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노래-8

라울 샤니 | 조회 수 63 | 2016.12.08. 01:19

"처음 보는 얼굴이구려! 도를 아시는가?"

옆에서 명랑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 옆을 돌아보니 쪼그만 백발의 여자아이가 나를 보며

손바닥을 내밀면서 외치고 있었다. 잘 보니 머리카락이 백발이었는데 마을의 서당 선생님이나

영원정의 약사 씨처럼 윤기가 도는 건강한 은발이 아닌 생기를 잃어가는 노인의 백발에 가까웠다.

하지만 역시 그런 것도 내겐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먹고 있던 경단을 천천히 

꼭꼭 씹어먹은 뒤 얼마 남아 있지 않던 차를 단숨에 들이키고 가볍게 자리를 훌훌 털고-

"아니! 어딜 가는 겐가, 사람이 하는 말에 대답조차 하지 않고!"

비행마법을 익힌 지 어느새 세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걸 익히게 되고 나서부터는 

외출에 제약이 거의 없어져서 어느 때나 내가 원하는 때에 마을에 와서 놀고 있었다.

이 몇 달 동안 마을에서 약파는 토끼씨도 보고 탁발하고 술 마시는 요괴스님들,

혹은 해골 돌리면서 사람들이 놀라주기를 바라는 우산 츠쿠모가미도 봤지만

이젠 하다하다 도를 믿냐는 얘기까지 들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 때 찻집 주인아주머니가 반갑게 그 꼬마에게 말을 건네고 곧 주위에서 여러 사람들이 모여

저번에 내려주신 비가 어쨌네, 그 때 풍수를 봐 주신 게 어떻네, 주신 선단이 맛없네, 등등

그 아이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말을 나눴다. 거기에 섞여 얼핏 '후토'라는 이름이 들려 나는

그제서야 그 아이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시해선이라는 게 뭘까.

그렇게 후토를 바라보고 있으니 후토가 '어떠냐, 보았느냐, 이 몸의 능력을?' 같은 표정을 짓고 있길래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는 그제서야 떠올린 도인 퇴치법을 말하면서 날아올랐다.

"그 딴 거 몰라도 사는 데에는 지장 없더라고요."

"에에잇! 거기 서라! 내가 도교의 비술들의 장점을 가르쳐 드리지! 어, 어 가지마아아!"

그러니까 죽어도 단점 같은 건 가르쳐 주지 않겠다는 소리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마을을 떠났다.

밑에서는 후토가 마을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채로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귀찮은 일에 휘말려 마을을 떠나고서야 알았지만 아직 홍마관에 돌아가기에는 이른 시간이라서

(아무리 낮에 활동할 수 있다고는 해도 흡혈귀는 흡혈귀인지라 홍마관은 밤에 더 활기가 넘친다)

하쿠레이 신사에 가기로 결정했다. 가는 길은 고요했고 이제 완연히 가을에 접어든 환상향의 하늘은 

점점 높아지고 있었고 산과 숲은 조금씩 성숙한 빛깔을 띄며 계절을 유혹하고 있었다.

멀리서 하쿠레이 신사가 보이기 시작한 순간 나는 무언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레이무가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는 나와서 마당을 쓸고 있거나 툇마루에 앉아 차를 마시며

하늘을 바라보곤 하던 그 자리에 레이무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착지로

하쿠레이 신사 경내에 발을 딛자 평소와는 다른 적막함이 감돌았다. 문득 새전함을 보니 

그 위에 작은 목패에 '결계 순찰 중' 이라는 글씨가 쓰여져 있는 게 보였다. 굳이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차 한 잔 못 얻어먹고 간다는 게 아쉬워서 나는 굳이 신사에 대고 레이무를 불렀다.

"레이무- 있니?"

대답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들어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기에 나는 신사 툇마루에 걸터앉아 하늘을 바라봤다.

사 정상에 위치한 신사의 시야를 방해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높이 솟은 토리이도 여기서는 

땅 위에 굳건히 버티고 선 신역의 문이자 하늘 너머를 보여주는 붉은 창문이 되었다. 저 너머까지 펼쳐져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이 구름만이 흘러가는 공허한 하늘이었다. 문득 레이무가 항상 이 곳에 나와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아무 소리도 없는 곳에서 있는 시간은 고독이 되어 사람의 마음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레이무는 매일매일을 이 고독 속에서 항상 누군가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그 때, 이렇게 고요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오랜 시간 단련해 예민해진 청력이 아니었다면 듣지 못했을

작게 억누른 연약한 기침 소리가 들렸다. 나는 신사에 들어가 레이무의 침실 쪽을 향해 말했다.

"무슨 일 있니? 레이무."

그러자 안 쪽에서 탁해진 목소리로 레이무가 날카롭게 외쳤다

"아, 안 돼! 켈록, 들어오지 마. 나 괜찮으니카-"

나는 한숨을 푹 쉬고 레이무의 방으로 갔다. 문을 열자마자 레이무가 수건인지 담요인지 모를 물건을 

내얼굴에 냅다 집어던져서 그걸 받고 얼굴에 빙빙 둘러 눈을 가린 뒤에 물었다.

"이러면 되지?"

"푸후, 콜록, 코마워. 안토니오씨."

정말이지 여기에는 왜 이리 바보같이 미련한 아이들만 있는 건지. 저러고 있는 레이무의 심리는 뻔히 보였다.

"하쿠레이의 무녀라도 넌 인간이야. 아플 수도 있는 건데 왜 그걸 굳이 숨기려고 해?

그러다가 상태가 더 안 좋아지면 어떡하려고. 아프면 마리사나 유카리씨 같은 사람들한테 맡기고 쉬어도 돼.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넌 하쿠레이의 무녀잖아. 모두 네가 얼만큼 노력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네가 아프다고 하면 

도리어 걱정을 해주지, 네가 조금 쉬는 건 아무도 뭐라고 안 한다고."

레이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도 예전에는 저랬던 시기가 있었으니까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저 연약하고 강한 아이는 언제나 자신의 이름과 책임에 눌려왔을 거다. 마침내 레이무가 입을 열었다.

어느샌가 팔팔해진 건지 벌써 내 옆에 와 있었다.

"방향이 틀렸어, 안토니오씨, 콜록. 나 여키 있는데."

내가 무안함에 고통스러워하자 레이무는 또 다시 웃더니 말했다.

"크래도 코마워. 크렇케라도 얘기해, 콜록, 주니까 왠지 키뻐. 크래서 말이야, 나 당신한테 어리쾅 

한 번만, 콜록, 부리면 안 될카? 싫으면 안 해줘도 쾐찮으니카..."

레이무의 목소리에 약간의 소심함이 담겨 있었다. 이게 하쿠레이의 무녀가 아닌 한 명의 소녀 레이무가 가진

감정이었으리라.

"요리 빼고는 해줄게."

장난으로 이렇게 말하자 레이무는 또 피식 웃었다. 평소에 잘 웃지 않는 레이무였기에 이렇게 자주 웃는 레이무는

말 그대로 평소처럼 긴장하고 있을 기력조차 없는 것을 자각하지 못 하고 있었다.

"자장카 좀 불러줘. 목이 아파서 잠을 잘 못 잤커든. 당신 노래 잘 부르니카..."

나는 목소리에 의지해서 레이무 옆에 앉은 다음 한손으로 수건을 코 위로 올리고

한 손으로는 레이무의 땀투성이 손을 쥔 채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어리광을 부린다고 해도 

레이무는 아직 소녀고 자신의 흐트러진 모습을 남에게 보여지길 꺼려할 나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나의 노랫소리가 어둠과 적막으로 가득찬 공간을 재단해 잠을 지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녀는 나의 노래를 들으며 편안하게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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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메인 히로인들이 거의 다 나왔다고 볼 수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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