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소령! 후편

Chlorine | 소설 | 조회 수 204 | 2016.09.27. 06:29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후편

 

“잠깐 리리카, 왜 점심밥이 편의점 돈까스 도시락이야? 하다 못해 배달전문점 음식으로 하라고. 마실 건 어디 있어? 설마 사는 거 까먹진 않았겠지?”

 

아파트에 돌아온 뒤에 목욕이 끝나고서야.

단칸방에서 점심밥을 먹기 시작하나 싶더니, 하타테 새끼는 이 꼴이야.

‘친구 관둘까 진짜….’하고 생각했지.

분명 이 녀석의 남자친구가 될 녀석은, 겁나게 고생하겠지. 결혼할 녀석 따윈 분명히 없겠지 이거.

“마실 거야 물이면 되잖아.”라고 나는 푸딩을 먹으면서 답해줬지. “우물에서 퍼와.”

 

“너 바보니? 기껏 일주일 만에 목욕했는데, 비에 젖는 건 싫어.”

네, 그러십니까. 그건 그렇고 일단 ‘네가 받아와’라는 표정으로 당연한 듯이 여기 보는 건 그만둬. 당장 그만둬.

“나도 방금 같이 목욕해서 진흙 씻어낸 거 잊진 않았겠지, 너도.”

“뭐 좋아. 여기선 공평하게 가위바위보로 정하자.”

“뭐가 공평해. 마실 걸 바라는 건 하타테 뿐이잖아.”

“물은 안 떠다 두면 너도 불편하잖아. 자, 가위바위보!”

 

하타테는 보를 냈어. 난 승리의 가위.

WIN!

왠지 갑자기, 분위기가 얼어버렸네.

그래서.

하타테는 젓가락을 고쳐 잡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도시락을 다시 먹기 시작했지.

“야, 하타테 새끼야. 물 떠오라고.”

“그건 됐고, 중요한 게 있어!”

하타테는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팡 쳤어.

 

“뭐야, 갑자기. 됐고, 그만 얼버무리고 물 떠와.”

“됐으니까 얘길 들어. 남은 10%를 어떻게 올라갈지. 우선 리리카의 악기를 어떻게 되찾을지, 이게 최우선 아닐까?”

라고 말하면서 넌, 돈까스에 소스 부어다 맛있게 먹고 있잖아. 그닥 중요한 얘기 하는 기분이 안 드는데.

“그거야 10%안에 들어가지도 않지. 빅해져서 빅 머니를 겟하면, 얼마든지 되찾을 수—“

“너 바보 아냐? 빅하게 되기 위한 도구를 놓쳐버리곤, 어떻게 빅하게 될 생각인 거야? 그 악기가 없으면 능력을 써서 연주할 수가 없잖아?”

 

아…

그러고 보니…그렇지.

응.

어쩔 셈이었을까- 나는.

그게…아니…저…

“뭐…뭐어. 능력을 쓸 수 없는 보통 악기라도, 손으로 연주 할 수 없는 건 아니니까…”

“그럼 리리카는 평범한 악기를 써서 지금까지랑 똑같은 수준으로 연주할 수 있어?”

“아…아니, 역시 그건 아무리 해도 무리겠지만.”

“너 연주기술이라면 환상향 제일이랬는데, 그 어드밴티지조차 없어진다는 말이지?”

“아…말하자면 그렇지. 그보다 손으로 연주해본 건, 놀 때밖에 없어. 까놓고 말해서 라이브 같은 거 할 자신 없어.”

 

하타테의 안색이 파랗게 됐어.

“지…진짜 리리카는 어쩔 생각이었어!”

“아…아하하- 어쩔까…정말로.”

거기다 내 사운드가 ‘용기’라는 걸 알았어도, 갑자기 그게 몸에 익어서 언니들이 ‘들뜸’이나 ‘우울’을 자유자재로 하듯이 다룰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이제부터 좀 더 연습이 필요해질 거야.

그 연습을 한대도, 내 능력이 적응할만한 악기가 있어야 하고.

큰일이다. 이제 와서 느끼는 거지만, 진짜로 장난 아닌 것 같아…

아, 왠지 하타테도 젓가락을 입에 문 채로, 파란 얼굴로 멍-하고 있어.

“아…그럴 수가. 정말로 아무 생각도 안 했던 거야, 리리카는? 보통은 생각해두잖아…”

 

“아니- 그야 여러가지로 필사적이었잖아, 아하하-“

“아하하 좋아하시네, 멍청이가-! 오늘밤부터 밥 어쩔 거야. 평범한 악기조차 없으니, 이제 노상라이브로도 돈을 벌 수 없잖아.

우리의 전재산은 편의점 봉지 안에 든 거스름돈, 523엔밖에 없다고 이젠!”

 

“주변에 널린 냉이에다가 소스라도 뿌려서 먹으면 되잖아. 양배추 같은 맛 나는 거 아냐?”

“리 리 카-. 이제 네 팬티 팔고 오라고. 오천만 장 정도!”

하타테가 테이블을 뛰어넘어 내 치마 안에 손을 뻗어왔어.

난 하타테의 얼굴을 꾹꾹 눌렀지.

“그만 하라고, 이 변태 하타테 새끼야. 너야 말로, 업소에서 알바나 뛰고 오라고.”

“시끄럽긴. 진짜 바보구나 리리카는. 나 같은 거 때문에, 이런 짓이나 하고. 앞뒤를 생각하라고…”

하타테는 내 팬티에서 손을 뗐어.

 

“어…어쩔 수 없잖아. 그 땐 필사적이었으니까. 하타테 진짜 걱정했다고.”

말했더니,

하타테는 멋쩍다는 듯이 휙 얼굴을 피해버렸어.

“하지만.” 나는 계속했어. “악기라면, 능력은 쓸 수 없는 물건이지만 구할 길이 있으니까, 노상라이브 정도야 뭐 아마, 어떻게든 될 거야. 게다가 하타테의 보컬도 있고 말야.”

 

하타테가 얼굴을 이쪽으로 돌렸어.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야.

그리고 고개를 기울이고는, “무슨 소리야, 리리카. 나 밴드 같은 거 안 할건데?”

 

왠지 갑자기 바깥 빗소리가 심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어.

쏴-! 하고 말이야.

 

“어…정말로? 하타테, 정말로?”

“한마디도 음악 하겠다고는 말 안 했잖아. 멋대로 진행시키지 말라고.”

“그…그야 그렇긴 한데. 흐름상 밴드를 해서 세계를 쟁취하자…같은 느낌 아냐?”

“리리카 머리 속에서만 그렇겠지. 나 히메카이도 하타테는, 지금까지 쭉 신문기자였듯이 앞으로도 신문기자야. 그래, 세계를 쟁취할거야. 다만, 음악이 아니라 신문으로 말이지.”

우와, 콧대 봐라. 팔짱을 단단히 끼고, 가슴을 내밀고 으스대네.

 

“하타테가 신문을 하고 싶다면, 그건 그 나름대로 응원할 건데. 부탁할게. 나랑 같이—“

하타테에게 입을 막혀버렸어.

그리고 하타테는, 묘하게 쑥스러운 듯이 숙이고는

“그래서 있지, 리리카. 신문으로 세계를 쟁취하기 위한 소재를 떠올려봤는데. 오늘부터 취재하기로 했어.

유명 밴드를 뛰쳐나온 소령 뮤지션이, 빅하게 되기 까지를 기록하는 밀착취재야.

역시 기자도 취재대상과 같은 일을 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서. 밴드에서 노래 같은 것도 해봐야겠다 싶고.

그런 식으로 취재대상에게 다가서는 자세가, 내 신문에 부족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하고.

게다가 신문을 재발행하려면 자금이 필요하고…음악활동으로 벌 수밖에 없을 것 같고.”

자신 없는 듯 머뭇거리며, 하타테가 눈을 위로 뜨고 여길 보고 있어.

“괜찮지…리리카?”

 

“당연히 괜찮지 이 새끼야!”

라고 외쳐버렸어. 하타테의 양손을 강렬히 붙잡고서.

“역시 넌 소울메이트야, 진짜 사랑해. 반드시 둘이서 세계를 거머쥐자!”

 

“으…응. 하지만 한 번 더 말하겠는데, 취재로써 함께 하는 것뿐이거든. 착각하지 마. 밴드 이름을 정할 거면, 내 이름 넣거나 하면 안 돼.”

“괜찮아, 그래도. 그럼 난 어서 악기를 가져올게. 저녁밥을 사기 위해, 또 노상라이브로 벌어야지. 내일부터 할 일은, 오늘의 저녁밥문제를 처리하고 생각하자!”

“그럼 나도 캇파네 철물점에서 구식 카메라폰 좀 찾아올게. 오백 엔이면 살 수 있어. 취재대상이 눈 앞에 있으니, 염사는 쓰지 않아도 되니까.”

 

 

 

 

그리고 삼십 분 후.

난 악기를 “구할 길”의 현관 앞에 혼자 왔어.

이동하는 동안 하늘에서 비구름이 깨끗이 사라지고, 섬머 애프터눈을 펼치는 햇살이 SUN-SUN-SUN하고 있어.

딱히 여긴 아는 사람만 아는 악기점이나 그런 특별한 장소는 아니야.

 

집이야. The 우리 집.

 

뭐랄까, 가출하고 반나절 만에 돌아오는 건 부끄러우니, 몰래 숨어들어서 용건을 끝내고 싶지만.

딱히 난 포기해서 돌아온 것도 아니고, 언니들에게 기대러 온 것도 아니야.

내가 두고 간 악기를 회수하러 왔을 뿐이야.

당당히 정면으로 들어가면 돼.

 

현관문을 콰광-! 발로 까서 열었어.

그리고 외쳤지.

“HEY, 언니들! 잠깐 실례하지. 말하겠는데, 딱히 돌아온 건 아니다-“

그랬더니 안이 어찌나 더운지, 언니 둘이 모여 탱크탑+팬티 한 장, 거실의 소파에 질척-하게 녹은 슬라임마냥 있었어. 그리고 TV를 보고 있던 눈과 마주쳤지.

에어컨을 한창 켜둔 모양이지만, 예전과 다름 없이 집이 낡아서 그다지 효과는 없어.

 

“어, 리리카.” 루나사가 질척-한 채로, 녹아버린 어두운 눈으로 말했어. “문은 조용히 열라고 했잖아. 너 때문에 집이 부서진다.”

“뭔 말이냐, 루나사 새끼야.” 내가 답해줬지. “우린 폴터가이스트야. 집이 부서지면, 다른 곳에 씌면 되잖아 이 새끼야.”

“뭐라고, 이 새끼가…”

라면서 루나사는 역시 어두운 눈으로 째려봤어.

평소대로라면 여기서 언니새끼님의 꾸중으로 이어지겠지만. 루나사는 왠지 거리끼는 듯 TV로 눈을 돌려버렸어.

 

“아~ 리리카다~↑”

녹아버린 메를랑이 묘한 텐션으로 말하면서, 미끈한 동작으로 일어섰어. 눈을 랑랑 빛내면서, 문워크로 다가왔지.

그리고 내게 등을 보인 자세로 15센티 거리까지 오더니, 휘릭 돌아보더라고.

“얘얘얘얘 리리카 얘얘얘얘. 어디 갔었니 얘얘얘얘.”

라면서 메를랑은 내 주위를 문워크로 빙글빙글 돌았어. 분명 더워서 뇌가 끓어오른 거겠지. 아니, 메를랑은 항상 이랬었나?

“얘얘얘, 찾아냈니? 찾아냈어? 리리카의 사운드 찾아냈어?”

 

찾아냈지만, 익힌 건 아니야.

덤으로 악기조차 놓쳐버리고, 지금부터 어떡해야 할지, 초절정 언노운 상태라GO.

하지만, 여기서 그런 소릴 했다간 ‘서투른 동생이니 어쩔 수 없지’같은 시선을 언니들이 보낼 거야.

게다가 비꼬는 마음이 일절 없는, 나를 순수히 걱정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못 참겠는 건 그거야. 딱히 언니들이 싫은 게 아냐.

그런 시선을 받는 나란 녀석이 미운 거야.

“그래, 찾아냈지. 엄청 찾아냈지. 완전 찾아냈어. 머지않아 메를랑의 뇌가 부글부글 끓어오를 정도로 대단한 소리를 들려줄 테니까, 기다리라고.”

 

메를랑의 문워크가 타닥 멈췄어. 깜짝 놀란 얼굴을 해주시는군.

평소대로라면 여기서 ‘에~ 어쩜-. 얘얘 어떤 사운드니, 어떤 거 어떤 거 어떤 거~↑’

같은 소릴 해대며 끈적끈적 달라붙는 녀석인데.

 

“그렇구나. 대단하네.”

메를랑은 평범한 자세로 돌아와서, 평범한 텐션으로 말했어.

“다행이다. 축하해.”

피하는 것 같아. 맥이 빠졌어.

 

“으…응. 고마워.” 나는 끄덕일 수밖에 없어.

메를랑도 루나사도, 뭔가 좀더 말하고 싶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아.

그런 두 사람의 시선이 근질거려서, 서둘러 내 방으로 향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왠지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언니들과 눈을 맞추지 않고, 근성으로 우뚝 서있었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면 되는데.

‘무리하지 말고, 언제든 돌아와.’나

‘리리카도 우리랑 같이 있는 게 좋지?’같은 거.

하지만 언니들.

난 걱정 받고 귀여움 받는 동생은, 이젠 졸업—ZOL-UP할거야.

“…”

나와 언니들이 말 없이 신경전을 하는 중. TV의 소리만이 거실에 울리고 있어.

요괴의 산 방송국, 그 곳의 음악 방송. 텐구 베테랑 음악프로듀서가 48명으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을 만든다는 선전을, IQ낮아 보이는 아나운서가 짐짓 꾸며낸 듯한 텐션으로 떠들고 있어.

거기에 이어 프리즘리버 악단의 신곡소개 인터뷰가 시작되었어. 며칠인가 전에 찍었던 거야.

TV화면에는 인터뷰에 또박또박 답하는 메를랑의 미소. 그 옆에는 자랑스런 얼굴로 보충하는 루나사가 있어.

그리고, 난 어디에 비춰지는가 했더니…따분한 듯이 화면 구석에서 잘려서 비춰졌어.

언젠가 나와 하타테의 밴드도, 이런 방송에 나올 수 있을까?

그 땐, 내가 메를랑처럼 인터뷰에 답하고, 루나사처럼 뽐내듯이 음악창작론 같은 걸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니, 아냐.

‘할 수 있을까’가 뭐냐. 할 거잖아?

언니들이랑 무의미한 신경전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어서 일을 끝내자.

 

 

나의 더러운 방에 들어왔어.

혹시 하타테를 여기에 데리고 오면, 마비가 와서 지리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수선해.

그리고, 분명 하타테는 지리면서도 날 향해 이렇게 묻겠지.

‘뭐…뭐야. 이 벽 따라 기다랗게 줄지어진, 바닥부터 천장까지 쌓여있는 타워모양 물체는!”

그렇다면, 난 이렇게 답할 거다.

“음악밖에 할 수 없는 녀석이, 백 년 이상 발버둥치면 이렇게 되는 거야. 그건 악보나 노트나 메모용 종이가 먼지에 묻힌 거지.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말이지. 참고로 옆에 있는 창고엔, 꽉꽉 빈틈없이 쌓여있어.”

‘그…그럼, 창가에 깔려있는 커다란 천 위에 종이조각이 어질러져 있는 건 뭐야. 무슨 의식용 제단이야?’

“그냥 침대야. 항상 자려고 뒹굴거리면서 곡 아이디어를 쓰고 있었어”

 

‘그…그럼, 그 주변에 시트가 벗겨져있는 건 뭐야?’

“저게 “구할 길”인 영체 악기야. 바깥에서 환상들이해온 물건이지. 린노스케가 떠들어댄 건데,

바깥 세계에서 에피소드를 남긴 악기는, 많은 동경을 품고서 환상을 낳으니까, 악기의 영체만이 빠져 나와서 환상향에 들어오기 쉽다나 봐.

여기에 있는 건, 팍 온 필링으로 산 건 좋았는데, 내 말을 듣지 않는 녀석들이야.”

 

중얼중얼 혼잣말을 끝내고,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겨봤어. 방에서 복도로 나오면서.

각각의 악기들이 저절로 시트 아래에서 나와서, 둥실둥실 공중에 떠올랐어.

다른 방에서도, 다른 악기들이 복도로 나오고 있어.

여기까지는 다들 내 말을 들어주지.

하지만, 날 위해선 소리를 내주지 않아. 왠지 묘하게 프라이드가 높단 말이지.

어쩌면 정말로 이 녀석들, 바깥 세계에서 동경을 낳았던 빅 뮤지션이 쓰던 녀석들이 아닐까?

낡아빠진 스타인웨이 그랜드피아노 CD318. 1958년제 기타 리켄베커 325. 피가 말라붙은, 하얀 펜더 프리시전 베이스. 불타 녹은 자국이 있는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기타.

그리고, 그 외 다수.

 

“뭐 너희들도, 나 같은 거한테 쓰이긴 싫다는 프라이드가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오늘부터 새로운 파트너가 되어주라.”

악기들은 높이 둥실둥실 떠있기만 하고, 일언반구도 없어.

“잘 부탁해.”

꾸벅, 고개 숙여 인사를 해봤는데, 다들 쌩까고 오고 있어.

“흠, 뭐 상관은 없는데. 그럼 출발할 테니, 똑바로 따라와.”

라고 말했더니, 피투성이 프리시전 베이스가 서서히 떠오르더니, 부왕 덤벼들었어.

난 아슬아슬 머리를 돌려 피했지.

위…위험하구만… 이 녀석, 어지간히 흉포하구만. 샀던 때부터 피투성이였고.

“지…진정하라고. 흥분하지 말라니까. 쓸데없이 까불지 않아도, 우린 동료잖아. 아…아하하. 어쨌든 같이 가자.”

 

 

내 방에서 복도로 나와 거실 근처를 지나던 때였어.

TV소리가 섞인, 루나사와 메를랑의 얘깃소리가 들려왔어.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가만히 서서 엿듣기 시작했지.

 

“리리카를 저대로 둬도 돼?” 메를랑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어.

“그건 저 녀석이 결정한 거야.” 루나사는 억양 없는 목소리로 답했어.

“저 애는 굉장히 상처받았어. 루나사는 내버려둘 생각이야?”

“저 녀석 없이도 프리즘리버는 이루어졌고, 앞으로도 돌아갈 거야. 그걸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게 리리카라고. 우리가 뭘 어쩌든, 상처받은 저 녀석의 마음은 어떻게도 할 수 없어.”

 

“루나사, 너무 차가운 거 아냐? 리리카는 우리의 동생이잖아?”

“나는 이렇게 생각해. 지금까지 리리카를 썩혀둔 게 아닐까? 밴드에선 우리 사운드의 영향이 너무 세서, 그 녀석의 재량이 발휘될만한 자유도가 없었어. 리리카의 재능에 덮개를 덮어온 것 같아.”

 

“그렇다면—“

메를랑이 말했어. 분노가 50%, 그리고 슬픔이 50% 섞인 목소리였어.

“—자매들 중에서, 리리카만 따로 음악을 하는 게 좋다는 거야?”

“자매들이 다 같이 모여서 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내가 원하던 거지. 하지만 그건 나와 메를랑, 너의 바람이야. 리리카가 집을 나갔다면, 그 녀석이 바라는 우선순위는 따로 있었다는 이야기지.”

 

“하지만…하지만” 메를랑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어.

“하지만 메를랑, 난 이렇게 생각해. 예를 들어, 리리카의 ‘환상의 소리를 재현하는 능력’. 그건…다른 어떤 소령도 갖지 못한, 굉장히 레어한 고유능력이야.

내 직감일 뿐이지만, 그건 그냥 신기한 소리를 내는 게 다인 능력 같은 게 아냐. 뭔가 다른 사용법이 있을 거야.

리리카는 그 능력 사용법을 획득할지도 모르고, 거기에 맞춰 그 녀석이 찾아낸다던 사운드를 이용해서 어떤 음악을 만들지 기대되지 않아?”

 

“리리카가 정말로 그런 걸, 혼자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메를랑이 그렇게 말했어.

잠시 틈이 있었고,

그 틈이, 무엇보다도 언니 둘이 생각하는 걸 잘 말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

‘리리카 따위는 아무것도 못해. 그 녀석은 프리즘리버 중에서, 유일하게 서투르고 불쌍한 아이야. 당연히 악단에 남아있는 편이 나을 거야. 여기 있게 만들고 싶어’

 

“리리카가 뭔가를 해내는 걸, 나는 바라고 있어” 루나사가 대답했어. “그게 지금 나의 바람이야.”

“그렇다면 나의 바람은…” 메를랑이 답했어. “역시 가만 둘 수 없어. 설득해서 돌아오게 할거야. 이대로는 불쌍해. 동생인걸!”

“착각하면 안 돼.”

루나사가 차가운 목소리로 딱 잘라 말했어.

“알겠냐. 리리카에게 있어선 나도, 메를랑 너도, 이미 언니 같은 게 아냐. 넘어야 할 목표, 쓰러트려야 할 최종보스라고. 리리카는 스스로의 힘으로 “프리즘리버 악단”을 쓰러트리지 않으면,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어.”

“하지만,” 메를랑의 말. “리리카가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할 거야!”

난 반사적으로 외쳤어.

거실에 발을 들였지.

“한다고 했잖아!”

한번 더 외쳤어.

그랬더니 메를랑이 미안한 듯 나를 향해 눈길을 돌렸어. 하지만, 난 눈을 마주치지 않았지.

“야, 메를랑.” 나는 말했어. “날 그렇게 평가하는 건 좋아. 당연하다 생각해. 하지만 말해둘게. 난 한다면 해. 프리즘리버 악단인지 뭔지, 쓰러트려주지!”

 

루나사가 박수했어.

“뭐, 그렇다고 한다, 메를랑. 그렇담, 우리가 할 일은 정해졌지. 리리카가 우리를 쓰러트리려 한다면, 철저히 역습 해줘야만 해.

그게 최종보스의 임무이고, 무엇보다 프리즘리버 악단이 환상향의 탑 뮤지션이잖아. 상대가 동생이든 뭐든, 넘게 만들 생각은 없어.”

 

“훌륭해.” 나는 말했어. “훌륭해, 루나사. 네 목만큼은, 언젠가 반드시 따주지.”

“훌륭하군, 리리카.”

루나사가 말했어.

“하지만, “언젠가”같은 시시한 얘기는 관둬라. 이미 네 사운드란 걸 찾아냈지?”

“으…응.”

스스로의 사운드라고 해도, 루나사나 메를랑과 경쟁하려면 그걸 몸에 새겨야 하지만.

“바…반드시, 언니들을 넘을 거야. 이제 루나사가 어쩌고 할 때가 아니라고-!”

우와.

말해버렸다.

말해버렸어 나.

 

“호오. 그거 들어보고 싶군. 동생을 너무 칭찬하는 것도 뭐하지만, 역시 너도 프리즘리버 소령이구나.”

루나사가 진심으로 감탄한 듯이 말했어.

큰일이다, 난 루나사 머리 속에서 엄청난 ‘잠든 사자’같은 평가를 받았나 봐.

뭐야 이거, 정말 기쁘잖아…

정말로 날 ‘프리즘리버’라고 생각해준 거잖아…

이래서야… 이제 와서 ‘허세 부려봤어, 미안 언니.’같은 소린 못하잖아…

루나사의 기대에 어떻게든 부응해주고 싶어…!

“그렇다면 리리카, 이걸 봐봐.”

“뭐…뭘?”

 

“TV야. 지금 보이는 이 하찮고 싼티나고, 정말이지 멍청해보이는 TV방송—“

루나사가 가리킨 TV화면은, 아까 전 요괴의 산 방송국에서 인간 마을의 방송국으로 바뀌어있었어. 하지만 내용은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아. 비슷한 음악방송.

환상향에 둘 뿐인 방송국은 시청률을 겨루는 라이벌이야. 매일 비슷한 방송을 내보내고 있어.

“—알겠냐. 내일 요괴의 산 방송국 주최로 아이돌 그룹의 결성식이 있어. 이 인간마을의 방송국은 그에 대항해서, 하찮고 싼티나는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지.

‘전 환상향 발리투도 뮤직 라이브 데스매치’라더군. 모든 장르의 음악가를 불러 라이브를 시켜서 관객에게 채점하게 하고, 점수가 높은 녀석이 우승하는 어이없는 야단법석 콩쿨이야.

프리즘리버 악단도 불렸지. 참고로, 일반참가자도 아직 모으고 있을 거다.”

 

루나사가 뻔뻔히 웃으며 눈을 맞췄어.

“덤벼라, 리리카. 우리들, 소령이라는 떠드는 것 밖에 능력이 없는 존재에겐 아주 안성맞춤이면서 어이없는 무대가 되겠지. 일반참가자로 참가해라. 승부하자. 네 사운드로, 도전해라.”

 

어쩔 거야. 이런 승부 이길 수 없을 텐데?

게다가 프리즘리버 악단에게 내가 진다면, 온 환상향 사람들에게 ‘프리즘리버에서 나간 리리 뭐시기 씨가, 프리즘리버에게 처발렸다. 존나 꿀잼’처럼 놀림거리가 되겠지.

일부러 내게 기대해준 루나사를 실망시킬 거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아직 내일까지 시간은 있어.

혹시 그 때까지 용기의 사운드를 내 것으로 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될지도 몰라.

아니 그야, 꽤 절망적이긴 한데…

하지만.

언니들을 넘기 위해 집을 나온 거잖아. 프리즘리버 악단을 쓰러트리기 위해서잖아.

그렇담, 승부에 도전했다가 지는 것도 각오는 했을 테다. 창피를 당한다고 해도, 그게 뭐 어쨌는데.

거기다 혹시, 굉장히 낮은 확률이지만, 내가 루나사 일행에게 이긴다면…

언니들을, 루나사를, 반드시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기쁘게 만들어줄 수 있어.

 

“그래, 할게.”

말은 그걸로 충분했어.

서로 동시에 시선을 떼고, 마음 속으로 이별했어.

작별이다, 루나사.

나는 지금 영원히, 영구히, 미래영겁, 프리즘리버 악단이 아니게 되었다.

 

어서 돌아가자.

여긴 이제 내 집이 아니야.

“잘 있어. 언니들.”

난 현관까지 가능한 한 당당히 복도를 걸었어.

그래서, 가능한 한 당당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지.

그리고 당당히, 하늘로 날아오르려던 때였어.

“잠깐, 리리카.”

메를랑이 불러세웠어.

“아까 했던 말, 미안해.”

 

“신경 쓰지마 메를랑. 내 평가로는, 그게 적당해.”

“하…하지만, 나도 기대는 하고 있어.”

“응, 고마워.”

 

메를랑이 한 말이 진짜인지 어떤지는… 이렇게 눈을 맞대고 얘기해도, 제대로 알 수 없었어.

하지만, 메를랑을 원망하거나 해선 안돼. 날 누구보다도 사랑해주고, 루나사보다도 걱정해주고 있을 뿐이야.

이 녀석 눈에 비친 ‘믿음직스럽지 못한 동생의 모습’도 틀림없이, 나 자신일 거다.

 

“아, 그래서 리리카, 모처럼 집에 돌아왔으니, 선물이라도 가져가. 이제부터는 매일 얼굴을 볼 수는 없을 테니까.”

메를랑이 내민 건, 케이크가게 커다란 종이상자였어. 묵직한 대용량이야.

“네가 좋아하는 케이크가게 푸딩이야.”

“고…고마워.”

 

“있지. 딱히 싸우는 사이도 아니고, 편한 마음으로 집에 놀러 와…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지?

‘돌아’오라는 말도 더 이상은 아니겠지. 우릴 만나러 와도 돼. 가족이니까.”

 

“으…응. 딱히 언니들을 원망하거나, 그런 게 아냐. 지금도 가장 존경하는 상대라고. 단지, 지금은 그게…건방져 보일지도 모르겠는데. 라이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생각하고 싶어. 나 같은 게, 주제넘는다고 비웃어도 돼.”

 

“비웃지 않아.”

메를랑이 말했어.

“절대 비웃지 않아. 하지만, 승부는 대강할 생각 없어. 리리카가 진심으로 덤빈다면, 우리도 진심으로 해줘야지. 그렇지?”

 

“당연하지. 안 그러면, 너희에게 이겨도 의미가 없어.”

“그럼 리리카, 잘 지내. 내일, 기대할게.”

“메를랑도 잘 지내. 그럼, 다녀올게.”

“응, 다녀오렴.”

 

 

 

 

마을의 TV 방송국에 가서 ‘전 환상향 발리투도 뮤직 라이브 데스매치’란 거에 엔트리했어.

등록명은 ‘리리카 프리즘리버’가 아냐. 그냥 ‘리리카’지.

 

 

 

 

“—이렇게 된 거야. 오케이 하타테?”

아파트로 돌아와서, 하타테에게 경위를 설명했어.

선물로 받은 푸딩을 테이블에 늘어놓으면서.

 

“으…응. 리리카네 언니들이 최종보스고, 쓰러트려야만 한다는 건 알겠는데. 그런 엄청난 이벤트에 나간다니, 두근두근 하네…”

하타테는 이벤트 팜플렛을 읽으면서, 끄덕끄덕 끄덕였어.

“아, 있잖아, 이거 우승상금 꽤 크네. 네 악기 다시 살 수 있는 거 아냐?”

 

“진짜? 상금 얼마나 나오는데?”

팜플렛을 들여다보니, 상금액이 내가 린노스케한테 준 금액의 대강 세 배는 됐어.

“야, 이 만큼 돈이 있으면, 악기 사는 것만이 아냐. 하타테의 신문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는 거 아냐?”

 

“그…그렇지. 자기 인쇄소도 가질 수 있어. 하지만 괜찮으려나… 난 그냥 리리카에게 신세만 지고. 혹시 우승할 수 있어도, 이런 돈은 받을 수 없어.”

“하타테는 노래로 내게 힘을 빌려주지. 난, 하타테가 신문을 할 때 스폰서가 되어 힘을 빌려주는 거야. 그걸로 공평하잖아.”

 

하타테는 날 빤-히, 십 초 정도 빤-히 봤어.

끄덕, 굉장히 순수한 눈으로 끄덕였어.

그래서.

“뭐…뭐어, 이거 쓰라고.” 하며 쿠션을 하나 빌려줬어. “그리고, 이쪽 고급 주거공간에서 생활하는 것도 허가해줄게. 인형도 안아도 좋아. 이걸로 공평하지?”

“공평이고 뭐고, 내가 방의 주인이잖아. 네가 제멋대로 굴었을 뿐이고.”

“으…시끄럽긴. 하…하지만, 리리카…그…고마워. 같이 살게 해주는 건, 고마워해줄게. 하지만, 돈까지 그러는 것도…정말로 괜찮아?”

“기분 나쁘니 사양하지 말라고, 하타테 따위 당당한 표정으로 ‘내 몫은 90%고 리리카는 10%, 이걸로 좋지? 아, 역시 98%가 좋겠어’같은 소리나 하는 게 어울리니까 말야.”

“뭐…뭐야, 내가 감사한다고 말해주는 거니까, 진지하게 받아들이라고.”

비위가 상한 양 하타테는 창 밖으로 얼굴을 향하면서, 푸딩을 스푼으로 입에 떠 넣었어.

그러더니.

“이건…”

하타테는 굉장히 미묘한 표정을 지었어.

왜 그러나 싶어서, 나도 푸딩을 한입 먹어봤어.

이상한 맛… 마치 두부달걀찜에 캐러멜을 끼얹은 듯한 맛이었어.

“있잖아, 리리카. 왠지 이 푸딩, 두부달걀찜에 캐러멜 끼얹은 것 같은 맛 나지 않아…?”

 

난 끄덕였어.

“아니, 이거 그거잖아. 푸딩 컵에 두부달걀찜 넣고, 캐러멜 끼얹은 거잖아. 맛 없진 않지만. 푸딩이라고 기대하고 먹으면, 왠지 굉장히 실망하게 되는 장난.”

이래서 메를랑은… 지금쯤 그 녀석, 혼자서 깔깔 웃고 있겠지. 뭐가 재미있는 거야 이런 게.

 

“이…있잖아, 너 이거 선물로 언니한테 받은 거지?”

“뭐…그렇지. 머리 빠밤-한 메를랑이 하는 장난을 일일이 신경 썼다간, 머리가 벗어지니까 관둬.”

“꿈을 안고 집을 나간 동생에게 가짜 푸딩을 주다니… 자매는 그런 게 아니잖아…”

“메를랑 나름대로 조크로 격려해줄 생각인 거야. 뭐랄까, 나랑 루나사는 옛날부터 사제(師弟) 같은 분위기인데, 메를랑이랑 나는 소꿉친구 같은 분위기라서 말이야.

둘이서 떠들어서 루나사한테 혼나거나 그럴 땐, 잘 감싸줬지. 그래서 지금도, 어떤 의미로 루나사보다 날 더 걱정해준다고 생각해.”

 

“아하, 그런 거구나. 형제가 있는 건, 좀 부럽기도 하네. 나도 오빠 같은 거 있었으면.”

“뭐, 메를랑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빅하게 되어야지. 그래서 일단, 이 두부달걀찜 푸딩을 저녁밥으로 하면 되지 않으려나.”

“밥은 제대로 된 걸로 준비할 수 있도록 하자고. 또 노상라이브로 생활비 벌어야지. 그런데, 리리카의 악기 준비는 됐어?”

 

“응, 이 방에 들여놓을 수가 없어서, 아파트 다른 방에 뒀어”

“멋대로 그런 짓을 했다간, 집주인한테 혼날 거야…”

“악기도 홀로 있고 싶어하는 녀석이 있으니 어쩔 수 없어. 같이 방에 있으면 위험한 녀석도 있고. 사이가 안 좋은 녀석들도 있으니까 말이야.”

“엑…악기 주제에?”

“응. 악기의 유령이니까. 츠쿠모가미 같은 자아는 없지만, 의사나 감정은 있어. 근처 202호실에 스타인웨이 CD318을 뒀으니까, 하타테도 매일 두 번 정도 만나러 가줘. 사람을 싫어하는 주제에 외로움을 타거든.

그리고 조심해야 하는 건, 203호에 스트라토캐스터랑 리켄베커 325가 있는데.

가끔-씩 기분이 좋아지는 냄새가 나는 연기 같은 게 문틈에서 새어나올 때가 있을 텐데, 그럴 땐 들어가지 않는 게 좋아. 여러 면에서.”

 

“왜…왜. 그 연기가 뭔데…체포 당하고 그런 거 아니지?”

“그건 뭐, 그거야. 착한 어린이 하타테는 깊게 파고들면 안돼. 자주 있는 일이거든. 그보다 난처한 게 있어.”

“이번엔 뭔데?”

“역시 능력을 쓰지 않고 연주하는 건 불편해서. 내 곡은 혼자서 얼마든지 악기 연주하는 걸 전제로 한 거라, 손으로 연주하기 위해 어레인지하다고 치더라도, 아무래도 부족하단 말이야. 하타테는 뭐 악기 할 줄 아는 거 없어?”

 

“엑, 못 해.”

“진짜냐. 어릴 땐 피아노 같은 거 배웠을 듯한 이미지였는데.”

“옛날부터 문장 한 길만 팠어. 아니 근데 뭐야. 손이 부족하니, 내게 보컬 이외에도 하란 소리야?”

“응. 그런 소리야. 그럼, 이거 담당 부탁할게.”

하타테에게 베이스를 건네줬어. 예전 그 피투성이 하얀 프리시전 베이스.

 

“뭐야 이거, 기타? 현이 너무 적지 않아? 좀 더 뒤죽박죽 하지 않았었나? 네 개밖에 없는데? 아니 됐고, 못해. 갑자기 칠 수 있을 리 없잖아.”

“치는 척 하면서 노래해주는 것 만으로 내가 기분상 편하니까 도움되는 거야. 그림 면에서 베이스라는 건 눈에 띄고, 허세로 좋거든, 이게.”

“치는 척이라니… 왠지 꼴불견 아냐?”

“그리고, 어떻게든 치는 듯한 소리를 낼 수 있는 꼼수를 알려줄 테니까, 흉내만 내보라니까. 그보다도, 가끔 피가 흐르거나 하니까 옷 더럽히고 싶지 않을 땐 조심해”

 

“엑, 피?” 하타테는 무릎 위에 놓인 베이스를 뚫어져라 봤어. “뭐야 이거, 마른 피로 끈적거리잖아. 저주받은 아이템은 아니겠지?”

“아 그거, 피 글자로 ‘Fack’이라는 오자(誤字)가 떠오르는데, 신경 꺼도 돼. 잘 있는 일이니까.”

“무…무서… 싫어, 이런 거 치는 거. 그냥 괴기현상이잖아.”

“하타테도 텐구인데- 최상급으로 괴기스런 괴물이잖아. 괜찮아, 괜찮아.”

“장비하면 벗을 수 없다든지, 마물의 조우율이 높아지는 그런 저주 같은 건 정말로 없어?”

“환상향은 마물밖에 없는 거나 마찬가지고, 그런 저주가 있다면 요괴 남자랑 만남이 늘어나는 거 아냐? 남자친구 만들 기회라고.”

 

하타테의 얼굴이 한 순간 굳었어.

그리고, 빙그레 했지.

그 후 입이 칠칠치 못하게 열려서, 입술 끝에서 침이 질질질-흘렀어. 뺨을 붉히고 “으헤헤.”하며 웃고 있어.

분명 기회주의 120%같은 만남을 상상하고 있는 걸 거야. 소녀만화의 주인공 같은 공주님 뇌로.

 

“할래. 나 할래 리리카. 악기 치는 여자는 멋있잖아. 이벤트에서 우승하면, 남자친구 생길 것 같아. 자자, 뭘 멍하니 있는 거야, 어서 알려줘. 이 베이스인가 하는 기타 치는 법!”

“그…그래.” 번뇌란 건 대단하네.

“그런데, 리리카는 어때?”

“내가 뭐?”

“용기의 사운드 말이야. 언니들에게 승부를 걸 정도고. 역시 한번에 연주가 파워업한 느낌이 드는 거지?”

 

그렇게 자신 고유의 멋을 깨닫기만 한 걸로, 기회주의적으로 파워업할 리가 없잖아. 만화가 아니라고.

하지만 언니들에게 승부를 건 이유는, 그냥 ‘허세와 기세로’같이 설명하기엔 아쉬운 점이 있지.

“마…맡겨만 둬. 나도 일단 프리즘리버의 피를 이어받은 몸이야. 어서 연습 개시다. 하타테, 네 남자친구를 겟하기 위해!”

 

자…자기 자신의 사운드를 내 것으로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

 

 

 

 

그래서, 아파트 뒤쪽 공터에서 하타테와 둘이, 피나는 특훈(주로 저주받은 베이스 때문에)을 시작했음 나우.

하타테에게 허세기술을 가르쳐 나가고 있어. 나는 하타테의 보컬라인을 참고해서, 스스로 용기의 사운드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편곡을 해보기도 하고, 연주에 대해 궁리해봤는데…

하타테의 보컬로 표현되었던 것의 외형만큼은, 나 자신도 재현할 수 있었는데. 마음을 움직일 만큼의 힘은, 아무리 해도 가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루나사의 우울함의 소리나, 메를랑의 들뜨는 소리를 내가 카피해서 연주했던 때와 비슷한 느낌이야.

하지만, 분명히 내 사운드가 용기에 있다는 것 자체는 느낄 수 있어.

하지만, 그걸 표현하려면 뭔가 한 걸음 더—

 

—나의 용기엔 무언가가 부족해.

 

뭐가 부족하지?

하타테는 되면서, 작곡자 본인인 나는 왜 안 되지?

하타테에게 있고, 내게 없는 건 뭘까?

 

“얘, 리리카. 역시 익숙하지 않은 악기로는 연주하기 힘들 것 같아?”

하타테가 걱정스러운 듯 물어왔어.

“네 연주, 오전에 광장에서 했던 것 보다…좀 부족한 것 같아서. 리리카스러움 같은 게 꽤 부족한 느낌도 들고.”

이런 소릴 들을 정도로 글러먹었나 보다.

 

“그…그야 뭐. 나 평소엔 능력 쓰면서 밖에 연주 안 하거든. 어쩔 수 없어.”

그럴 거야 분명.

악기 탓이야. 작곡자 본인이 자신의 곡이 가진 맛을 이끌어낼 수 없을 리 없어.

 

“미안해. 내 빚 갚느라 악기 팔아버렸으니까. 나 때문이지…”

하타테가 갑자기 사과했어.

“신경 쓰지 말라고 했잖아. 그 대신, 네 보컬이 있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이래선…날 위해 리리카가 희생한 것 같잖아. 널 빅하게 만들어줘야 하는데.”

“악기만 돌려받으면 나도 활약할 수 있을 테니, 그 때까지 참아야지.”

 

“그럼 있지.”

하타테가 굉장히 시리어스한 얼굴로 말했어.

“나, 열심히 노래할게. 리리카 몫까지 두 배 열심히 할 테니까!”

평소엔 거만한 주제에, 이런 대사를 쑥스러워하지도 않고 진지한 얼굴로 하는 것도, 하타테라는 녀석의 성격이지.

좋은 녀석이잖아.

친구가 돼서, 정말 다행이야.

 

“응. 부탁할게.”

나도 끄덕였어.

“내일의 승부는 하타테에게 걸려있어. 노래는 완벽하고, 이제 스테이지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가 문제야.”

하타테에게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해도, 뮤지션으로선 새파란 신인이야. 실전에서 긴장하지 않을 리 없어.

오전의 노상라이브처럼 자아도취 해준다면 문제 없겠지만, 혹시나 긴장감에 눌려버린다면, 언니들과의 승부가 어려워져.

 

“지금부터 마을 회장에서 노상라이브 하자. 무대에서의 담력은, 하타테에게 경험을 늘려서 키우는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야. 회장에서 얼마나 잘 노래하는가에, 우승을 노릴 수 있을지 어떨지가 결정돼.

그리고 덤으로, 멋있는 남자가 널 볼지도 모르니까, 기합 넣으라고!”

 

하타테는 크게 끄덕였어.

“맡겨만 둬. 리리카는 마음 든든하게 있으면 돼. 남자친구를 겟하는데 더해서, 환상향 녀석들에게 나의 빛나는 음악적 재능을 보여주겠어. 뭐…뭐어, 취재의 일환으로써지만.”

 

 

 

 

그리고 석양 무렵.

오렌지빛 하늘을, 까마귀가 깍-깍- 날 것 같은 시각.

우리는 환상향 스카이트리 광장에 있어.

마침 야행성 요괴들이 일어날 시간이고, 인간들은 일을 끝내고 번화가로 몰려나올 시간이니까, 마을의 중심인 광장은 엄청나게 혼잡하지.

게다가 그 한가운데인 스카이트리 바로 아래. 거기에 스타인웨이 CD318 같은 악기가 짜잔 놓여있고, 게다가 길가엔 그랜드피아노가 놓여있으니, 다들 엄청나게 주목하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하타테 씨는.

“와…완전 긴장돼… 정말로 괜찮을까, 나…”

아니나다를까, 떨고 있어. 프리시전 베이스를 안듯이 하고.

한편 베이스는, 이제부터 시작될 라이브의 예감 때문에 흥분한 듯이, 기쁜 마냥 부들부들 경련하고 있어.

야 하타테, 아까 허세부리던 위세는 어디 갔어? 같은 소리는 안 할게.

이렇게 될 줄은 알았어.

하지만, 지금부터 기합으로 내딛는 수밖에 없으니까.

 

나로서도 약간 긴장돼.

지금 내 연주의 질은, 능력을 사용할 때의 10% 미만쯤 될 거야.

노상에서 일반인들이 듣기엔 그럴싸해도, 혹시 녹음해서 내가 들어본다면 틀림없이 머리를 싸맬 정도의 레벨일 거라고.

그러니까 오늘의 주역은 하타테야. 나는 보좌만 철저하게 하면 돼.

 

“노 프라블럼이야. 하타테는 보컬에 집중하고, 베이스는 여유 될 때만 하는 걸로 충분하니까.”

난 리켄베커를 어깨에 매고, 앰프의 스탠바이 스위치를 넣고, CD318에 달아둔 야외콘서트용 마이크를 테스트하고, 디리리링 시험삼아 쳐봤어.

지금 연주할 건 피아노가 메인인 곡이지만, 혼잡 속에서 연주한다면 처음 시작은 기타 어레인지로 화려하게 해서 군중을 주목하게 만드는 게 좋아.

“오전에 했던 텐션으로 하면 될 뿐이야. 스스로를 믿어. 하타테의 목소리는 최고였어.”

 

“하…하지만 그때 난, 노래에 빠져있었고…”

하타테는 완전히 굳어버렸어. 시선도 불안정해.

이 녀석, 평소엔 자신만만하게 떠들어대는데, 사실 ‘나 같은 건 아무것도 못해’같은 소리나 하는 녀석이란 말이야.

‘진짜 하타테’는 자신감 따위 1밀리도 없고, 오만 가득한 태도도 겉치레로만 있을 뿐이야.

답 없는 자기자신이라는 걸 자각했기 때문에, 겉치레나 허구라도 좋으니 자신에게 용기를 주지 않으면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녀석이라 생각해.

남들은 그런 걸 꼴불견처럼 볼지도 모르겠지만, 난 꼴불견이라고는 절대 생각 안 해.

 

“그러면.”나는 말했어. “빠져버리라고. 내가 너에게 용기를 줄게.”

하타테는 완전 긴장해서 인형처럼 끄덕 끄덕였어.

“야, 하타테, 주위를 보라고. 이 광장에 몇 백 명 있지?”

 

“셀 수 없을 정도야… 몇 천 명은 있는 것 같아.”

“하지만 이 녀석들, 어차피 개인으로서의 우리는 하나도 모른다고. 네가 오늘 스스로에게 절망했던 일이나, 내가 필요 없는 애였던 것도 전부 다 몰라.

환상향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를 그냥 주위에 굴러다니는 개뼈다귀 정도의 가치로 느끼지.”

 

“그러…겠지.” 하타테는 끄덕였어. “우리는 이 세상 누구에게도 필요 없어.”

“그래, 세계는 우리 없이도 여유롭게 굴러가지. 그게 용서가 돼?”

하타테는 어떻게 답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이, 내 눈을 들여다 봤어.

그래서 난 말해줬지.

“난 싫어. 용서가 안 돼. 날 무시하고 제 멋대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이 세상이란 새끼를 용서할 수 없어. 나도 데굴데굴 섞여보자 이거야. 넌 어때?”

 

하타테는 또 끄덕였어. 망설였지만, 분명히 끄덕였어. ‘용서 못해’라고 작은 소리를 냈지.

 

“야 하타테. 안 들리는데. 그래선 아무도 못 들어.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걸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 더 큰 소리로 말하는 거야.”

“요…용서 못해애…”

“안 돼. 더 크게 외쳐. 안 그러면 이 세상이란 새끼한테 들리지 않는다고!”

“용서 못해!”

엄청난 외침.

우리를 주목하던 녀석들은, 엄청난 음량에 깜짝 몸을 떨었고, 그리고 우리를 무시하고 걸어가던 보행자들도 대체 무슨 일인가 싶은 듯, 하타테에게 눈길을 향했어.

 

“오케이, 야, 봐라. 세상 새끼들이 하타테를 보고 있어. 지금부터 저 녀석들에게 한 방 먹여주자고. 목덜미 움켜잡고 ‘우린 여기에 있다!’고 외쳐주는 거야. 무시당한 빚을 갚아주는 거야.

우리의 사운드를, 환상향이 귀로 트림할 때까지 때려 박아주는 거야. 우리 둘이라면 할 수 있어. 자, 세계 한가운데에 뛰어들 준비는 됐나?”

 

아래를 보던 하타테의 눈이 앞을 향했어. 끄덕였어. 표정이…바뀌었어.

앞으로 내딛어 전진하기 위한, 전투적인 얼굴.

 

“좋아, 하타테. 마이크 스위치를 켜라. 그것이 나와 너의, 진정한 인생을 시작하는 신호다!”

그런데 하타테는 마이크 스위치를 켜지 않고, 주머니에서 폰카를 꺼냈어.

그리고, 나를 향해 빙그레 웃으면서.

“얘, 리리카, 지금 너, 굉장히 좋은 얼굴을 했어.”

“어?”

찰칵. 기습이었어. 완전 함부로 클로즈업돼서 얼굴을 찍혀버렸어.

“후후, 좋은 그림이 나왔어.”

“참나, 간만에 열 올랐는데 힘 빠지는구만.”

“편안하게 가자고. 용기를 얻었어. 고마워.”

하타테가 마이크 스위치에 손을 대고, 아이 컨택트.

그리고, 아무런 말도, 망설임도 없이.

 

ON.

 

그때부터 시작된 건, 우리들의 영혼을 담은 한판이었어.

야, 세상이란 놈아, 널 박살내러 왔다. 이런 식의 기합으로, 난 기타를 켰어.

하타테는 마을 전체가 격렬히 떨릴 정도의 성량을 쥐어짜 노래했어.

처음 0.5초 연주한 것 만으로 느꼈어.

하타테의 컨디션은 최상이야. 망설임이나 부끄러움이나 긴장 같은 게 싹 가셨어.

오전에 들려줬던 노래가 원석이라면, 지금 노래는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야.

광채의 차원이 달라.

연습할 때 내가 필사적으로 내려고 했던 용기의 사운드를, 아주 간단히 자아내고 있어.

광장에 있는 몇 백인지 몇 천인지 모를 군중의 발소리가 멈췄어. 하타테의 노래를 위해 발을 멈췄어. 하타테를 주목하고 있어.

 

정말로 나한텐 없고, 하타테한텐 있는 게 대체 뭘까?

정말로 악기 탓뿐일까?

혹시, 더 단순하게, 나보다도 하타테가 음악적 재능이 있다든가 그렇다면…

지금의 난 결국 뭐야?

하타테한테 의지해서 언니들에게 승부하는 나는, 대체 뭘 하려고 하는 거야?

아니, 안 돼, 안 돼.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가 아냐. 그냥 해도 익숙하지 않은 손 연주다. 집중력이 흐트러져선 안되지.

 

하타테는 이젠 여유롭다는 듯이, 베이스 현에 손가락을 대고 코드를 누르기 시작했어. 그리고 마침내 연주하려던 때야.

그 피투성이 하얀 프리시전 베이스는, 하타테의 양팔에서 스르륵 빠져나와 공중재비를 하더니, 맨 앞줄 관객 앞에 피 글자를 드러내기 시작했어.

하타테는 놀라면서도 노래를 계속 하지만.

이 베이스는 ‘Fack’라는 문자를 드러내더니, 스스로의 잘못을 깨달은 듯이 ‘a’를 ‘u’로 고치려 했지만, 피에 젖어 축축한 나머지 잘 되지 않았어. 그리고 빡친 것 같은 소리를 내더니, 왜인지 가까이 있던 인간 남자를 후려갈겼어.

 

무슨 짓 하는 거냐 너, 하고 생각했더니 프리시전 베이스가 이쪽을 향했어.

그리고 그 녀석은 엄청난 기세로 내가 치고 있는 리켄베커 325를 향해 몸통박치기를 했지.

그리고 프리시전 베이스는 이런 피 글자를 하얀 몸체에 나타내는 거야.

 

‘Fack shit Beetles. Facking shit JL’

그게 또 오자였던지 ‘Beetles’를 ‘Beatles’로 고치려 했지만, 역시나 축축해서 잘 안된 나머지 또 빡친 듯한 소리를 내더니 덤벼드나 했는데.

 

그보다 빨리 리켄베커 325가 빡쳐버렸어.

 

리켄베커는 스트랩을 찢더니, 내 어깨에서 빠져나와 발정기 수컷 친칠라가 암컷 치와와에게 달려드는 듯한 무시무시한 기세로 프리시전 베이스를 후려갈겼어.

뭐랄까, ‘아, 이 새끼 평소엔 마일드한 소리를 내는 주제에, 누군가를 때리는데 굉장히 익숙한 무투파구만’같은 메시지가 바싹바싹 전해져 오는 깔끔한 풀스윙이었어.

평범한 악기라면 산산조각이 났겠지만 놈들은 모두 영체야. 앰프가 박살 날듯한 큰 소리를 냈어.

프리시전 베이스가 날아가고, CD318의 옆을 스쳐서 그 뒤에 뒀던 다른 악기들을 향해 무섭게 돌진.

 

그 일로 더욱 빡친 건, 부딪힌 악기들이야.

어떤 놈은 프리시전 베이스에게 뭇매를 퍼붓고, 어떤 놈은 리켄베커를 후려갈기려다가, 거꾸로 날려가고. 그리고 또 다른 악기와 부딪혀서, 또 그 놈들끼리 치고 받기 시작했어.

“야…야, 그만해 이것들아!” 라는 나의 말을 들을 리가 없지.

이미 대난투 스매쉬악기즈 상태야. 너나 할 것 없이 보코스카 워즈. 관객까지 섞여있어.

소음이 엄청나. 그 안에서도, 하타테는 무반주로 노래를 계속하고 있어. 불안한 듯한 시선을 보내네.

괜찮아, 그대로 계속해, 하타테.

 

그리고.

혼자만 대난투에 나 몰라라 하는 피아노 CD318. 이 녀석으로 연주를 계속 하려고, 나는 건반에 손가락을 올렸는데.

어라?

움직이지 않아. 건반이 말이야. 고장 같은 게 아냐. 피아노가 내 손가락을 거부하고 있어.

왜 그래? 왜 이런 타이밍에 저기압인 거냐, 넌. 아까 하타테의 연습 때 반주할 적엔, 멋들어진 소리를 냈잖아.

이렇게 된 이상, 나도 트윈보컬로 간다. 고 생각하고 마이크를 쥐어봤는데, 왜인지 무서운 한기가 느껴졌어.

보컬이라면 나도 익숙하지.

하타테랑 같은 수준으로 부르는 건 어렵진 않을 거야. 오히려 가창기술만으로 따지면, 내가 위일 거다.

하지만…하지만 말이야.

혹시 이걸로도 하타테랑 같은 용기의 사운드를 재현할 수 없다면—

 

그런 생각이 들었어.

두려워서 마이크를 쥐어도 노래할 수 없었어.

그랬더니 있지.

정신차려보니까

하타테의 독창이 클라이막스로 접어들었어.

왠지 하타테의 노랫소리 이외의 소리가, 소음이, 전부 없어졌어.

다들 하타테의 노래를 집중해서 듣고 있는 거야.

 

어쨌든 집중해서 듣고 싶어지는, 설득력의 덩어리 같은 보컬라인.

 

대난투가 완전히 멈춰있었어. 악기들이 하타테를 주목하고 있어.

그 프리시전 베이스조차도, 지면에 예의 바르게 눌러앉아서 하타테의 진지한 옆 얼굴을 올려다 보고 있었어.

몇 천 명의 군중이,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듣고 있어.

나도…나도, 이제부터 내가 코러스를 넣으려던 것 조차 멋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내 마이크 스위치를 껐어.

자연스럽게 그렇게 해버렸어.

굉장한 패배감이 몰려왔지만, 그런 건 상관 없을 만큼 하타테의 노래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야.

 

어디선가 피아노 반주가 시작됐어. 믿을 수 없지만, CD318이었어. 난 능력을 쓰지 않았지.

CD318은 하타테의 노래에 굉장히 감격한 듯, 스스로의 의사로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했어.

거기에 펜더 스트라토캐스터가 애드립으로 반주를 시작했어.

리켄베커 325도 스트라토캐스터의 리드에 맞추기 시작했지.

피투성이 프리시전 베이스조차도 그랬지(실력은 안 좋았지만.)

다른 악기들도 모두 한결같이, 스스로의 의사로 소리를 내기 시작했어.

 

하타테의 노랫소리가, 회장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었어.

 

그리고, 그런 수 분이 지나고, 하타테가 노래를 끝냈어. 완전한 무음만이 남았지.

바람조차 불지 않았어. 바람조차도 불기를 피하는 것 같았어.

무음이 그렇게 10초 정도 지나고 나서, 마침내 박수가 터져 나왔어. 큰 환호성도 동시에.

 

난…난, 어쩌면 좋을지 알 수 없었어.

솔직히 ‘졌다’는 게 솔직한 감상이었지.

방금 하타테가 한 걸 나도 할 수 있을 자신이 있냐면… 그 답은 마이크를 끈 시점에서 나왔지.

안 되면 어떡하지…라면서 무서워서, 어쩔 수가 없었어.

나는…나는…나는…

지금의 난, 대체 뭘까?

 

“어땠…어?”

하타테가 쭈뼛쭈뼛 물어왔어.

“나, 리리카한테 도움 될 것 같아?”

이런 걸 진지하게 물으면…

 

“다…당연하지 하타테. 넌 굉장해. 분명히 특별한 재능이 있는 거야.”

이렇게 칭찬할 수밖에 없어.

그랬더니 하타테는 쑥스러운 기색도 없이, 자만한 기색도 없이, 그저 순수하게 기분이 좋은 듯 웃었어.

이 녀석, 이렇게 솔직하게 웃을 수 있었구나…싶을 정도로, 정말 좋은 얼굴이었어.

그걸 보니, 난 굉장히 복잡한 기분이 되어버렸어.

소중한 친구인 건 틀림없는데, 질투나 그런 게 내 마음 안에 뭉게뭉게 솟아오르는 걸 느꼈지.

그런 걸 느끼면 안되잖아. 이 녀석은 날 위해 노력한 거라고.

내 안의 안 좋은 감정을 뿌리쳐야만 해.

 

그러니까.

“카메라 빌려줘 봐.”

라고 말했어.

난 하타테의 주머니에서 카메라 달린 휴대전화를 꺼냈어.

그리고 하타테의 얼굴을 완전 클로즈업해서 셔터를 눌렀어.

“좋은 표정 짓고 있어, 하타테.”

“으…응. 그러…구나. 리리카도 좋은 표정이야.”

 

어떻게 답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그래서 난, 하타테의 손을 쥐었어. 꽉, 쥐었어. 하타테도 내 손을 쥐었지. 악수. 완전 세게 악수.

이 녀석이랑 함께라면, 반드시 어디까지라도 올라갈 수 있어.

우리는 분명 “빅”하고 “카리스마”있게 될 거야.

그렇게…생각해.

그렇게…생각하고 싶어.

 

“대단해!” 남자의 큰 목소리가 들렸어 “아니 정말로, 진짜로 대단해.”

사람 울타리 속에서, 하얀 슈트를 입은 남자가 박수를 치며 걸어 나왔어.

그 녀석은 코가 높은 텐구, 큰 코 텐구(하나다카 텐구, 鼻高天狗)라는 녀석이야. 멋쟁이 중년.

뭐야, 또 하타테랑 아는 사이인가?

 

“환상향에 이런 재능을 가진 가희(歌姬)가 묻혀있었다니, 정말로 미라클, 전 서프라이즈 입니다.”

라면서 수수께끼의 하얀 슈트 멋쟁이가 나오더니, 갑자기 하타테의 양손을 꽉 쥐었어.

“그대야말로 내가 찾던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야. 당신 말이죠, 지금부터 내가 프로듀스하는 그룹에서 49번째 탑 아이돌이 되지 않을래요?”

하타테에게 완전 얼굴을 가까이 하네. 높은 코로 입술을 찌를 정도로.

야, 그만해 아저씨. 헌팅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확 갈겨버린다? 우리 하타테는 외모는 그렇다 치고, 성격은 꽤 빡세다고.

 

“어, 저…저기…”

하타테 녀석, 손이 잡혀서 화내려나 했는데, 왜 저러는 걸까.

왠지 꾸물대고 있잖아. 뺨에 불까지 켜고. 길고 큰 코를 바라보고 있어.

혹시…뭐야 하타테, 설마 이런 숙성된 연상이 취향이고 그런 건 아니겠지.

파더콘이나 그런 거냐 너.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그건 그렇고, 누구세요?...”

 

“아 참. 실례했군요. 부킹입니다. 전 쏘리합니다.”

하얀 슈트의 멋쟁이가 하타테에게 명함을 건내줬어.

하타테는 그걸 몇 번이고 읽고는.

“에…에엑-!”

마이크 켜놓은 것도 잊고, 커다란 목소리로 놀라버렸어.

 

“왜…왜 그래 하타테, 그 아저씨 누군데?” 뭐, 물어봤지.

“그…그냥 아저씨가 아니야!”

“응? 그럼 이상한 아저씨야?”

“바보야. YKM48의 프로듀서라고!”

“그게 뭐였더라?”

“알잖아. 이번에 요괴의 산에서 결성되는 아이돌 그룹. 엄청 빅 프로듀서야!”

 

“다시 말해, 그렇단 겁니다. 하타테 양 씨”

멋쟁이 프로듀서는 하타테에게 끄덕 인사했어.

“당장 결정해 달라면서 확확 서두르진 않겠지만, 내일 오후 한시부터 결성이벤트까지가 타임리미트입니다. 그 때까지 연락해주면, 기쁜 패션 저는 헤븐입니다.

하타테, 그대라면 내일부터 센터를 맡겨줄 수도 있어. 응, 900%정도지.”

 

“어, 저기…”라고 하타테는 망설이면서 “오후 한시는 마침, 뮤직라이브 데스매치가 시작할 시간이고, 그…스카우트 되는 건 저 뿐인가요? 리리카는?” 이라 되물었어.

프로듀서는 내게 눈을 향하고, 유감스러운 듯 고개를 흔들며

“제가 아이돌로 만들고 싶은 건, 지금은 당신뿐입니다. 하타테 양 씨.”

“하…하지만, 전 신문기자고… 아이돌은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신문대회에서 우승하는 게…꿈이니까.”

 

“그럼, 그렇군요. 좋은 기획을 떠올렸습니다.”

프로듀서는 팡 손뼉을 쳤어.

“신문기자 아이돌이라는 신 장르는 어떨까요? 우리 그룹은 결성 전부터 엄청난 화제가 되고 있으니, 자네 신문의 구독부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고. 아이돌 그룹의 센터가 신문을 쓴다는 건, 캐릭터로도 재미있으니까요. 신문대회에서 우승하는 것도 충분히 노릴 만 하지 않습니까?”

 

“부…분명히…그렇지만…”

하타테는 꿀꺽, 마른 침을 삼켰어.

야…야, 이 프로듀서인지 뭔지 하는 거, 빅한지는 모르겠는데. 잠깐 기다려봐.

“얌마, 코 큰 새끼!”

난 하타테와 멋쟁이의 사이에 비집고 들어갔어.

“하타테는 우리 밴드의 멤버야. 멋대로 스카우트하지 말라고.”

 

멋쟁이는 날 향해 불쌍하다는 듯한 눈길을 보냈어.

“하타테 군의 재능과 꿈을 이런 장소에 묻어둬선 안됩니다. 그녀가 인생에서 손실을 입을 뿐 아니라, 환상향에 있어서도 손실일 테니.”

“뭐야 그 눈은, 아저씨. 내 밴드는 하타테에겐 아깝다는 거냐? 아이돌그룹 따위로 정크푸드 같은 곡을 부르게 하는 게 훨씬 아깝잖아.

난 하타테와 진짜 음악을 할거야. 네 YKM인지 하는 게 피라미로 보일 정도로 빅하게 돼서, 하타테의 꿈도 이뤄줄 거라고!”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저도 말해야겠군요. 음. 아티스트 “예술가”를 자처하는 건 좋지만, 정말로 그렇게 되는 건 어렵습니다. 왜냐면 음악이란 건, 악기끼리 치고받게 만드는 구경거리가 아니잖습니까?

그 악기들이 연주를 시작한 것도,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타테 군을 위해서죠.

그렇다면 당신은 아까 뭘 할 수 있었단 겁니까. 곡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기타 연주가 참혹한 탓에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선 정크푸드의 첨가물로 하기도 무리지.

평가할 수 있는 건, 자신의 마이크를 끈 것뿐. 음악가 나부랭이라면, 자각할 수 있었겠죠?”

 

반박해주고 싶지만.

썩을, 이 녀석이 하는 말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맞는 말이라, 나도 알고 있다고 이 새끼야

 

“재능은 살려야만 할 때가 있는 겁니다. 하타테 군의 그것을, 전 올바르게 다룰 자신이 있죠. 제 커리어가 그걸 보증할 수도 있고.

하타테 군에게 있어, 아이돌그룹은 통과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녀는 틀림없이, 거기서 크게 날아오를 겁니다. 진정한 아티스트 “예술가”로서, 제가 날아오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신문기자로서의 꿈도 확실히 이루어줄 수 있겠죠.

그럼 자네는 어떻습니까, 그녀의 재능을 올바르게 다룰 수 있습니까? 그리고 아이돌그룹의 센터가 신문을 쓴다는 것 이상으로, 그녀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보증 가능합니까?”

 

잠깐 기다려.

그건 치사하잖아.

난 이제부터 올라갈 거야.

제대로 올라갈 수 있으리란 보증 같은 게 있을 리 없지.

아까 그런 보기 흉한 연주로 악기들이 대난투하게 만들고, 하타테의 노래에 구원받은 라이브를 한 직후지.

‘하타테의 재능을 올바르게 다뤄주지’라든지.

‘신문의 스폰서가 되어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준다’같은 걸 가슴 펴고 답할 수 있을 리 없지.

하지만…하지만.

 

“나…나도 내일 이벤트에서 우승할 거라고. 프리즘리버 악단을 쓰러트릴 거라고. 뿅 나온 신 밴드가 환상향 넘버원 뮤지션을 쓰러트리면, 아이돌 그룹에 들어가는 것 보다 훨씬 큰 화제를 가져올 신문 소재가 되잖아. 그러면 하타테의 꿈을 이뤄줄 수 있어.”

 

“그러니까, 당신이 프리즘리버 악단에게 이긴다는 근거는 어디 있습니까? 방금 그 연주로 우승할 수 있다는 보증은?”

“한다면 한다니까. 할 수 있어. 반드시…할거야.”

괴로워서 답한 목소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순간 중, 아마도 가장, 엄청나게 꼴불견이고 글러먹었을 거야.

 

프로듀서는 슬픈 듯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그렇군요. 기껏 해야 하타테 군이라는 천재에게 기생해서, 하타테 군의 인생을 쓸데없이 소모하는 것뿐이겠죠.”

“뭐…뭐라고, 이 새끼가…”

반사적으로 그렇게 답해줬지만, 내 목소리는 굉장히 떨렸어.

 

내가 하타테에게 기생해?

야 잠깐, 설마 그런 게…

아니, 빙고잖아.

아까 전 연주도 그렇고, 바로 그거야.

지금의 난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프리즘리버 악단에 있던 때와 똑같잖아.

언니들이라는 천재에게 기생하지 않기 위해 집을 뛰쳐나왔는데, 또 난 남의 재능에 기생하려고 했었나?

 

YES

 

아하하…이거 웃어넘길 수 없네…

 

“그럼 전 바쁘니,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하타테 군,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합니다.”

멋쟁이는 인파 속으로 달려갔어.

그 등을 향해 뭐 한마디라도 해주려고 했는데, 하나도 반론할만한 여지가 없어.

아연실색했어.

정말로 어깨가 축 늘어졌어. 무릎도 털썩 힘을 잃고, 콘크리트 위에 주저앉아버렸어.

 

“리…리리카, 뭘 기죽고 앉아있는 거야?”

하타테는 날 흔들고 있어.

“그렇게 하고 싶은 말만 하게 두고, 참 한심하네. 반박했으면 좋았잖아!”

 

“반박할 수 있을 리 없잖아. 그 아저씨가 옳아. 저 녀석한테로 가, 하타테.”

하타테는 화난 듯이 눈을 치떴어.

“바보 아냐? 난 너랑 올라가겠다고 정했거든. 자, 오늘은 밴드의 빛나는 출발일이니까, 결성식 하러 가자.”라며 돈이 가득한 베이스 케이스를 들어 올렸어.

 

“결성식?”

내가 고개를 기울일 틈도 없이.

“그래, 밴드 결성식이야. 따라와.”

하타테에게 팔을 붙잡혀서 끌려가버렸어

 

 

하타테한테 뭐라 말할 기력도 없었어.

아니, 정신적으로 찌부러졌지. 꾸깃꾸깃.

이제 아무렇게나 되란 심정으로, 하타테에게 끌려가는데 몸을 맡겨버렸어.

그리고 도착한 곳은, 낡은 아파트 근처에 있는 싸 보이는 술집이었지.

 

 

나랑 마찬가지로 글러먹은 녀석이고, 마찬가지로 비참하다 여겼던 녀석이 있었다.

난 그 녀석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줄 생각으로 친구도 되었다.

나밖에 이 녀석의 꿈을 이루어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애초에 나보다 훨씬, 훨씬 위에 있던 거야.

그 녀석이 자신의 재능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그 녀석은 이미, 스스로의 힘만으로 꿈을 이룰 수 있다.

 

그럼 난, 대체 뭐야?

출발점으로 돌아왔어.

그냥 필요 없는 애야.

 

“얘 리리카, 뭘 어두운 얼굴로 혼자서 생각에 잠겨있는 거야. 자, 오늘 밤은 축배를 들 거니까. 좀 더 즐겁게 하란 말이야!”

 

술집에 울려 퍼지는 얼근히 취한 하타테의 큰 목소리와 동시에였어.

갑자기 하타테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내 코를 붙잡았어. 그래서 난 강제로 홱 천장을 향하게 됐지. 입에 맥주잔 같은 게 닿더니, 레몬 츄하이가 흘러나왔지.

한번에 4리터 정도.

“으가걱걱걱걱!”이라고 난 울었어.

“어머, 피쳐가 비어버렸네.”

내 목구멍에 흘러 들어온 건 피쳐 하나 가득이라는 거구나.

야 너, 피쳐 채로 남에게 술을 먹이다니, 보통은 상대한테, 보통은 영체가 아니라면, 보통은 죽는다고 보통은. 너네 텐구의 주량을 기준으로 하는 건, 보통 그만둬야 하지 않겠냐.

“이모, 한잔 더♪”

하타테가 35번째 피쳐를 기쁜 듯이 주문하는 것과 동시에.

 

“부훕-!”

난 기관에 찬 츄하이를 뿜어버렸지만, 산소결핍이었어.

꽈당큐다.

바닥에 쓰러졌어.

“야...하타테에…” 난 히끅히끅 대면서 말했어. 배는 한가득이야.

“왜애?”

하타테는 이모한테 츄하이를 받으면서, 싱글벙글 답했어.

“혼자서 마셔. 난 술 마실 기분이 아니야.”

“머야, 아직-도 그 프로듀서 아저씨가 한 말을 신경 쓰는 거야?”

“다…당연하…지. 실제로 그 녀석이 말한 대로인걸. 하타테도 알고 있잖아.”

 

“몰라.”

하타테는 내 얼굴 앞에서 바닥에 철썩 정좌했어. 그리고 싱글벙글한 채로, 날 가까이서 빤-히 바라보고 있다가.

“그야 리리카가 글러먹은 녀석이란 건, 처음부터 알고서 같이 밴드 해야겠다 생각했던 건데?”

이게 비꼬는 거였다면 후려갈기면 오케이겠지만.

맙소사. 하타테는 퓨어한 눈빛이야.

 

“그치만 하타테,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봐. 나 같은 거한테 따라오는 것 보다, 그 아저씨를 따라가는 게 당연히 더 좋잖아.”

“그렇지. 하지만, 흐음. 그게 어쨌는데?”

“내가 한 말에서 틀린 거 있으면 말해봐.”

“틀리지 않아. 내가 아이돌그룹에 들어가 밀착취재하면, 신문대회에서도 굉장히 우수한 성적이 나오겠지. 리리카한테 붙어있는 것보다 확실하게. 그래도 있지—“

라면서 하타테는, 츄하이 피쳐에 입을 대고, 꿀꺽꿀꺽꿀꺽 4리터를 한 번에 마셨어. 푸하- 하고 숨을 내뱉었지.

“—나, 히메카이도 하타테는, 리리카랑 같이 하고 싶어. 왜냐면 지금 여기에 이렇게 기분 좋게 술마실 수 있는 건, 오늘 리리카랑 만났기 때문이잖아. 나는 있지, 리리카한테 완전 고마워.”

이렇게 말하곤, 또 또 얼굴을 엄청 붙이고서, 싱글벙글 싱글벙글 하고 있어.

 

뭐야, 너.

그런 대사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하지 말라고. 엄청 쑥스럽잖아. 너도 좀 쑥스러워 하면서 말하라고. 평범하게 싱글벙글하면서 말하지 마.

평소엔 제멋대로 굴기만 하면서, 취하면 솔직해지는구나, 넌. 이렇게 된 거, 항상 취해있으라고 진짜.

 

“리리카는 즐겁지 않아? 난 있지. 친구랑 이렇게 마시는 거 처음이라서, 정말 즐거워. 왜, 너도 말했었잖아. 고민될 땐 술이라도 처먹고 푸념 들어준다고.

그러니까, 뭐든지 들어줄게. 밑바닥에 굴러 떨어질 것 같으면, 서로 끌어올려주는 거야. 친구잖아.”

 

아아…이 녀석, 좋은 녀석이야.

진짜 좋은 녀석이야.

친구가 돼서 다행이야.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친구가 돼서 다행이야.

 

이 녀석이라면 정말로 ‘날 따라와줘’라고 하면 따라오겠지.

‘내일 있는 뮤직라이브 데스매치, 우승을 목표로 하자. 하타테와 함께라면 가능성이 있어!’같은 소릴 하면, 아무 생각도 안하고 0.1초만에 ‘응, 해내자 리리카!’라고 당연한 듯 답해줄 거야.

 

하지만, 야 하타테, 좀 더 생각해봐.

내가 혹시 마가 끼어서 그런 소릴 해도, 절대로 ‘응!’하면 안돼.

뮤직라이브 데스매치랑 YKM48의 결성식은 내일 같은 시각에 열려. 어느 하나를 고르는 수밖에 없다고.

신문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는 찬스는, 카리스마 신문기자가 될 수 있는 찬스는, 지금 아이돌이 되는 길을 놓친다면, 이젠 없을지도 모른다고, 평생.

하지만…하지만, 이 녀석 바보잖아. 내가 부탁하면 따라올 거야. 분명히.

 

그럼 있지, 난…난, 이런 좋은 녀석한테, 최고의 친구한테, 뭘 해줄 수 있지?

 

 

 

 

답은 하나뿐이야.

난 하타테랑 같이 올라가길 포기하고, 하타테를 자유롭게 해줘야 해.

하타테의 꿈을 이뤄줘야만 한다고.

 

 

술집이 닫힌 뒤, 하타테랑 둘이서 어깨를 끼고 비틀거리면서 떠들며 밤길을 걸었어.

나는 대화는 뒷전으로 돌리고 생각했어.

어떻게 하타테를 설득해서 밴드를 관두게 하고, 그 프로듀서에게 가게 할지. 그걸 말이야.

 

하지만, 아파트 방에 돌아와도 떠오르질 않았어.

난 비틀비틀거리며 다다미 위에 턱 하고 몸을 던졌어.

심야의 공기에 식은 다다미는 편해서, 삼 초 만에 강렬한 피곤이 쏟아졌어.

어렴풋한 시야 속, 하타테가 이불을 까는 모습이 보여.

그 녀석도 비틀거리는 주제에, 아주 정갈하게 깔고 있어.

정말이지 평범하게 좋은 환경에서 자란 게 왠지, 참 이상한 녀석.

하지만, 잠옷으로 갈아입을 기력까지 이어지진 않았던 것 같아.

 

하타테는 이불에 파고 들어서 베개에 얼굴을 묻고, 그 자세 그대로 껍질을 벗는 달팽이마냥 솜씨 좋게 옷만 전부 벗고, 여름 이불을 둘렀어.

그리고 저 녀석은, 커다란 곰인형을 꽉 붙잡고, 안고, 눈을 감았어.

감았나 싶었더니, 눈꺼풀을 반만 뜨고 이쪽으로 시선을 향했어.

“있잖아, 리리카도 이불 반 쓸래? 다다미에서 자면 뺨에 자국 남을 거야.”

“그럴 거면 내 몫도 깔아줘. 움직이기 싫어-“

“이불이야 당연히 내가 가져온 한 세트밖에 없지.”

“그럼 됐어. 그보다 졸려. 1밀리도 움직이기 싫어.”

 

“하지만 나만 이불 덮으면, 식객 주제에 뻔뻔하고 거만한 녀석 같잖아.”

“아- 뭐야 그게, 네 자기소개냐?”

“시끄러. 그럼 인형 빌려줄까? 어느 게 좋아? 야옹이? 깡총이?’

“필요 없어. 더워.”

“리리카는 아무것도 안 안고도 잘 자?”

“하타테는 안 그러면 못 자?”

하타테는 고개를 끄덕였어.

“그럼 너, 골판지 집에서도 그랬었냐?”

하타테는 고개를 끄덕였어.

분명 여성스러움 가득한 골판지 집이었겠지.

그 안에서 인형을 안고서, 불안에 떨며 잠드는 하타테를 상상하니, 공연히 안타깝네.

 

“있잖아, 리리카. 역시 이래서야 왠지 미안해서 푹 못 자겠어. 이리 와.”

귀찮아- 할 틈도 없었어. 하타테가 꽉 붙잡았지. 그리고 이불 위에 툭 놓여버렸어.

뭐, 확실히 다다미 위보단 기분이 좋네.

하지만 특대 곰돌이 인형이 굉장히 방해돼.

“야, 하다못해 곰돌이 좀 어떻게 해봐. 좁은 데다가, 복실복실 더워.”

“응. 알았어.”

곰돌이가 이불 바깥에 놓였어.

그랬더니 뭐…아, 그렇구나. 이렇게 되는 거군. 하타테는 곰돌이 대신, 나한테 달라붙는 거야. 어린애가 어머니에게 달라붙듯이.

 

“야 하타테, 엄청 더워. 땀 냄새, 술 냄새.”

“아, 리리카는 썰렁하구나. 에어컨도 필요 없겠어.”

내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하타테는 기분 좋은 듯 볼을 비비면서.

“나 있지. 어린 시절부터, 친구가 생기면 해보고 싶었던 게 있었어.” 라고 말했어.

 

“하타테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를 에어컨 대신으로 하고 싶었어?”

“아니야. 친구네 집에서 자보고 싶었어. 오늘 꿈이 이루어졌네.”

그런 거야 텐구라면 어릴 적에 보통 하는 거 아닌가. 하고 말할까 싶었지만, 그만뒀어.

하타테가 조금 힘든 인생을 걸어온 건, 오늘 하루만으로 잘 알아버렸어.

“그렇구나. 다행이네.” 난 말했어.

“응. 그리고 있지. 잘 때에 새까만 방에서, 사랑이야기 같은 걸 하는 거야.”

“뭐야, 사랑얘기라니.”

“어떤 남자애가 취향인지, 남자친구가 생긴다면 어떤 걸 하고 싶은지, 떠드는 거야.”

“그다지 소령 상대로 할 얘기는 아니네.”

“왜? 리리카는 좋아하는 타입 같은 거 없어?”

 

“난 초자연 현상, 폴터가이스트야. 평범한 유령처럼 “남자나 여자였다”같은 것 조차 없지. 우연히 인간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하타테는 자기네랑 같을 거라 생각할지 몰라도 말이야. 근본에서부터 다르지.

봐봐, 몸도 차갑잖아. 그렇게 알몸으로 달라붙으면 감기 걸릴지도 몰라.”

“그치만 나랑 친구가 된 것처럼, 감정은 있잖아. 남자랑 연애 같은 것도 할 수 있지 않아?”

“글쎄. 해보고 싶네. 옛날부터 약간 부러웠어. 텐구나 인간이 좋네 싫네 떠들어대는 게 말이야. 즐거워 보인다 싶었어.”

 

“그럼 있지. 혹시 리리카가 우연히 남자 모습을 하고 있었으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내 어깨를 붙잡은 하타테의 손에, 약간 힘이 들어갔어.

“그랬으면 난 아마, 리리카가 좋아졌을 거야. 리리카도 날 친구 이상으로 생각해줬으려나?”

 

아아, 맙소사.

이 녀석을, 이 하타테를, 어떻게든 밴드에서 쫓아내지 않으면 꿈을 이뤄줄 수 없어.

인생이란 어찌나 뜻대로 되지 않는지.

 

“가능성은.”난 말했어. “가능성은 있겠지. 꽤, 비교적, 충분히.”

“그럼 있지 있지, 혹시 그랬다면, 지금쯤 둘이서 엄청난 일 하고 있었을지도 몰라. 물론 성적인 의미로.”

정말로 즐거운 듯이, 하타테는 웃었어.

 

“가능성은, 있겠지. 하지만—“

말한다면 가능한 한 빠른 게 좋다. 설득할 수 있는 때에 하는 게 좋다.

이 이상 하타테랑 같이 있다간, 떨어지고 싶지 않을 거야.

틀림 없이 하타테의 꿈을 망쳐서라도, 함께 있고 싶다고 바라게 될 거야.

“할 얘기가 있어. 지금부터, 진지하게 내 얘기 들어주지 않을래?”

 

하지만, 하타테는 아무 대답이 없어.

 

“얘, 하타테?”

왜 그런가 했더니.

하타테는 자고 있었어.

굉장히 태평한 얼굴로 새근새근 숨을 쉬면서, 입을 칠칠치 못하게 벌리고 침을 흘리고 있었어.

 

그 얼굴을 봤더니

적어도 오늘 밤 만큼은…하고 생각해버렸어.

괜찮아, 적어도 앞으로 수시간, 이 취기가 깰 때까지는. 오늘 하타테랑 만나서 꿀 수 있었던 꿈을, 계속 꾸어도…난 아마, 분명, 아마도, 제대로 작별을 고할 수 있을 거야.

 

 

 

 

“리리카. 일어나, 리리카.” 하타테의 목소리에 눈을 떴어. “나, 슬슬 가야 해.”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하타테는 말끔히 갈아입고 현관 밖에 서있었어.

나가려는 모양이었어.

몹시 온순한 얼굴을 하고 있어.

 

“음- 뭐야, 밥이라도 먹으러 가?”

일어나자마자 눈을 비비면서 시계를 봤더니, 정오야.

발리투도 뮤직 데스매치는 오후부터니까, 이제 점심밥을 먹고 좀 연습하면 딱 좋을 것 같아.

“나도 푸딩 먹으러 갈래.”

라고 말하고, 이불에서 기어나오려 했더니.

 

“나, 아이돌이 되고 올게.”라고, 하타테는 말했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어.

내가 잠이 덜 깼나 싶었지.

방충망에서 매미의 울음소리가 점점 들어오기 시작했어. 매-앰맴맴맴맴매-앰. 참매미의 울음소리가 재촉하듯이 점점 커졌어.

 

“엇…” 나는 답했어.

“리리카가 자는 동안에, 그 프로듀서한테 다녀왔어. 얘기도 했어. 이젠 결정했어.”

“뭐야, 그게. 잠깐…기다려…”

난 답했어.

왜 ‘잠깐 기다려”같은 소리나 하는 거야?

기다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잖아. 내가 시켜주려던 걸, 하타테가 스스로 한 것뿐이잖아.

설득할 수고가 덜어졌어. 만세잖아.

기뻐하면 되잖아, 기뻐하면 되잖아.

 

“사실은 있지. 어제 리리카를 술집에 데려갔을 때부터 생각했어.”

“뭘 말이야!”

고함쳐버렸어.

난 바보야. 뭘 큰소리를 내고 있는 거야.

하타테가 날 배신해서? 저버려서? 포기해서?

그건 내 입장일 뿐이잖아. 하타테를 위해선, 이게 더 좋단 걸 알고 있었잖아.

 

“리리카가 신경 썼잖아. 연주가 실패해서 그 프로듀서가 잘난 체 하고 너한테 개망신 준 건, 애초에 내 탓이잖아.

자주 쓰던 악기를 팔아버려서잖아. 어제 노상라이브 끝난 뒤의 네가 굉장히 자신이 없어서, 내가 세상에서 제일 나쁜 짓을 해버렸단 걸 깨달았어.”

“끈질기네. 악기 판 건, 이젠 됐어. 하타테랑 밴드를 하고 싶어서 그랬던 거야!”

 

“나도 리리카랑 밴드를 하고 싶어. 하지만, 그건 내 이기적인 행동이야. 나 때문에 네가 희생되면 의미가 없잖아. 난, 리리카가 스스로의 힘으로 빅하게 되는 꿈을 이뤄주고 싶어.

그러니까, 악기를 다시 사주고 싶었어. 아까 산에 가서, 그 프로듀서에게 말해봤어. 밑져야 본전으로—“

하타테는 크게 심호흡을 했어.

“—내가 아이돌 그룹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계약금이든 뭐든 좋으니까 돈을 달라고 말해봤어. 리리카가 내준 액수랑 같은 액수야. 그랬더니 있지. ‘응, 좋아’라고 흔쾌히 OK해버렸어.”

 

“그런 돈은 절대 못 받아. 아무데도 가지 마, 하타테!”

 

“리리카는 이미 자기 사운드가 있잖아. 이제 악기만 되찾는다면, 오늘 이벤트에서 우승할 수도 있을 거야. 이걸로 된 거야.

난 틀리지 않았어. 올바른 일을 한 거야. 리리카는 날 구해줬어. 그러니까 이번엔 내가 구할 거야. 이걸로 공평하지?”

하타테는 고개를 숙였어. 그 바람에 눈물이, 똑똑 복도로 떨어졌어.

내 시야도, 눈물로 번져왔어.

 

네가 없으면 우승할 수 없잖아! 라고 외치고 싶었어.

하지만 그것만은 말해선 안돼.

하타테의 꿈을 부숴선 안돼.

난…난…난… 글러먹은데다 필요 없는 애일지도 모르지만.

가장 소중한 친구의 꿈 정도는, 제대로 이루어줘야만…해.

 

“그럼, 잘 있어 리리카. 나 여기에서도 나와야 해. 아이돌이 낡은 아파트에 살아선 이미지가 나쁘니까, 산에 있는 맨션으로 이사 가라고 하더라고.

점심밥 만들어뒀으니까, 맛있게 먹어. 악기는 꼭 사가지고 와서, 이벤트에 늦지 않도록 갖고 돌아올 테니까.”

 

문이 닫혔다.

복도에서 하타테의 발소리가 멀어져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들리지 않게 되고 나서, 난 방 구석에 놓인 테이블을 봤다.

스파게티랑 푸딩이 놓여있었다.

 

그게, 참을 수 없을 만큼 허무했던 거야.

 

‘낡은 아파트에 남아서, 혼자서 스파게티랑 푸딩을 먹는 자신’이라는 현실이 상징하는 바를 상상했더니, 참을 수 없었다.

테이블을 힘껏 들어올렸다.

창문을 열고, 거기로 내던졌다.

요란한 음을 내며 뜰에 굴러 떨어졌다. 스파게티가 뿌려졌다.

그래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큰 소리로 울었다.

울면서 방 벽을 발로 차고, 머리로 치고, 무릎으로 차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후려 갈겼다.

 

이걸로 잘된 거야.

이걸로 잘된 거라고.

몇 번이고 자신에게 말해봤지만, 분함도 슬픔도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면 사실, 이걸로 잘된 건 하나도 없으니까.

 

혹시 어제 내가, 자신의 사운드를 터득해서 하타테랑 나란히 활약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있었다면.

하타테의 재능에 겁내거나 할 필요 없었던 거야. 그러면, 그 프로듀서가 잘난 체 해도 움츠러들 필요 없이, 당당히 가슴을 펴고 하타테를 향해 ‘닥치고 날 따라와’라고 말할 수 있었을 텐데.

혹시 이벤트에서 하타테랑 함께 우승할 자신감이 진짜 있었다면, ‘야, 하타테. 아이돌 따위 할 때가 아니잖아. 우리 밴드로 세상의 꼭대기란 걸 같이 보러 가자’정도는 말할 수 있었을 거다.

말했으면 좋았을걸.

 

결국 이렇게 아파트 벽에 분풀이하는 건, 자기자신의 한심함에 원인이 있다.

빅하게 된다느니 호언장담하던 주제에, 난 대체 뭐야?

아무것도 뭣도 아니야

‘낡은 아파트에 남아서, 친구가 만들어준 스파게티를 창문으로 내던지는 필요 없는 애’

이것이 세계 어디를 찾아봐도 따로 없는, 진정한 나의 정체.

 

“야, 리리카.” 자신에게 말을 걸어봤다. “너, 집을 뛰쳐나왔을 때도 답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 못했어.”

“스파게티 아까웠지.” 스스로 답해봤다. “모처럼 하타테가 만들어준 거니까, 먹긴 해야 했어.”

“하지만, 이걸로 다행이지. 지금 필요 없는 애인 내가 언니들과의 승부를, 하타테에게 기대서 이긴다 해도 기생상태로 돌아갈 뿐이었어.”

“하타테와 함께 밴드를 하려면, 나의 사운드를 내 것으로 해야만 해. 오늘은 말이야. 이걸로 잘 된 거야. 언니들에게 나 홀로 처발리고, 싼 술이나 처먹고, 토라지면 돼.”

 

그 때였다.

방 문이, 꽝 하고 발에 차여 열렸다.

그리고 젊은 남자가 흙 묻은 발로 들어왔다.

한 눈에 봐도 정상으로 보이지 않고, 셔츠의 가슴팍을 확 열어놓고, 거기에 자물쇠를 체인으로 목에서 축 늘어뜨린, 닳아빠진 레더 진즈.

머리카락을 뾰족뾰족 거꾸로 세워놓은, 펑크를 그림으로 그린 듯한 풍채. 피투성이의 프리시전 베이스를 질질 끌고 왔다.

그리고 내 눈 앞에 멈춰서는, 카펫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멍청아. 니새끼는 대체 얼만큼 썩어빠진 거냐, 이 패배자새끼야.” 라고 말했다.

 

누구야 이 녀석.

 

“뭐가 ‘이걸로 다행이다’야. 썩어빠진 익스큐즈 하지 말라고 썩어빠진 새끼야. 넌 항상 그렇지. 지는데 너무 익숙해졌다고.

지면 분하니까 변명하는 거지. 그렇다면 좀 더 정직하게 분통을 터뜨리라고. 너처럼 이 세상에 대고 변명만 하고, 자신을 굽히는 새끼한텐 구역질이 난다고.

네가 지금까지 인생에서 해왔던 건, 졌을 때의 변명을 똥을 싸지르듯이 입에서 내뱉는 것뿐이었어. 게다가 승부에 도전하기도 전에 말이지. 그 외에 뭐 한 일이 있냐? 야, 대답해봐 썩을 놈아.”

 

왜 이 녀석, 이렇게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지?

“그런 소리 해봐야, 나 같은 범인이 언니들 같은 천재한테—“

 

“봐봐, 또 이런다. 답 없는 쓰레기잖아. 하지만.”

펑크새끼는 말했다.

“하타테는 네가 이길 거라고 믿고 있다. 악기만 되찾으면 네가 이길 거라고 믿고, 네가 이겼으면 해서, 자신을 팔아서 악기를 사다 주겠다는 거잖아.

혹시 오늘 네가 진다면, 널 믿은 하타테는 어떻게 되는 거야. 뭘 위해 하타테는 울면서 여기를 뛰쳐나갔냐고.”

 

혹시 내가 용기의 사운드 조차 제대로 내보이지 못하고 언니들에게 너덜너덜 졌다간—

 

—하타테한테, 난 뭐라고 사과해야 하지?

 

몇 억 번을 사과해도, 지구가 갈라질 정도로 점핑 큰절을 해도, 갚을 수 없다.

하타테가 날 믿어준 마음을 절대로 헛되이 해선 안돼.

하타테가 준 이번 승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야만 해.

 

“그렇지, 리리카. 친구가 믿어줬는데 배반하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이길 기세로 가는 거야. 야, 누가 뭐래도 이기고 싶어졌지?”

“당연히…당연히 처음부터 이기고 싶었지. 그런데 뜬금없이 뭐야, 넌. 아니 누구야!”

 

“그에 관해선, 내가 설명할까.”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복도에서 들리나 싶더니, 이번엔 40세 정도의 하얀 아저씨가 방에 들어왔다. 리켄베커 325를 어깨에 매고서.

그 녀석도 범상치 않아서, 장발에 수염이 많은 첫 번째 인상은 ‘히피계 신흥종교의 교주’라는 느낌이고, 둥근 안경 안에 있는 눈은 척 보기엔 부드러워 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그림자가 드리워진 오라를 뿜고 있다.

“우선 힌트 첫 번째다.”

아저씨가 말했다.

“나와 이 펑크 애송이와, 너의 ‘손발을 쓰지 않고 연주하는 능력’이 링크하고 있는 느낌 안 드나?”

듣고 나서야 알았다.

능력을 링크시켜둔 악기에서 느껴지는 것과 같은 감각이, 이 아저씨랑 펑크새끼한테 느껴진다.

“힌트 두 번째. 네 환상의 소리를 구현화 하는 능력. 잃어버린 소리를 재현하는 힘이다. 그 힘을 유명한 악기의 영체에 강하게 작용시키면, 분명 악기가 내포하고 있는 “환상의 소리”를 재현할 수 있을 거야.”

 

“무…무슨 소리야. 나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너희는 혹시 악기 주인의 영 같은 거야?”

“그건 아니야. 우린 어디까지나, 바깥 세계의 동경심이 집합해 만들어진 “환상의 소리”다. 본인이랑은 좀 먼, 스테레오타입 같은 존재로밖에 없어.

너는 그런 환상을 구현화시킨 거지. 이게 우리의 정체다.” 라며 아저씨는 기타를 쟈쟝~ 울렸다. 자신과 펑크새끼를 가리켰다.

 

설마 이게 루나사가 말한 “환상의 소리를 연주하는 능력의 진정한 사용법”…인가?

“하지만 말이야.” 내가 말했다. “지금까지 이런 구현화 따위 해본 적 없었는데.”

 

“그건 당신이—“

하면서 또 모르는 남자가 방에 들어왔다.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의 정통파 멋진 청년이었다. 엄청 섬세해 보이는 용모를 하고 있다.

하지만, 복장은 정통파가 아니고 굉장히 껴입었다. 한여름인데 코트를 꽉 껴입고, 장갑까지 끼고 있다.

“—지금까지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가출했던 때조차도, ‘어떻게든 될 거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소중한 친구를 잃고, 자신감도 잃고, 그저 홀로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세계를 향해 맞서야만 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이런 걸 갑자기 할 수 있게…되다니.”

“아닙니다, 리리카 씨. 할 수 있게 된 게 아닙니다. 원래부터 할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의 따뜻한 목욕물 같은 기생환경 탓에, 본래의 능력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자, 이런 얘기는 이제 됐습니다. 이벤트까지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리허설 하나라도 해야 합니다.”

 

“아.”

“아는 뭐가 아입니까. 우리의 이해관계는 일치합니다.”

“리허설은 찬성인데… 이해관계라니 뭐가?”

 

“아까 구현화한 모두에게 얘기하고 왔어.”

리켄베커 아저씨가 말했다.

“이렇게 우리가 “부활”한 기념이라기엔 뭐하지만, 이벤트에서 화려하게 연주하자고 말이다. 다들 각자 리리카에게 협력할 동기는 다르겠지만, 전원이 순수한 뮤지션이지. 오랜만의 큰 무대다. 다들 두근두근 하고 있어. 네 아군이지.”

 

“아저씨, 그 악기들을 설득해서 내가 쓸 수 있게 해준 거야?”

“그래, 부활시켜준 사례야. 나도 “좀 더 하고 싶은 게 남아있었다.” 고맙군.”

 

“저로선.”

라고 껴입은 청년이 말했다.

“리리카 씨의 품위없는 음악은 넌센스라고 밖에 생각 안 하지만, 어제의 하타테 군의 노랫소리엔 감동했습니다. 그녀를 슬프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면, 오늘의 저속한 콩쿨에서라도 CD318의 음색을 퍼트려도 좋습니다.”

 

“야, 리리카.”

펑크 새끼가 말했다.

“친구의 기대나 신뢰를 배반하는 짓은 그만해라. 기분 최악이 될 거라고. 네 놈의 “자신다움”은 용기잖아.

그렇담, 지는 건 생각하지 마. 반드시 이기는 거다. 자기다운 마이웨이란 걸 가는 거야. 기분 최고가 될 거라고.”

 

난 끄덕였다.

“고맙다, 다들. 해주마. 하타테에게 보여주마. 난 확실히 꿈을 이룰 테니까, 너도 네 꿈을 이루라고.”

리켄베커 아저씨가 손가락을 딱 튕겼다.

“좋아, 그럼 어서 리허설을 하자. 내가 다들 밖으로 모으지. 리리카는 얼굴을 씻고 양치질을 하도록. 술냄새가 엄청나다고. 그런 숨결로 리드보컬을 했다간, 견딜 수가 없을 테니 말이야.”

 

 

 

 

그리고 이벤트 개시에 아슬아슬하게, 아파트 뒤뜰에서 리허설을 끝냈을 때.

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아마 전율일 거다.

구현화한 “환상의 소리”들 전원이, 날 눈앞에 두고 괄목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미소 지으며, 누군가는 경악한 표정으로, 누군가는 칭찬을 담은 쓴 웃음으로.

 

이걸로 언니들에게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방금 한 리허설은,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다른 차원의 엄청난 것이었다.

지금 구현화한 “환상의 소리”들은, 지금까지 써온 영체 악기와는 환상의 강도라고 할만한 것이 완전히 달라.

분명 사람 모습이 되어 인격을 가진 것도, 바깥 세계에서 태어난 환상이 터무니없이 강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의 영령…이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언니들이 갖고 있는 “우울”이나 “들뜸”의 사운드 같은 걸, 다들 각각 가지고 있다.

그 사운드들을, 내가 능력을 통해 자유롭게 이끌어낼 수가 있었다.

언니들은 우울이나 들뜸, 각각 하나씩밖에 특화시키지 못하는데. 내가 홀로 그 몇 배나 되는 종류를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다.

 

게다가 말이야.

나 자신도 어제 그만큼 연습해도 낼 수 없었던 용기의 사운드를, 아직 불완전하게 더듬는 정도의 수준이지만, 재현할 수 있게 되었다.

하타테에겐 있지만 내게 없었던 것의 조각만이라도, 지금의 내 안엔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어제까지의 내게는 없었지만, 지금의 내겐 있는 것.

그 정체는 아직 모르겠지만— 완벽까지 앞으로 한 걸음, 아직 부족하지만—

 

“세계의 중심으로, 환영한다 리리카.”

리켄베커 아저씨가, 왠지 슬픈 얼굴로 박수하고 있었다.

“이제 자네의 우승으로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군. 세계의 구석에서 단숨에 왕좌로 올라온 기분이 어떤가?”

 

그래. 우승도 꿈이 아니야.

이거라면, 하타테가 악기를 사다 주지 않아도, 무난히 우승할 수 있어.

지금, 하타테를 부를까?

그거 좋지. 그러고 싶은데.

반드시 우승할 거라 확정된 건 아니야. 하타테의 꿈을 이뤄주고 싶다면, 아이돌을 시키는 게 확실하지.

그 녀석과 함께 밴드를 하는 거는 말이야.

오늘, 내가 확실히 우승하고 나서 해도 되잖아.

넘버원이 되어 하타테를 마중 나가서, 가슴을 펴고 ‘날 따라와’라고 말하면 돼.

 

“솔직히 말이야, 아저씨.”

나는 말했다.

“꾀부리는 것 같은 느낌이야… 결국 자신의 힘이 아니라, 너희들의 힘을 빌리는 거란 느낌도 들고. 환상의 소리를 재현하는 능력도, 노력해서 손에 넣은 게 아니지.”

 

“뭘 말하고 싶은지 알겠어. 하지만, 방금 전의 연주를 이루어내기 위해선 너 자신의 용기의 사운드가 불가결하단 것을 잊어선 안돼.

우리 하나하나가 가진 특성을 이해하고 여럿을 동시에 다루는, 상식을 벗어난 연주기술도 필요하지. 리리카밖에 할 수 없는, 세계에서 유일한 음악이야. 자랑해도 좋다고.”

리켄베커 아저씨가 미소 지었다.

나는 자기도 모르게 끄덕였다.

“게다가, 리리카. 정말로 노력 없이 손에 넣은 재능이라 해도, 사양해선 안 되는 거야. 뛰어난 음악가에겐 모두, 의무가 있어.

재능을 독점하지 말고 전 세계에 음악을 퍼트려서, 공유해야만 한다는 의무가 말이야.

그러니, 태어나서부터 가진 재능이든 노력으로 연마한 재능이든 구별하지 말고 행사해야만 하는 거야. 가능한 한 공격적으로 말이다. 그것이,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전 세계를 향해 해온 일이다.”

 

“환상의 소리”음악의 영령들 모두가 끄덕였다.

 

나도 한번 더 끄덕이고.

“오케이. 개운하네.”라고 말했다. “다들 들어봐. 선언해두지. 지금부터 우리들의 시대야. 환상향 놈들에게 그걸 알려주러 가자. 세계를 쟁취하러 가자.”

 

 

 

 

태양의 밭.

키가 큰 해바라기가 끝없이 펼쳐져 빽빽이 군생하는 곳.

그 한가운데에 있는 광대한 풀밭에, 특설라이브회장이 세워져 있었다.

공기의 냄새는 순도 100% 해바라기 향기, 바람의 냄새도 해바라기 향기. 날아다니는 꿀벌도 100만 마리.

기온은 아마 40도를 넘을 것이다.

 

내가 “환상의 소리들”을 데리고 도착했을 땐, 이미 관객들이 몰려있었다. 환상향 모든 구역의 인간과 요괴가 모이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사람 수다.

스테이지 위에선, TV방송국의 작업원이 음향설비 조정 등으로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아나운서가 원고를 다시 읽어보며 사회 리허설을 하고 있다.

“오호.” 리켄베커 아저씨가 관심을 가졌다. “웨스트 스톡 페스티벌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두근거리기 시작하는군.”

 

그리고 스태프에게 안내 받아, 조립식 분장실로 갔다.

그 안에선 일반 모집으로 온 뮤지션이 가득 있었고, 에어컨은 걸려있었지만, 굉장히 더웠다.

우선 어딘가 앉아야겠다 싶어서 비어있는 장소를 찾고 있었는데, 어시스턴트 디렉터가 불렀다.

“이벤트의 엄정한 공평성을 보장하기 위해, 연주하는 순서를 정하기 위한 추첨을 생중계 중입니다.”라고 한다.

 

각 밴드 등의 리더 십 수 명이 모여서, 스테이지를 향해 줄줄 걸어갔다. TV카메라가 그런 우리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무대 옆에 도착했을 때였다.

게스트 출장으로 온 뮤지션들의 행렬과 마주쳤다. 루나사가 있다. 눈이 마주쳤다. 자신만만하게 이쪽을 향해 웃어 보였어.

난 긴장했겠지. 자기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루나사는 “상태 어때?” 능청맞게 손을 흔들었다.

“아…아주 좋지. 목 씻고 기다리라고. 언니들이 놀라서 못 움직일 정도로 대단한 걸 보여줄게.”

“그거 기대되네. 우리도 신곡을 준비했어. 리리카 없이, 메를랑이랑 둘이서 연주할 걸 전제로 한 첫 곡이야. 전력을 다한 진 프리즘리버 악단을 들려주지.”

 

사회를 보는 아나운서가 추첨 개시를 알렸다.

그리고, 우리가 스테이지 위로 오름과 동시에 관객의 환호성이 폭발했다.

스테이지에서 보이는 초원에 한가득, 사람이나 사람이 아닌 자들로 빽빽이 차있었다. 소란스러웠다.

지금까지 실컷 태양의 밭에서 라이브를 해왔지만, 이렇게까지 사람이 모인 건 본 적이 없어.

몸 안에, 피가 요동치기 시작함을 느낀다. 흥분이 매 초마다 강해져 간다. 마음이 뛰어오르려 하고 있다.

 

사회 아나운서가 스테이지 맨 앞에 섰다.

그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마이크를 꽉 쥐고, 첫 발언을 시작했다.

“자, 마침내 시작되었습니다. ‘전 환상향 발리투도 뮤직라이브 데스매치’. 여기 모여있는 건, 환상향의 아티스트들입니다.

참가조건은 단 하나, ‘나야말로 넘버 원’이라는 자부심뿐. 장르를 가리지 않는 발리투도, 프로/아마추어를 가리지 않는 데스매치. 리허설 없이 바로 본편 서바이벌입니다!”

아나운서에 호응해 관객들이 더더욱 환호성을 크게 내질렀다.

“승부의 판정은 지극히 심플합니다. 관객/TV시청자 여러분께 천 점 만점으로 투표의 평균치를 집계해서, 가장 고득점을 한 아티스트가 우승하게 됩니다. 그럼 어서, 추첨에 들어가지요.”

 

추첨은 간단한 제비뽑기였다.

결과는 곧바로 스테이지 위의 거대 스크린에 표시되었다.

폴 포지션, 가장 처음에 이름이 나온 건, 죽을 만큼 잘 아는 밴드 이름이었다.

‘프리즘리버 악단’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로 쭉 표시되는 아티스트 이름은, 그야말로 카오스였다. TV나 라디오에서 익히 듣는 대가의 이름이 있는가 하면, 무명 아마추어까지 뒤섞여 뒤죽박죽.

장르도 트로트, 클래식부터, 락, 일렉트로 팝, 하드코어 테크노, 민족음악까지 뭐든지 있다.

그리고, ‘리리카’내 엔트리 이름이 표시된 건 마지막이었다.

언니들의 퍼포먼스로 시작하고, 내가 라스트를 맡는 짜임이 되었다.

 

“자, 순서가 정해졌습니다!”

아나운서가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어이쿠, 첫머리부터 ‘프리즘리버 악단’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다들 잘 알고 계시는 루나사, 메를랑, 그리고 한 명 더, 어어…누구였지? 그래, 리리 뭐시기 세 자매의—“

“리리카다, 멍청아!” 뭐, 난 고함을 쳤지. “게다가, 난 이제 프리즘리버가 아니야!”

“—이…이거 실례했습니다. 어쨌든 환상향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밴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우승이 가장 유력하다 예상하는 시청자 분들도 많이 계시지 않을까요?

게다가 이번엔 미발표곡을 연주한다고 합니다. 그녀들의 퍼포먼스는, 준비가 끝나면 곧바로 시작됩니다. 광고 중에도 채널은 고정해주십시오”

 

루나사와 메를랑만을 스테이지 위에 남겨두고, 우리 다른 출연자들은 무대 옆으로 빠졌다. 그대로 분장실로 돌아가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관객 속에 섞여서 언니들의 퍼포먼스를 기다리는 녀석도 있다.

난 하늘에 떠 관람중인 요괴들에 섞여, 언니들이 준비하는 걸 바라봤다.

 

하지만, 왠지 상태가 이상했다.

루나사도 메를랑도, 바이올린과 트럼펫 이외의 악기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

언니들도 엔간한 악기는 다룰 수 있고, 여러 개를 동시에 연주하는 정도는 한다. 보통 라이브에서 그런 곡예는, 오로지 내 담당이기는 했지만.

다시 말해 저 녀석들이 지금부터 연주하려는 신곡은, 루나사의 선언대로 날 뺀 상태로 전력을 다할 때의 전용곡이란 이야기다.

 

무대 옆에서 디렉터가 아나운서에게 신호를 보내는 게 보였다. 광고가 끝난 것 같다.

“자 그럼 어서, 첫 번째 조 나와주십시오. 프리즘리버 악단입니다!”

아나운서가 과장된 손짓으로 루나사 일행을 소개한다.

 

메를랑이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미소로 인사한다. 루나사는 인사하나도 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바이올린을 어깨에 댄다.

순식간에 연주가 시작되었다.

갑자기 전력을 다한 루나사의 솔로파트였다. 자비 없는 우울함이 펼쳐졌다. 어떤 서론도 전조도 없이.

그저 불안감을 부채질하는 바이올린의 음색 탓에, 마치 손발이 묶여 거대한 구멍 안으로 떨어지는 듯한, 저항할 수 없는 공포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그리고 구멍 아래로 자유낙하 해 부딪히는 듯한 착각이 들기 직전.

 

바이올린 소리가, 트럼펫의 위세 좋은 선율로 대체되었다.

느닷없이 메를랑의 솔로파트였다. 이것도 자비 없이 전력을 다한다.

순식간에 유정천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흥분에 귀가 사로잡혀서, 묶여있던 손발이 풀리고, 내가 있던 구멍 안에서 제 6 우주속도 정도로 급상승하는 듯한 고양감이 들었다.

그리고 불안 속에서 탈출한 순간, 굉장한 쾌감이 느껴졌다.

한 순간에 불안의 구멍에서 빠져나와, 그대로 구름을 뚫고 성층권도 돌파해서, 위성궤도와도 작별하고, 태양계조차도 뿌리치고 은하에서도 날아올라 우주의 끝까지 도달했다.

이 이상 날았다간, 어떻게 될까?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두근두근 한다.

정신차려보니, 주변에 있던 모르는 요괴들이랑 왜인지 모르게 나도 양 손을 잡고 춤추고 있었다.

다른 관객들도 그렇다. 댄싱, 댄싱, 댄싱.

언니들의 신곡이란 걸 냉정하게 들어보자 생각했는데, 이제 상관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 이런 이벤트는 됐으니까, 계속 이 곡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한 행복감.

그 행복감의 정체는 분명히, 메를랑의 트럼펫 소리에 섞인 루나사의 바이올린에서 나오는 것일 거다.

들뜸과 우울. 상반될 두 소리가, 기적적인 밸런스로 조화되고 있었다.

조화된 덕에 불안 속에서 탈출했을 때의 무시무시한 쾌감이 되살아나서, 우주의 끝까지 날아오르고, 그 기쁨이 언제까지나 지속되고, 쾌감이 무한히 펼쳐져 가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갑자기 연주가 끝났다.

물론, 어떤 사고 때문이 아니라 평범하게 끝난 것뿐이지만, 수 분도 되지 않는 짧은 곡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계를 보니 15분 이상 지나가있다.

몸이, 마음이, 좀 더 루나사와 메를랑의 연주를 듣고 싶다고, 강렬하게 호소하고 있다.

 

“앵콜!” 주변 요괴가 외쳤다. 앵콜을 외치는 건 그 녀석들뿐이 아니다. 회장의 모두가 외치면서, 채점용 누름 단추식의 스위치를 연타하고 있다.

한 명이 연타해봐야 집계되는 건 한 번 뿐이지만, 그 마음은 잘 알 것 같다. 나도 스위치를 가지고 있었다면, 만점을 연타했음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동시에, 몸이 떨려왔다.

 

들뜸과 우울, 단 두 종류의 소리만으로 이 정도를 표현하고 내던지는 언니들의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새삼 새기게 되었다.

자신들이 내는 소리를 익히 알고, 그것을 완벽히 살리는 곡을 만들어 표현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

단지 그게 다인 심플한 방법만으로 이렇게. 들뜸과 우울만으로, 들뜸과 우울의 사이에 있는 모든 것들, 다시 말해 거의 모든 감정의 변화를 표현할 수 있다.

프리즘리버 악단의 핵은, 루나사의 재능도, 메를랑의 재능도 아니다.

루나사의 소리와 메를랑의 소리의, “소리의 사이에 있는 무한한 것” 그 자체.

그 두 사람은 반대의 소리를 내던 것이 아니다. 둘이서 하나의 소리 - 세계를 만들었던 거다.

 

혹시 음악에 본질이란 게 있다면, 아마 그게 전부일 것이다.

무엇을 표현할지, 그것을 어느 정도의 완성도로 재현할 수 있는지.

음악의 영령을 몇 명이고 데리고 다니고, 몇 종류의 소리의 특성을 조종할 수 있다든가, 그런 것 만으로 이길 수 있는 승부가 아니다.

루나사와 메를랑이 한 걸, 난 저 녀석들보다 잘 해내야만 한다.

음악의 영령들이 가진 특성을, 얼마나 이끌어내고, 얼마나 잘 구성하고, 연주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로 그런 걸 언니들보다 잘할 수 있을까?

역시 어차피, 나 같은 건 뛰어봐야 리리 뭐시기 씨고—

—아냐. 아닐 거야.

나는 지금, 언니들과 같은 수준에는 서있어.

게다가 언니들보다 많은 소리를 쓸 수 있지. 작곡도 연주도 기술적으로 뒤쳐지지 않아.

전제조건<<하드웨어>>만이라면, 이쪽이 유리할 거야.

남은 건 나<<소프트웨어>>하기 나름이다.

 

그러니까.

이젠 아무 변명도 할 수 없다고.

지는 걸 생각했다간, 지금까지와 똑같이 패배자 인생을 반복할 뿐이야.

오늘 이곳에서, 반드시 저 최대의 적들을 쓰러트리는 거야.

 

“자, 득점 집계가 끝난 것 같습니다!”

아나운서가 외쳤다.

“다시 한번 설명 드리자면, 득점은 평균점으로 겨루게 됩니다. 단지 평가 수 자체가 평균이상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엔 0점이 되어 실격입니다. 프리즘리버 악단은 1000점 만점 중, 몇 점을 얻었을까요!”

스테이지 위의 거대한 스크린에 집계된 스코어가 표시되었다.

 

 

 

 

999.99

 

회장이 아주 조용해졌다.

엄청난 수의 관중이 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저 아연히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다.

 

“어…어떻게 된 거죠? 우승이 결정되어버렸군요, 이거. 시스템상 실질적인 최고점이죠?”

라고, 아나운서가 스코어를 보면서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방송이 시작된 순간에 끝나버렸습니다. 방송 편성상 있을 수 없습니다만… 이제 고조될 것 같지도 않고, 뭐…뭐, 이것도 각본대로가 아니라는 증거이자, 생방송의 묘미라는 거겠죠!

그런데, 이제 프리즘리버 악단이 우승이고, 남은 시간은 악단의 라이브를 중계하면 안될까요, 감독님. 분명히 그렇게 하는 게 시청률 잘 나올 거예요.”

아나운서가 무대 옆의 감독에게 진지한 얼굴로 묻고 있었다.

 

감독은 회장의 ‘앵콜! 앵콜!’하는 성원에 섞여, “앵콜!”이라고 자신도 외치는 와중에 한 순간 끄덕이려 했다. 하지만, 당황해서 고개를 흔들고, 아나운서에게 무언가를 지시했다.

“아, 안 되나요? 그러고 보니 스폰서 쪽 가수도 다음에 나오니까요. 아쉽군요.”

아나운서는 굉장히 시무룩했다.

“그럼, 원칙상 앵콜은 금지이기 때문에, 대신 시청자 여러분께서 신경 쓰셨을 사항을 물어봅시다.

저기, 프리즘리버 악단 여러분. 오늘 연주는 한층 더 굉장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세 번째인 리리 뭐시기 씨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데, 상관이 있는 건가요?”

 

루나사가 건네받은 마이크를 쥐었다.

“우선, 안녕, 얘들아.”

루나사의 인사가, 스피커에서 초원으로 울려 퍼졌다.

득달같이 관객들에게서도 ‘안녕하세요-!’하고 답이 왔다.

“리리카가 없는 것과 관계가 있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있지. 그러니까, 지금까지 우리의 음악을 들어줬던 여러분께 알려야만 해.

리리카는 프리즘리버 악단을 그만뒀어. 평생 돌아오지 않을 거야. 이에 대해 비관해도 좋지만, 나도 메를랑도 긍정적으로 여기고 있어.”

 

관객들이 동요하고, 술렁거렸다.

루나사는 심호흡을 하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쭉 셋이서 해온 동료이고, 둘도 없는 동생이야. 쓸쓸하다는 값싼 말도 할 수 있지. 하지만 리리카가 리리카답게 살아가기 위해선, 필요한 것이었다고 우리는 믿고 있어.

이번에 한 곡이 왜 굉장했냐고 묻는다면, 답은 두 가지야. 하나는 프리즘리버 악단이 환상향 탑이란 걸 너희에게 재교육시켜주기 위해.

또 하나는 리리카를 철저하게 때려눕히기 위해서야. 야, 리리카.”

 

갑자기 루나사가 스테이지에서 날 지목했다.

 

“어떠냐. 우리에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넌 999.99보다 위를 받는 수밖에 없어. 아까 호언장담했었지? 보여줄 수 있겠지. 네 사운드로 1000점을 받는 걸. 기대하고 있어. 나도 메를랑도, 기대하고 있다고. 누구보다도 말이야. 이상, 내 이야기는 끝이야. 그럼.”

 

루나사와 메를랑이 스테이지에서 내려갔다.

난 두 사람이 사라진 스테이지를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몸이, 아직 떨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공포심이 든 게 아니야.

흥분돼서 떨리는 거다.

적은 강대해, 더할 나위 없지. 올려봐도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장소에 있어.

몇 시간 후에 그 높은 장소로 찾아가, 놈들의 목덜미를 붙잡고 내 사운드를 귓전에 들려주면 돼.

그건 분명히, 최고로 기분 좋은 일일 거야.

 

 

 

 

분장실로 돌아왔다.

구석에 놓인 커다란 TV에서, 두 번째 출연자의 퍼포먼스가 나오고 있지만, 분장실에서 대기하는 누구도 보고 있지 않다. 언니들 이야기로 자자했다.

999.99포인트. 사실상 최고점. 우승을 노리는 건 이젠 무리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응모자의 분장실이었기에 거기 있는 건 커리어 없는 아마추어뿐이라, 그들이 사기를 꺾여도 어쩔 방도가 없겠지만.

그렇다면 음악의 영령 “환상의 소리”들은, 언니들의 퍼포먼스를 듣고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그런데 “환상의 소리”들은, 내가 자리를 맡아두었던 장소엔 없었다.

다들 어디로 간 것 같다.

잘 보니 그랜드피아노 CD318의 그림자에, 껴입은 멋진 청년 CD318의 “환상의 소리”가 남아있었다. 무언가에 열중해서, 연주용 의자를 마구 주무르고 있다.

“있잖아, 걔들 어디 갔어?” 그에게 물어봤다.

“시끄럽습니다. 절 방해하지 마십시오.”

껴입은 청년은 심기가 불편한 듯 말했다. 이쪽에 시선조차 향하지 않고서.

 

“어…아, 미안. 하지만 방해하지 말라니. 의자를 만지고 있을 뿐이잖아, 너.”

“당신은 바보입니까? 의자 높이를 조정하고 있는 겁니다. 회장의 온도나 습도에 따라 높이가 변하잖습니까.”

“그렇게 신경질적일 필요가—“

“당신은 역시 바보군. 음악의 본질이란 정확함입니다. 건반에 터치할 때, 1밀리 단위로 손가락의 벡터가 어긋나는 것 만으로, 완벽한 완성도에서 멀어지게 되죠.. 키보디스트라면 알고 있겠지요.”

“그렇지만 내 경우, 손가락으로 누르는 것처럼 보여도, 능력으로 연주하고 있으니까—“

“손끝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어디까지 자신을 몰아넣어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모르겠다면, 조용히 계십시오.”

“알았어. 미안.”

우선 사과하고, 여기를 나오려고 했을 때다.

 

“그들은 모두 텐션을 올리고 온다면서, 밖으로 나갔어요.”

껴입은 청년이 불쑥, 나를 말리듯이 말했다. 의자를 만지면서.

“다들 당신 언니들의 연주를 진지하게 듣고 있었습니다. 그건 대단했지요. 다들 칭찬하고, ‘이걸 넘는 연주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리켄베커 남성이, 다들 밖으로 데리고 나간 겁니다.”

 

그 아저씨구나. 어느새 그 녀석들의 리더처럼 되어버렸네. “환상의 소리”들을 설득해준 것도 그 녀석이고, 리더 같은 얼굴을 한 것 만으로 묘한 카리스마가 있었지.

“흐음. 텐션을 올린다. 왜 넌 같이 안 갔어?”

 

껴입은 청년은 얼굴을 찌푸렸다.

“다들 그 남자를 칭찬하지만, 전 그의 음악을 가치 없는 것으로 단정지었습니다. 게다가, 콩쿨이란 즉흥성이 다인 상황에서, 음악을 겨루다니 우습지요.

연주자의 상태나 평가하는 인간이 바뀌면, 음악의 가치가 바뀌어버린다고 하니까. 그런 데에 투지를 불태운다니, 더없이 어리석죠.”

 

“뭐, 이 세상이 그런 거잖아. 어떤 예술이라도, 평가하는 건 사람이니까.”

“리리카 씨는 바보군요. 이 세상엔 절대로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이란 게 분명히 있습니다. 누가 어떻게 평가하든, 그것은 변하지 않죠. 제가 추구하는 건, 그것뿐입니다.”

“그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도, 네가 말한 대로 “인간이 평가하는”거 아냐?”

“아니요. 전 잘 보입니다. 절대 변하지 않는 음악이란 것이, 제겐 보인단 말입니다.”

 

어려운 소리나 하고… 귀찮은 녀석이구나 싶었지만, 말하진 않기로 하고 근처의 파이프 의자에 허리를 기댔다.

어떤 뮤지션이든 그럴 거라 생각하지만, 라이브에 도전하기 전엔 마음의 튜닝 같은 무언가를 할 거다.

이 CD318의 “환상의 소리”는 의자를 만지작대는 것이, 그런 거겠지.

아마 리켄베커 아저씨도, 그에 해당하는 무언가를 모두에게 주기 위해 간 거라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하타테 군은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요?”

껴입은 청년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조용히 하라던 주제에, 스스로 말을 걸어오는 시점에서 굉장히 제멋대로인 녀석인 것 같다.

 

“하타테 말이지. 어쩌든 저쩌든 간에—“

벽에 걸린 시계를, 곁눈질로 봤다.

“—저쪽도 마침 YKM48의 결성식을 하고 있을 테지. 요즘 아이돌이 뭘 하는진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뭐- 가위바위보 대회나 선거 같은 거 하는 거 아냐?”

“가위바위보 대회?” 껴입은 청년이 놀란 얼굴을 했다. “그런 걸 TV에 중계하는 게, 재미있나요?”

“나한테 묻지 마.”

“하지만 이 콩쿨에 대항하는 생방송으로 그런 짓을 한다면, 하타테 군은 당신과 약속한 악기를 가지고 올 수 없단 말이 되지요?”

 

그러고 보니 그렇다.

지금은 이미 “환상의 소리”들이 있으니까, 약속한 악기가 당장은 필요하지 않지만…그걸 하타테에게 연락하는 걸 잊었어.

하타테는 악기를 가져오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은 어떻게 된 거지?

그래서.

지금 시점까지 그 녀석이 악기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건…

약속을 깼다…는 건가?

“야, 야, 하타테도 결성식 직전이라 바빠서 못 온 거 아니야?”

“하지만 악기를 가지고 오지 않으면 리리카 씨가 만족스럽게 연주할 수 없다는 걸, 하타테 군은 인식하고 있었겠지요. 당신은 버려진 걸까요?”

“그럴 리 없잖아. 분명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

“하타테 군은 마음이 변했을지도 모르죠. 큰 돈을 써서 악기를 돌려주느니, 신문을 재발행하기 위한 자금으로 쓰는 게 당연히 더 좋은데.”

 

“하타테는 그런 녀석이 아냐. 우승상금으로 신문을 재개하겠다고 약속했고, 내가 우승할 거라 믿고 있어. 못 온 이유가 있을 거야.”

“약속을 깬 이유 말이죠. 아, 그래. 어제 하타테 군이 그 프로듀서를 응시하던 눈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소녀의 눈빛으로 보이기도 했죠.

하타테 군은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어떤 이유로 약속을 깼을 가능성이 높은 거 아닐까요? 아, 그렇게 생각하니 연주할 기력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껴입은 청년은 의자 조정을 그만두고, 뾰로통하게 다리를 꼬고 앉았다.

 

“이…있잖아. 멋대로 망상 때문에 기력 빼지 말라고. 오늘 할 곡은 키보드—피아노가 메인이니까.”

“전 콩쿨을 포기하겠습니다. 저의 하타테 군이 다른 남자를 위해 애쓰다니…”

“너 착각이 좀 심하잖아. ‘저의 하타테 군’이 뭐야.”

 

“하타테 군을 위해서 피아노를 연주해주고 싶었습니다. 하타테 군을 위해서 곡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하타테 군을 위해서, 뭐든지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군…과연, 난 그녀의 노랫소리를 들은 순간부터, 하타테 군을 사랑했던 건가. 오오, 맙소사. 음, 그렇다면 난 질투에 휩싸여 연주를 하지 않는다. 이게 뭐 이상합니까?”

 

“아니…뭐, 망상하는 이유도 알았고, 무슨 소리 하는지도 알겠는데… 그…그래도 있지—“

“아아, 절망했습니다. 사랑을 깨달은 순간 실연당한 이 사랑에 절망했습니다! 기다려주십시오, 하타테 군, 지금 그대의 본심을 확인하러 갑니다!”

껴입은 청년은 덜컥 힘차게 일어나더니, 분장실의 출구로 뛰기 시작했다.

 

“야…야, 어디가!”

저 새끼, 내 목소리 같은 건 안 듣고 있잖아. 엄청난 기세로 분장실에서 뛰어나가고 있었어.

나야 당연히 쫓아가려고 했지. 하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어떤 악기의 코드에 발이 걸려버렸다. 나자빠져버렸다. 우당탕탕 하는 식으로.

 

그 후로, 난 수십 초 정도 기절했던 모양이다. 눈을 떠보니, 다른 출연자가 내 몸을 흔들고 있었다.

아픈 머리를 누르면서 조립식 분장실에서 나와 하늘을 날아서 껴입은 청년을 찾아봤지만, 이럴 수가.

태양의 밭엔 땅에도 하늘에도 사람이나 요괴로 가득하다. 도저히 누군가를 찾을만한 상황이 아니야.

그렇다고 해서, 놔둘 수도 없다. 그 상태로는 출전까지 돌아올 생각이 있으리라 보긴 힘들다.

그 녀석<<피아노>>가 없으면 곤란하다고. “환상의 소리”를 구현화시킨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선, 내 능력의 매개가 되는 “환상의 소리”가 연주해주어야만 기능할 수 있어.

누가 뭐래도, 찾아내서 데리고 와야만 해.

CD318의 “환상의 소리”는 ‘하타테의 마음을 확인하러 간다!’고 했지만, 하타테는 생방송 중이다.

아이돌 결성식장에 간다고 해도, 초대장이 없으면 산에 들어가는 것조차 할 수 없다.

아마도 그 녀석은 결성식이 끝날 때까지 어딘가에서 기다릴 거야.

 

 

 

 

찾고, 찾고, 또 찾았다.

태양의 밭은 물론이고, 마을, 아파트, 우리 집 전부 다.

그래도 발견할 수가 없다.

이제 가능성이 남았다면, CD318의 “환상의 소리”는 요괴의 산으로 어떻게든 잠입했다…고 봐도 될 정도다.

 

나도 요괴의 산에 들어가려 했다.

그랬더니 아니나다를까, 산에 들어가는 입구의 상공에서, 초계텐구에게 발각됐다.

“허가를 받지 않은 외부인의 출입은 금지다. 즉각 떠나가라.”

초계텐구 새끼는 무뚝뚝한 얼굴로 이런다.

“그러지 말고, 부탁할게. 내가 찾고 있는 녀석이 산에 들어갔을지도 몰라”.

고개를 숙이고 부탁했다.

“수상한 자가 침입하려 하면, 우리가 물리치고 있다만.”

“내가 찾고 있는 녀석은 능력으로 구현화했을 뿐이라서, 영력 같은 게 전혀 없어서 찾기 힘들단 말이야. 혹시 숲 속을 저공비행으로 날아 산을 올랐다면, 못 찾을 수도 있겠지?”

“직무상 기밀로 인해, 답할 수 없다. 이 이상 당신이 산에 침입하려 한다면 실력행사로 물리치는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할 텐가.”

 

그래서.

자포자기로 강행돌파 하려 했더니, 강렬한 풍압을 한방 먹고, 마을 쪽으로 확 날아가버렸다.

머리가 어질어질해. 멍청한 짓은 하면 안되겠구나.

이렇게 된 김에, 아파트로 돌아와봤다. 혹시 껴입은 청년이 돌아오진 않을까 했는데.

 

방 안에는 뭐…없었지.

 

그 놈의 목적지는 역시 요괴의 산이겠지만…

썩을, 아는 텐구라도 있다면 나도 산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절차를 밟을 수 있겠지만, 그런 아는 사이는 하타테 밖에 없다.

그 녀석은 생방송 중이고, 애초에 연락수단도 없어.

어떻게든 어제 XXOOO가 이끌어준 것처럼, 산에 들어갈 수 있다면…

 

아니, 난 바보인가? 또 그 녀석한테 부탁해보면 되잖아.

 

아파트 복도를 달려나갔다. 검은 전화에 십엔을 처넣고, 다이얼을 돌렸다.

곧바로 연결되었다.

“여긴 XX흥신소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XX의 귀찮은 듯한 목소리 뒤에서, 떠들썩한 음악이 들려온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TV를 봐야만 한다. 나중에 걸어. 내가 보고 싶은 밴드가 이제 곧 시작한단 말이다. 네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한가하면 ‘리리카’라는 녀석에게 점수 좀 넣어줘라. 그럼 끊는다.”

 

“자…잠깐만. 나야. 나!”

XX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이름 정도는 확실히 대랬잖아. 그렇지, 리리카. 이제 곧 네 순서잖아. TV에서 뮤직라이브 데스매치를 보고 있었거든.”

곧 순서라니…

당황해서 시계를 보았다. 방에서 나와 벌써 세 시간 넘게 지났다.

 

“내…내 순서까지 앞으로 몇 조 남았어?”

“뭐? 무슨 소리냐. 괜찮냐, 너.”

“지금 회장에 없단 말야. 앞으로 어느 정도 시간 있을까?”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마지막까지 앞으로 네 조 남았어. 삼십 분쯤 걸리겠지.”

“네게 부탁할 게 있어.”

“뭐지?”

“”환상의 소리”가 실종됐어. 악기의 아바타 같은 거야. 아마 산에 있는 아이돌 결성식장에 있을 거야. 어제처럼 손써줄 수 없어?”

 

“야, 야, 제정신이냐? 식장에 얼마나 많은 인간이나 요괴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20분 이내에 누구 하나를 찾는다니 가능할 리 없지.”

“그 녀석이 없으면 엄청 큰일이라고!”

또 XX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그 녀석은 어떤 녀석이냐. 되는대로 말해 봐라.”

“피아노를 치고, 껴입은 미남이고—“

“아, 너랑 같이 TV에 나왔던 녀석이군. 분장실에 카메라가 있을 때, 여름인데도 코트를 입은 잘생긴 남자가 있었는데—“

“아 그거야, 틀림 없어.”

“어쩔 수 없군. 가능한 한 찾아주지. 넌 대회장에 돌아가는 게 좋을 거다. 준비 같은 거 해야 하잖아.”

“어, 괘…괜찮아? 고마워.”

“단지 데려갈 수 있다는 보증은 없어. 그만큼 눈에 띄는 모습을 한 녀석이라면 어떻게 될 가능성도 있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군. 그 녀석 없이 해낼 준비도 해놓는 거다. 알겠지.”

 

 

 

 

라이브 회장에 돌아와서, 분장실 문을 세게 열면서.

“좋아, 얘들아, 출격준비다. 앞으로 두 조의 무대가 끝나면 우리 차례라고!”

라고 말해봤는데.

왜인지 “환상의 소리”들 누구 하나도 분장실에 돌아오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슬슬 준비 안 하면 곤란하다고.

“저기- 리리카 씨죠?”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감독이다.

“슬슬 스탠바이 해주셨으면 합니다만.”

 

“미안. 잠깐만 기다려. 아직 멤버라기 보단 악기가 돌아오질 않아서, 찾고 올 테니까!”

사과하면서 일단 분장실을 나갔다.

 

그랬더니 왜인지, 다른 출연자처럼 보이는 둘이서 멀리 보이는 언덕을 가리키며 서서 얘기하고 있었다.

“야- 저기 헛간에서 연기 나지 않아?”하는 이야기를.

“진짜네. 뭐지, 화재인가? 일단 스태프에게 연락하는 게 좋지 않을까?”

둘이 가리키던 헛간을 보니, 우두커니 서있는 오래된 건물이었다. 아마 예전엔 농가 같은 걸로 쓰였을 법한 거기에서, 옅은 색의 연기가 희미하게 피어 오르고 있다.

왠지 그 연기의 분위기 같은 게, 굉장히 안 좋은 느낌이 들었는데.

집에서 리켄베커 325같은 걸 보관하던 방에서, 가끔 저런 연기가 새어 나왔었지- 하고 말이야.

 

 

 

 

엄청난 스피드로 헛간을 향해 날아갔다.

벽 틈새에서 흘러나오는 연기는, 역시 그것이었다. 들이마시면 왠지 기분 좋아지는 그거다.

문에 자물쇠가 걸려있길래 발로 차버렸어.

그랬더니 안에 충만하던 연기가, 한번에 확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연기가 걷힌 헛간 내부엔, 아니나다를까 “환상의 소리”들이 멍-한 눈초리로 바닥에 뒹굴 굴러다니고 있었다.

 

“오, 리리카.”

리켄베커 아저씨가 펑크 새끼랑 어느새 사이가 좋아진 건지, 어깨동무를 하고 벽에 등을 붙인 자세로, 반쯤 환각상태인 눈으로 날 향해 손짓했다.

“어어, 리리카의 표정을 보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는데—“

“너…너네 정신 나갔냐!” 난 진심으로 고함을 쳤어. “이래선 제대로 연주할 수가 없잖아!”

 

“—일단 말해두겠는데, 여기에서 사용된 것들은 전부 내 소지품이고, 내 책임하에 사용한 거야.

그러니 다른 애들은 비난하지 말아주게. 그리고…좀 변명을 해도 될까?”

 

이제 소리지를 기력조차 어디 가버린 것 같았다.

이걸로 내 도전은 끝났다.

쓸 수 있는 악기가 하나도 없어서야. 무대에 조차 설 수 없어.

 

“무슨 일이냐면, 리리카, 진정하고 들어봐. 뭐랄까, 이렇게까지 딥하게 빨 생각은 없었어.

처음엔 기분전환이랄까, 텐션을 올리기 위해서랄까, 뭐…주문 같은 거야. 여기까진 잘 있는 일이야. 누구라도 다들 하는 일이지. 알고 있지?”

아저씨에게 끄덕이는 것도, 고개를 젓는 것도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이 친구가 꽤 좋은 걸 가져왔었지.”

아저씨는 어깨동무를 한 펑크 새끼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래서 내가 가져온 거랑, 이 친구 거랑 짬뽕해 써봤더니, 다들 예상외로 이상하게 잘 듣는 모양이야.”

 

“야, 리리카.”

기분 좋아 보이는 펑크 새끼.

“옛날부터 난 이 아저씨를 참 진절머리 나는 녀석일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좀 얘기해보니 의외로 “이쪽”에서 잘 나가는 쓰레기였다고.

그거 아냐? 이 아저씨, 라디오에서 ‘우리들은 그리스도보다 인기가 있다’고 당당하게 내뱉고, 세상한테 두들겨 맞고 나중에 보기 흉한 변명을 했던 적이 있다고. 최고의 쓰레기지.”

“뭐, 그러니.” 씁쓸하게 웃으면서 아저씨는 “이 상황은 사고 같은 거야. 반성은 하고 있어.”

 

펑크 새끼가 흔들흔들 일어났다.

“사서한 건 댔다거 아저씨. 라이브 전에 안 빨면, 언제 빤다는 거야. 이 정도야 별거 아니지. 가자 쓰레기들아, 실전이다!”

정작 그런 소리를 하는 본인은, 갈지자걸음으로 베이스를 질질 끌며 걸으려 했으나, 자꾸 넘어진다.

다른 녀석들 중엔 어떻게 걸을 수 있는 녀석도 있었지만, 비슷한 상황이었다.

엄청 심하진 않지만, 스테이지에 설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됐어. 스테이지에 너넨 안 와도 돼.”

난 이 정도밖에 해줄 말이 없었다.

무턱대고 욕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짓을 해도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분명히 절망감만 더 강해질 거야.

게다가

아직 희망이 없어진 게 아냐.

지금쯤 XX가 CD318을 분장실에 데려다 줬을지도 몰라.

피아노만 있다면, 최소한 승부는 될 거야.

 

 

 

 

내가 분장실로 돌아오니, 부감독이 곧장 날아왔다.

“리리카 씨, 어디 가셨었나요? 다음이 순서에요. 악기는 보내뒀습니다. 곧장 스테이지에 가서 스탠바이 해주십시오”

“피아노는?” 나는 물었다.

“네, 피아노도 그렇습니다. 물론 전문 업자가 와주셔서 보내는데 사고 같은 건 없어요”

“그게 아니라, 연주자는 안 왔어?”

“네, 아무도 없었습니다만…?”

 

끝났다.

완전히 끝났다.

이제 여기서, 기권한다고 하는 게 편하겠지.

하지만, 내 퍼포먼스를 기다려주는 사람도 있을지 몰라.

스테이지에 올라가서, 사정설명 정도는 해야 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도 없어도 돼. 난 원래 혼자야. 이걸로 됐어. 스테이지엔 악기를 내놓지 않아도 돼. 아무것도 필요 없어.”

 

 

 

 

내가 무대 옆에 도착함과 거의 동시에, 스테이지 앞에서 연주하던 무명 출연자의 채점이 끝나있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울려온다.

“아아, 아깝군요. 굉장한 퍼포먼스였지만, 그들도 900점 대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남은 아티스트는 앞으로 한 조뿐입니다만, 지금 현재 900포인트를 넘은 건 1위인 프리즘리버 악단뿐입니다.

과연 마지막에 기적의 대역전이 일어날 것이가—이런 틀에 박힌 대사도 너무 뻔하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하죠. 999.99니까요. 어쨌든 다음 분, 어차피 안되겠지만, 적당히 해주십시오!”

 

관객들에게서 성원이 터져 나왔지만 오프닝 때에 비해서 성량은 적다. 다들 역시 지쳤겠지. 하늘도 저녁놀에 물들기 시작하고 있다.

그 와중에, 난 스테이지 한가운데까지 걸어갔다.

있는 것은 마이크 스탠드뿐이다.

관객 속에서 루나사와 메를랑이 보였다. 많은 요괴들과 섞여 하늘에 떠서, 날 내려다 보고 있다.

언니들의 눈은, 그저께까지의 멍청한 동생을 보던 눈이 아니다.

내 실력을 헤아리려는 듯한, 라이벌을 보는 눈.

처음으로 느껴본 시선이다.

대등한 상대로서 보고 있다.

이거야. 이게 내가 쭉 추구했던 상황이야. 여기가 오고 싶었던 “높은 곳”이다.

“이 높은 곳”에서, 언니들을 향해 나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다.

들려줘서, 쓰러트리고 싶었다. 쓰러트리고 싶었는데…

 

“마지막 아티스트는…”

아나운서가 말했다.

“리리카…라고 하면 여러분 알고 계실지요? 네, 프리즘리버 악단에서 재적 당한 리리 뭐시기 씨 본인입니다.

이번엔 솔로로 엔트리 했는데요, 등록명도 ‘리리카 프리즘리버’가 아니라, ‘리리카’로 되어있습니다. 아무래도 프리즘리버 내부의 드라마가 있었던 모양입니다만, 운명의 대결이네요.

길었던 뮤직라이브 데스매치도, 슬슬 끝입니다. 그 결말에 어울릴만한 퍼포먼스를 기대합시다. 그럼 리리카씨, 부탁드립니다!”

 

난 마이크를 쥐었다.

그리고, 말했다.

“먼저, 사과해야 할 게 있어.”

 

관객들은 다들 모여, 이상한 듯 쳐다보고 있다.

 

“내 순서를 기다려준 사람이 몇 명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미안. 여러가지로 트러블이 생겨서, 예정한 연주를 할 수 없게 됐어. 그러니 하다못해—“

하다못해, 연주는 할 수 없지만, 노래는 할 수 있다.

내가 줄곧 써온 ‘노래’라는 악기로, 언니들에게 도전할 정도는 된다.

그 정도는 해야 한다.

하지만…하지만 말이야.

이길 확률은 한없이 제로에 가까워.

프리즘리버를 뛰쳐나온 리리카가, 프리즘리버에게 도전해서 볼품없이 지는 것뿐.

지금까지 계속 내가 악단 안에서 사실 필요 없는 애였다는 사실을, 환상향에 드러낼 뿐이잖아.

그런 추태만을 드러내기 위해 여기에 온 게 아냐.

이 상황은 내 의도와 달라. 이런 상황에서 노래하느니, 지금 당장 마이크 스위치를 끄고, 절이라도 하고 스테이지에서 내려오는 게 나아.

그렇지. 그러면 최악의 패배는 하지 않고 끝나. 수치를 드러내지 않고 끝나지. 운이 나빴던 상황 탓으로 돌릴 수 있잖아.

하타테한테도 충분히, 변명은 할 수 있어.

어쩔 수 없잖아. 어쩔 수 없었던 거라고.

언젠가 또 분명, 도전하면 되잖아.

 

그렇…지.

절을 하고 스테이지에서 내려오자. 그렇게…하자, 응?

“—미안해 여러분.”

난 마이크 스위치를 껐다.

난 스테이지에 위에 양 손을 찔렀다.

관객들이 술렁댔다.

그리고 내가 절을 하려고 머리를 내리려 할 때였다.

 

루나사와 메를랑이 날 보는 눈빛이 변하려고 하는 걸 느꼈다.

아직은 아까까지의 라이벌을 보는 눈이었지만, 그저께까지의 미숙한 동생을 지켜보는 눈빛으로 변하려 하고 있다.

정말로 딱하다는 듯이, 날 보고 있다. 가능하다면 도와주고 싶다고 하는 듯한, 비통한 표정이었다.

 

그 언니의 눈을 보고 있었더니,

내 마음 속, 또 하나의 내가 중얼거렸어.

‘뭐야, 집을 나와도 결국 난 어제까지의 나 그대로잖아. 도전하기 전부터, 졌을 때의 변명이나 생각하고.

“언젠가 이긴다”든가 “반드시 이긴다”처럼 스스로를 위안하고, 속이고. 도전 할 때가 되면, 도전조차 안 하고 도망치려 하고 있어”

 

여기서 돌아간다면—

돌아간다면, 또 나는 내일부터도 루나사와 메를랑에게 그런 시선을 느껴야 할 거다.

 

앞으로도—

저 녀석들에게 필요 없는 애로 여겨지고, 질 수밖에 없는 글러먹은 동생으로 여겨지고, 쭉 기생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녀석으로 평생 여겨질 거라고.

 

무엇을 위해—

프리즘리버 악단을 뛰쳐나온 거야?

루나사도 메를랑도, 그런 눈길을 보내지 않을 내가 되기로 했었잖아.

그래. 내가 되고 싶었던 건, 승부를 앞에 두고 도망치는 패배자가 아니야.

‘저 녀석들에게 도전하는 나’가 되고 싶었던 거야.

 

그럼 야, 리리카.

패배자가 되지 말아라!

 

도전해라!

 

 

“루나사랑 메를랑에게 도전하고 싶어. 이기고 싶어. 쓰러트리고 싶어. 이제 변명은 안 할 거야. “이기고 싶었다”나 “언젠가 반드시 이긴다”같은 소린 이제 절대 안 해. 난…난…오늘, 지금, 너희에게 반드시 이길 거다!”

 

절을 멈췄다.

일어섰다. 바닥이 꺼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기세로.

그리고

마이크를 다시 잡았다.

공포가 왔어. 마이크를 잡은 순간, 무서워서 참을 수가 없어졌다.

그래도 있지. 이 공포란 녀석한테 지면 안돼. 이 녀석을 굴복시켜야만 해.

눈을 강하게 감고, 견디고, 견디고, 견뎠다.

견디고, 견디고, 견디고, 견디고, 견디고, 견디고.

마이크를 고쳐 잡고, 박살 날 정도로 강하게, 강하게 잡고서.

 

스위치를 켰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나는, 노래하기 시작했다.

 

악기는 하나도 없다.

무반주 독창.

하지만.

 

첫 1프레이즈는, 지금까지 프리즘리버 악단에서 리드보컬을 해왔던 어떤 라이브 때보다도, 훨씬 잘 됐다.

그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던 힘이, 내 노랫소리에 어려있었다.

그리고 2프레이즈를 부르고 깨달았다.

의식한 건 아닌데도 보컬라인이 어제 하타테가 들려줬던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라, 더더욱 “나다움”이 실려있는 것이었다.

 

내 안에서, 자연스레 나만의 용기의 사운드가 솟아나고, 목소리가 되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관객들의 표정이 한 순간, 내 노래를 진지하게 들으려 하는 듯 바뀌었다. 루나사와 메를랑의 눈도, 미숙한 동생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경악의 눈빛으로 날 보고 있다.

어제까지 결코 날 향하지 않던 눈빛이, 환상향 전체에서 쏟아지고 있다.

 

이제서야 알 것 같다.

내 ‘용기’에 지금까지 부족했던 건, 방금 막 절하는 걸 막고, 나를 지금 노래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까지의 나에겐, 하타테처럼 자살을 생각할 정도의 필사적인 것도 없었고, 소중한 친구를 위해 배수의 진에서 노래할 각오도 없었다.

어제까지 내가 생각했던 건,

‘언젠가 반드시 루나사와 메를랑을 쓰러트린다’라는 미적지근한 것뿐.

‘언젠가’나 ‘반드시’로는 안돼.

‘지금 루나사와 메를랑을 쓰러트린다. 반드시 쓰러트린다’

 

“진정한 용기”라는 건, 그런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이것만으로 프리즘리버 악단에게 이길 리가 없어.

루나사나 메를랑이 가진 재능과 같은 수준에 선 것에 지나지 않아.

언니들 하나하나가 상대라면 호각으로 승부를 겨룰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저 녀석들 둘이서 해낸 건, 서로 상반되는 특성을 이용해서 서로의 특성을 최대한으로 북돋은 거다.

 

그런 저 녀석들과 동등하게 승부하기 위해 필요한 건, 용기의 사운드를 최대로 북돋을 수 있는 그런 요소다.

루나사에게 있어서 메를랑과 같은 누군가.

나도 그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건 누굴까?

어제 잘 때까진 곁에 있었던 것 같다. “그 녀석”과 함께 이불에서 사랑얘기 같은 걸 했던 것 같다.

술집에서 피쳐로 36잔, 144리터씩이나 레몬 츄하이를 함께 마셨던 “그 녀석”.

억수로 내리는 비 속에서, 같이 목욕해서 진흙을 씻겨주던 “그 녀석”.

답 없을 만큼 제멋대로에 거만하고, 하지만 굉장히 솔직하고 착한 아이인 “그 녀석”.

“그 녀석”과 함께라면, 아무리 밑바닥에 있어도 올라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무모한 꿈이라도 도전해서,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혹시 지금, “그 녀석”이 옆에서 노래해준다면—

 

 

“!”

 

 

갑자기 노을 지는 하늘에서, 폭발음 같은 굉음이 났다. 내 노랫소리가 싹 사라질 정도로.

역시 노래를 계속할 수는 없어서, 뭔가 하고 하늘을 봤다.

 

누군가가 태양의 밭 아득히 위를 날고 있었다.

그것도 초음속에, 소닉붐을 감고서 말이다. 굉음의 정체는, 그 초음속 비행 특유의 충격파 소음이었다.

그 녀석은 속도를 줄이기 위해 몇 번이고 급선회 하고, 하얀 궤적을 남기면서 고도를 낮추고 있다. 여기에 착륙하려는 것 같다.

돌풍이 불어왔다. 상공의 충격파가 지상에까지 온 것이다. 해바라기 꽃잎이 화려하게 소용돌이 치고, 관객들을 덮쳐 비명이 퍼졌다.

마을 법률에도 산의 법률에도, 인구밀집지 상공에서의 초음속 비행은 금지되어있는데. 더구나 음악 이벤트를 하는 도중에 방해 따윌 했다간, 관객에게 반죽음 당해도 뭐라 할 말이 없다.

지금 여기에 내려오려 하는 방해꾼이 어디의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초음속으로 날 수 있는 종족은 하나.

 

텐구.

 

설마, XX가 CD318의 “환상의 소리”를 데려온 건가?

점점 다가오는 그 녀석의 모습이 육안으로도 확실히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남자는 아닌 것 같다.

좀 더 가냘픈 몸매에, 왜인지 사립 고등학교의 교복 같은, 정말이지 요즘의 아이돌 같은 옷을 입고—

 

—쾅! 엄청난 기세로 스테이지에 착륙한 “그 녀석”은.

 

하타테.

하타테였다.

 

착륙의 충격으로 돌풍이 불고, 또 관객들이 비명을 질렀다.

내 치마도 올라갈 수 있는 만큼 올라갔지만

그런 건 왠지 이제, 알 바 아니었다.

 

하타테는 내가 향림당에 판 악기를 데리고 온 것이다. 전부, 하나도 남김 없이 데려왔다.

 

“미안 리리카, 늦어버렸어.”

아니, 늦어진 건 아는데, 아니 알겠는데—

“있지. 향림당을 설득하는데 시간이 걸려버렸어. 점주가 완고하게 되팔지 않겠다고 하길래,

그럼 몇 배로 내겠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OK래. 아하하, 또 돈을 빌려버렸어. 하지만 이걸로 약속은 지켰지.”

 

난 끄덕였다. 끄덕끄덕 끄덕였다.

“그…근데 있지. 하타테, 너 지금 생방송 중이잖아.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결성식 빼먹었어.”

“무슨 소리하는 거야, 너. 그런 ‘데헷 메롱’하는 기분으로 할 소리가 아니잖아. 생방송 빼먹으면 그냥은 안 끝날 텐데. 이래선 모처럼—“

하타테의 꿈을 이루기 위한 찬스가.

 

“내가 리리카에게 악기를 건네주지 않았다면, 모처럼 리리카의 꿈을 이룰 찬스가 없어지잖아.”

 

하타테의 주머니에서 전화가 울렸다.

하타테는 거의 반사적으로 그걸 꺼냈다.

“네, 히메카이도 입니다.”

<넌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전화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그 프로듀서 것이었다.

“죄송해요, 프로듀서님. 가능한 한 정해진 시간까지 돌아가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안 돼서.”

 

<사정은 아까 들었습니다. 그쪽 TV로, 생방송으로. 이 쪽의 결성식에 자네가 결석한 이유는, 급한 병 때문이라고 발표했는데.

팔팔하게 날아다니고, 경쟁 방송국의 카메라에 나오고 있다니. 이쪽 감독이 무척 화가 났습니다. 스폰서에서도 담당자가 나한테 와서…맞았습니다. 엉망진창으로.>

 

“죄송합니다.”

 

<아니, 자네의 사과를 받으려고 전화한 게 아닙니다. 이제 그런 짓을 해도, 제 신용에 난 상처가 회복될 리도 없고.

자네를 자르지 않으면 다른 멤버에게 본보기가 안 되는 데다가, 법이랑 거리가 좀 있는 위약금도 계약에 따라 주고 받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해버린 자네의 이야기를…듣고 싶었습니다.>

 

“저의…뭘…말인가요?”

 

<자네는 제게 왔을 때, 이유를 말했습니다. ‘친구를 위해’라고. 하지만 전 생각했습니다. 친구를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이 애는 결국 자기 꿈을 우선하겠지, 꿈 이상으로 소중한 것이 있을 리 없다고 말입니다.

저 자신이, 쭉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어떤 노력도 희생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가, 인생의 의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네는 그런 가치관을 말끔히 부정해버렸습니다. 바보 같은 애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제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보다도, 더 소중한 걸 가진 자네를…믿을 수 없지만, 부럽다고 생각했습니다.

하타테 군.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까?>

 

“네. 후회하지 않아요.” 하타테는 곧바로 답했다. “전 제가 할 수 있는 일 중, 최상의 일을 했습니다.”

 

<오늘은 제게 있어 인생 최대의 액일(厄日)이었지만, 자네의 그 답을 들으니, 구원 받은 것 같습니다.>

“폐를 끼친 건, 면목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여자애들이 민폐 끼치는 거야 아이돌 프로듀서한텐 일상입니다. 전 익숙합니다. 괜찮다면, 리리카 씨를 바꿔주지 않겠습니까?>

 

전화를 받아 들었다.

<안녕하세요, 리리카 씨. 방금 노래, 대단했습니다. 전 당신을 깔봤던 것 같습니다.>

“고…고마워.”

 

<하지만, 조심하십시오. 저도 이 업계에 뜻을 두었을 땐 아티스트”예술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되어있던 건, 여자 애들을 우상으로 길러내는 광고쟁이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건 결코 나쁜 것도 아니었고, 일류 광고쟁이가 된 걸 자랑으로도 여기고, 예술가보다 저열한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음. 리리카 씨가 하타테 군과 함께 아티스트로서 올라가준다면, 전 기쁠 겁니다.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잘려버렸네.” 하타테는 웃으면서 말했다.

“또 실직자에 노숙자 됐네.” 나도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또 엄청난 빚이 생겼어. 어떡하지?”

“내가 좋은 일, 소개해줄게.”

“어떤 일인데?”

“내 밴드에서 노래하는 걸로 충분해. 우승하자.”

“난 신문기자야. 밴드는 안 들어가. 하지만, 취재의 일환으로라면, 오케이야.”

 

하타테는 손을 뻗어왔다.

난 그 손을 꽉 붙잡고 강하게 악수했다. 그 뿐만 아니라, 하타테의 온몸을 끌어안았다.

 

“어서 와, 하타테.” 내가 말했다.

“다녀왔어, 리리카.” 하타테도 말했다.

 

“야, 리리카.” 무대 옆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탁했던 거, 가져왔다.”

XX였다. CD318의 “환상의 소리”를 겨드랑이에 끼고, 그걸 마치 볼링을 하듯 스테이지 위로 내던졌다.

 

CD318의 “환상의 소리” 껴입은 멋진 청년은, 우리 발 아래까지 굴러와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하타테를 확 올려다 보고, 올려다 보고, 올려다 보고, 눈을 빛냈다.

“나…나의 하타테 군이, 돌아왔어!”

맹렬한 기세로 하타테에게 돌진해, 허그 했다.

“아아, 역시 내 사랑은 결실을 맺을 운명이었어. 하타테 군, 하타테 군, 하타테 군!”

볼을 비비려고 하는 껴입은 청년의 얼굴을, 하타테는 누르면서,

“자…잠깐 리 리 카 – 누…누구야, 이거-!”

“아, 응.” 난 끄덕였다. “밴드의 피아노담당 같은 거야. 남자친구로 삼아도 좋아.”

“이…이런 이상한 소리 하는 스토커 같은 놈을?! 우…웃기지 마-!”

하타테는 껴입은 청년을 때려눕혀버렸다.

하지만 그는, “무정하군, 하지만 괜찮아. 날 위해 돌아와준 건 알겠어.”같은 소리나 한다.

 

“기다렸지, 리리카.”

뒤에서 리켄베커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줄줄 이어지는 발소리도.

돌아보니, “환상의 소리”들이었다.

모두 다리가 후들후들 거리지만, 다들 각자의 악기를 가지고 있다.

“너네, 괜찮아?”

 

“이 정도야, 우리 세대한텐 일상다반사라서. 다들 익숙해, 자주 있는 일이지.”

쓴 웃음을 짓는 아저씨, 일직선으로 걸어와 마이크를 붙잡았다.

“안녕, 얘들아.”

관객들을 부르는 아저씨의 목소리는, 굉장한 그리움이 묻어있었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로 돌아왔다는 느낌으로.

“기다리게 만들어서 미안하군. 하지만 지금부터 진짜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엄청난 음악을 듣게 될 거다. 그렇지?”

돌아본 아저씨랑, 눈과 눈이 맞았다.

난 끄덕였다.

“자, 리리카, 보아라. 하타테나 우리나 네게 친숙한 파트너들, 이 스테이지에 있는 모두가 네가 인생을 살며 얻어왔던 것들이다. 총동원해서 도전해라.

상상해봐. 넌 이제부터 새로운 시대를 만들 거야. 그것이 현실이 된다. 해내는 거다.”

 

아저씨는 마이크를 하타테에게 던지고, 기타를 잡고 뒤쪽 “환상의 소리”들에게 시선으로 연주개시 신호를 보냈다.

난 파트너 키보드를 손으로 불러들였다.

 

“가자, 이것들아!”

첫 음을 연주하려 했다.

 

그 때였다.

 

살짝 빨리, CD318의 “환상의 소리”가 멋대로 인트로를 치기 시작했다.

굉장히 격렬하게, 화난 듯한 기세로.

초조한 나머지 나도 반주를 시작하려 했지만, 왜인지 내가 쓴 곡인데도, CD318이 치는 선율이 한 순간 어떤 곡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CD318이 표현하고 싶은 소리만큼은 다이렉트로 전해져서 나도 무난히 반주를 넣었는데, 그 때 깨달았다. 왜 내 곡이 한 순간 무슨 곡인지 몰랐었나를.

내가 곡을 썼을 때, 의식하지 못했던 표현의 부분까지, CD318은 신경질적일 정도로 하나하나 골라내어 강조하고, 치고 있다.

보통 그런 일을 했다간 주 선율 자체가 망가져서, 곡으로써 성립하지 않을 텐데, CD318은 리얼타임으로 최적의 편곡을 하면서 연주하여 붕괴를 피하고 있는 거다.

그건 이미 애드립을 이용한 어레인지 같은 수준의 완성도가 아냐.

CD318의 “환상의 소리”가 보는 악보에는, 우리와는 다른 세계가 보이는 건가 싶을 정도의 레벨.

재능 같은 차원을 넘은, 특수능력의 영역이다.

 

나도 이 녀석이 보고 있는 세계를 보고 싶어.

 

그렇게 생각한 찰나였다.

CD318의 감각이, 능력을 통해 날 향해 역류하기 시작했다.

CD318이 그리는, 지금 연주하고 있는 곡의 완성된 그림이 다이렉트로 들어왔다.

그건 오싹오싹해서 소리를 질러버리고 싶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이것이, 이것이 어쩌면 CD318의 “환상의 소리”가 말했던 ‘절대불변의 음악’인가. 이 녀석에겐, 진짜로 보였구나.

이 엄청난 걸, 소리로 출력해서 여기에 있는 모두에게 들려준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강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이 다른 “환상의 소리”에게 능력을 통해 전해진다.

“환상의 소리”모두가, 곡의 완성된 그림을 공유한 순간, 모든 악기가—각각의 사운드를 폭발시켰다.

 

관객들에게서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CD318외 모두의 연주가 거칠다. 헤롱헤롱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능력을 통해 보정하려 해도, 리액션이 느리다.

하지만 그게 어쨌는데. 지금의 나에겐, 익숙한 파트너들도 있어. 누가 어떤 장난스런 연주를 하든, 몇 명이 동시에 실수를 하든, 얼마든지 뒷받침 해주지.

 

하타테가 아이컨택을 하고, 크게 브레스. 인트로가 끝나고 보컬라인이 시작되어, 노래를 시작했다.

퍼펙트했다.

관객들에게서 두 번째 환호성. 거기다 리켄베커 아저씨가 코러스를 넣으니, 관객 안에서 노란색 성원이 화려하게 터져 나오고, 여성 관객이 열광한 나머지 집단실신을 했다. 아마 아저씨의 특수능력일 거다.

 

그걸 보던 프리시전 베이스의 “환상의 소리” 펑크 새끼가, 지지 않으려고 스테이지 맨 앞까지 나와서, 스피커를 까버릴 기세로 발을 걸고

멋들어지게 애드립을 넣으려 했으나, 제대로 안돼서 빡친 듯 자신의 셔츠를 찢어버렸다.

그리고 펑크 새끼는, 베이스를 던지고 면도칼을 집어 들었지만, 우리의 연주는 신경 끄고 계속 된다.

애초에 펑크 새끼의 베이스는 앰프에 연결되어있지 않아서, 베이스를 던져버리든 어쩌든 그다지 상관 없다.

펑크 새끼는 자신의 가슴에 면도날로 ‘F’문자를 새겼다. 이어서 ‘A’다음은 ‘C’마지막은 ‘K’다.

‘FACK.’또 오자다.

이걸 비웃은 건, 스테이지 바로 아래에 있던 요괴 남자. 껄껄 웃고 있었기에 펑크 새끼가 빡쳐버렸다.

놈은 침을 뱉고, 베이스를 주워 발정 난 수컷 골든 리트리버가 암컷 래브라도 리트리버를 덮치는 듯한 기세로, 스테이지에서 뛰어내려와 요괴 남자의 머리를 후려갈겼지.

머리가 쪼개진 것 마냥 멋지게 피가 뿜어져 나오고, 주변 녀석들도 휘말려 대난투가 시작되었지만, 우리는 신경 쓰지 않고 연주를 속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곡은 클라이막스로 접어들었다.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싶었더니, 어느새 CD318의 “환상의 소리”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일어서서, 왠지 굉장히 즐거운 듯이 스테이지를 파닥파닥 돌아다니고, 팔로 지휘하면서, 하타테 옆까지 와서 같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곤 해도 제대로 된 가사는 아니고, 콧소리로 흥흥 부르더니, 수 초 지나서 만족한 건지 피아노로 돌아와서, 기쁜 듯 다리를 꼬고 이전 그 의자에 앉아 ‘피아노 페달이 뭐야, 먹는 거야?’같은 기세로 페달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치기 시작하더니, 더욱 격렬한 편곡을 나에게 역류시켜왔다.

거기다 그걸 내가 다른 “환상의 소리”들에게 흘려줬더니.

 

이번엔 리드기타를 하던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의 “환상의 소리”가 뛰쳐나왔다.

그가 기타를 얼굴 높이까지 올리나 싶더니, 기타를 물어뜯듯이 이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부스스한 아프로 머리를, 자랑이라도 하듯 흩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 허세뿐인 멋부림이 아니다. 이로 연주하는데도, 듣고 반해버릴 정도로 완벽한 플레이였다.

아니, 완벽하다는 말도 적당하지 않다. 애초에 이 녀석은 리허설 때 쳤던 프레이즈를, 처음부터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편곡이 별나다든지 그런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올 애드리브.

아마 이 스트라토캐스터의 “환상의 소리”에게 있어 기타란, 그 때의 분위기만으로 치는 걸 거다. 무언가를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 완벽이라는 말은 그에게 있어 넌센스다.

 

클라이막스를 깔끔하게 부른 하타테와 눈이 마주쳤다.

진심으로 즐거워 보이는 미소.

자신의 꿈을 버리고 왔는데도, 하타테는 정말로 후회하지 않는다. ‘정말 다행이야’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미소다.

그런 미소가 나의 마음에 꽂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녀석의 기대만은 배반해선 안돼.

이 녀석을 위해서라도, 난 나의 꿈을 이루어야만 해.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있잖아, 하타테.

필요 없는 애인데다가 글러먹었던 녀석이 넘버원이 되는 걸 밀착취재 하면, 그저 그런 아이돌 그룹에 들어가는 것 보다 훨씬 좋은 신문 소재가 되겠지?

 

날 따라와.

 

함께 꿈을 이루자.

우리라면 할 수 있어.

자, 이 열광의 도가니를 봐봐. 인간도 요괴도, 다들 노래하고, 춤추고 있어.

여기가 세상의 중심이야, 하타테. 어제까지 세계의 끄트머리에서 미끄러질 것 같던 우리가, 지금은 한가운데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있어. 세계가 노래하고, 춤추도록 만들고 있어.

너와 만났기에 난 여기에 올 수 있었어.

이번엔 내가 너를, 여기보다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가 주지.

반드시, 반드시.

자, 환상향 놈들아. 다들, 내 사운드를 들어!

 

용기의 소리가 펼쳐졌다. 울려 퍼졌다. 작렬했다.

 

이젠 열중할 뿐이다.

머리가 새하얘질 때까지 연주하고, 타오를 정도로 열중하고, 힘이 다할 정도로 필사적으로.

음악과 나의 몸이 하나가 되는 쾌감, 폴터가이스트의 행복, 그것을 그저 쫓아가라.

정신 차려보니 연주가 끝나있었다. 마지막 코러스를, 하타테와 나와 리켄베커 아저씨의 목소리가 장식했다. 언제까지나 노래하고 싶은데, 폐의 공기가 1cc조차 남기지 않고 노랫소리로 바뀌어 끝났다.

 

하지만, 환호성은 그치지 않고 멈출 기색도 없이, 거꾸로 더더욱 들끓고 있다.

아나운서가 흥분한 모습으로 스테이지에 나와, 마이크로 무언가 말하고 있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

채점이 어떻다고 말하고, 뒤쪽의 거대 스크린을 가리켰다.

 

 

 

 

 

 

 

 

 

 

 

 

999.99

 

 

 

 

 

 

 

 

 

라고 되어있었다.

언니들과 같은 점수, 그것이 뭘 뜻하는지, 어떤 감상을 가져야 좋을지, 머리 속에서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사이에,

 

스테이지 위로 루나사와 메를랑이 내려왔다.

그리고 루나사는 하타테에게 마이크를 빌려서, “나와 메를랑에게도 채점용 스위치를 줘.”라고 아나운서를 향해 말했다.

 

“아니, 하지만…” 곤란한 표정의 아나운서. “출연자가 채점하는 건 규칙상 금지라서…”

“그렇담…” 루나사는 말했다. “방금 그 퍼포먼스를 평가해선 안 된다면, 음악을 하는 의미가 없어. 이제 나와 메를랑은 기권하고, 그저 한 명의 오디언스가 되겠어. 이거라면 룰 위반이 아니겠지?”

 

기가 막힌 아나운서는, 몸 둘 바를 모른다.

그 옆쪽 무대 구석에서 얼굴을 내보인 건, “야, 프리즘리버.” XX였다. “아는 스태프한테 빌려왔다.” 스위치를 두 개, 언니들에게 던져주었다.

그리고 루나사와 메를랑이 채점 스위치 버튼을 누르니,

 

 

 

 

 

 

999.999

 

 

 

 

999.99”9” 아나운서는, ‘괜찮나 이거’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순식간에 가신 것 같다.

“우…우승은, 리리카입니다. 999.999포인트. 최다 포인트 획득으로 이의 없이 우승입니다!”

환성이 귀가 아플 정도로 커졌다.

“제1회, 환상향 발리투도 뮤직라이브 데스매치, 우승자 리리카에게, 다시 한번 큰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그녀가 오늘부터, 환상향 넘버원 뮤지션입니다!”

 

박수는 당연하고, 관객이 스테이지로 몰려들고, 그걸 막아야 할 경비원까지 다들 기어올라왔다.

순식간에 우리는 둘러싸였다.

 

“리리카-!” 메를랑이 꽉 안아주었다. “대단했어~ 정말, 완전 대단했어!”

메를랑이 뿅뿅 뛰는 바람에 안겨있던 나는, 머리가 덜컹덜컹 흔들렸지. 진도 10정도로.

그런 우리들을, 루나사는 아무 말도 없이 보고 있다. 무언가 말하려 하지만, 말이 떠오르지 않는 것 같아.

그래서, 내가 말을 걸어야겠다 싶었다.

 

“있지, 루나사, 난 감사해.”

“감…사?” 루나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무슨 소리야 리리카. 난 네게 너무 차갑게 굴어서, 상처 입히지 않았냐… 나를 원망해도 좋다고.”

“감사한다고. 계기는 전부 루나사한테 있잖아. 루나사 덕에 절망했지만. 루나사가 있어서, 난 지금 이렇게 여기에 있는 거야. 그게…어—고마워.”

 

루나사는 나의 말을 듣고, 멋진 대사라도 해줘야겠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역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는지, 대신 표정이 전부 말해주고 있었다.

루나사는 정말로 기뻐 보였다. 미소처럼 보이기보다도 굉장히 감동한 느낌이어서, 당장이라도 울 것 같다.

아니, 이미 루나사의 두 눈에서 눈물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루나사도 맹렬히 안아줬다. 나와 메를랑의 어깨를 안아줬어.

 

찰칵, 사진을 찍는 소리가 났다.

“셋 다, 여기 봐봐”

하타테의 목소리에, 나도 루나사도 메를랑도 돌아본 순간.

한번 더, 찰칵.

“최고의 사진이 찍혔네.”

참 좋은 느낌으로, 하타테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아마 분명히 그 말대로, 우리는 지금 평생 기념이 될만한 미소를 짓고 있겠지.

 

 

 

 

 

작가 코멘트

바라고 바라던 작품집 꼭대기 달성!

인가 싶었더니, 후기를 쓰는 도중에 두 번째가 됐네.

그건 둘째치고

 

리리카

이 녀석을 마음대로 그리는 건, 지금까지 썼던 캐릭터 중에서 가장 기분이 좋았다.

그 덕분에, 사실은 리리카가 음악 포기하고 경비원 알바를 하거나, 피자집이랑 결혼하거나 하는 다우너(Downer)계 시나리오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모든 편이 어퍼(Upper)가 되었다.

이 내가 느낀 상쾌함이, 읽어주신 분들께도 전해진다면 굉장히 기쁘겠습니다.

 

그리고

 

하타테

이 녀석은, 지금까지 써본 캐릭터 중 가장 귀엽지 않을까 자부하고 있음.

이 녀석의 귀여움이 읽어주는 사람한테도 전달된다면, 그거 또 기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감사를 전해야만 한다.

제가 101% 기분 좋게 쓴 이 작품을 떠올리는 데에 크게 영향을 준 창상화 작품이 둘.

‘V.S.O.P’(리리카 주인공)과 ‘섬광소녀’(하타테 주인공).

이 작품들의 작가인 即奏 씨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번역판 규칙 [2] 파라디클로로.. 16.05.18. 3389
25 소설 Chlorine 18.04.08. 156
24 소설 고백 금지의 발렌타인, 덤. [1] 스톰보이즈 18.04.03. 312
23 소설 보이는 변화와 보이지 않는 불변 Chlorine 18.03.23. 172
22 소설 사토리랑 가위바위보! Chlorine 18.03.08. 343
21 소설 야, 거기 슈터! 그래, 너 말야, 너! 잠깐 할 얘기가 있다. [1] Chlorine 18.03.04. 261
20 소설 여기는 비봉탐정사무소 홍마향편 5화 file Laserbeam 17.10.29. 148
19 소설 여기는 비봉탐정사무소 홍마향편 4화 [1] file Laserbeam 17.09.29. 153
18 소설 여기는 비봉탐정사무소 홍마향편 3화 file Laserbeam 17.09.12. 171
17 소설 여기는 비봉탐정사무소 홍마향편 2화 file Laserbeam 17.09.09. 249
16 소설 라디오는 오늘도 날 부르네 Chlorine 17.06.26. 148
15 소설 뒈져라 글쟁이들아 [2] Chlorine 17.06.25. 431
14 소설 재채기로 끝 Chlorine 17.06.21. 238
13 소설 환상 구루메 ~제 1장 01화~ 슷고이타노시 17.03.30. 1281
12 소설 환상 구루메 ~목차~ 슷고이타노시 17.03.30. 1596
11 소설 백조와 러브 테스터. [1] file 스톰보이즈 17.03.15. 390
10 소설 혜성의 패러독스 下 Chlorine 16.11.27. 94
9 소설 혜성의 패러독스 中 Chlorine 16.11.27. 80
8 소설 혜성의 패러독스 上 Chlorine 16.11.27. 356
7 소설 고백 금지의 발렌타인. 스톰보이즈 16.11.17. 745
» 소설 전력소령! 후편 [2] Chlorine 16.09.27. 204