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나의 환상들이 - 001

lunawhisle | 조회 수 348 | 2015.12.30. 17:56

환상향에 '환상들이'라는걸 당해 살기 시작한지 꽤 시간이 지났다. 슬슬 한달 쯤인가.


여전히 케이네의 집에서 살고 있긴 하지만, 지금은 손님이라기 보단 약간 동거라는 느낌이 강하다. 케이네가 서당 일로 아침에 나간 사이, 이쪽은 집안일을 하여 밤에는 같이 밥을 먹고 잔다. 라는 느낌으로.

 

일단 남자랑 단 둘이서 사는거니 좀 신경 쓰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좀 들었지만, 아무래도 케이네는 나를 미아를 거두어들여 같이 먹고 사는 감각으로 나를 대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 뭐라고 할까, 조금 건방진 꼬맹이를 거두어 들여 키운다고 하는게 더 맞으려나. 실제로 이쪽은 케이네를 성으로 부르지 않고 이름으로 부르고, 게다가 말을 놓고 있으니까.

 

본인은 계속 있어도 된다고는 이야기 하지만...상냥한 케이네 선생한테 너무 어리광만 부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이유로, 오늘은 일을 하러 나왔다.


"여기가 향림당..."


케이네의 소개로 찾아온 일터가 바로 여기. 케이네 왈 '자네는 바깥 세계에서 왔으니 그 잡화점에서 일하는게 가장 어울릴꺼라 생각해서 말이네. 우선 그쪽 점주와 이야기는 해놨으니, 언제든지 가보도록 하게'.


듣자하니, 바깥세계의 물건도 취급한다는 모양이다. 호기심도 동했고, 무엇보다 케이네에게 슬슬 경제적으로 독립해야겠다는 마음도 있었기에 이곳에 찾아온것이다.


...문제는 저 이야기를 듣고 일주일이나 지나서 결심한거지만. 꽤나 늦었구만.


"실례함다..."


안은 그야말로 잡화점이라는 느낌이라, 여러가지 물건이 진열되어 있었다. 정체를 모를 거북이 등껍질 같은 것부터 시작해서, 나도 한번쯤 본적 있는 전자기기까지. 정말 여러가지 물건이 있어서, 이 안만큼은 하쿠레이 대결계가 작용하지 않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카오스한 느낌이었다. 경계가 흐트러져있다고나 할까.


근데, 정작 점주라고 하는 인간이 보이질 않는다. 분명 들었던 인상착의론, 큰 키에 안경을 쓴 은발의 남자라고 들었는데... 뭐, 문을 열어놓았을 정도니 근처에 나갔거나, 아니면 가게 안쪽에 있는걸지도 모른다. 일단은 안을 좀 더 둘러보도록 할까.


"헉, 이거슨."
설마 했던 버○얼 보이자녀?! 이것이 그 빨강과 검정이 이루어내는 광기의 향연...!


...라고 해도, 이게 나올적의 세대는 아니니까 진짜 실제로 보는건 처음이다. 인터넷에야 몇번 리뷰도 봤지만. 그나저나 역시나라고 할까, 전원이 들어오진 않는다. 여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건가...? 케이네 왈, '전력은 극히 일부의 가정에만 공급되고 있지. 일단 이쪽은 전력공급을 권유받은 적이 있긴 하지만,그다지 불편하지 않아서 거절했다네.'...라고 한걸 보아 전기가 완전히 들어오지 않는건 아닐텐데.


"그나저나, 이런건 대체 어디서 줏어오는거여..."


적어도 이런걸 만드는 공장이 환상향 안에 있다고 생각하긴 힘들다. 특히나 이 버츄얼 ○이같은 게임기는 더욱이. 게임이 산업으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은건 어디까지나 문화산업이 어느정도 발전한 뒤의 이야기다. 농사지어서 생활하는 이 환상향에, 그런 공장이 있을리가.


그렇다면 줏어온다는건데...


"...손님인가?"


남자치곤 살짝 고음의, 하지만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거기엔 케이네에게 들은 인상착의 대로의 남자가 서 있었다. 키는 한 180정도 되려나. 겉보기엔 20대지만, 그 모든걸 아무래도 좋은듯이 달관하는듯한 저 특유의 분위기는 그를 좀 더 나이 들어보이게 한다.


"아, 혹시 모리치카 린노스케라는게...?"


"나다만. 아아, 인간 마을의 선생이 말한게 너였군. 네가 그...우이하루, 맞지?"


남자라고 들었다만, 이라고 쓸데없는 한마디도 덧붙이는 향림당의 점주, 모리치카 린노스케.


"일단 남자 맞는데유. 이름도 가명이니, 딱히 매치시키려고 하지 않아도 되요."


"가명?...햇갈리는 가명을 쓰는군. 하여간, 이곳에서 일하고 싶어서 왔다고 했지."


"네."


"돌아가줘. 이쪽은 점원을 둘만한 생각은 없어."


"....하?"


케이네쌤, 잘 말해놨다고 하지 않았는교...?


"거기에 나는 지금 바쁘다고. 아까전에 찾아낸 바깥 세계의 물건의 사용법을 알아 내야해."


"허."


그렇게 말한 린노스케는 그대로 다시 자기 작업으로 돌아간다. 이 썩을 멀대 안경놈이, 버추얼 보○로 머리를 내려쳐 버릴까보다.


...나 참. 이렇게 바로 떨어질줄은. 취업전선은 바깥이든 여기든 어렵기 그지 없구나.


"흥, 그럼 손님으로써 둘러봐도 상관 없지?"


내 고용주가 아니라면, 솔직히 이젠 존대 하기도 싫은 녀석이다. 그러니 반말을 까주지.


"그러던지. 으음..."


대충 대답하고는 다시 자기 일에 열중하는 점주. 왠지 김샌다.


...그나저나, 대체 뭐길래 저렇게 집중을 하는거지? 거기에 팔짱을 끼고 있는걸 봐서 딱히 뭔가를 조작하고 있는건 아닌거 같은데.
궁금해서 그에게 다가가보니, 그가 마주하고 있는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USB자녀."


딱히 별 특징도 없는 평범한 USB였다. 크기를 봐서 요새 물건은 아닌거 같고, 한 몇년전 물건인거 같다. 디자인을 보아 용량도 얼마 안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구닥다리의 느낌이 난다.


"호오, 이걸 알아보는건가?"


"케이네한테 못들었어? 나 바깥세계에서 왔다니까."


"...그랬군. 그렇다면 사용법은?"


"뭐야, 모르는건가."


"웃."


살짝 비웃는듯한 표정으로 바라봐주니, 분한듯이 표정을 굳히는 린노스케. 하지만 이내 한숨을 푹쉬며, 등받이 의자에 등을 기댄다.


"내 능력은 꽤나 한정적이라서 말이다. 물건을 보고 그 이름과 용도는 알 수 있지만, 사용법은 모르지. 그것이 USB 메모리라는 이름이고 정보를 저장하는 용도로 쓴다는건 알지만... 어떻게 써야할질 모르겠어. 저 홈을 보니 무언가에 꽂는다는것 정도만 간신히 알겠는데."


"호오..."


물건을 보고 그 이름과 용도를 아는 능력이라...겉멋으로 잡화점을 하는건 아니라는거군. 확실히 이 능력이라면, 잡화점을 할때도 물건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겠지.


...사용법을 모른다는건 역시 치명적이지만.


"그래서, 사용법은? 우이하루 너라면 알고 있는것 아닌가?"


"고용해준다면 생각해보지."


"좋아, 채용이다. 오늘부터 일해. 그래서?"


"...너 임마, 태세 전환이 너무 빠른거 아냐?"


처음부터 이랬으면 좋았겠다 싶을 정도로 상쾌하게 채용되어버렸다.


"하여간...이건 컴퓨터에 연결하는 홈이야. 정확한 용도는 컴퓨터에 연결해서 USB안에 컴퓨터에 있던 정보를 저장하거나 꺼내는 용도로 쓰는거지."


"정보를? 왜 그럴 필요가 있는거지?"


"그거야 뭐, 각 컴퓨터마다 저장할 수 있는 정보의 한도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라, 정보를 휴대할 수 있다는게 이 USB의 최대 장점이라고 할 수 있지. 예를들어... 그렇군. 저기 저 책들. 이 USB는 적어도 저런 책들을 수십권에서 수백권은 담을 수 있어."


"...호오. 바깥 세계는 그렇게까지 발전한건가. 그렇지, 이곳에도 컴퓨터는 있는데, 사용할 수 있겠지?"


"...설마 저거 말하는거야?"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봤던 컴퓨터의 열화판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컴퓨터, 저걸 보고 말하는건 아니겠지...저거, 플로피 디스켓이 들어갈 홈이 있는데? 그것도 저 크기를 보니, 무려 5.25인치가 들어갈 자리라고.


"안돼는건가?"


"안타깝게도. 이 USB는 적어도 저 컴퓨터랑 기술이 10년은 차이나서, 호환이 안돼."


"그런가...안타깝군."


입으론 그렇게 말하면서도 안타깝기보단 즐거운듯한 표정을 지으며 탄식하는 린노스케. 아, 저 표정은 그거다. 며칠을 생각해도 떠올리지 못했던 사실을 떠올릴때의 상쾌감.


왠지 모르게, 이런 녀석이랑 같이 일하면 즐거울거 같다고 덩달아 나까지 생각하게 될 정도로 좋은 표정이었다.


"그럼 근무시간은 언제부터 언제까지로 하는거야?"


"좋을대로 해. 아, 그래도 하루에 한번은 무조건 얼굴을 비칠 것. 급료는... 그렇군. 그 부분은 나쁘지 않게 쳐주지."


"오케이. 잘부탁해, 모리치카 점장."


"...새삼 점장이라고 불리니 이상한 기분이군. 그냥 린노스케라고 불러라, 우이하루."


"니가 그런다면야 뭐."


그나저나 반말하는건 별 신경 안쓰네... 뭐, 나도 이쪽이 편하니까 오히려 잘된거다만.


후우, 오늘은 폐점까지 있다가 돌아가야겠다. 언제가 폐점인진 모르겠지만... 하여간 돌아가면 케이네한테 감사인사라도 해야겠지.

 

 

 

 

 

 

 

 

 

 

 

 

 

 

 

 

 

 

 

 

 

 

 

 

 

 

 

 

 

 

 

"좀 늦어버렸군."


적당히 청소하고 뒹굴거리다보니 벌써 밤이 되어가는지라, 향림당을 나와 집으로 향한다. 지금쯤이면 케이네가 집에 있을 시간이다. 얼른 내 취직 소식을 그녀에게 전해주자. 케이네의 소개로 취직된거니, 남 챙기기 좋아하는 그녀다.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줄테지.
그나저나, 오늘 달이 정말 밝은걸. 환상향에 와서 처음으로 본 보름달이다. 공기가 맑아서 하늘의 별이 엄청나게 보이는 이 환상향에서조차, 저 빛나는 보름달 앞에선 별들도 빛을 잃었다. 덕분에 본래라면 어두워야할 길이 한낮처럼 밝다.


후우, 고딩때 동창 녀석 중에 달을 보면서 술을 마시던 시대착오적인 녀석이 하나 있긴 했는데, 그 기분이 이해될거 같다. 저 달은 보기만 해도 안주가 되겠는걸.


"다녀왔어, 케이네~"


집에 도착하여 도착을 알린다...근데, 대답이 들리지 않는다.


...우째서? 바깥에서 봤을때 케이네의 방에서 불이 새어 나오는건 확인했는데. 들리지 않았으려나? 아니면 깜빡 잠이 든걸까. 일단, 안에 들어가서 케이네를 찾아보자. 자고 있다면 굳이 깨울 이유는 없지.


"후엣취!"


으어, 재채기가 나와버렸다. 가만, 뭐야. 바닥이랑 허공에 털이 가득하자녀. 색은...은색에 연한 녹색. 뭐지, 머리털인가? 아니, 머리털이 이정도로 많이 떨어져 있으면 케이네의 모발을 걱정해야할 것이다. 그보다 오히려 이건, 짐승의 털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고보니 케이네, 웨어백택이었지. 그렇다면 짐승의 털같다는 느낌도 어느정도 이해는 된다...만, 근데 평소엔 이렇게나 털이 많지 않았는데...? 왠지 예감이 좋지 않다. 뭔가 병이라도 걸린걸까, 아니면 털갈이?


...케이네의 털갈이라고 하니, 왠지 모를 에로스가 느껴지는데, 이건 내가 변태인걸까. 하여간 케이네의 모습을 살펴보러 가자. 몸 상태가 안좋다거나 그런게 아니라면 다행일텐데.


"케이네, 있어?"


케이네의 방 앞에서 케이네를 불러본다. 대답은...없는데. 하지만, 대답 대신에 들려오는 그녀의 중얼거림이 문 너머부터 들려온다. 아무래도 안에 있는건 맞는 모양인데... 뭔가를 하고 있는걸까? 아니면 뭐지. 트랜스 상태에 빠져 있는건 아니겠지...? 근데 트랜스 상태가 뭐야?


"드, 들어간다...?"


조용히 문을 열자, 그곳에는.


바닥에 깔린 수많은 두루마리. 그곳엔 빽빽하게 글씨가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두루마리로 만들어진 결계 속, 그 중심에 누군가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당연히 케이네인줄 알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일단 푸른색이어야 할 그녀의 옷과 머리칼이, 녹색빛을 띄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뿔...이라고?"


우람하게 돋아난 그녀의 두개의 뿔이, 케이넨지 의심하게 되는 최고의 포인트가 되어 있었다. 그나저나, 저 뿔 한쪽에 메어진 리본...저거 챠밍 포인트인가. 왠지 귀여운걸.


그때,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그제서야 고개를 돌린 소녀. 그 얼굴은 확실히 케이네였지만, 그 표정은...그, 뭐라고 해야하나. 마감에 쫒기고 있는 작가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 표정속에, 당혹스러움이 추가되었다.


"우, 우이하루?!"


"그 뿔에 멘 리본 귀엽네, 케이네."


왠지 말해줘야 할거 같아서 해줬더니, 혼란스러운 표정에 부끄러움이 추가되었다. 뭐지, 저 야미나베같은 표정은. 완전히 잡탕이자녀.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고개를 흔들더니 케이네는 내게 잠깐 고개를 숙인다.


"미안하다, 우이하루. 지금은 꽤 서두르고 있어서 말이네. 일이 끝나면 그쪽으로 갈테니 기다려주겠나? 아니면 먼저 자고 있어도 된다네."


"오, 오우. 그러지 뭐."


고개는 숙였지만,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기백이 장난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물러나고 말았다. 뭐, 버텨봐야 뭐가 되겠냐는거겠지만. 바빠보이는데 방해하는것도 미안하다. 내가 좋아하는 애 괴롭히는 초딩도 아니고, 그녀를 방해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니... 조용히 방을 나가, 방문을 조심스럽게 닫아준다.


"...진짜 반인반수였구나."


저게 '반수'쪽의 케이네라는거겠지. 그러고보니 꼬리도 있었다. 그녀의 머리색과 비슷한 느낌의. 그나저나 내가 상상했던거랑은 쪼매 다르네. furry-같은 느낌이 아니었어....뭐, 저쪽이 더 내 취향이긴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은거고.


자, 그럼 어떻게 할까. 돈은 어느정도 있지만, 다시 나가서 밥을 먹기엔 좀 귀찮다. 으음...


"케이네, 미안한데 잠깐만. 혹시 밥 먹었어?"


일단 문은 열지 않고 물어보자, "아직이라네~"라는 대답이 간신히 들려왔다.


흠, 그럼 저녁은 케이네랑 늦게나마 같이 먹도록 할까. 너무 늦으면 그냥 자야겠다. 평소에도 그렇게 밥을 많이 챙겨먹는 편은 아니니까, 이정도 굶는건 일상다반사다.


...그러니까 키가 안큰거라고? 닥쳐.

 

 

 

 

 

 

 

 

 

 

 

 

 

 

 

 

 

 

 

 

 

 

 

 

 

 

 

 

 

 

 

 

 

 

 

 

 

달도 밝고 잠도 안오는지라 적당히 저녁 준비를 끝마치고 케이네의 집에 있던 책들을 읽고 있자니, 스르륵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거기에는 탈진한 케이네가 내가 있는걸 보고 지친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안 자고 있었군, 우이하루...혹시 기다려준건가?"


"그냥 잠도 안오고 해서. 저녁은...내가 준비할까?"


"...면목없지만 부탁하네. 평소보다 다소 빨리 끝났다고는 하지만, 피로가 쌓여서 말이네..."


"오케-"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한다. 미리미리 준비해놓길 잘했군. 반찬은...뭐, 내가 준비 할 수 있는게 없으니 그냥 된장국이랑 밥으로 만족해줬으면 한다. 케이네도 내가 요리 못하는건 알고 있으니 불만은 없겠지.


"가져왔어~"


"오오, 고맙네 우이하루. 네가 차려준 밥을 먹게 될줄은 생각치도 못했는데."


"차려놨다고 해봐야 국이랑 밥밖에 없지만 말야."


거기다 기본적으로 케이네가 해놓은 걸 데운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조하듯 웃고 있자니, 그녀는 나를 보며 고개를 내젓는다.


"아닐세. 이정도면 충분해. 자, 먹지."


" "잘 먹겠습니다." "


밥 앞에서 합장을 한 뒤, 밥을 먹는다. 으음, 이것도 원래 우리나라에선 하지 않는건데... 뭐, 로컬라이징이라는거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어디에 다녀왔는가?"


꼬리를 흔들며 고개를 갸웃하는 케이네. 뭐지, 이거 갑자기 새삼 적응 안되는데. 진짜 판타지 세계에 온 기분이 들잖아.


"향림당. 덕분에 채용되서 적당히 일하고 왔어."


"호오. 취직 된건가. 모리치카씨, 그다지 탐탁지 않아보이던 눈치던데, 용캐 취직했군. 축하한다."


"...너, 잘 말해놨다고 하지 않았어?"


"이야기는 해놨다고만 했던거 같은데... 뭐어, 취직 되었으니 된거 아닌가. 세세한건 신경쓰지 말게."


"그것도 그런가. 아무튼 고마워, 케이네. 덕분에 잉여생활에서 탈출이야."


"후후,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는 아닐세. 그보다 네가 기뻐해주니 이쪽도 기뻐지는군."


아까의 피곤함은 온데간데 없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밥을 먹는 케이네.


...다 좋은데, 기뻐하면서 꼬리를 흔들고 있으니 백택이라기 보단 개에 가까워보인다. 이거 좀 실례되는 생각이려나.


그나저나, 아까부터 신경쓰이는게 있는데.


"케이네, 아까전까지 하던건 뭐야? 두루마리에 뭘 잔뜩 적던데."


"아아...그러고보니 네겐 이야기하지 않았지. 나는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이렇게 변신을 한다네. 그리고 이렇게 변신 했을때, 역사서를 편찬하지."


"역사서...근데 왜 굳이 변신했을때?"


"백택인 상태일때가 이래저래 역사서를 편찬하기 좋은 상태가 되거든.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역사를 떠올리고 적을 수 있지. 거기에 신체능력도 강화되서, 평소보다 덜 지치고 말야."


"헤에..."


그런거치곤 꽤나 지쳐보이셨는데 말이죠. 뭐, 내가 결계라고 생각될 정도로 빼곡하게 적혀진 그 두루마리들을 떠올려보면 반수 상태라도 지치는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된다. 윽, 어릴적에 깜지하던 트라우마가 떠오르기 시작했어.


"그나저나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우이하루."


"왜."


"자네는 생각보다 이런 모습에 놀라지 않는군. 전엔 귀신을 봐도 놀라지 않더니. 바깥 세계에도 이런게 있었던건가?"


아...그러고보니 그런 일도 있었다. 케이네가 어떻게 잘 말해서 돌려보냈지만.


"그럴리가 없자녀. 그냥 시점을 조금 달리했을 뿐이야."


이미 놀라는건 첫날에 만난 캇파나 그 빙글빙글 도는 아가씨로 끝을 냈다. '그런 것'이 있다고 머리속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그 뒤는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되는것이다. 기본적으로 적응력이 빠르기도 하고 말이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달리한다는건 그리 쉬운게 아닐세. 그 점에서 봤을때, 존경할만하군. 너는."


"에이, 칭찬해도 아무것도 안나온다구?"


"후후, 솔직한 감상일 뿐이다. 아, 그렇게 되면 이제 집에 있는 시간도 줄어들게 되는건가?"


"음~ 그건 어떠려나. 린노스케 녀석, 그냥 하루에 한번씩은 얼굴을 꼭 비추라고 말하고, 근무 시간은 굳이 지정하지 않았으니까 말이지."


"...린노스케라니, 벌써 그렇게 친해진건가. 그보다, 나는 어찌되었던 다른 연장자에게 '녀석'이라고 말하는건 조금 보기 흉하다구, 우이하루."


"그리 말하면 할말은 없지만...근데 그렇게 차이도 안나보이던데? 기껏해야 5살 차이? 내가 스물넷이니 말야."


"...스물 넷이었나, 너."


곧 반오십되는 키 150 중반의 cjd랍니다☆...우웩.


그보다, 아아... 케이네한텐 내 나이를 가르쳐주지 않았던가. 다소 놀란 표정을 보니, 역시 의외라고 느껴지는 모양이다. 뭐, 이 외견에 이 키니까 당연하겠지요...


"하여간, 모리치카씨는 그리 보여도 나보단 연상...이라고 생각하네. 뭐니뭐니해도 나와 비슷한 존재이니 말일세."


"비슷하다니...걔도 웨어 어쩌고인거야?"


"아니. 그는 반인반요다. 그도 나이가 들면 언젠가 인간처럼 늙겠지만, 그 노화 속도가 인간보단 현저히 느리다네. 다시말해, 겉보기론 살아온 세월을 잴 수 없다는거지."


"그런건가..."


그나저나, 그렇다면 케이네는 지금 몇살인거지? 반인반요가 그렇다면, 반인반수 또한 겉보기론 살아온 세월을 잴 수 없다는 뜻이렸다. 지금 케이네는 많이 쳐줘도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사실은...?


"...실례되는 생각을 하는걸로 보인다만."


"허허, 그럴리가. 아, 더 먹을래?"


"아니, 이정도면 되었네. 그쪽이야 말로 더 안먹을건가?"


"나도 배가 불러서 말야."


이야기 하던 사이에, 어느샌가 밥그릇은 비어있었다. 으음, 케이네의 된장국은 밥도둑이라니까. 일본에선 '밥친구' 비슷한 뉘앙스로 부르는 모양이지만.


"아직 지쳤을테니 뒷정리는 내가 할께. 근데 그 역사서 편찬은 오늘은 끝난거야?"


"음. 요 한달간은 꽤나 평화로웠으니까, 길게 쓸 일은 없었다네. 정체된건 좋지 않지만, 평화라는건 역시 좋은거로군."


"그 말대로. 그럼 정리좀 하고 올께. 피곤하면 먼저 자."


"...그 호의대로, 오늘은 먼저 쉬도록 하지."


나른한듯 하품을 하며 피곤한 티를 팍팍 내는 케이네를 뒤로하고, 식기를 주방으로 가져간다.


나도 이것만 정리하고, 슬슬 자야겠다. 내일부터 또 일하러 가야하고 말야. 드디어 좀 '산다'는 느낌이 나는구만. 역시 사람은 일을 해야지.


...며칠 안가서 이 말을 나 스스로 철회할거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하지만.

 

 

 

 

 

 

 

 

 

 

 

 

 

 

 

 

 

 

 

 

 

 

 

 

 

 

 

 

 

 

 

 

 

 


"출-근-"


출근 1주일째.


느긋한 발걸음으로 한낮에 출근. 언제나처럼 손님도, 주인도 안보인다.내 일터지만, 정말 한산한 곳이로군.


...아니, 주인이 없으면 안되잖아. 이 안경놈 어디로 사라졌어.


"앗, 쪽지."


테이블에 보니, 린노스케가 남긴듯한 쪽지가 있었다. 오오, 글씨 멋지다. 내가 악필이다보니, 이런 글씨체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그보다 내용은...


"잠시 물건을 찾으러 다녀올테니 가게 보는걸 부탁하지...라."


그나저나, 내가 언제 올지 알고 이런 쪽지를 남긴거람. 문도 열어놓고 가고...정말로 촌구석이라는 느낌이 나는구만. 뭐, 하여간. 고용주가 가게를 봐달라고 했으니 핫산은 따라야지.


"......"


멍-하니 린노스케의 자리에 앉아 있는다. 그나저나, 진짜 한산하구만. 위치도 인간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서, 사람이 드나들거 같지도 않은데, 왜 굳이 여기에 자리를 잡은건지 원.


...사람이 없으면 나야 좋지만. 돈은 주급으로, 거기에 제대로 받고 있다. 꽤 오랫동안 했다는듯 하니까 나 하나 있는거만으로 점내경제가 휘청하진 않을꺼고... 으음, 정말 꿀직업이로군. 소개해준 케이네한텐 백번 감사해도 모자를 판국이다.


하지만...역시 사람이 오질 않으니 너무 심심하군. 그나저나 '물건을 찾으러 다녀온다' 니, 어디에 간다는 행선지 정도는 적어놓으란 말이다.


후, 안되겠다. 시간 떼우기로 책이나 보고 있을까. 이놈이나 저놈이나 이 집 주인마냥 딱딱한 주제의 책밖에 없지만, 있는게 어디인가. 나중에 린노스케가 돌아오면 다음엔 만화책이나 줏어오라고 이야기 해야겠다.


-딸랑~


"얏호- 코우린, 있냐?"


"앙?"


코우린이라니 뉘겨. 그보다 얘는 또 뉘겨.


문을 열고 들어온것은 커다란 고깔 모자에 정말 동화속에나 나오는 '마녀'같은 복장을 입고 있는 소녀. 그녀의 금빛 머리칼이, 더욱 동화속에 나오는 '마법사'를 연상시킨다. 이목구비는 동양인이지만. 그나저나, 오늘 할로윈 아닐텐데.


"엇, 코우린이 작아졌다...가 아니군. 넌 누구길래 그 녀석 자리에 앉아 있는거야?"


"이 집 직원이다만. 코우린... 린노스케를 말하는거냐?"


"그래. 모리...뭐였지, 그녀석 본명. 하여간 코우린."


...점주랑 상당히 가까운 사이인것 같은데, 정작 이름은 잊혀지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린노스케가 불쌍해지는걸.


"그보다, 그 코우린이 점원을... 또 무슨 바람이 분거람. 그래서, 코우린 녀석은?"


"물건 찾으러 간다고 하던데. 뭐 점주한테 용무라도?"


"응? 아니, 그냥 놀러온건데."


손님조차 아니었던거냐고, 이 가스나.


"아, 녹차 마실래? 아마 코우린이 숨겨둔 좋은 찻잎이 있을거야."


...거기에 점주의 찻잎을 강탈하고 있었다. 강도였나. 뭐, 점주랑도 친한 모양이고 저정도 친화력이면 꽤나 빈번하게 여길 찾아왔을 것이다. 내비둬도 되겠지.


"차는 됐어. 그보다, 넌 누구여?"


"나? 키리사메 마리사. 마법사다. 그러는 너는 누군데?"


"우이하루. 향림당 점원이다."


"우이하루인가. 아, 과자 먹을래?"


"...누가 보면 너희 집인줄 알겠다."


심지어 과자가 담긴 바구니에 떡하니 '모리치카'라고 적혀 있자녀. 점주꺼였냐고.


그보다, 마법사인가. 평범한 가스나로 보이는데...뭐, 겉모습은 그 말대로 '마법사' 같긴 하지만. 그보다 저 모자, 무거워 보이는데 잘도 쓰고 다니는군. 그래서 키가 그렇게 작은거 아냐? 하하하하하하하


하...시발...


"오옷, 왜그래. 갑자기 울것같은 표정을 짓고."


"암것도 아니야. 아, 과자는 먹을께. 고마워."


"이정도 쯤이야. 뭐, 내것도 아니지만 말야!"


그렇겠지요...

 

 

 

 

 

 

 

 

 


"호오...바깥세계에서 왔다니. 옷 차림은 그렇지도 않아보이는데."


"아, 이거 케이네한테서 빌린거야. 어릴때 입던거라던데."


즉, 여아용 옷이었단 이야기다. 어울린다는게 또 가슴 아프지만.


"흠. 바깥 세계라. 그러고보니 책에서 봤다구. 바깥 세계 녀석들도 마법을 쓴다지? 막 흑염룡이네 뭐네 하면서 불꽃을 쏘아내던데."


"...그거 아마 판타지 소설 내용 일텐데. 흑염룡 나불대면서 불꽃을 쏘는 녀석 같은건 바깥 세계에 없다구. 바깥에 사는 인간들은 그냥 아무것도 못하는 평범한 녀석들 뿐이야. 대신 저런건 만들지."


엄지로 바깥 세계 물건만을 진열해 놓은 구간을 가르킨다. 참고로 저거 내가 다시 재진열 시킨거다. 하도 난잡하게 이것저것 진열해 놨길래 린노스케의 감독 하에 깔끔하게 섹션별로 나눠놓은 것. 저걸 하고 나서 할 일이 없어졌다는건 비밀.


"참, 저것들 중에서 몇개는 내가 줏어온거다?"


"...엥. 네가?"


"응. 무연총이라는 곳이 있거든. 거기서 줏었지. 코우린도 오늘은 거기 간게 아닐까."


"무연총..."


이름 없는 무덤이라는 뜻일까. 참 이상한 곳에서 별걸 다 줏어오는구만.


"레이무 말로는 그쪽엔 대결계가 약한 편이라 이것저것 흘러들어온다는 모양이야."


"레이무? 하쿠레이 레이무 말하는겨?"


"오우, 그렇지. 어떻게 알았어? 만난적이라도 있는거야?"


"아니, 이름만 들었어. 카와시로 니토린가 하는 캇파한테서."


그 뒤에 케이네나 다른 사람들한테도 종종 들었지만, 일단 제일 먼저 말해준게 니토리니까 말야...


그러고보니, 니토리는 요새 뭐하고 지내고 있으려나. 내가 준 잡스의 유산은 잘 분석하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으음, 캇파는 머리에 접시가 있어서 원형 탈모가 있으니, 늙은 캇파가 검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Cucumber라는 이름으로 폰을 내면 그럴듯하겠는걸. 아이콘은 베어문 오이, 음성 인식 시스템 이름은 Cyuri로.


"오옷, 우이하루. 꽤나 발이 넓은걸. 너 니토리도 알고 있는거냐?"


"뭐여, 아는 사이여?"


"응. 뭐어, 한번 이변 해결때 도움을 받은 적도 있으니까 말야. 녀석이랑은 친구다."


"헤, 그렇군...근데, 이변 해결?"


이건 또 처음 듣는 단어로군. 이변이라니?


"흠, 그건 또 모르는건가. 여기 환상향에는 이래저래 개성넘치는 녀석들 투성이잖아? 그런 녀석들이 종종 이변을 일으키곤 해. 그걸 해결하는게 '이변해결사'들이 하는 일이고. 이해했어?"


응, 전혀 모르겠어. 하지만 더 묻기 귀찮으니 그냥 넘기자.


"이변해결사...그렇다면 너도 그 이변해결산가 뭔가 하는거야?"


"물론이지. 이 키리사메 마리사님에게 걸리면 흡혈귀던 핵융합 까마귀던 한방이라구!"


닛시시- 하고 웃어보이는 마리사. 딱 나이에 맞는 웃음에 나도 덩달아 미소가 지어진다. 얘랑 있으면 왠지 모르게 유쾌해지는걸.


"호오, 그 이야기 좀 들려주면 좋겠는걸. 그 이변 해결때의 에피소드 같은거."


"오옷, 좋지. 내 영웅담을 듣고 놀라지나 말라구?"


...다행히도 오늘 시간은 잘 흘러갈거 같다. 

 

 

 

 

 

 

 

 

 

 

 

 

 

 

 

 

 

 

 

 

 

 

 

 

 

 

 


"...마리사. 너 또 남의 과자를."


"늦었네, 코우린...오늘도 참 이상한걸 들고 왔구만."


"다녀왔냐, 린노스케. 남자가 째째하게 과자 가지고 툴툴거리지 말라고."


"맞아 맞아~"


"후우...아, 우이하루. 잠시 심부름을 부탁하지. 심부름 끝나면 바로 퇴근해도 좋아."


"...혹시, 니가 들고 있는 그거랑 관계 있는 심부름이냐."


저거, 쟤가 들쳐매고 있는 저거 아무리봐도 러브돌이자녀. 난 저 자식이 저걸 들고 들어올때 식겁했다니까.


"맞아. 이거, 러브돌이라는 이름의 물건인 모양인데... 용도도 그렇고, 이해를 할 수가 없어. 어떻게 이걸로 위로를 받는다는거지?"


"......그러게나 말이다."


린노스케가 저 물건의 구체적인 사용법을 모른다는데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그래서 말인데, 이 물건을 마법의 숲의 인형사에게 감정을 의뢰 하고 싶어. 요사스러운 분위기도 풍기고 있는걸 봐서, 혹시나 저주에 걸려 있을 수도 있을테니 말야."


"요사스러운..."


"코우린, 왠지 너 그거 들고 있으니까 변태처럼 보이는데."


오늘 처음으로 마리사한테 공감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이유를 모르는지 린노스케는 고개를 갸웃한다.


"? 어째서지."


"아니, 그냥 그렇게 느껴지네. 여자의 감이려나? 그치, 우이하루?"


"남자인 나한테 여자의 감에 대한 동의를 물어도 곤란한데."


"...뭐라."


경악하는 표정을 짓는 마리사는 일단 넘어가고, 마법의 숲의 인형사한테 저걸 가져간다 한들 제대로 된 결과는 나오지 않을꺼라 생각이 드는데.


"흠? 우이하루, 그 표정을 보니 이 물건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거 같은데."


"그럴리가. 나도 처음 보는 물건이다."


미안하지만 오늘 하루만은 모른 척 하게 해다오. 저것의 용도를 알고 있다는게 알려지는 시점에서 최소한 바로 옆에 있는 여자아이가 내게서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멀어질거 같단 말이다.


"뭐, 그렇다면 부탁하도록 하지. 마리사, 우이하루를 인형사네 집에 안내해 줄 수 있겠어?"


"어짜피 슬슬 가려고 했으니, 가는 길에 바래다 주지 뭐. 그럼 이걸로 과자 건은 퉁치는걸로 한다?"


"...마음대로 해."


두통이 나는지 관자놀이를 짚으며 고개를 내젓는 린노스케. 과연, 대충 이런 사이인가. 좋은 느낌인걸. 동네 착한 오빠를 부려 먹는 아는 여동생 포지션 같다.


"자, 그럼 가자구 우이하루. 아무리 그래도 그걸 들고 하늘을 날고 싶진 않으니, 조금 걷자."


"오, 그러지."


대충 내 키만한 러브돌을 어깨에 들쳐매고, 향림당을 나선다.


...벌써부터 일하기가 싫어지는건 왤까.


"인형사라면 앨리스 녀석을 이야기하는거겠지. 아마 오늘은 집에 있을테니, 헛걸음은 하지 않을꺼라 생각해."


"헤, 아는 사이구나. 그 인형사인가 하는 사람이랑."


"뭐... 이웃사촌이라고나 해야할까. 나도 마법의 숲에서 살고 있으니까."


"마법의 숲에 사는 마법사라, 꽤나 있어보이는걸."


"헤헤, 그치?"


...라는 대화를 나누면서도, 제발 가는 길에 내가 아는 인물과 마주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다. 아는 사람이 얼마 없다는게 그나마 다행인가.


흑백색의 마법사랑 그 옆을 걷는 러브돌 들쳐맨 꼬맹이라니, 대체 무슨 그림이냐고. 누가 보면 무슨 의식이라도 하려는줄 알겠다.


"그나저나 엄청 디테일한 인형이네... 게다가 말랑말랑하고. 바깥 세계는 이런 인형이 유행하는거냐?"


"...글쎄."


제발 부탁이니 그런걸 내게 묻지 말아줘. 애매한 대답밖에 안나오잖아.


그나저나, 해가 조금 지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한낮. 그런데도 이 어두움은... 대체 얼마나 숲이 빽빽한거냐. 거기에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지는듯한 느낌이. 이 감각...그때 그거랑 비슷하다. 요괴의 산에서 그 액막이 인형을 준 여자가 있던 구역에서 느끼던 그것. 그 때보단 역시 좀 덜하긴 하다만.


"키리사메, 너 이런곳에서 살고 있는거냐?"


"아~ 그러고보니 넌 바깥 세계에서 왔으니 더더욱 안 익숙하려나. 마법의 숲은 이런저런 기운이 침체된 곳이라서 말야. 기분이 나빠지는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야. 그보다 성 말고 이름으로 불러도 되는데. 오히려 그쪽으로 부르는게 좋아."


"그럼 마리사로... 그보다, 이런곳에서 살면서 몸 상태라던가 나빠지지 않은거야?"


"응? 뭐, 내성이 붙었으니까~ 애시당초 마법사는 원래 이런저런 실험을 하다보면 몸이 나빠지기도 한다구. 이정도 환경은 아무것도 아냐."


거기다 이 숲이 이래저래 실험하기도 편하고, 라고 쾌활하게 덧붙이는 마리사. 마법사란거, 의외로 터프한 직종이었구만...


"좀만 참어. 곧 있으면 앨리스네 집에 도착하니까."


"그거 반가운 소식인걸. 근데 그 앨리스인가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응? 걔 사람 아니야. 마법사. 인형을 다루는 녀석이지."


"...응? 마법사≠사람인거야?"


"마법사라는 족속들은 자기 연구를 위해서 몸에 이런저런 세공을 하니까 말야. 수명이 무의미해지는 시점에서 인간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는거지. 아, 난 그렇게 따지면 인간이야."


"헤...불로불사 같은건가."


"음~? 그거랑은 좀 다르지 않을까. 수명이 길어지고 젊음을 되찾는건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안 죽진 않아. '불로'까지만 해당된다고 봐야할껄?"


"그것만으로도 꽤 대단한걸로 들리는데..."


그렇다면, 이 키리사메 마리사 라는 소녀는 어째서 그 영역에 발을 들이지 않은걸까. 아직 미숙해서 그런걸까, 아니면...뭔가 신념같은게 있는걸까. 적어도 아까의 영웅담을 전부까진 아니더라도 반정도 믿는다 쳐도, 실력만큼은 있어보였는데 말이지. 하늘도 날 수 있는 모양이고.


...라는건, 일단 묻지 말자. 겨우 오늘 처음 만난 상대와 할만큼 가벼워 보이는 주제는 아니니까. 그렇다치더라도, 오늘 처음 만난 상대 치고는 너무 가까워진 기분이 들지 않는것도 아닌데... 마치 어릴때 골목에서 만난 아이랑 마음이 맞아 급격하게 친해진 느낌이다. 이 감각, 잊고 있었는데 말이지.


좋아, 간만에 그리운 감각을 떠올린 덕인지 몸 상태도 조금 되돌아온거 같다. 좀만 더 걸어볼까.


"오, 도착했다구. 여기다 여기."


...라고 마음 먹자 마자 도착해버렸다. 이럴때 약간 김샌다니까. 시험기간에 '이 스테이지만 정리하고 공부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부모님이 방에 들어와서 '너 이새끼 또 공부 안하고 노네'라는 소리를 들었을때의 감각과 비슷하다. 뭐, 도착했으니 상관은 없지만.


"그럼 난 돌아갈께. 숲에서 나올땐 앨리스한테 부탁하면 될거야."


"오케이. 그럼 조심해서 가~"


"나중에 또 향림당에서 보자구."


안녕~ 하고 손을 흔든 뒤, 마리사는 손에 들고 있던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버렸다.


..........날았다?


"진짜 날 수 있었구나."
아까까지 신나게 이야기 하던 여자애가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는 경험을 하니, 마음속 어딘가에서 상식 하나가 무너진 기분이 들었다. 아니, 믿지 않았던건 아니라구? 근데 역시 직접 보면 그 느낌이란게 다르잖아.


...저거 어떻게 나는걸까. 나중에 저 빗자루 해부해볼까...


"아차차, 일해야지."


이 요사스러운 인형을 얼른 앨리슨지 뭔지 하는 마법사한테 맡기고 얼른 돌아가야지. 마리사는 앨리스라는 사람에게 안내를 부탁하면 된다고 했지만, 얼추 길은 외워두고 있으니 그 부분은 문제 없다. 돌아갈땐 그냥 백트래킹하면 그만이니.


그나저나, 정말 예쁜 서양식 집이라는 느낌이 든다. 마치 여자애들이 어릴적 좋아하던 인형의 집 같은걸... 이 안에 살고 있는게 '인형사'라는게 또 아이러니지만서도. 개인 취향이려나?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들긴다. 벨 같은게 있다면 편하겠지만, 그런게 없는지라.


"계신가요~?"


...대답 없음. 조금만 기다려볼까.


"누구?"


조금 기다리자, 다소 경계심이 들어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문너머라 약간 탁하게 들리긴 하는데, 여전히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케이네도 그렇고 마리사도 그렇고 니토리도 그렇고, 얼굴이 이쁘장한 애들이 목소리도 좋다니 뭐하자는 도원경이란 말인가 여기는. 니토리는...그 말투만 어떻게 교정하면 참 좋을텐레후...


"향림당에서 왔습니다. 의뢰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찾아뵈었는데요."


"향림당?...좋아, 들어와."


철컥 하고 자물쇠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문이...열리지 않는다. 스스로 열고 들어오라는 이야긴가. 뭐, 상관 없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집안은 집 밖에서 느꼈던 '인형의 집' 이라는 감상과는 정 반대로, 어딘가 가라앉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꺼려질 정도의 정숙함. 하지만 나쁜 느낌의 정숙이 아니라, 마치 미술관 안에 문외한인 내가 발을 들여도 괜찮을까- 라는 느낌의 정숙함. 장인의 기운이 느껴지는, 그러한 집이었다.


그 때.


"...인형?"


눈 앞에, 서양식의 인형이 둥둥 떠 있었다. 잘 보니 허공에 실같은게 보이기도 하지만, 허공에 실이 있다고 해도 인형이 눈 앞에 둥둥 떠 있는게 정상으로 보이진 않는데.


근데 그 인형이, 마치 나를 인도 하듯이 집 안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한다. 따라오라는걸까. 조금 깨름칙하지만, 떠올려보면 여긴 마법사의 집. 이상할건 없다.


...아마도.


"...허어."
얼마나 따라 들어갔을까, 나는 어느샌가 구체관절인형의 파츠가 한가득한 방에 들어와 있었다. 파츠 하나하나마다 살아있는듯한 감각이 느껴져, 마치 토막살인현장에 들어온듯한 착각마저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그 최심부에는.


"잠깐 집중하고 있으니, 거기서 좀 기다려줄수 있을까?"


아까전의 그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이 데스크에 앉아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뒤에서 봤을때 복장도 인형의 옷 같고, 저 짧은 금발이나 체형 또한 인형같아보여, 인형의 집에서 인형이 인형을 만들고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보다, 앉아 있는 상대의 체형까지 보고 있는 나는 얼마만큼 변태인거야.


"아, 그럼 잠시 둘러보고 있어도 될까요?"


"좋을대로. 대신 건들지는 말 것."


"넵."


일단 러브돌을 바닥에다가 내려놓고, 집안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흐음, 아까전에 그 방이 아마 작업실인 모양이고, 지금 있는곳이 거실...인가? 주방은 저쪽인 모양이고...그나저나, 참 해외영화에나 나올법한 집인걸. 영화 장르는 호러인걸로.


음? 저 방은 뭐지. 화장실...은 아니겠고. 그건 아까 문패로 확인했으니까. 그렇다면 이 집 주인의 방인가?


...들어가면 안되겠지, 역시나.


"...라면서도 난 왜 들어와 있는거냐."


정말로 어째서일까.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는데, 마치 이끌리듯이 들어오고 말았다. 으음, 역시 이건 아닌거 같아. 얼른 나가야...


"오잉."


책상 위에, 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와 함께 뭔가 보석같은 것이 놓여져 있는게 보인다. 가까이가서 보니, 아무래도 사진은 가족사진인 모양. 뭔가 메이드나 등에 날개 달린 하얀 머리의 여자, 기타 여러명의 사람이 찍혀 있는 사진이었다. 이 중앙에 책을 들고 있는 금발의 꼬마 여자애가 앨리스...이 집 주인이려나. 특징을 따졌을때 가장 일치하는게 얘밖에 없다. 으음, 귀여운걸.


엇, 혹시 이 하얀 머리 여자 머리에 달린 장식...이게 지금 내 앞에 있는거인가? 붉은 구슬 두개가 끈에 매달려 있는걸 보니, 갑자기 레○징 하트가 떠올라서 그리운 기분이 드는걸.


"레이징 하○! 셋-업!...이라니, 난 병신인가."


나도 모르게 머리 장식을 손에 들고 외치는 내가 있었다. 아차, 그러고보니 앨리스씨가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고 했던거 같은데. 으음, 얼른 내려놓고 작업실로 돌아가자. 이 꼴을 들켰다간 의뢰고 뭐고 엄청 쪽팔릴거 같다.


"...어?"


갑자기, 손에 들고 있는 머리 장식이 잠깐 반짝인다 싶더니 엄청난 기세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우오오오, 뭐야뭐야뭐야. 이거 부비 트랩?! 터지는 류의 부비트랩인거여?!


-인식 완료-


"아?"


뭔가, 기계적인 말이 들려오더니 빛은 사라지고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방은 다시 침묵을 되찾았다.


"...뭐였던거지?"


일단 터지지 않은것에 감사하며, 얼른 머리 장식을 놔두고 돌아가야겠다...어, 잠깐만. 머리 장식 어디갔어. 어어?


그때, 뭔가 우당탕하고 달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활짝 열렸다.


"어머니!?"


"헤?"


"하?"


아까전까지 작업을 하고 있던 앨리스씨가 방에 뛰어든 것. 그보다, 어머니라니. 대체 무슨... 아차, 그보다 남의 방에 있던게 들켜버렸자녀?!


"아, 이건 말이죠. 그..."


"...그 머리장식, 어째서 네가 끼고 있는걸까?"


"엥?"


머리장식?


머리를 더듬어보니, 확실하게 두 구슬(의미심장)이 손에 닿았다. 이 위치는...사이드 포니인가? 아까전에 사진속의 흰머리 여자의 헤어스타일과 일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 이전에 이건 왜 또 여기에? 나 이거 낀 기억이 없는데.


"잠깐 실례."


갑자기 내게 다가온 앨리스씨는 갑자기 나를 확 밀쳐 침대에 넘어뜨리곤...?! 잠깐, 무슨 지거리야!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다고!

 

...오케, 이제 괜찮아. 마음껏 부탁드립니다.


"저항하지 마."


"...안했는뎁쇼."


"...그러네. 그럼 사양않고."


라고 말하며, 앨리스씨는 내 옷을 풀어해쳐 내 상반신을 드러낸다. 오오, 생긴거랑은 다르게 난폭한걸. 나 그런거 좋아해...이런 소리를 할때는 아닌가.


"......역시나."


역시나? 무슨 소리지. 왜 제 가슴을 보면서 그런 소리를 하시는거죠. 여자처럼 생긴 남자 처음보시나? 응? 그럼 반응이 '역시나'가 나오면 안되는거 아닌가.


...아니, 가만. 그게 아닌거 같다. 나도 내 가슴께를 보고선 그녀의 '역시나'라는 말의 일부를 이해한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게.

 

 


가슴 한복판에, 붉은 수정이 돋아나 있었기 때문이다.

 

 


...하?


"뭐시여, 이게."


"마계신의 상징. 아직 완전히 침식된건 아닌 모양이지만 그것도 시간 문제겠지."


"엥?"


마계...뭐라고? 환상향 오고 나서 꽤 헛소리(같은 진담)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드디어 그 익숙함의 한계가 깨진 모양이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건들지 말라고 했을텐데...아니, 이건 네게 뭐라 할 문제는 아닌가..."


"그...죄송하지만 일단 설명을 해주시면 좋을거 같은데..."


"...그러네. 일단 진정할까. 오늘 무슨 용무로 왔다고 했지?"


"그, 향림당의 일로..."


"아, 그래그래. 아, 그럼 여기서 이야기하는것보다, 거실로 나가서 이야기 할까."


"그건 좋은데,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일단 그...비켜주심이 어떠신지."


"...아, 미안."


다소 허둥거리며 내 위에서 비켜주는 앨리스씨. 하지만 그 모습은 부끄러움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 마치 뭔갈 생각하던 도중에 깜빡했다는 뉘앙스가 컸다. 나는 나대로 당황스럽지만, 그녀는 나 이상으로 당황스러운 모양이다. 이 머리장식 탓이려나?


...그나저나, 당황스럽다고 말은 하지만 그 이상으로 생각보다 놀라지 않는 내 자신이 무엇보다 당황스럽다. 사실 상황에 머리가 따라가질 못하고 있다는게 더 맞는 표현일거 같지만.


환상향에 오고나서 받은 충격도 이런식이었지.생각보다 내 뇌는 갑작스런 사건에 대해서 대처 능력이 뛰어난걸지도 모르겠다....아니면, 그냥 정말 생각없이 살고 있거나.


후자가 더 신빙성 있어보이는게 무엇보다 슬픈 사실이란 말이지, 이게...


하여간 풀어헤쳐진 옷을 재정돈한다...음? 뭐지, 왠지 없던 가슴이 생겨 있는것 같은 느낌이...아, 아니겠지. cjd를 하도 많이 하다보니 이젠 없는 가슴도 보이게 된걸까. 제정신이 아니로군. 역시 적든 크든 충격은 받고 있는걸까.


방을 나서니, 어느샌가 준비된 홍차와 과자가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우선 앉아. 아, 혹시 커피쪽이 더 좋았으려나?"


"아, 어느쪽이든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앨리스씨의 맞은편에 앉아, 홍차를 들어 향을 맡아본다. 으음, 홍차를 잘 아는건 아니지만, 향이 좋다는것 만은 알겠다. 비싼 찻잎을 쓰고 있으려나?


"일단 갑자기 옷을 풀어헤친건 사과할께. 무엇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게 있었거든."


"아아, 사과하지 않으셔도 되요. 뭣보다 앨리스씨 방에 들어간 제 잘못이니까요."


"....? 내가 그쪽한테 이름을 말한적이 있던가?"


"아차. 먼저 마리사한테 들었어요...실례, 제 이름을 대는게 아직이었네요. 전 우이하루. 향림당에서 일하고 있어요."


"우이하루...향림당에서 일하고 있다는걸 보니, 마리사랑 아는 사이인것도 말이 되겠네."


사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지만.


"내 이름은 앨리스 마가트로이드. 인형사야. 그리고 존칭은 붙이지 않아도 돼. 앞으로의 관계를 생각하면 말야."


"허어...응? 앞으로의 관계?"


뭐지, 그 옆에 괄호로 (의미심장)이 붙을거 같은 대사는. 이거 혹시 러브코메디 전개인가? ...그럴리가. 러브코메디 전개가 있다 해도 분명 내 러브코메디는 어딘가 잘못되어 있을거라고. 그런건 사양이다. 하여간 이쪽도 존칭보단 편하게 부르는게 좋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일 이야기를 하기전에, 우선 네 몸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는게 순서겠지."


"그러고보니 아까 마계신의 상징이 어쩌고 했지."


"응. 그 머리장식은 내 어머니...즉 마계신이 착용하던 장식이야. 내가 이 환상향으로 나올때 받은 물건이지."


"...너, 신의 딸이야?"


"그렇게 되겠지만, 기본적으로 마계의 생물들은 대부분 어머니께서 직접 창조하신거야. 그러니 그렇게 특별한건 아니야. 뭐, 내 경우엔 어머니가 예뻐해주셨기 때문에 그 머리 장식까지 받은거고."


"흐음. 그런건가."


그리 특별한건 아니라고 자기 입으로 그러긴 했지만, 자기가 끼던 악세사리를 줄 정도면 특별한거 아닌가.


"근데 사실 그 머리장식...아무래도 세공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네. 네 가슴께에 있는 그게 그 증거지."


"혹시 이거 위험한거야? 막 며칠 뒤에 죽고 그러는건 아니겠지?"


"장담은 못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이네. 너, 내 방엔 왜 들어갔어? 뭔가 목적이 있었니?"


"어...아니, 딱히 없었을텐데. 그 뭐냐, 이러면 변명같아 보이겠지만, 뭔가에 이끌리듯이 방에 들어갔던거 같아."


애시당초에 처음보는 여자애 방에 변태같은 이유로 들어갈 정도라면 앳저녁에 케이네 집에서 쫒겨났을거다.


"역시. 그렇다면, 확실히 그 머리장식이 너를 끌어들인걸꺼야. 이유까진 나도 알수는 없지만... 어머니가 하시는 일이니, 분명 이유는 없겠지."


"...거기선 이유가 있겠지라고 말하는게 정상 아닐까?"


"원래 신이라는건 적당적당이라구. 특히 어머니께선 마계의 '창조신'이시니까. 심심풀이로 그런 이상한 물건을 만들어도 이상하지 않아."


"뭐시라..."


그래서 아까부터 앨리스의 태도가 묘하게 미안해보였던건가... 우리집 어머니가 신세를 지네요 같은 느낌이 확확 와닿는군.


"그래서, 이건 대체 뭐야?"


가슴을 가르키며 묻자, 앨리스는 크게 한숨을 쉰다. 뭐, 뭐야. 괜찮을꺼라 이야기 해놓고 이제와서 며칠뒤에 죽는다던가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건 아니겠지.


"우선 질문을 하나 할께. 대답에 따라 내가 취할 행동이 달라지니 진지하게 대답해줘."


"뭔디."


"네가 사고로 인간이 아니게 되면, 넌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아니."


"이유는?"


"인간이든 아니든, 나는 나니까."


중요한것은 나를 담고 있는 그릇이 아니라, 나라는 이름의 에고라고 생각하니까. 이건 오래전에 내 안에서 정해진 대답이다.


...현실에선 존나게 쓸모 없는, 한없이 중2병같은 문답이었지만.


"...좋아. 그럼 네 현실을 가르쳐줄께."


"응."


"지금은 아직 침식중이지만, 넌 곧 있으면 완전히 신같은 무언가가 될거야."


"...엥?"


신이면 모르겠지만, 신같은 무언가는 대체 뭐야?


"우선 네 몸에 깃든 그 마계신의 상징은, 마력핵으로써 무한히 마력을 생산해줄꺼야. 그 영향으로 너의 존재도 그 마력에 침식당해, 어머니와 비슷해질테지."


"...어째 불확실한 말 투성인데."


"어쩔 수 없잖아. 이건 어디까지나 이론이니까.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몰라. 적어도 인간을 초월하게 될거라는건 정해진 사실이지만."


"...우째서 이런 일이."


러브돌 들고 여자애 집 갔더니 인간을 초월하게 되다니, 에이쟈의 붉은 돌을 얻기 위해 개 고생했던 카즈나 석가면쓰고 흡혈귀가 된 디오가 불쌍해질 정도다.


"일단 몸에 해롭진 않을거야. 네가 인간으로써 있고 싶다고 말했으면, 제거하는걸 도와줬을테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보이네."


"뭐, 그렇지. 일상생활에 영향 없으면 아무래도 좋아."


"내가 이런말 하는것도 뭐하지만, 너 정말로 특이한 애구나."


"그래? 평범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


"그나저나, 아까전에 관계가 어쩌고 했던건 무슨 이야기야?"


"아- 그거. 일단 넌 어머니의 선택을 받았으니, 마계에서의 서열로 따지면 마계신 바로 아래야. 굳이 따지자면 유메코씨랑 비슷하려나.일단 나보단 높아."


아하, 그래서 관계가 어쩌고 이야기 했던거군. 그런 잘 알지도 못할 상하관계, 내 알바는 아니지만... 상대는 또 그게 아닐테니.


"...근데 유메코는 또 뉘겨."


"아까 사진 봤지? 거기 메이드 옷을 입고 있던 마계인. 그게 유메코씨."


"헤..."


뭐, 결론적으로 신이 어쩌고 저쩌고 말은 했지만...당장 몸에 이상이 없고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다는 진단? 도 받았으니, 이 토픽은 일단 여기서 끝내볼까.


"하여간, 이제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도 될까?"


"본론이라니... 의뢰 이야기였나? 무슨 의뢰야?"


"아까 가져온 인형 이야긴데..."


있어봐, 하고 말한뒤 자리에서 일어나 러브돌을 가지고 오려니, 작업실 안에서 앨리스의 인형들이 낑낑거리며 러브돌을 가져오는게 보였다.


...뭘까, 이 전위적인 그림은. 약간 에○게리온 같은데. 저거 가슴에 빨간 창 같은거 박으면 더 어울릴거 같아.


"마리사 말론, 향림당의 주인은 물건을 보면 이름이랑 그 용도를 알 수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긴 한데...일단 들은걸론 이름은 '러브돌', 용도는...위로받는데에 쓴다고 하던데."


하던데 라고 남말 말하듯이 말은 했지만, 사실 난 저 인형의 용도를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말을 하지 않았던건... 이하생략.


"음...소재는 바깥세계의 물건 같네. 말랑말랑한게..."


"실리콘일껄. 일단 나 바깥세계 출신이니까."


"헤, 그랬구나. 그럼 이 물건에 대해서 아는거 아냐?"


"바깥 세계에서 왔다고 해서 모든걸 다 아는건 아냐."


포커 페이스다, 포커 페이스.


"...뭔갈 숨기는거 같은데."


"그, 그럴리가."


헉, 어떻게 알았지.


"뭐...좋아. 조사를 해봐야하니, 오늘은 일단 돌아가는게 좋을거 같네. 내일 이 시간쯤에 오면 조사 결과를 이야기 해줄께."


"음, 잘 부탁해. 의뢰비는..."


아, 생각해보니 린노스케놈한테 돈 이야기를 못들었네. 이런 젠장. 여기선 내가 사비로 내야하나.


"아, 그건 괜찮아. 마계 서열상 네가 위니까, 이건 그냥 명령인걸로 받아드릴께."


"아니, 그건 아니지. 여긴 마계가 아니자녀?"


그건 마치 군대 밖에서 군대 계급가지고 지랄하는 짓이랑 비슷한거라고. 으, 또 관련 트라우마가 삐져나오기 시작했어.


"...그러네. 그럼 내일 올때 적당히 가져와줘. 딱히 돈 때문에 인형사를 하는건 아니니까."


"그럴께."


자, 그럼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뭔가 가슴에 이상한 보석이 박혀버리는 하루였지만, 이젠 케이네 집에 돌아 가서 밥먹고 잘 생각밖에 안든다.


"아, 우이하루."


"왜?"


"혹시나 몸에 이상이 생기면 찾아와. 환상향에서 마계인은 일단 나밖에 없으니,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라."


"...그거 고맙구만. 그럼 간다."


앨리스에게 손을 흔들어보이고, 집을 나선다. 좀 어두워졌군. 얼른 돌아가자. 마계신이고 뭐고간에, 일단 지금의 나는 배가 고프다. 제대로 된 생각은 밥을 먹고 나서 하는걸로.

 

 

 

 

 

 

 

 

 

 

 

 

 

 

 

 

 

 

 

 

 

 

 

 

 

 

 

 

 

 

 

후일담, 이라고 할까 이번 일의 결말.


...이라는 서두부터 시작하니 왠지 어딘가의 로리콘이 된 기분이지만 그건 어쨌든.


가슴팍에 수정이 돋아난 지 1주일이 넘었지만, 딱히 몸에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큰 변화라고 하자면, 머리의 색이 점점 옅어져 가고 있다는 정도.


...아니, 늙은건 아니라구? 그냥 그 마계신의 머리색으로 변해가고 있는 모양인거 같다.


이런 변화에 대해서, 가게에 항상 찾아오는 마리사나 린노스케, 그리고 케이네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걸로 보인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왠 머리장식이냐'라고 하는 정도. 머리색은 왜 다들 신경 안써주는걸까.


그리고 그 러브돌은 앨리스의 손에 의해 불타 사라졌다. 앨리스 왈 '이런 인형을 모독하는 존재는 내가 직접 이 손으로 불태워주겠어' 라던가. 바깥 세계의 인형이라 할지라도 그 용도를 정확하게 파악해내는걸 보면 역시나 프로 인형사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결론적으로 정작 줏어온 린노스케도 별말 안하고 넘어가서, 그저 그것뿐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마리사, 넌 신이 되면 뭘 하고 싶냐?"


문득 떠올라 (절대 손님은 아닌)마리사에게 물어본다.


"뭐야, 갑자기. 신이라고? 글쎄다. 음... 그래, 더 큰 화력이 내는 마법을 만들어 보고 싶은걸."


"이 화력 바보가... 린노스케는 어때?"


"...그렇군. 만일 된다 해도 이 일을 계속 하고 있지 않을까. 딱히 남한테 추양받고 사는 삶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말야."


"코우린이 신이 된다면, 오모시로쿠나이노카미가 되겠는걸."


"뭐냐 그 바보같은 명칭은..."


재미없는신이라는 의미인가. 이름부터 재미없어 보이는군.


"근데 그건 왜 묻는거야, 우이하루?"


"응? 아아, 그냥. 갑자기 떠올라서."


"헤... 그러는 넌 신이 되면 뭘 하고 싶은데?"


"나? ...그러네. 난 신이 된다면..."


그러고보니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아서 생각해본적이 없는데...음.


"뭐, 느긋하게 생각해볼께."

 


시간은 썩을만큼 있으니까.

 

 

 

 

 

 

 

 

 

 

 

 

 

 

 

 

 

리부트라고 해서 중2병 전개가 아니라고는 말 안했다

 

 

 

 

 

우이하루

 

헬조센인이었으나 환상들이로 탈조센했다.

키 작음(이 부분은 내 지인중의 어느 난쟁이를 respect).

이쁘장함.

딱히 취미가 여장인건 아니지만 그냥 아무렇게나 입어도 여자로 오해받음. 낙관적 성격.

이름은 머리에 꽃 잔뜩 얹은 학원도시의 쟞지멘토에서 따옴. 그의 첫 코스프레 캐릭터였던 것.

요새 머리가 하얗게 새고 있다. 늙은건 아니다.

머리장식때문에 더 여자로 오해받기 쉬워졌다.

 

 

 

 

마계신의 머리장식

 

마계신이 심심해서 세공을 가한 머리 장식.

꼴리는 상대를 끌어들여 강제로 마계신 대리로 계약시킨다.

하지만 마계신 본인은 꽤나 핀포인트로 '꼴리는' 조건을 걸어놨었기 때문에 금방 질려 바로 잊혀졌고, 세공이 해제되지 않은 상태의 그 머리방울이 앨리스에게 넘어간 것.

풀어놔도 금방 계약한 주인의 머리에 달라붙어 반 강제적으로 사이드 포니를 만들어버린다.

덕분에 주인은 머리 감는것 조차 타임어택.

머리카락을 자르면 강제로 머리를 길게 만든다고 한다. 무섭다.

 

 

 

마계신의 상징

 

마계신의 가슴팍에 돋아나는 수정.

간단하게 말해서 마력핵. 하지만 부서져도 재생하니 딱히 약점은 아니다.

마력을 무한히 생성하는 꿈의 에너지원.

숙주의 몸 바깥에 꺼내지면 금방 부서져 사라지고, 다시 숙주의 몸에 돋아난다.

숙주가 처녀나 동정을 잃어도 색이 푸른 색으로 변하거나 하진 않는다.

 

 

 

바깥세계의 세계관

'동방'만 없는 현실세계. 그래서 주인공은 동방 이외의 드립을 마구 친다.

아, 동방이 없으면 덕후판이 클린할거 같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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