼쳐보니 생각보다 유려한 글씨체로 '이거 잠시 빌릴께~ -코이시-' 라고 적혀 있었다.


...말은 하고 들고 갔군. 할 말이 없네.


그나저나, 케이네는...아직 안온 모양이다. 집이 조용한걸 보니. 근데, 조용하다고 하니까 눈치챈건데. 너무 조용하지 않아? 벌레소리나 새소리 하나 안들린다구. 자연환경이 윤택한 이곳 환상향에서, 이렇게 고요한건 눈 오는 겨울 정도 밖에 없다.


"......이상하네."


만약을 대비해서 아공간 속에 여분의 은 나이프를 만들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때, 묘한 한기와 기분나쁜 기운을 느낀다. 뭐라고 형용해야 좋을까. 그래, 마치 '구글에서 검색해선 안되는 리스트'에 올라온 검색어를 검색한 느낌이다. 이 느낌, 어디선가 느껴본적 있는데... 아니, 구글 검색할때 말고. 환상향 안에서.


...아, 그래. 맞다. 환상향에 온 직후야. 그 뱅글뱅글 도는 누나가 있었던. 아마, 그 시꺼먼 덩어리들한테서 느껴졌었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야."


그래, 그거랑은 다르다. 그때 느낀 '기분 나쁨'과는 차원이 다른 무언가가 있다. 그때와는 다르게, 뭐라고 할까...에에이, 그냥 좆같다고 하자. 그때보다 더 좆같다. 이걸로 설명 끝.


그리고...케이네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게 마음에 걸린다. 병문안이라고 해도, 여기서 마을까지의 거리는 기껏해봐야 10~20분. 이를 감안해도 너무 늦다.


...찾으러 가볼까. 최악의 경우, 무언가랑 싸워야 할 지도 모르겠군.


벡터 조작으로 뒷정리를 빠르게 끝내고 집을 나선다. 마을의 방향은...저...쪽...?


"...시벌 뭐야."


일단 먼저 말해둘 것이 있다. 케이네의 집에서 홍마관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인간 마을을 들려야 할 필요가 있다. 즉, 인간 마을을 중심으로 홍마관과 케이네의 집이 정반대 위치에 있다고 보면 되는것이다.


즉...저 '붉은 안개'는 홍마관에서부터 이쪽으로 오고 있음이 틀림 없다, 라는 이야기다.


평소의 나였다면 '우효- 붉은 안개 쩌러!' 하면서 사진이나 찍고 있을테지만, 지금의 이 분위기. 사라진 코이시, 사라진 휴대폰... 사진이나 찍고 있을 때가 아님을 직감했다.


...애시당초, 폰이 없어서 찍지도 못한다.


"슈-퍼- 저어어어엄프!"


도움닫기 원,투! 점프!


엄청난 역풍을 몸으로 받아들이며, 내 몸은 인간 마을을 향해 마치 총알처럼 발사 되었다. 예상 착탄지점은 인간 마을 중앙광장.
그나저나, 엄청난 스케일인걸. 저 안개. 공중에서 보니까 문득 성경에서 나온 그 메뚜기떼가 생각난다... 아마, 하는짓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뭐가 어찌됐던간에, 분명히 저 안개는 우리집 주인 레밀리아 스칼렛이 뿜어내고 있는걸테니까. 그리고 그런거보다, 저 안개... 진행 경로를 봤을때, 1분만 있어도 인간 마을 전역을 삼켜버릴거 같다.


그래.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가, 왜 이런짓을 하는가 라는 의문은 지금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어떻게 피해를 최소화 할것인가' 라는 의문을 던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사실 답은, 이미 예전부터 머리속에서 도출되어 있었다.


"방벽, 활성화!"


내 몸이 인간마을 상공에 진입한 순간 외치자, 푸르른 에너지 필드가 생성되어 돔 형태로 인간 마을을 감싼다. 그리고, 시야 구석에 에너지 필드의 내구도가 표시된다.


그때 지저에서 이미테이션 능력이 활성화 되었을때, 어째선지 잡스의 유산의 인터페이스를 본체 없이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단 말이지. 그 덕분에, 디지털화 할 수 있는 왠만한 데이터는 이렇게 가시화가 가능해졌다.


"읏-차!"


역풍을 일으켜 가볍게 착지. 저 붉은 안개를 다들 눈치챘기 때문일까, 다들 중앙 광장에 모여 있었다. 묘하게 질서정연한건, 얘네들이 일본인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저 머리에 꽃단 여자애 덕분일까. 분명, 이름은 히에다노 아큐였을터.


"우이하루!"


"오, 케이네. 별일 없어보이네."


잠깐 방벽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자니, 케이네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갑자기 붉은 안개가 여길 향해 오질 않나, 이상한 막 같은게 마을을 감싸질 않나..."


"나한테 묻지 말라고. 후자는 내가 한 일이긴 하지만, 전자의 이유에 대해선 나도 전혀 몰라."


그리고 역시나라고 할까, 방벽의 내구도는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역시 저 붉은 안개엔, 아무래도 에너지를 먹어치우는 능력이 있는 모양. 그렇지 않고서야 이 감소율을 설명할 길이 없다. 쯧, 나름 성의를 담아서 만든 방어체계인데. 이 속도면 잘 버텨봐야 3시간이 고작인가. 이론상으론 1년은 버틸 수 있게 만들어 놨거늘.


"저 막을, 네가? 결계 같은건가?"


"비슷하다고 봐도 되지. 케이네, 마을을 부탁해."


"그거야 당연한 말이지만... 우이하루, 너는?"


"할 게 좀 있거든. 레밀리아 녀석 엉덩이를 좀 때리러 갈려고."


물론 내게 그런 성적인 취미가 없다는 사실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역시 갈건가, 홍마관으로."


"응. 아, 저 붉은 안개, 절대로 사람들한테 가까이 가게 하지 마. 레이무, 마리사 같은 튼튼한 녀석이나 요괴라면 어느정도 저항하겠지만, 인간이라면 닿는거 만으로도 위험할거야."


"알겠네. 여기는 맡겨두게. 그럼."


의연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어디론가 달려나가는 케이네. 아마, 아직 중앙 광장에 모이지 않은, 혹은 모이지 못한 인간들을 찾으러 간 거겠지. 자, 그렇다면 나는.


"오라버니."


"유카리냐."


혼란속에서도 유유자적하게 홍마관을 향해 걷고 있자니, 어느샌가 야쿠모 유카리가 나와 함께 나란히 걷고 있었다.


"상황이 바뀐 모양이네, 유카리."


"아무래도 상대는 이쪽을 적극적으로 노리기 시작한 모양이에요. 원래라면, 디코이로 만든 가상 차원에 끌어들인 뒤에 처리하려고 했지만..."


"아하. 그게 그 환각의 정체였냐."


과연. 내가 직감적으로 이해했던 부분의 뒷설정이 저거였단 말이군.


"하지만, 어째서 우리들이 있는 차원을 알았을까요? 정보 누수는 절대적으로 없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그걸 나한테 물어봐도 말이지."


애시당초 나보다 머리가 수백배는 좋은 녀석이 모른다고 한다면, 내가 알 턱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지금부터 난 홍마관으로 갈건데, 지금 레밀리아는 어느쪽이야?"


"어느쪽, 이라고 말씀하심은?"


"그러니까. 가짜인지, 아니면 뭔가에 씌었는지. 아니면 진짜 본심이 나온건지."


그래. 중요한건 이거다. 유카리의 대답에 따라, 내 행동양식은 정해진다. 무언가에 씌었다면 어떻게든 그 씌인것을 떨쳐내게 하면 될것이고, 저게 진짜 본심이라면 궁디팡팡이 아이언메이든 행으로 바뀔 뿐이다. 물론, 가짜라면 전력을 다해서 소멸 시킬거고.


"정답은 아마 2번일거야, 우이."


하지만, 그 대답은 유카리가 아닌 다른 소녀에게서 나왔다.


눈 앞에, 옅은 에메랄드 색을 띈 은발의 소녀가 서 있다. 그녀의 눈빛은 평소와는 다르게 날카로웠고, 그녀의 몸과 연결되어 있는 제 3의 눈은 여느때보다 크게 뜨여져 있었다.


그렇다, 그녀는 코메이지 코이시.


...내 폰을 쪽지 하나 덜렁 남겨놓고 들고간 여자다.


"야, 폰 돌려줘."


"...분위기는 좀 읽어줬으면 하는데 말야. 우이."


한숨을 푹 쉬면서도, 코이시는 주머니에서 잡스의 유산을 꺼내 내게 돌려준다. 문득 옆을 돌아보니, 우리 여동생이 여느때보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코이시를 바라보고 있다. 오, 뭐야. 혹시 이거, 백합 전개의 기운? 나 그런거 좋아하는데.


"...변성한건가, 코메이지 코이시."


"아, 야쿠모 유카리. 오래간만~ 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처음 뵙겠습니다?"


"당신이 내 무리수의 원인이었구나. 과연, 무의식을 조종하는 당신의 능력이라면 정보 누수가 일어나더라도 눈치채지 못 했을만 해."


"갑자기 다짜고짜 남탓을 하다니, 곤란한걸~... 뭐, 맞는 말이지만. 거기에 대해선."


뭔진 모르지만, 일단 내가 생각하는 그 전개는 아무래도 안 일어 날거 같다. 시무룩해지는걸.


"정보를 넘기세요, 코메이지 코이시. 당신도 이 환상향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터."


"허나 거절한다."


"뭣...!?"


"나 코메이지 코이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상대가 대의를 내세우며 무언가를 요구할때 NO! 라고 답해주는것이기 때문이지."


...묘하게 바깥세계 레퍼런스를 잘 안단 말이지. 저 여자.


"그리고 내가 말 안해도 눈치는 챘을거 아냐? 똑똑한 대현자님이시라면."


"...뭐, 그거야."


저 표정을 보아 생각하고 있었던 최악의 예상이 확신으로 변한 모양이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가봐. 야쿠모 유카리. 그걸 알아챘다면, 할 일이 많을텐데?"


코이시의 말에 살짝 아랫입술을 깨무는 유카리. 으음, 뭔진 모르겠지만 약간 분해보이는군.


"...오라버니."


"뭐."


설마 나한테 화풀이 하려는건 아니지?


"일, 열심히 하세요."


...아니네.


"그랴. 열심히 구르고 오마."


고개를 끄덕이더니, 틈새속으로 사라지는 유카리.


"...아무것도 안 묻는거야? 우이?"


"시꺼. 너희들의 그 말도 안되는 Mambo-Jumbo에는 질렸다고. 그런 뒷설정 몰라도 별 상관 없잖아."


"음~...그것도 그렇네. 물론, 아직까지는...이지만. 아, 그래도 필요한 정보는 가면서 이야기 할거니까."


"그거 고맙구만."


왠지 즐거워보이는 코이시는 일단 따라오게 냅두고... 이야기의 맥락으로 봤을때, 옆에서 '흐흐흥~흐흐흥~후레데리카~'하며 프랑스 외노자 아이돌의 캐치프레이즈(?)를 흥얼거리고 있는 이 소녀, 코메이지 코이시는 아무래도 내가 생각했던것 보다 지금 이 현상에 깊게 관여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유카리가 너무 선뜻 물러난 것도 신경쓰인다. 사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의미려나.


"근데 우이, 저 결계? 같은건 괜찮은거야? 동력은 마력이나 주력(呪力) 같은게 아닌거 같은데."


"단순한 에너지 방어막. 동력원 자체는 마력이지만, 펼쳐진건 순수한 에너지 그 자체야. 이름은...라인하르트 정도면 되겠지."


"에너지 방어막... 아, 그러고보니 그 여장하던 우이 친구가 그 에너지 어쩌고 같은 느낌의 무기도 들고 있었어. 분명... 플..리?줌마? 커터였나?"


"...플라즈마 커터 아냐?"


"아, 그거!"


...그 우이라는 놈, 교우관계가 상당히 판타지한걸. 여장한 아이작 클라크를 친구로 두고 있기라도 한건가?


"헤, 어떻게 안거야? 우이네 세계에도 그런게 있었어?"


"음...뭐. 그런 셈이지."


어디까지나 게임의 세계 안에서지만. 그러고보니 그거 4편은 언제 나오는거야? 거대 타코야키들이 지구를 침공한거까진 봤는데.
...아, 맞다. 나온다쳐도 이제와서 그걸 알 방도가 없겠구나. 급격하게 우울해지는걸.


"하여간, 얼마나 버텨? 저 방어막."


"3시간."


"...3시간이라, 조금 빡빡하겠는걸."


"빡빡해?"


조금 의아해진다. 인간 마을에서 홍마관까지는, 기어가도 30분이면 도착한다. 내가 속도를 내면, 1분 안에도 도착 할 수 있는 거리인 것이다. 그런데, 빡빡하다고?


"우이, 지금 상황은 있지. 아마 레밀리아 스칼렛을 침묵 시키는것만으론 끝나지 않을거라 생각해."


"...라는 말씀은?"


"일정한 수순을 밟아서 홍마관에 도착하고, 특정 조건들을 만족 시켜야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거야. 믿어줘. 지금 이 환상향을 침공한게 그 '악의' 라면, 반드시 그런 법칙을 만들어 냈을거야."


"악의?"


"응. '악의... 아, 그 부분을 설명하는건 우이가 말하는 그...'Mambo-Jumbo'에 해당 되는데."


"그럼 스킵."


"알겠어. 그럼 나를 따라와. 야쿠모 유카리 덕에, 지금껄 포함한 두번의 '침공'의 수순은 알아낸 상태니까."


고개를 끄덕이더니, 코이시는 이때까지 보이지 않았던 맹스피드로 마을을 헤쳐나가, 라인하르트 바깥으로 몸을 던지고 있었다. 치탄줄 알았잖아. 애가 뭐 저리 빠른겨?


아, 나도 멍하게 있을때가 아니지. 얼른 따라가야.

 

 

 

 

 

 

 

 

 

 

 

 

 

 

 

 

 

 

 

 

 

 

 

 

 

 

 

 

 

 

 

 

언제나 다니는 홍마관으로 가는 길목. 안그래도 해가 저물어 어두컴컴한데 설상가상으로 지금 퍼져 있는 이 붉은 안개 덕분에 더럽게 으스스하다. 뭐라도 튀어나오면 솔직히 소리 지를 자신 있다.


"...이상하네? 이 언저리쯤이라고 생각하는데."


"뭐 찾는거라도 있는거야, 코이시?"


왼손은 허리에, 오른손은 눈 위에 일직선으로 두고 '무언가를 찾고 있는 귀여운 사토리 요괴'를 절찬리에 연출하고 계시는 명배우 코메이지 코이시님에게 말을 걸어본다. 오늘의 오스카상 후보시다.


"루미아. 일단 루미아를 쓰러뜨리는것부터 시작해야하거든. 근데, 안보이네..."


"루미아?"


...들어본 이름인걸. 분명, 호수 인근에 자주 출몰하는 요정 녀석들 사이에서 가끔씩 나오던 이름이다. 요괴의 이름이라는건 확실한데, 그 이상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 루미아, 라는 애를 쓰러뜨리는게 그 '수순'인지 뭔지의 스타트 지점인거야?"


"응. '악의' 는, 있었던 일을 재구성하는걸 좋아하거든.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야. 우이, 홈마이변에 대한 이야기 자세하게 들었었어?"


"아니? 대충 레이무랑 마리사가 홍마관에 쳐들어가서 레밀리아 엉덩이를 팡팡 때렸다는것 정도밖에 모르는데."


"...묘하게 왜곡되어 있지만, 흐름 자체는 맞아. 즉, 레이무랑 마리사가 했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는게, 이 '악의'에 대한 최고의 공격수단이라는 이야기지."


"오..."


뭐라고 할까, 평소의 그 헤실헤실거리던 코이시가 이렇게까지 듬직하게 이야기하는걸 보고 있자니, 신선하다고 해야할까 뭐라고 해야할까. 묘한 기분이 든다.


"...우이, 좀 실례되는 생각 하고 있지 않아?"


"겍, 너 마음 안 읽는다는거 거짓말이었어?"


"굳이 마음을 안 읽어도 그 눈 보면 딱 보이거든요. 그리고 그 대답... 진짜 그렇게 생각했나보네. 너무한걸."


"허미, 쉬펄..."


내가 이런 단순한 심리트랩에 걸릴줄은. 역시나 사토리 요괴, 마음을 읽지 않아도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보다니...!


...아니, 평범하게 내가 병신일 뿐이지만.


"하여간, 그런건 일단 됐어. 우이, 잘 들어. '악의'에 침식된 자들은, 스펠카드 룰이고 뭐고 상관 없이 죽이려 들거야. 절대로 방심하지 마."


"나를 누구로 보고 그런 말을 하는거냐. 플랑도르랑 놀아주다보면 그런건 일상다반사라고."


보통 인간이었으면 즉사했을 일격만 주 36회를 받고 사는 이 몸이다. 살의를 가지고 달려든다면 오히려 대응이 빠를지도 모르겠는걸. '살의가 없는 즉사공격'을 막아왔으니까.


"그렇게 자신만만 하다면 다행이지만... 아무래도, 찾은 모양이네. 바닥을 봐."


코이시가 가르킨 그 끝에는, '어둠'이 준동하고 있었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검은색 드라이아이스 같다고 해야하나. 이거, 중2병 아이돌 무대표현할때 쓰면 좋겠는걸. 어둠에 삼켜져라!(잘 부탁드려요!) 같은 느낌으로.


...아, 참고로 괄호친 부분은 해석이다.


"새까만걸. 아무것도 안보여."


"루미아는 어둠을 다루는 요괴니까. 이렇게까지 힘이 흘러 넘치는걸 보니, 이미 '악의'에 의한 침식은 끝난 모양이야."


"그 악의인지 뭔지 하는거, 혹시 남을 침식 시켜서 강화 시키거나 그런것도 할 줄 아는거야?"


"응. 맞아."


...광룡 바이러스인지 뭔지 하는거랑 묘하게 비슷한 느낌인걸. 갑자기 고어=마가라가 잡고 싶어 지는군.


그나저나, 저 '어둠'... 신월의 밤 속에서도 마치 낮처럼 주위를 볼 수 있는 이 눈조차, 저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없다. 둘러쌓인다면 아마 시야가 차단되는 애로사항이 꽃피게 되리라. 심지어, 뭐가 어떻게 된건지 저 어둠이 차 있는 공간은 공간지각능력으로 보아도 애매하게 느껴진다. 눈이 막히고, 감각이 막혀버리면 아마 진짜로 답도 없이 당할것이리라.


그래서, 그 중요한 루미아는 어디에 있을까. 저 어둠이 흘러나오는 끝에 있을거 같은데... 아, 저기 있다. 노란 롱헤어의, 머리에 붉은 리본을 단 성인 여성. 옷이 묘하게 안맞는걸 봐서, 아마 몸만이 성장한걸지도 모르겠다. 아직 이쪽을 발견하진 못한 모양인데...


"...코이시. 아까 넌 레이무나 마리사의 행동을 답습하면 된다고 했는데, 그 범위는 어느정도 까지야?"


"무슨 의미야?"


"그러니까, 전투 방식이라던지 그런것도 완전히 일치해야하는거야?"


"음~...그건 아닐거야. 아마 이기고 지는 결과만 일치하면 별 문제 없을...거야."


생각보다 자신이 없는 대답. 그리고, 저 묘하게 쓸쓸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는... 옛날 생각이라도 난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정도 대답이면 충분하다. 일이 잘못되면... 뭐, 그땐 그때 이야기다.


"근데 그건 왜?"


"...응? 아아. 뭐, 결과만이라면 말이지."


손에 들리는건 나이프. 그리고, 아무런 주저 없이 루미아를 향해 그 나이프를 던진다. 살기도 없고, 벡터 조작으로 소리조차 지워버린, 죽음의 일격. 노리는건 심장. 죽던 말던, 솔직히 내 알바 아니다.


"우이!!!"
"하아!?"


-태애앵!


코이시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루미아가 눈치를 채고 그 어둠으로 내가 던진 나이프를 튕겨내 버린다. 쯧, 이건 또 뭐하자는 시나리오야. 그보다, 어둠이 나이프를 튕겨내? 질량이라도 가지고 있는건가.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너 사냥 해본적 없지?"


"그런게 아니야, 우이! 왜 바로 죽이려고 하는건데!"


"거야, 네가 말했잖아. 상대는 날 죽일 기세로 올거라고. 그럼 그 역으로 당해도 할말은 없다는거 아냐?"


"안돼! 그거야 말로, 악의의 목적이야!"


필사적으로 호소하는 코이시. 나 참, 이거 성가시구만. 이쪽은 죽여선 안되는데, 상대쪽은 죽이려고 달려든다고? 뭐하자는 쓰레기 겜이냐.


...그리고, 그런 중요한 조건이 있으면 좀 빨리 말하지 그랬냐, 코이시.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온다."


어둠이, 루미아의 등에서 날개처럼 뿜어져 나온다. 루미아가 뿌린 어둠의 입자는, 점점 주위를 검게 침식한다. 쯧, 상황이 심하게 악화됐는걸. 이대로면 주위가 어둠으로 가득차서 이쪽이 크게 불리해진다. 이럴거 같아서 멀리서 저격으로 처리하려고 했는데.


"우이, 어떻게 할거야?"


"네가 그런말 하기냐... 너, 싸울 수는 있지?"


"...응."


품속에서 전에 봤던 날이 존나 잘드는 나이프를 꺼내들며 고개를 끄덕이는 코이시. 땅에 떨어뜨리면 땅을 베어 파고들 정도의 날카로움을 지닌 나이프다. 요괴 본래의 근력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전력이 될거 같긴 하군.


"그거 다행이군. 근데, 아까건 그냥 해보고 싶었던 대사였을 뿐이니 별 신경 안써도 돼."


대충 내 안에선 한 5위 쯤 되는 대사다. 한번쯤 말해보고 싶은 대사 랭킹.


"에? ...나 없이도 이길 방법, 있는거야?"


"...꽤나 잘나셨구만. 뭐. 모든 보스에는 공략법이 있기 마련이거든."


머리속에서 이미지하여 만든 통같은 물건을 손에 쥐며, 반대 손으론 코이시의 모자를 눌러 그 시야를 차단시킨다.


"한순간이면 충분하지."


그리고 손아귀에 쥐고 있던 물건을, 가볍게 루미아를 향해 던진다. 질량을 가진 어둠은, 이를 막기 위해 통에 쇄도하지만...


"실례 좀 하지."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터져나오는 섬광과 굉음. 섬광탄의 빛으로 인해, 어둠은 한순간이지만 그 형태를 잃었다. 그리고 덤으로, 루미아 또한 섬광에 의해 주춤한다.


그리고, 그 직후.


-파바바바바바바박!!!


수많은 나이프가, 그녀의 몸에 박힌다. 전부 급소를 빗겨나갔지만, 그 데미지는 적지 않을것이다.


"...나 참."


쓰러지는 루미아. 어둠은 더이상 생겨나지 않는다. 다행히도, 그 기습적인 일격으로 정신을 잃어 준 모양이다. 이걸로 전투불능이 안됐었으면, 좀 위험했을 수도 있었겠는걸.


...루미아가 죽는 방향으로.


"뭐, 뭐야?? 갑자기 시끄러웠는데!"


"...네가 시끄럽거든."


귀가 잘 안들리는지 크게 말하는 코이시. 갑자기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시던 노인분들이 생각나는건 왜일까.


"자, 잠깐만. 우이! 죽은거 아냐?"

 

묘하게 고슴도치를 연상시키는 비쥬얼로 쓰러져 있는 루미아를 바라보며 코이시가 외친다. 그러니까 귀 바로 옆에서 소리 지르지 말라고...

 

"아무런 전승도 없는 평범한 나이프야. 요괴가 저걸 맞고 죽을 리가 없잖아."


물론 저 나이프들이 방향을 조금만 틀었어도 출혈과다로 죽어버렸겠지만...피?


...가만. 잠깐만 있어봐.


"코이시, 쟤 피 안흘리는데?"


"에?"


바닥이 너무 깨끗하다. 급소를 피했다고는 해도, 피 정도는 예의상으로라도 한바가지 쯤 흘려줘야 정상인 상처일텐데, 바닥엔 핏자국은 커녕 흙먼지 하나 일지 않는다.


"혹시, 악의에 침식되면 피도 안흘린다거나 그런거야?"


"아니,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읏!? 우이! 위!"


"???"


코이시의 외침에 위를 올려다보자, 아까전의 어둠이 말그대로 눈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직격 코스. 바로 다음 순간, 저 어둠은 내 머리를 박살내버리겠지.


음... 예의상 당해주고 싶긴 하지만, 내가 좀 바빠서 말야.


"파직파직~"


-빠드드드득!!! 파지직!


"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루미아의 몸에 박힌 나이프가 회전을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번쩍, 하고 나이프가 빛나더니 루미아의 몸에 강력한 전류가 흐른다. 으음, 좀 냄새가 끔찍한걸. 묘하게 고기 굽는 냄새랑 비슷하다는 점이 더.


아무래도 이 공격에는 버티지 못했던 모양인지, 쇄도하던 어둠은 그 자리에서 소멸한다. 으음, 이 장치를 쓰게 될줄은 몰랐는데.


"오옹, 아프겠당."


"아프겠당, 이 아니잖아! 죽여버리면 어떻게 해!"


마치 미친놈을 보듯이 윽박지르는 코이시. 으음, 왜일까. 얘한테 미친놈 보듯이 보여지니까 묘하게 흥분되는걸.


...나, 변태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 중요한 부분은 정정 해야지.


"안죽었어, 걔."


"에?! 아...어라?"


푸슈욱~ 하며 뭔가 검은게 루미아의 몸에서 흘러 나오더니, 그녀의 몸이 자기 옷에 맞게 어려져 간다. 저게 본래의 모습이겠지.


"어떻게 된거야?"


"...내가 아냐. 솔직히 난 죽일 생각으로 장치를 발동 시킨거라고."


온몸에 꽂힌 나이프를 회전시키며 전류까지 흘려보냈는데도 안죽었다니, 솔직히 나도 신기할 따름이지만...


"아무래도 악의에 침식된 녀석을 해방 시키기 위해선 일정 이상의 데미지를 줘야하는거 같은걸."


"...으음. 그러고보니 그런 성질이 있었던거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고."


...아까까지 사람한테 윽박지르던 녀석이 저런 말 하니까 은근 빡치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진건 눈앞에 있는 사토리 요괴밖에 없는 셈이다. 뭐라 해봐야 좋은 결과는 안나오겠지.


"너도 뭐든지 아는건 아니구나."


"뭐든지 아는건 아냐. 아는것만 알지."


...미안하지만 코이시, 그 대사는 안경을 끼고 가슴이 커야지만 어느정도 효력이 있는 대사란다. 아무래도 좋지만.


다만, 방심은 할 수 없다. 누군가가 '죽는 것'이 코이시가 말한 그 악의인지 뭔지하는것의 목적이라면, 이것조차 트랩일 가능성이 있다. 일정 이상의 데미지를 준다고 줬는데, 정말로 죽어버린다던지 하는. 으음, 상대의 몸에 충격만을 주면서 목숨에 지장이 안가게 하는 기술이 필요한가.


"일단 이걸로 루미아는 쓰러뜨렸나... 하지만, 이대로 놔두면 이 안개에 먹혀버릴거 같은데?"


이렇게까지 약해져버린 요괴다. 이 안개에 대한 저항력은, 저어기 인간 마을에 있는 인간들이랑 크게 다르지 않을거 같은데.


"그거라면 저한테 맡겨주세요, 오라버니."


"허메 씨발 깜짝이야. 눈 앞에서 튀어나오지 말라고."


갑자기 눈앞에서 고개만 쏙 내밀며 나타난 유카리에게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해버린다. 뭐하자는 그로테스크냐고. 모가지만 둥둥 떠있자녀. 갑자기 옛날에 그 화분에서 사람 대가리 자라나는 게임이 생각나네...


...지금 생각해봤는데, 그 게임이 흥했으면 꽤 야짤이 나왔을법 한데 말야. 주로 Rule 34에 따라서.


"흐름은 이해했어요. 오라버니가 쓰러뜨린 상대는, 제가 안전한 곳에 옮겨놓죠."


"야, 너도 싸우면 되는거 아냐? 요괴의 현자라고 불릴 정도면 꽤나 쌜거 같은데."


"...지금 이래저래 바쁜지라. 싸움에 임할 수 있을만큼의 연산능력을 동원하기가 힘들어요."


"우이, 야쿠모 유카리는 내버려둬. 지금 우이나 내가 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을 해주고 있으니까."


"그런겨?"


코이시의 말에 유카리 쪽을 돌아보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뭐, 그런거라면 어쩔 수 없나.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그럼 일단 이 녀석 부탁해."


"알겠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사라지는 유카리. 그와 동시에, 루미아의 몸 아래서 틈새가 열리더니 그 몸이 틈새속으로 사라진다. 안전한 곳이라고는 했지만, 어디로 가는걸까...


"우이, 시간이 없어."


"...그랬지. 가자."


라인하르트의 에너지 총량도 벌써 80%까지 떨어졌다. 0%가 되면 게임 오버. 인간들은 대부분 죽어나가리라.


...그래. 그때의 그 환영처럼 될지도 모른다. 붉은 눈물을 흘리는 레밀리아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솔직히, 인간들이 몇이나 죽어나가던 내가 상관 할 바는 아니지만, 레밀리아가 우는건 좀 곤란하다. 음, 여자애는 웃어야지. 그런 이유로 싸운다고 해둘까.


뭐, 결국은 어디까지나 유카리의 도구로써 싸우는거지만.


"다음은 누구야?"


"치르노. 아마 홍마관 바로 앞에 있는 요괴의 호수 위에 있을거야."


"...아, 걘가."


그 바보 요정들의 대장격 같은 녀석이다. 몇번 마주치긴 했는데, 가끔 개구리를 얼리는 장난같은걸 치고 있는걸 봤다. 겉모습도 그렇고, 하는 행동도 그렇고... 꽤 귀여운 녀석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물론, 내 머리 위에 얼음덩어리를 떨어뜨리려고 하기 전까지만.


"우이, 참고로 말하지만 요정은..."


"아아. 매커니즘 상으론 불로불사지."


애시당초 요정이라는건, 자연현상의 일종이다. 자연현상이 그 형태를 지니고 생각과 말을 하는 존재, 그것이 요정인것이다. 다시 말해, 그 형태를 죽여버린다 한들 자연현상 자체가 사라지는건 아니라는 것이다.


이거 살짝 뒤틀어서 이야기 하자면, 앞에서 했던 걱정은 잠깐 내려놓고 마음껏 쳐죽여버려도 상관 없다는거지.


...이렇게 말하니까 내가 무슨 미친놈 같아 보이는걸.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지.


"...아니, 그 이야기가 아니라. 요정이랑 악의와는 상성이 좋아. 악의도 어찌보면 자연현상의 일종이거든. 그래서 둘이 만났다면 아마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을거야. 조심해야해."


"뭐야, 그런거냐. 뭐. 어짜피 요정일텐데. 해봐야 아까 루미아랑 비슷한 정도겠...지...?"


...도착한 곳은 요괴의 호수.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힐정도의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마치, 협곡이었다. 거칠게 솟아오른 기둥과, 찔리면 아플거 같은 저 언덕. 그리고 그 끝에, 마치 보스가 있을 법한 느낌으로 당당하게 서 있는 홍마관.


...그래. 요괴의 호수는, 얼음으로 된 협곡으로 변모해 있었다. 이걸 그 치르노가 했다는 이야기인건가.


"'어짜피 요정', 은 아닌 모양이네, 우이."


"...애미 쉬벌."


좆됐네, 생각보다 시간 더 걸릴지도.

 

 

 

 

 

 

 

 

 

 

 

 

 

 

 

 

 

 


인류 수호급 에너지 방벽 시스템 [라인하르트] - 잔여 에너지 : 78%.

 

 

 

 

 

 

 

 

 

 

 

 

 

 

 

 

악의

지적 생명체가 존재하면 마치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것.

 

어떠한 계기로 인해, 수많은 세계에서의 악의가 뭉쳐, '세계를 집어 삼킨다' 라는 방향성을 지닌 하나의 negative한 에너지 덩어리가 되었다. 그 이외의 정보는 아직 불명.

 

코메이지 코이시와 무언가 연이 있는 모양.

 

 

카미시라사와 케이네


성녀 그 자체.

 

 

우이하루


주인공. 좀 싸이코패스 같다.

 


코메이지 코이시


악의에 대한 정보를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는 모르는 모양.

 

그녀는 변성자였다. 그 의미는 아직 불명.

 


야쿠모 유카리


본래 악의를 가상공간에 끌어들인 뒤, 꿈을 통해 우이하루를 가상공간으로 전송하여 악의를 처치하려는 작전을 짜고 있었지만, 싸그리 쓸모 없어져서 좀 침울해진 요괴의 현자님.

 

현재, 악의의 추가 침공을 막기 위해 경계의 방어체계를 재정비중.

 

 

 

여장 하는 아이작 클라크(가명)

 

변태일지도 모르겠다(쓴웃음

 

 

 

홍마이변 진행도

 

루미아(클리어!)

치르노<-현재 여기

홍 메이린

파츄리 널리지

이자요이 사쿠야

레밀리아 스칼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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